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6 - 구부의 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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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보다 위대한 왕

고구려의 왕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은 누구인가? 대부분은 뛰어난 정복군주였던 광개토대왕이라 답할 것이다. 한민족이 세웠던 그 어떤 나라들보다 넓었던 영토와 패기를 보여줬던 광개토대왕의 생애는 자주 드라마화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광개토대왕이 그토록 활개 칠 수 있었던 배경엔 소수림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 고국원왕의 전사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던 고구려의 기틀을 잡고 고구려가 대제국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았다.

()족 중심의 역사 패러다임을 깨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독특하고 원대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소설가 김진명은 고구려 6 : 구부의 꿈에서 그 중요성에 비해 조명을 못 받았던 소수림왕의 일대기를 재구성한다. 소설은 고구려가 백제에게 복수를 시작한 수곡성전투 앞뒤에 있었던 시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한 뒤 불교까지 받아들여 민심을 하나라도 만든 소수림왕 고구부. 그는 5년 동안 국력을 기른 뒤, 신들린 전법과 계략으로 백제군을 패퇴시키고 고국원왕 사후 처음으로 백제에게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단순히 그의 꿈은 백제에게 복수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공자가 역사를 조작하여 통해 만들어놓은 ()’족 중심의 세계관을 깨는 것. 수많은 이민족들이 중원을 차지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한족에 동화되던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다.

수곡성, 그리고 이어진 서어산에서의 전투는 앞으로 있을 요하를 두고 싸울 패권 경쟁에 앞서 백제를 든든한 동맹을 만들기 위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고구부의 패기를 두려워한 적대 세력의 방해와 몇 번의 불운이 겹치며 그의 큰 그림은 어그러지고야 만다.

고기능 소시오패스 고구부

저자에 의해서 묘사되는 소수림왕은 조선의 정조를 연상시키는 만국의 스승군주의 모습이다. 뛰어난 지식과 새로움의 추구, 그리고 결단력으로 나라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리더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학자로 본다.

책을 읽으면서, 영국드라마 <셜록>에서 셜록이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묘사된 것처럼, 소수림왕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에 딱히 흥미가 없이 계속 큰 그림만 그린다. 그 과정에서 굳이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후 그가 실패를 겪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사람을 위하고 백성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주고자 하는 따뜻함을 지닌 군주이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도 백성을 위하고 신하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민을 오로지 비구니 한 명에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애처롭고 불쌍하기도 하다.

그의 애민(愛民) 정신과 큰 그림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바로, 근초고왕 부여수와의 담판 장면이다. 단순히 국경선이 오고 가는 일 따윈 관심 없다며, 결국 백성들이 법령과 예의라는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그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소수림왕의 시대

이전까지 고구려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국사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오히려 이 박진감을 다시 느끼고자 1권부터 찾아서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6권은 소수림왕의 371년부터 384년의 전체 치세 중에 1/3 지점인 376년에 끝이 난다. 역사적으로 백제와의 대결전, 거란의 침략, 소수림왕의 죽음 등 많은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7권 이후가 더욱 기대가 되는 바다.

p.312 모든 상황을 정리하자 그는 문득 실소를 흘렸다. 완벽한 복안이었고 설계였건만. 무엇 하나 틀어질 일이 없는 그림이라 생각했건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구부와 그들은 같은 곳에 있지 않았다. 너무나 높은 견지에서 그려낸 그림이기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그 사실 자체가 바로 결점이었다. 고운이 그의 뜻을 알았더라면, 신하들이 그의 뜻을 알았떠라면 기꺼이 제 목숨, 제 자식의 목숨을 내던져 훗날의 고구려를 위해 기쁘게 죽음을 맞이했을 텐데. 백제를 잃을 일 따위 없었을 텐데. 신하들은 물론 고운도 잘못이 없었다.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구부 스스로의 한계였다.

