스쿠터를 타면 바람이 분다
석우주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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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읽는 달달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첫장을 넘겼을때는 그냥 그런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가슴을 콕콕 찌르다가 쏴하게 다가오면서 오만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잠들기 전에 몇장만 읽겠다는 것이 화근이 되어 밤을 꼴딱 넘겨버렸다.  이야기의 잔재가 꽤나 오래도록 남아서 분홍이와 신묵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모르겠더니, 깜빡 잠이 든 순간엔 분홍이의 오토바이를 타고 신묵이를 내 뒤에 태우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어린 아가씨에게 동화되어 신묵이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남편과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여전히 난 신묵과 분홍이의 사랑을 꿈꾸고 있었던 걸까? 

 

 

'만약이라는 가정은 유턴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의 힘 앞에서 헛되고 무력하기 짝이 없다.  칼날이 달린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그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분홍은 만약이라는 단어를 천 번쯤 반복한 후에야 그 사실을 넘칠만큼 배웠다.' (p.70)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랬다.  어떤 상황이 닥칠때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만약...'을 떠올리게 되는것은 나만 그런건 아닐것이다.  그 상황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때는 더 할 것이다.  신은 감당할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데, 분홍에게 주어진 시련은 그녀에게 넘치도록 힘들게 다가왔다.  그래도 이 여자, 연분홍은 역시나 주인공이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 '연분홍'이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조차 거부하는 그녀는 참 강하다.  수술을 받다 죽은 오빠, 주홍.  화재로 인해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신 엄마.  분홍에게 남은건 오로지 외로움과 넘치는 빚뿐이었음에도 분홍인 강하다.  스무살 조금넘어 아가씨가 어쩜 이렇게 강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분홍은 자신을 다스리고 다스린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짧은 머리에 스쿠터를 타던 아가씨가 조카의 과외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놀랐던건 아니었다.  자신으로 인해 스쿠터를 폐기했고, 과외에서 짤렸다는 사실로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던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준 스쿠터를 바로 팔아버린것이 괘심하게 다가온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묵에게 분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자꾸만 궁금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다시 만난 분홍은 ‘연강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외로움과 피곤으로 힘이들어하는 모습이 왜 이리 신경쓰이는지, 이 어린 아가씨에게 왜 이렇게 궁금함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신묵을 만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분홍과 자신을 밀어내려고만 하는 분홍이 이해되지 않는 신묵.  계속되는 우연은 신묵과 분홍을 인연으로 만들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겁먹지 마. 난 너하고 연애할 생각 없어. 심심할 때 같이 밥 먹을 친구가 필요하면 전화해. 나도 아주 가끔은 심심하니까.” (p.136)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어릴 적의 상처로 사랑이 두려워 가족을 만드는 것이 두려운 몸집만 커버린 남자, 태신묵.  '핑크'라 불러주던 따뜻한 가족이 사라지고 끝없이 아파해야만 할것 같음에도 가족이 그리운 여자, 연분홍. 사랑의 정은 먹으면서 쌓여가는 것이 맞는것 같다.  어린시절 이후 먹지 않았 다는 김밥도 먹고, 특별할것 없는 인스턴트 커피도 함께 먹으면 함께한 시간만큼 정이 쌓여가니 말이다.  함께 하면서 서로가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아니라고 이야기 하면서 어린시절 이야기에 가슴아파 해주고, 위로를 해주게 되니 말이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이 신묵과 분홍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밀어 내고, 왜 가슴이 아린지를 모르고 있으니 몸만 커버린 어린아이들 같다. 

 

굉장히 많은 우연이 신묵과 분홍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주홍의 전 여친 다정,  신묵의 누나와 조카,  금새 팔아버린 스쿠터, 커피를 마시던 시간과 가계의 화재, 너무 많은 우연으로 식상할만도 한데, 난 이 우연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으니 사랑이 고팠나보다.  신묵과 커피를 마시던 시간이 분홍을 살려낸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던 주홍.  주홍을 버리고 간 다정.  사랑은 참 그렇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것이 모두에게 자신의 관점에서는 주인공이니 그들의 선택되로 이야기는 진행되어진다.  이런 어려운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두사람이 행복하게 끝을 맺어서 나는 좋다.  아픈 사랑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오랜만에 읽은 스쿠터로 인해 맺어진 사랑이야기는 다시 '핑크'라 불리울 분홍이와 가족을 갖게될 신묵으로 인해서 스쿠터에서 느끼는 바람만큼 시원하고 행복한 에필로그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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