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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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의 꽃 : The Life Must Go On


1. 아무리 모진 일이 있어도, 다시 살아나는 뿌리처럼

우리 민족은 종종 민초(民草)라 불린다. 그 이유는 질긴 생명력을 지닌 풀처럼, 외세의 침략 등으로 인해 국가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유지해서다. 그러나 민초의 자생력이 곧 국가 붕괴를 정당화 시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생력이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멸시와 착취의 서사 또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김옥숙 작가의 흉터의 꽃은 흉터로 상징되는 원자폭탄에 따른 피해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꽃을 피워낸 민초들에 대한 찬사를 담은 책이면서, 동시에 그 지옥 같은 삶에서 표출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는 작품이다.


2. 버림받은 국민, 외면 받는 인생

흉터의 꽃은 액자식 구성으로, 아버지의 고향 합천에서 왜 이토록 원폭 피해자가 많은 지에 대해 취재하며 소설을 써내려가는 정현재와, 4대 째 원폭으로 인해 고통 받는 강분희, 박인옥의 한 많은 삶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처음엔 왜 강분희의 아버지인 강순구가 왜 일제강점기에 고향 합천을 떠나 히로시마에 온 가족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아니 생존조차 할 수 없도록 철저히 버려진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실패한 국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분노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얼굴의 반이 화상을 입어 일그러진 분희를 괴롭히는 건 일본인도 아니고, 해방 뒤 그녀가 돌아간 조국 대한민국이다.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웃들이 아닌, 그녀의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다. 피폭으로 인해 약해진 몸으로 낳은 아이들이 얼마 안 지나서 죽어버리면 모든 비난은 아내의 몫이다. 남편이라는 작자들은 술에 취해서 때리거나 돈 내놓으라고 성화다. 작가는 한국의 가부장주의가 유독 여성 원폭 피해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환경을 만든 것을 고발한다.


3. 원자폭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 일본, 동아시아 내에서 입지를 잃지 않기 위해 원폭을 터트린 미국, 자국 원폭 피해자들을 돌봐주기는커녕 무시로 일관한 대한민국, 원폭 피해자들을 멸시하고 심지어 폭행을 일삼는 가족들. 흉터의 꽃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그들은 사랑 하나만으로 극복하고 일어선다. 우리는 항상 사랑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언제나 사랑 할 수는 있다. 사랑 받는 객체에서 사랑 하는 주체로서의 발돋움,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자기 자신까지 사랑하게 되는 기적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기술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 앞에 말한 가부장주의라는 권위주의적이고 가족구성원을 착취하는 문화에 젖어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역설적으로, 원폭 피해로 인해 육체적인 한계가 명확한 이들이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이웃에게 기여하려며 살아간다. 원자폭탄이라는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건 완벽한 치료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위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흉터의 꽃은 보여준다.


4.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의 연약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원폭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리려고 노력한 고 김형률 씨야말로, 이런 사랑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이다. 원폭 2세 피해자로 촛불처럼 간신히 삶의 불꽃을 지키던 그가, 횃불 같은 열정으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장면이 바로 이 소설의 백미라고 본다. 비단 원폭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삶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수많은 비극들이 있다. 각자 비극의 당사자이기도 한 우리가, 그 고통을 나누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삶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p.191 "뿌리만 살아 있으마, 살아갈 수 있는기라. 내 말 무슨 말인 줄 알제?" … "아무리 모진 일을 당해도, 뿌리라도 살아 있으마 된다, 분희야."

p.68 원폭이 터지는 꿈을 꾸는 모양인지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비통한 여자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는 기괴하고 음산했다.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당한 일이었다. 개미나 벌레보다 못한 목숨. 폭우에 휩쓸려 내려가는 풀포기보다 하찮은 것이 사람의 목숨이었다. 강순구는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한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죄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도둑맞고도 넋을 놓고 있는 바보 천치 같은 나라, 저만 살겠다고 자식을 내팽개친 부모 같은 나라, 조선의 백성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였다.

p.447 인간이 하는 행동 중에 가장 어리석고 끔찍하고 추한 것이 바로 전쟁이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사랑만이 전쟁과 죽음을 이길 수 있다. 사랑은 원자폭탄보다 힘이 세다. 사랑만이 원자폭탄을 이길 수 있다. 오직 사랑만이.

p.393 삶은 금방 깨지는 유리컵처럼 연약했다. 살아 있는 순간만이 유일한 진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 살아서 밥을 먹고, 살아서 노래를 듣고, 살아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한 시간이라도 더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누군가를 보살펴줄 힘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p.287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 사람이 존재했던 시간,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만이 강분희 할머니에게는 살아 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는 말임을 나는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어쩌면 강분희 할머니는 이 길고 긴 이야기를 통해 박동철이라는 한 남자에 대한 고백을 한 건지도 몰랐다. 나를 사람 대접 해줘서 고마웠노라고, 사랑해주어서 고마웠노라고, 나를 살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마웠노라고. 어쩌면 박동철과 강분희 이 두 사람은 그 원폭의 지옥 속에서도 죽지 않는 꽃 한 송이를 피워낸 것인지도 몰랐다. 시들지 않는 노란 꽃송이 하나, 죽지 않는 꽃, 그것은 사랑이었다.