p.140 "말의 눈가리개란 제가 어떻게 부림당하는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는 어떤 다른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만드오. 이끄는 대로 달리는 일, 제 본분으로 지워진 일에 가장 충실하게 될 뿐이오. 나는 그 눈가리개를 벗기고 백성이 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 것이오."
"유학 따위 저들이 얼마든지 간직하도록 두겠소. 그러나 눈가리개를 벗어난 백성이 제 눈으로 똑똑히 세상을 보며 제 손으로 자유롭게 빚어낼 앞으로의 산물, 새로이 태어날 문물은 우리의 것이 되겠지. 자연스러운 수순이오. 내가 굳이 새로운 길을 열어줄 필요조차 없소."

p.139 "공자가 그 모든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한족을 천하의 주인으로 군림케 하고자, 세상의 모든 문물이 모두 주나라에서, 즉 한족에게서 나온 것으로 꾸며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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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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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 길들임과 행복해질 용기


참된 길들임이란 무엇인가


넌 아직도 나에게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도 날 필요로 하지 않지.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난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 생텍쥐페리,《어린 왕자》中


어린왕자에서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길들임에 대해 배운다. 길들인다는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통해 상대방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나 자신도 상대방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존재를 길들이고 또한 길들여지며 관계를 맺어간다. 하지만 정작 힘들고 외로운 순간 홀로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참된 길들임을 맺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저 필요와 상황에 휘둘리며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길들임은 책임이자 훈련이다


참된 길들임에 대해 배우기 위해선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났듯,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는 애인의 바람, 집안의 파산, 일에 대한 회의감 등으로 불행해진 사라에게 고양이 시빌이 찾아와 그녀를 입양하여 길들이고 행복을 찾아주는 이야기다.


사라 레온은 스페인 출신으로, 영국에서 10년째 남자친구 호아킨과 동거중이다. 행복했던 것은 잠시, 일에선 즐거움을 못 느끼고 애인과는 서먹해진지 오래다. 누적된 스트레스에 그녀는 클라이언트와 미팅 중에 기절한다. 절망적인 그 순간, 고양이 시빌이 그녀에게 말을 건다.


시빌은 생각보단 감각, 상상보단 현실에 집중하는 삶을 사라에게 훈련시킨다. 그녀가 남자친구의 바람을 알아채고, 이사하고, 업무에 복귀하는 등 괴로워할 때마다 어떤 조건 없이 자신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그렇게 사라는 고통에 맞설 힘을 얻는다.


소설을 읽으며 길들임이 단순히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친해지는 과정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빌이 사라에게 했듯, 길들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 그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훈련시키고 고통을 나눠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행복해질 용기를 배우다


고양이 시빌사라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보며,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미움받을 용기가 떠올랐다. 시빌이 제시하는 행복을 위한 기술들이, 아들러가 열등감과 불안을 극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한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시빌은 사라에게 감각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녀의 걱정과 염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을 속이고 한계 짓는 사람이 결국 자신임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는 아들러가 말한 내면의 열등감과 자의식 과잉을 인정하는 자아수용의 단계다.


하지만 의식한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괴로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타인에 대한 불신을 거두는 타자 신뢰가 중요하다. 사라는 시빌의 조언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다.


행복을 배우기 위한 결단


절망 속에 고양이가 위로의 말을 걸고 행복 훈련을 시키는 건 한 번 쯤 해볼 만한 기분 좋은 상상이다. 하지만 그 고양이를 통해 이 책의 저자가 나누고자 하는 깨달음은 결국 행복은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 끝에 얻어지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린 왕자에겐 여우가 찾아왔고, 사라에겐 고양이가 찾아왔듯이 우리에게도 행복을 가르쳐줄 스승들이 찾아온다. 굳이 동물들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책 등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 존재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결국 행복의 길로 들어갈 결단이 중요한 것이다.

p.52 "난 뭐가 중요한지 알아. 네 머리가 헤어볼처럼 완전히 헝클어진 채로 뭉쳐 있다는 것. 그리고 네 심장이 잊힌 채로 슬프게 시들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어."
"참 끔찍하지, 사라. 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야. 삶이란 너무나 환상적이고 마법과도 같이 기쁜 건데……."

