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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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에 42인의 노동자들이 '기만적인 자회사 전환 거부, 직접 고용 쟁취'를 외치며 올라섰다.

8p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은 톨게이트 비정규직 노동자들 (1,500여명)이 국가를 향해 직접고용을 요구한 투쟁의 기록이다. 7개월 동안의 투쟁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많은 연대와 지지를 힘입어 대법 판결에서 이기고 직접 고용되어 다시 일터로 복직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모든게 해결되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열악한 처우와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정규직이 됐지만 하는 일들이 일 같지 않고 동료들에게는 뜨거운 감자로 여겨짐)

무한경쟁 속에서 뒤쳐지면 (자격이나 능력이 없으면) 몸과 관계의 허기정도는 '감내'해야 하는게 당연한 사회분위기가 되었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하는 임금 중간 착복 같은 문제는 쉽게 개인의 탓으로 돌려진다. 노동을 지켜줄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주 노동자가 중장년 여성이기에 사회 안에서 그녀들의 좁은 입지 문제가 함께 이슈화된다.

여성이 주로 하는 노동은 그렇게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업무로 인식되지 않으며 저평가되기 쉽고, 이는 여성의 일자리를 저임금에 기간제/한시적 형태로 유지시키는 것을 정당화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하청 구조로 인해 더 심화되고 고착화된다. 그렇다 보니 여성의 일자리는 비정규직에 간접고용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러 가지 사유로 경력이 중단된 중년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집입하려고 할 때, 접근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불안정하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남성보다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조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2022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_여성가족부,2022 _47p

때문에 톨게이트 수납 업무가 '아줌마들에게는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이고, 톨게이트 영업소의 용역 업체들이 (아웃소싱 회사) 그녀들을 착취하기 용이한 구조로 만들었다.

계속해서 쌓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약자들끼리 연대하고 투쟁하기 시작한다. 이 투쟁의 역사에 몸 담았던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구술기록 형태로 잘 묶어 책으로 낸 것이다.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는 노동자 (한부모 가정, 장애여성, 북한 이탈주민, 경력단절자 등) 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가지 사건에 대해 다각도로 사유할 수 있게 만든다.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시점에서 입체적으로 보게 하는 힘은 문제의 대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언제나 모든 사회 문제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오는 것일 텐데, 법과 제도, 언론이 내놓은 기사는 너무 납작하다. 시대의 흐름에 법과 제도가 너무 뒤쳐지다 못해 요즘은 퇴보하고 있어 걱정이다.

노동자들이 걸어온 투쟁의 경로를 누구는 그저 허공에 외치는 목소리일뿐 귀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외면하고 회피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단순히 톨게이트 노동자와 도로공사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문제, 기업과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로 같이 볼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모든 개인은 느슨하지만 촘촘하게 연결 되어 있고,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기에 이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는 모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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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냄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김지연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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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시리즈의 마흔아홉 번째 소설 김지연 작가의 <태초의 냄새>.

소설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일상을 읽은 것 같다. 일기 같이 단순한 형태가 아닌 일상을 인용하여 삶에서 느껴지는 보편적인 상징을 표현한 것 같다. 조금 더 촘촘하고 적나라하게.

소설은 인간의 오감중 하나인 후각을 통해 상실과 혐오를 나타내보인다. 상실은 K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후각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것은 익숙하게 쌓여왔던 그 동안의 냄새의 기억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억 속에는 오로지 후각을 통해서 좋아함을 느꼈던 뭔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감각이고, 이후에 밀려오는 불안감을 K의 심리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삶은 언제든 형태를 바꿔가면서 우리에게 무엇이든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부분.

두 번째, 후각을 통해 나타낸 혐오. 이것은 악취로 표현된다.

후각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K가 맡게 된 '악취'는 그녀가 회피하거나 외면했던 고통들이 가하는 복수의 알레고리로 읽히기도 한다.

121P

K는 동료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건설 노동자들에게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한다. K의 동료는 불만을 토로한다. "진짜 역겹지 않아요?" 사회에서 노동을 낮게 평가하는 계급주의와 혐오가 이 상황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K가 과거에 할머니와 했던 대화에서처럼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개인마다 다 다른것이다. 그리고 그 냄새는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스스로가 만들어 풍기는 냄새가 악취건 향기롭건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 또 웃기면서도 씁쓸한 이면이다.

K의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은 자신만의 냄새를 갖게 마련이라고. 아니다. 날 때부터 누구나 냄새를 갖지만 살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꼭 맞는 냄새를 갖게 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으면 슬슬 그 냄새를 풍기게 된다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풀풀.

