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다 이렇게 아리고 아픈 것 같다. 시대와 역사에 휘둘리는 개인의 삶들을 바라보는게 익숙해서 그런가..(우리 역사와 비슷한 느낌) 공감과 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1918년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킬네이에서 자라던 소년 윌리는 험악한 얼굴을 한 시대의 폭풍우 한가운데 휘말려 가족이 학살 당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둥지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집은 불타버리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두 여동생을 한번에 잃어버리게 된다.
윌리는 어머니와 집의 하녀였던 조세핀과 함께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 후의 삶은 상실속에 허덕이는 우울한 시절들이 계속해서 이어질뿐이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형벌처럼 난도질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윌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쌓아갔을까. 그 참담함을 상상하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윌리가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을 때 알코올 중독에 빠져 점점 자신을 놓아버리는 어머니와 윌리를 위로하러 멀리서 이모와 사촌 메리앤이 찾아온다. 그리고 메리앤과의 만남에서 또 다시 운명의 비극이 이어진다.
처음엔 윌리가 말하고 그 다음은 메리앤이, 마지막으로 그들의 딸 이멜다가 말하는 소설의 전개는 사실상 한 가정과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빼앗아가고, 미쳐버리게 만드는 일들뿐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시종일관 우울한 이야기를 잃고 있는데 전혀 가라앉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 오히려 책을 덮었을때는 이상한 희망의 싹이 보여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이야기의 중심이 난도질당한 삶, 운명의 꼭두각시, 유령의 삶, 우울, 상실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버팀의 하루, 또 다시 반복되는 비극을 마주보고, 남는 건 상처뿐일지라도 그래도 품에 안고 가져가려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긴 세월을 놓고 보자면 '결국 단지 비극일 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어진다.
다만 삶이 언제든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가끔 화가 나기도 하고 어쩔 수 없겠다라는 낙심으로 남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삶에서 불행과 희망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 갑자기 한 순간 인생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