p.99 "네 머릿속에 날뛰고 있는 생각이 전부인 게 아니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사실 네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생각들과는 상관없다고 해야 할까. 관찰을 해봐, 사라. 네 주변 공기의 냄새를 맡아봐. 네 피부를 느껴보라고, 귀 기울여 들어봐. 인생은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항상 새롭게."

p.135 "지금 네 자신을 챙겨야 해. 사실 더 좋은 건 널 챙겨줄 사람을 찾는 거야. 여기서 나가자. 다른 안식처를 찾아보자고. 너를 사랑하고 지지해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고양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독립적이 되지만 너희 인간들은 어딘가 개와 비슷한 면이 있지. 너희도 개처럼 무리가 필요해."

p.314 난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라고만 말하는 거울 속 형상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이 놀고 더 적게 일하기 시작했다. 닫힌 방에서 바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 이미 밖으로 나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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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세계사 - 5000년 인류사를 단숨에 파악하는 여섯 번의 공간혁명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오근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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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세계사 / 미야자키 마사카쓰

1. 역사는 공간안에서 이루어졌다

역사는 대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된다. ‘연도라는 훌륭한 도구를 사용해서, 기원전 몇 천 년, 기원후 몇 백 년 같은 식으로 나열되는 역사는, 별다른 설명 없어도 그 자체로 연결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단순한 시간의 변화에 따른 사건의 나열로 인지했을 때의 문제 중 하나는, 마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되어서 일어난 것 같은 착시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역사는 삼간(三間),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대의 역사는 시간이라는 서사에만 몰두한 채, 정작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켰던 물적 토대인 공간의 변화에 대해선 가벼이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농업 혁명, 대항해시대, 산업 혁명 등의 세계사적 사건에 기반엔 항시 공간에 대한 재정의가 있어왔고 공간의 주인이 곧 역사의 주도권을 쥐었다.

2. 생동감 넘치는 공간의 역사

사건이 일어난 순서 그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의 역사와는 달리, ‘공간의 역사는 변화하는 공간의 성질과 그에 따른 인간들(대개 국가)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징기스칸은 그 넓은 유라시를 지배하는 제국을 세울 수 있었을까? 그건 을 통해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며 재빠르게 기병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제공해주는 속도와 전투력이 세계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징기스칸이 말의 제국을 세웠듯, 새로운 기술이 공간을 재편하는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 기술을 잉태하기도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그런 예다. 영국이 북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등 광활한 식민지를 가지게 되자, 자국의 모직물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다. 그 결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이는 증기기관의 계발로 이어져, 증기선, 철도 등을 통해 또다시 공간을 변화시킨다.

3. 작은 세계 대륙 세력 VS 큰 세계 해양 세력

이 책의 저자인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칼 슈미트의 육지와 바다를 인용하며, 공간의 성질과 그것에 의존해서 형성된 나라들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작은 세계와 큰 세계등의 대립각으로 설명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바탕으로 성장한 몽골 제국, 오스만 투르크 등은 대륙 세력이자 작은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고, 대서양을 통해 성장한 영국, 네덜란드 등은 해양 세력이자 큰 세계의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두 세력들은 계속 대립해왔는데, 그 절정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옆에 끼고 상업적 영역을 구축한 미국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지하자원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비등비등하게 세력 다툼을 해왔던 소련의 모습은, 저자가 말하고자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의 차이를 한 눈에 보여준다. 결국 역사의 승자는 미국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이 물려받아 아웅다웅하고 있다.

4. 국가의 명운은 공간에 달렸다?

