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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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로 일찍이 알고 있었던 정지우 작가님. 이분은 매일 쓰는 작가이면서 이후에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도 되신 대단한 분.

<그럼에도 육아>는 정지우 작가님의 육아 에세이로 아이를 키우면서 나온 사유와 글로 작가님만의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을 만날 수 있어 좋았던 책이다. 거기에 육아라는 공통분모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반갑고 위로 되어 오늘도 되지도 않는 임기응변으로 아들 둘을 챙기는 내 모습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온전한 나의 삶을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했다.

이 책은 매일 경제에 기고한 칼럼을 기초로 두고 만들진 에세이다. 당시 수많은 맘카페를 뜨겁게 달구며 SNS에서 공감 육아 칼럼으로 크게 회자되었다고 한다. 실재로 아빠가 쓴 육아일기는 현실과 깊숙히 닿아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글들이라서 나 역시도 깜짝 놀랄만한 공감을 느끼게 했다.

현재 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778명이다. 이 합게 출산율은 앞으로도 급격히 줄것이고, 전시보다도 낮은 출생율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것도 물론 큰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건 인식이다. 육아에 대한 가치 저하는 돈으로 아무리 지원해줘도 출산율은 크게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으로 귀결된다.

육아 앞에 수식어로 '독박', '경력 단절', '잉여' 라는 뜻이 붙는 한 여성들은 흔쾌히 인생의 일부분을 출산과 육아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주변에서 물어보면, 낳지 않는 것도 좋고 낳더라도 하나만 낳으라고 말한다. 한 사람을 키운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너도 그렇게 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나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둘 낳고 키운 것이라고도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10년 키우면서 이것이 내 세계에서 명확해진 부분이다. 육아는 힘들어도, 다시 돌아가서 한번 더 겪어야한데도 내 인생에서는 꼭 필요한 시간과 기억이 되었다.

큰 돈을 벌고, 좋은 물건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 모든 애씀보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서 같이 그네 타고 실없는 농담으로 웃겨주고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마중갈 때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 미소 안에 이제 진짜 내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지우 작가는 매일 느끼고 있는 이 분명한 행복을 글로 참 잘 정리하고 표현해 냈다. 읽으면서 저절로 끄덕여지는 고개와 은은하게 퍼지는 미소는 덤이다.

이 모든 것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비밀을 따뜻하고 유려한 글솜씨로 내 지나온 10년을 토닥이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도 든다. 매일 마시던 공기가, 매일 걸어다니던 땅이 갑자기 귀하고 고마워지는 기분. "그래 나는 확실히 내 삶을 살고 있어." 라고 혼자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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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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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초판 발행 날짜는 2013년 12월 24일이었다. 제목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였고, 이후 복간 요청이 쇄도해 11년만에 <원도>라는 이름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최진영 작가의 인물중에 원도가 가장 어둡고 비겁하고 비루한 사람 같다. 삶이 여러가지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가장 열어보기 싫은 방, 그 방 안에서도 가장 쳐다보기 싫은 음습한 구멍만 바라본 듯한 기분이 든다. 정말 제목처럼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하고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런 분리수거조차 되지 않을 세상에 버려진 원도 같은 인물에게도 구원이 있을까? 사실 원도의 인생은 이렇게까지 쓰레기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관심과 어렸을때 목격한 아버지의 죽음, 장민석에게 느끼는 치졸한 열등감과 질투, 실패한 사랑, 횡령등 어떤 조건도 그는 망가지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표현이 뒤틀린 태도로 표출되었기에 그의 삶은 한없이 깊은 검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문장은 '이렇게 계속 사랑해도 되는가'라는 문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얘기한다. 결국 회피하고 싶은 삶의 어두운 구멍을 '원도'라는 인물을 통해 느껴보면서, 메꿔지지 않는 결핍을 그나마 다시 채울 수 있는 것은 관심과 사랑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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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문방구 1 : 뚝딱! 이야기 한판 - 제2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
정은정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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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린이책 서평단에 신청하고 가제본을 받아보았다. 가제본을 처음 본 아이들은 세상에 정식으로 나오기 전에 이야기를 미리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해했다.

<아무거나 문방구 1 : 뚝딱! 이야기 한판>은 이야기라면 아무거나 다 수집해서 기록하는 도깨비가 나온다. 도개비는 어느 초등학교 뒷골목에 작은 문방구를 차리고 어서옵쇼라는 하얀 고양이 귀신과 함게 손님을 맞이한다.

문방구를 찾는 어린 손님들은 구석구석에 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사게 되고 (젊어지는 달달 샘물, 강아지 가면, 신나리 도깨비 감투 등) 그 물건을 통해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깜짝 놀랄만한 일을 겪고 부리나게 다시 찾은 아무거나 문방구의 어린 손님들은 그제서야 도깨비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여기서 보여지는 어린이들의 반성과 성찰은 어른들도 종종 잊어버리는 가치들과 겹쳐진다. 모두가 어린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어른이 되기 때문일까, 어린이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 봐도 좋을 책.


