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이는 우리 사이에 우연과 낭만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어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따분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전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이에요. 전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대단한 영감으로 순식간에 걸작을 써내는 작가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트루먼 커포티는『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데 육 년이나 걸렸어요. 그런 거예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예요." -338쪽(크레마전자책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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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이 훨씬 좋았다.

아무래도 책을 먼저 읽은데다가, 영화에서 책의 구성(여러 명의 시점이 존재하는 구성)을 그대로 살리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으므로 리카의 이야기로만 압축한 탓인 듯한데, 전체적으로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돈에 휘둘리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고 할까. 리카의 지인들을 아예 빼버린 대신 은행 동료들을 등장시킨 각색이나 리카가 횡령을 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 있는 연출은 좋았지만. 대충 보면 흔한 불륜 이야기 같이 보이기도 하고... 책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리카의 고등학교 시절 일화 - 재난을 당한 국가의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데 리카가 열성적이었다는 이야기 - 에 살을 붙여서 시작과 끝에 배치한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리카와 고타 사이의 관계가 책과 다르게 느껴지도록 그려져서 더 그런 것 같다. 책에서는 리카가 고타를 단지 연인이 아니라 자신이 갖지 못한 아이를 보듯이 보는 듯한 장면이 몇 군데 나온다.

고타는 엄마에게서 떨어진 아이처럼 언제까지고 리카를 보고 있었다.  -165,166쪽

  리카는 고타가 고학생이고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빌리지 못하고 있으며, 친구들과 아마추어 영화제작을 한다는 등의 여러 사정을 알고 충분히 가까워진 후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과정이 너무 짧게 그려져서, 마치 리카가 고객인 고타의 할아버지 집에서 고타를 우연히 한번 본 후 서로 첫눈에 반해 바로 잠자리를 가진 것처럼 보이고, 고타의 이런저런 사정들은 그 후에 우연히 알게 되어 횡령을 시작하게 되니(빚이 있다는 것 자체는 책에서도 잠자리 후에 알게 되긴 하지만)- 흔하디흔한 '사랑에 눈 멀어 공금에 손 댄 여자'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느끼길 바라고 리카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전혀 친밀한 애정을 주지 않는 남편과의 관계, 아이를 갖고 싶었던 마음, 자신이 늘 자신의 일부에 불과한 것 같다는 불안감 등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리카가 사주는 음식을 먹는 고타에 대한 애정으로, 고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만능감으로 진화하는 과정.. 그리고 띠동갑 연하남을 만나며 느끼는 초조함과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에게 돈을 쓰는 희열, 돈이 단순히 종이로, 허상으로, 가짜로 보이게 되는 이상한 감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걷잡을 수 없는 사치와 횡령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 - 그런 것들이 책에서는 섬세하게 표현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

 고타와의 헤어짐도 그렇다. 영화에서의 고타는 책에서의 고타보다 훨씬 뻔뻔하고, 사기꾼 같다 (책을 읽지 않은 채 영화를 본 남편은 처음 빚 얘기를 할 때부터 고타가 사기꾼이 아니냐며 의심했다). 고타의 양다리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리카에게 고타가 쥐어짜듯 말하는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라는 절박한 말도 영화에서는 없다. 리카가 구해준 맨션에서 다른 여자랑 나체로 누워 있는 모습을 들킨 욕먹어 마땅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너무 흔한 전개잖아 이거.. 왜 이렇게 각색을 했지. 시간상 섬세하게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초반에 몇 장면 나오는 베드신을 줄이고 좀더 대화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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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동안 읽은 로맨스소설 중 추천할 만한 몇 권을 적어본다. 거의 질이 보장된 것들만 읽은데다가 별로인 책은 중도에 그만뒀기 때문에 아래 책들 외엔 거의 읽은 것 자체가 없지만.  

 

1. 레디메이드 퀸(어도담 저)  ★★★★★

 

 

 

 

     

 

 

 

 

 

 

시작은 매우 전형적인 판타지로맨스물 같으나, 뒤로 갈수록 로맨스소 설이라기보다는 정치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치 이야기가 정치(精緻)하게 다루어진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문장이 담백하면서 서정적인 것이, <하얀로냐프강>이 조금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결말이 압권이다. 이 정도로 여운이 남아 계속 기억되는 로설은 처음 본다.

 

2. 타임 트래블러(윤소리 저)  ★★★★★

 

                                 

        

 

 

 

 

 

 

 

 

 

 

시간여행자라는 흔한 소재를 우리나라 역사와 연결하여 맛깔나게 그려냈다. 전체 구성이 탄탄하고 자료 조사를 많이 한데다가 필력도 좋다. 2부인 '얼굴없는 미인도'가 카카오페이지에서 기다리면무료로 올라왔기에 보고있는데, 1부와 달리 기다리면무료로 찔끔찔끔 봐서 그런지 몰라도 전개가 느리게 느껴지는 점은 있지만, 원체 글을 재미있게 쓰는지라 꾸준히 보고 있다. 2부에서는 역사 속의 실존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어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하다.

 

3. 정의 각인(선지 저)  ★★★★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조각가와 그의 제자로 들어가기 위해 남장을 한 여자의 이야기. 로맨스 부분은 전형적이지만 소재가 독특하고 자료조사를 많이 한 것 같아 읽을 맛이 난다.  

 

4. 루시아(하늘가리기 저)  ★★★★

 

 

 

 

 

 

 

 

 

 

 

 

 

 재밌다. 엄청 야하다. 끊임없이 베드씬이 나오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지겨워서), 기본적으로 문장이 좋은데다가 상황과 대화를 다양하게 매칭하여 지겹지 않게 잘 썼다. 기본 내용도 전형적으로 보이면서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지 기다리면무료에 같은 작가의 <꽃의 노래>가 올라왔기에 보고 있는데 이 소설에는 베드씬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전체관람가니까) 재미있는 걸 보니 확실히 베드씬으로(만) 승부하는 작가는 아니다.

 

5. 달을 사랑한 괴물(김지우 저)  ★★★★

 

 

 

 

 

 

 

 

 

 피폐물이라는 용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체험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헉. 구매하여 다음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전개가 매우 독특하다. 기본적으로 이세계로 간 여주가 아무리 고생을 한다고 해도 고생의 내용이 전형적이고 적어도 외모는 아름답기 마련인데, 이 책의 여주는 아름답지 않은데다 건강하지도 않다. 정말 불쌍하다. 이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중도포기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계속 흥미를 끌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6. 비정규직 황후(한민트 저)  ★★★★

 

 유치찬란하게 느껴지는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 때문에 읽지 않을 뻔했던 소설. 카카오페이지에 있는데 출간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제목, 표지와는 달리 담백한 문체와 남장여주임에도 남장소설에서 전개되기 마련인 뻔한 로맨스보다는 오히려 여성으로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어 결국 여성의 지위향상에 이바지하게 되는 여주의 활약상에 치중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통쾌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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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닉 2019-09-1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됀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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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읽었던 <침묵의 봄>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를 읽었다.
경향신문에서 시리즈로 기획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 세번째 인물 ‘반다나 시바‘와의 인터뷰 기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761102&sid1=0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763152&sid1=001

과학자로서 농부이자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풀뿌리민주주의, 에코페미니즘을 주창하면서 유기농사를 통해 지구를 살리려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침묵의 봄>에서 말한 화학물질의 공격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문장은 그가 ˝올바른 행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란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함에도 하지 않을 때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인용한 인도경전의 글귀다. 인상적인 주장이어서 줄을 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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