공간의 세계사를 읽다보면, 지금 떵떵 거리며 선진국 자리를 꿰차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의 나라들이 그런 위치에 올라간 것이 채 수 백 년이 안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대의 4대 문명 중심지들은 모두 아시아에 있었고, 유럽은 버려진 땅이었고, 아메리카는 교류가 없는 땅이었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자본의 축적과 생산성의 개선이 지금 개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과의 격차를 벌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훈 족부터 시작해서, 게르만 족, 반달 족, 유목민, 이슬람 세력들에게 차례차례 국토를 점령당하고 쫓겨나 울분을 삭히던 선조들이 정착해 세운 나라인 에스파냐(스페인)가 맨 먼저 풍요로운 신대륙을 식민지 삼아 대서양을 호령하게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결국 공간 혁명의 흐름에 누가 먼저 탑승하고, 그 흐름을 활용하느냐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5. 역사는 반복된다 :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목적으로 진보하는 시간적 역사관을 정립한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라는 말을 남겼다. 공간 혁명은,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났을 때부터 말을 의존한 제국이 생기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인류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계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지금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전류와 전파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전자 공간의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에 식민지라는 비극을 이미 겪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공간적으로만 보자면 그 당시 바다를 기반으로 한 열강 세력들의 각축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버린 것이다. 광복 후 60년이 넘게 지났다. 과연 전자 공간 이후의 또 다른 공간 혁명은 어디서 발생할지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까닭은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극적으로반복될 수 있는 민족적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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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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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박주영


스파이하면 제임스 본드 생각이 먼저 난다. 그 다음엔 킹스맨. 이런 영화에서 묘사되는 스파이들은 멋있는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적국 혹은 테러리스트들이라는 명확한 대상을 감시하고, 그들을 억제하고 제압하여 세상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고요한 밤의 눈에서의 스파이들은 약간 다르다. 여기선 불량국가도, 테러리스트들도 없다. 다만, 점점 절망 속에 죽어가고 있는 90%들이 있을 뿐이다. 스파이들은 이 90%들이 혁명을 일으킬 수 없도록 은밀하게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직접 첩보활동을 펼치는 스파이들 외에도, 스파이가 아닌 스파이, 즉 그들의 통제에 협조하는 정치, 경제 인사들을 포섭한다. 그들이 필요한 이유는 구조조정, 청년실업 등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 단어들로 머릿속에 혁명이라는 생각을 말살하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는 삶, 시간에 쫓기고 돈 앞에 망설이는 삶을 살게 하는 이유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눈앞만 바라보고, 내일만 생각하고 심지어 오늘이 가장 걱정인 삶. 그래야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음모론에서 종종 등장하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를 연상시키는 이 스파이 조직에, 15년간의 기억을 잃은 남자가 가입 권유를 받으며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유능한 애널리스트로, 공교롭게도 그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스파이들의 손길이 닿아 조작되거나 편집된 것들이다. 그가 사랑한다고 믿은 여자조차도, 그 스파이 조직의 요원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혼란스러운 상황, 사람은 기억의 총체라고 하는데 과연 내가 15년간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면 아마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한쪽에선 스스로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다시 구성해나가는 반면, 어느 공간에서 한 소설가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 고심 중이다. 등단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인정받던 그는, 차기작들이 줄줄이 망하면서 그 존재 자체가 대중들에게 희미해져 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를 스파이 조직은 주시한다. 그가 소설 속에 읊조리는 단어, 오랜 세월동안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그 단어, ‘혁명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스파이들은 그를 지하 취조실에서 고문하지도, 쥐도 새도 모르게 한강에 담그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삶의 궁핍과 사회적 명성이라는 찬물과 뜨거운 물에 이리저리 담굴 뿐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스파이 조직을 보며, 1984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의 통제는 의식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경영 전문가를 동원해 사람들을 궁핍으로 몰아넣고, 소설가를 회유해 체제에 순응적인 글들을 지어내게 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패배의 이야기인가? 1984처럼, 현실에서 일어났던 그 수많은 반란의 서사들처럼 혈기로 들고 일어나 피눈물로 마무리 짓는 이야기인 것인가?