P19

그러니 남의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얼굴을 찡그리며 계급을 따지고 혐오를 드러내기 전에, 자신에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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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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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골무형성증' 이라는 선천성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이 장애로 인해 남들과는 다른 외모를 갖고 태어나게 된다. 키가 작고,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발달이 충분히 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지 못한 몸. 평생 힘든 통증을 견뎌야 하고 다스리기 위해 애써야하는 몸이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없어서 생긴 형상. 그녀에게 누락된 요소, 천골.

장애와 그로 인해 형성된 뷰티와는 거리가 아주 먼 몸의 형상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수 많은 차별과 박탈감을 준다. 이 폭력적인 세상과 무례한 사람들속에서 살아내면서 그녀는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특히 그런 불쾌한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을 '중립의 방'으로 가져다 놓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대안임을 알면서도 슬프고 화가났다.

<이지 뷰티>에서 저자가 말하는 중요한 부분은 모두가 말하는 사회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고 그게 잘못됐고 바꿔야한다기보다 그저 여기에 매달려 불행해지지 말고 아름다움은 추구하되 여성들이 주체성과 자유로움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

어리숙하고 가여워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장애인이 임신하는 것은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는 이상한 굴레도 모두 개인의 존재 가치를 찾는 여정속에 있는 것이고 그저 선택이고 책임이며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뭔가 그동안 보았던 익숙한 그림을 거꾸로 본 듯한 기분이 드는 책, 그리고 거꾸로 본 그림 너머로 더 큰 세상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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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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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다 이렇게 아리고 아픈 것 같다. 시대와 역사에 휘둘리는 개인의 삶들을 바라보는게 익숙해서 그런가..(우리 역사와 비슷한 느낌) 공감과 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1918년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킬네이에서 자라던 소년 윌리는 험악한 얼굴을 한 시대의 폭풍우 한가운데 휘말려 가족이 학살 당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둥지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집은 불타버리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두 여동생을 한번에 잃어버리게 된다.

윌리는 어머니와 집의 하녀였던 조세핀과 함께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 후의 삶은 상실속에 허덕이는 우울한 시절들이 계속해서 이어질뿐이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형벌처럼 난도질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윌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쌓아갔을까. 그 참담함을 상상하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윌리가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을 때 알코올 중독에 빠져 점점 자신을 놓아버리는 어머니와 윌리를 위로하러 멀리서 이모와 사촌 메리앤이 찾아온다. 그리고 메리앤과의 만남에서 또 다시 운명의 비극이 이어진다.

처음엔 윌리가 말하고 그 다음은 메리앤이, 마지막으로 그들의 딸 이멜다가 말하는 소설의 전개는 사실상 한 가정과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빼앗아가고, 미쳐버리게 만드는 일들뿐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시종일관 우울한 이야기를 잃고 있는데 전혀 가라앉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 오히려 책을 덮었을때는 이상한 희망의 싹이 보여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이야기의 중심이 난도질당한 삶, 운명의 꼭두각시, 유령의 삶, 우울, 상실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버팀의 하루, 또 다시 반복되는 비극을 마주보고, 남는 건 상처뿐일지라도 그래도 품에 안고 가져가려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긴 세월을 놓고 보자면 '결국 단지 비극일 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어진다.

다만 삶이 언제든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가끔 화가 나기도 하고 어쩔 수 없겠다라는 낙심으로 남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삶에서 불행과 희망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 갑자기 한 순간 인생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멜다 퀸턴은 내 이름. 아일랜드는 내 조국. 불탄 집은 내 거처. 천국은 내 목적지.

275p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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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뜻대로 안 될 때 - 낙심, 피로, 분노, 불안을 끊는 온전한 연결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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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누구나 하는 경험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도 통하지 않을 때 결국 낙심하게 되고 방향을 잃고 주체적으로 삶을 잡아당겼던 끈을 놓게 된다. 이 책은 이때 우리가 다시 각성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고쳐먹어야하는지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던 그 문제에 유일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 핵심의 단어는 바로 '연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곁에 꼭 붙어 있으라는 얘기.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분 안에 거하라는 그 말이 삶에서 행동으로 옮기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때문에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연결'을 위해 어떤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지, 200페이지가 넘는 여백에 저자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후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자신의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경험했던 감정들을 살펴보면서 '연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그 분 앞에서의 겸손과 항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기독교의 신앙은 모두 이런 '믿음'을 깔고 시작한다. 절대 불변하는, 거스를 수 없는 전제 조건이 마치 출발하기도 전에 앞을 가로막는 높은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나도 여기서 오는 거부감이 꽤 컸고, 나름의 하나님이 주시는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후에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것이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일탈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삶이 뜻대로 안 될 때>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져서 힘들어하는 가지들에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된 '연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침서와도 같았다.

읽으면서 예전에 암송했던 성경구절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밀려오는 감사에 또 마음이 울컥. 나는 내가 갖게 된 이 신앙이 너무 감사하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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