아이들이 털어 놓는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평가하거나 질책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든 귀하고 세심하게 들어주는 배불뚝이 도깨비 아저씨의 모습이 어린이 가까이에 있는 모든 어른들이 가져야 할 모습으로 느껴진다.

다섯가지의 이야기만 담긴 가제본이라는 것이 아쉬웠다. 책을 잘 안 읽는 큰 아이도 신비롭고 마음이 좋아지는 이야기라며 끝까지 읽었다. 이야기 한편마다의 분량도 길지 않아서 접근하기 부담 없고,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힘이 되는 이야기들이기에 읽고난 후 아이들과 나눌 때에도 신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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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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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는 남성이 대다수인 이른바 '남초직군'에서 일하는 여성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책이다. 주로 건설현장이나 전문 기술직 현장에서 거칠고 험한 일을 해내며 살아낸 여성 경력직들의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현장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화물기사, 용접기사, 먹매김, 형틀 목수, 건설 현장 자재 정리와 세대 청소, 레미콘 기사, 철도 차량 정비원, 자동차 시트 제조, 주택수리 노동자등 일만으로도 고될텐데 여기에 지겹게 따라다니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도 맞서야 한다.

일을 시작한 다 같은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일을 하게 되더라도 기술자 일당이 아닌 보조급의 일당을 받아야 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로 여자 화장실은 아예 있지도 않아 계속 요구하고 목소리를 내어 지금은 조금씩 늘어가고는 있다.

성별을 떠나 생계 때문에 일하러 나온건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때나 생각없이, 무례하고, 가볍게 내뱉는 남자동료의 말로 매번 상처받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Q. 지나씨가 일터에서 남성 동료들과 평등하게 일하려면 앞으로 노동환경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여성화물 노동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일터에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남성중심 문화가 형성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냥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물 노동자 김지나 p28


여기 인터뷰집에 실린 여성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앞서 말했듯 초보시절에 일 구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점, 두번째는 동료들로부터 받은 성희롱, 세번째는 일을 시작하기 전과 후의 변화이다. 이 변화란 구체적으로 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에서 오는 자아실현이다.

전문적인 자신의 일이 있고, 나이들어서도 이만큼 벌 수 있고, 동료들과 가족들에게 인정 받음으로 하루 하루 당당하게 살아가는 얼굴들에서 내 일도 아닌데 뿌듯함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이들이 일하는 현장에 머물면서 어떤 차별과 편견의 환경에 갇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노력과 기술로 증명한다면, 안 될 것도 없다는 긍정의 기운이 솟아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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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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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문학 전문기자의 비평 에세이다. 그는 1988년에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해 30년을 문학전문기자로 지면을 빌려 발언하고 증언했다. 정년이 다가오며 홀가분한 심정과 아쉬운 마음이 들 때, 문학기자로 있었던 동안 쓴 기사를 중심으로 책을 꾸며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평생을 한 직장과 직업으로 커리어를 쌓고, 게다가 그 일이 몇 세대를 관통하는 생이 긴 문학이라는 장르라니, 한 사람의 삶이 부러웠다.

이 책에서도 소개한 나의 스승 도정일 선생의 인문에세이에 따르면, 인간이란 이야기의 우주속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물, "이야기하는 원숭이"다. 이야기는 의미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그런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학사가 쓰이기 전에도 문학은 엄연히 존재해 왔다.

내용은 저자가 30년동안 성실하게 쓴 서평과 칼럼, 인터뷰, 부고기사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이라는 긴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생생한 현장에서 무언가를 붙잡고, 작가들과 관계를 맺고, 끊임 없는 사유 속에서 씨름하며 성실한 태도로 하나하나 증언처럼 씌여진 기사들의 가치는 충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조세희, 박완서, 김소진 작가의 작품부터, 노벨 문학상에 대한 지적, 신경숙 표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단의 억압과 기울어진 권력,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사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등 문학의 역사와 세계를 날카롭게 훑을 수 있는 창을 열어보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작가들(조세희, 박완서, 김소진, 진이정, 황석영, 김지하, 안도현)과 작품들의 비평과 마지막 부분의 부고가 참 좋았다. 그 이유가 뭔가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최재봉 기자가 문학이라는 거대한 땅과 그 위에 지내면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글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따뜻한 시선이 날카로운 비평과 작품에 대한 촘촘한 분석들을 더 단단하고 진실된 목소리로 만들어준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는데, 저자의 30년 문학기자 외길은 더 깊은 애정과 선명한 완성도를 보여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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