하지만 이 소설은 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스파이들은 그들이 죽인 자들 중,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더욱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 사람을 이야기한다. 죽음으로서 오히려 더 세상에 기억된 이들. 스파이 내부에서도 '혁명'을 바라는 이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스스로를 '은둔자'라 부른다. 그들은 언젠가 있을 혁명을 위해 조용히, 그러나 치밀히 싸움을 준비해나간다. 혁명은 사람들의 기억과 핏속, 심장에 있다. 모든 사람의 피를 세탁할 수도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도 모든 사람의 심장을 바꿀 수도 없다. 피는 흐르고 기억은 숨고 심장은 뛴다. 어디선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혁명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불씨다. 그 불씨를 지키는 자들은 '스파이'들에 의해 패배하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저 꾸준히 지금의 전투를 기록해나간다. 언젠가 승리할 그날을 위해서.


"역사가 승자들에 의해 쓰여지는 건 상식입니다. 승자는 누구입니까? 야만적인 살인자들, 미친 왕들, 탐욕스러운 반역자들, 폭력적인 전쟁광들, 아마도 우리 역사의 대부분은 그 승자들이 조작하고 편집하고 날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패자들은 무엇을 쓸까요? 패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남길까요? 승자들이 인멸한 증거를 상상력으로 극복하고, 이야기로 전달하고 유포시키겠죠. 최고의 이야기에는 진실이 담겨 있는 법입니다. 멈추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는 삶, 시간에 쫓기고 돈 앞에 망설이는 삶을 살게 하는 이유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눈앞만 바라보고, 내일만 생각하고 심지어 오늘이 가장 걱정인 삶. 그래야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p.144)

"혁명은 사람들의 기억과 핏속, 심장에 있다. 모든 사람의 피를 세탁할 수도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도 모든 사람의 심장을 바꿀 수도 없다. 피는 흐르고 기억은 숨고 심장은 뛴다. 어디선가 여전히."(p.188)

"역사가 승자들에 의해 쓰여지는 건 상식입니다. 승자는 누구입니까? 야만적인 살인자들, 미친 왕들, 탐욕스러운 반역자들, 폭력적인 전쟁광들, 아마도 우리 역사의 대부분은 그 승자들이 조작하고 편집하고 날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패자들은 무엇을 쓸까요? 패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남길까요? 승자들이 인멸한 증거를 상상력으로 극복하고, 이야기로 전달하고 유포시키겠죠. 최고의 이야기에는 진실이 담겨 있는 법입니다. 멈추지 마십시오."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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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오아라
이승민 지음 / 새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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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오아라 / 이승민


1. 그리스의 영원한 고통 3종 세트

고대 그리스 신화의 지옥인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한 형벌로 고통 받는 세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시지프스, 탄탈로스, 익시온이다. 셋 모두 신의 권위를 손상시키려한 죄목이다. 시시포스는 제우스를 속이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사로잡아 가두었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지혜를 시험하고자 자기 자식을 죽여서 먹이려고 했다. 익시온은 여신 헤라를 탐해 헤라 모습의 구름과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불경한 일을 행한 결과로, 셋은 각기 벌을 받는데 시시포스는 돌덩이를 꼭대기에 굴려 올리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미끄러져 내려간다. 탄탈로스는 음식에 손을 데려고 하면 먹을 수 없게 된다. 익시온은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인 채 영원히 돌게 되었다. 이렇게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범한 자들이 처벌 받는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가르쳤다.


2. ‘채울 수 없는 빈 독을 마주한 오아라

소설 스칼렛 오아라의 주인공 오아라는 지방지 신춘문예에 등단했지만 그녀가 바라던 유명인의 삶이 아닌, 푸석푸석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고, 잡지에 기고하려고 한 단편은 담당자에게 핀잔을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희망은 옅어지고 절망은 짙어진다. 점점 눈앞에 다가오는 한계를 보며 그녀는 결심한다. ‘오피스 걸스칼렛이 되기로. , 자신의 몸을 팔기로 말이다.

아직까지 성에 대해서 많이 개방화되었지만, ‘매춘은 엄연히 불법의 영역이다. 설령, 현재 성매매 특별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그 본질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하면서 (성적 만족을 위한) 수단이 되어도 되는가?’ 다시 말해, 자신의 욕망(, 생존)을 위해 신(도덕)이 금한 것을 탐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남아있다. 그 질문은 오아라를 이 소설 내내 괴롭힌다.


3. 창녀 스칼렛, 그녀에게 구원은 있는가?

스칼렛이란 이름으로 남성들에게 스폰을 받으면서 그녀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지만 정신은 지쳐간다. 그것이 에만 국한될 수 있다면 성노동만큼 정직한 노동은 없다. 숫자로 사람을 홀리지도 않고, 다분히 육체적이다. 하지만 오아라가 남성들에게 더 많은 을 원하듯, 그들도 그녀에게 더 많은 그 무엇을 원하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트러블이 생긴다. 그러면서 그녀의 소설 집필도 지지부진해진다.

소설 내에서 오아라는 이리저리 자신의 삶에 구원을 찾는다. 소설가의 명성을 부여해 줄 장편 소설 집필, 청담동 저택에 사는 성형외과 원장 김중권과의 로맨스, 호스트바 출신의 미남 노아그런데 그녀의 뒤편 스칼렛의 존재는 그녀가 바라는 구원의 서사를 계속 삐걱거리게 만든다. 이는 자신의 도덕적 무감각에 대한 신의 징벌인가? 하지만 그 어떤 인간이 그녀의 욕망에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4. 11스칼렛 오아라

이 책을 읽으며 파울로 코넬료의 11이 떠올랐다. 둘 다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이 겪는 스토리와 관계에서의 성찰을 담았다는 유사점이 있지만, 세부내용은 좀 다르다.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오피스 걸을 시작한 오아라와는 달리, 11의 주인공 마리아는 우연히 섹스를 하고 대가를 받게 되면서 그쪽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오아라는 세 명 정도로 그치지만, 마리아는 몸을 직업적으로 판다.

두 소설의 결정적 차이점은 두 주인공의 멘탈과 그에 따른 결말의 차이다. 마리아는 매춘을 한다는 것이 자신을 좀먹지 않는다. 오히려 매춘을 통해 버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 창녀 생활을 졸업하고, 그 와중에 만난 남자와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이에 비해 오아라는 계속적으로 자기 부정과 합리화를 왔다 갔다 하다가, 자신이 스칼렛을 졸업할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고 만다.


5. 속물적인게 언제부터 솔직한게 되었나

오아라는 시시포스와 탄탈로스, 익시온을 알고 있었을까? 익시온은 수레바퀴에 매달려 불타고, 탄탈로스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벌을 받고, 시시포스가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쳇바퀴 속에 영원히 놓인다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 실제 인간의 정신 상태를 비유한다. 실제로 자신이 스칼렛으로서 얻어낸 것들에 대해 오아라는 불안해하면서도 속물적인 것이 아니라 욕망에 솔직한 것이라 포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약간의 불편함이 무엇일까 계속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은 아마 오아라의 현실성일 것이다. 이 한국 사회 어딘가에 있을 오아라. 생활고든 사치든 어떤 이유에서 스스로를 팔아치우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그것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몸만 안 팔았지, 이 거대한 사회 속 소비 주체의 일부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팔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p.16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감 혹은 착시. 언제나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일 때가 많다. 그리고 간절함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p.251 "럭셔리한 삶이라. 물론 앞서 얘기했던 물질적이고 정신적 풍요도 중요하죠. 한데 제가 꿈꾸는 가장 럭셔리한 삶은 욕망으로부터, 운명으로부터, 그리고 쓸데없는 희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무언가를 갈급하거나 채우기 위해 자존감까지 꺾여가며 괴로워하지 않다도 되는. 굳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필요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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