p.421-422 "고통을 겪은 자만이 그 고통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 "고통은 고통을 겪은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원폭 피해 당사자인 우리들이…… 스스로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싸워나갈 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 다시는 이 땅에 핵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원폭 2세 환우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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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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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내 어렸을 적 친구는 앵무새들을 키우며 살았네.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이상한 집에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에로스와 자신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타나토스 간의 긴장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둘은 기계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고, 종종 한 쪽에 힘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가능한 평형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시도는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된다. 에로스의 끝, 그곳에는 성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타나토스의 끝에는 죽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너무나 강력한 에로스를 누리다가 상실해버린 사람은 그만큼의 빈 공간을 자기 파괴적 충동인 타나토스에 내주기도 하는 등 두 에너지는 표현되는 방식만 다를 뿐, 그 성질은 유사하다.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은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 휘둘리는 인간의 작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잘못 배송된 편지의 발송지인 죽은 올빼미 농장을 찾아나서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시에서만 자라왔던 그에게 농장은 기분 전환삼아 가는 곳이었다. 아파트먼트 키즈가 지니는 날 것, ‘자연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하지만 농장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게 되고, 공교롭게도 그것을 기점으로 그의 일상이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스로 남자임을 벗어나고 싶은 작곡가 후배, 부유한 아버지의 지원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려는 여고생, 뽕짝을 벗어나 제대로 된 기획사를 차리고 싶은 김실장각자의 에로스들은 폭죽처럼 자신의 빛을 내며 섞여 들어간다.

그 중, 가장 크게 빛나고 싶었던 한 별은 이내 자신의 빛을 잃고 그 상실감은 그 주변에 거대한 블랙홀을 드리워 폭력과 죽음의 길로 자신의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모순을 버티지 못한 이의 죽음에 목도한 주인공은 이라는 모순과 미스터리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는 고민 속에서, 주인공 자신이 품고 있었던 모순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2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중편 소설에서, 그 짧은 분량치고는 많은 향기를 이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행, 무의미한 섹스,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지는 미스터리 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저작들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에 큰 낯섦을 느끼지 않으리라고 본다. 정신병, 상실감 등 소설을 풀어감에 있어 주요 소재가 겹치는 게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도하지만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는 부조리에 대한 조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판단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샘이 말라버린 들판과, 주인공과 그의 오랜 친구가 들른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등 버려지고 방치된 상실의 공간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들어나는 소설이었다. 그 농장과 아파트는 누군가의 터전이고 고향이라는 점에서, 태어는 났으나 결코 자신이 태어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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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스티븐 더수자.다이애나 레너 지음, 김상겸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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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는 선언을 한 이후로, 우리는 ‘힘’으로써의 지식에 탐닉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성장보다 더 높고 강한 지위의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원래 목적마저 상실한 채로 그야말로 ‘입시 지옥’이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들이 이런 ‘채우는 지식’, ‘경쟁하는 공부’에 익숙한 이들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기만 할까? 대개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자신들이 기존에 알던 것에만 집착하고 새롭게 닥친 위기에 대한 반응이 굼뜨다는 것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알고 있다.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은 이런 ‘지식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 대해 처방전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왜 굳이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라는 겸손한 제목을 붙였는지 의문이다. 이 책의 타이틀은 ‘대통령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 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은 ‘모르는 것(Not Knowing)'에 대해 두려워하고 배제하기 보단, 받아들이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법에 대해서 알려준다. ’모르는 것‘은 수학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만 그 자체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대답해줄 수 있는 그런 ’난해한 문제‘와는 다르다. 애초에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많은 아이디어가 충돌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맥을 못 추는 그런 ’복잡한 문제‘의 영역이다. 청년 실업, 저출산 고령화, 북핵 위협 등 최근 몇 년 간 국가적 문제들은 대개 이런 ’모르는 것‘들이라, 정부의 그 많은 전문가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이유로는 일단 기존의 쌓아뒀던 지식에 의존하려는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등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버틸 경우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그래서 나는 책 제목이 ‘대통령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 어울린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대표적인 ‘모르는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수 백 명이 탄 배가 가라앉은 전대미문의 어떤 사고 현장에서, 해수부와 해군・해경은 기존에 ‘하던 대로’ 늦장 대처와 부서 이기주의를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자가 바로 대통령이다. 테러, 사고, 경제 위기 등에 맞서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에 두려는 지도자를 뽑은 결과는 어떠했는가? 시스템의 구멍을 인정하고 보강을 해도 모자란 해경을 ‘해체’시켰다.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와 위로는커녕 그들을 ‘시체팔이’로 몰아갔다. 사회적 비극에 대해서 추모와 애도하는 자들을 ‘블랙리스트’로 엮어 밥줄을 움켜쥐고 침묵하게 했다. 그들의 대처는 전형적으로 ‘아는 것’에 집착하는 썩은 전문가 집단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시간도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거대한 국가적 비극이 아니더라도, 이 시각에도 ‘사소한 비극’들이 독선적이고도 오만한 이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라는 명찰을 단 채 이루어지는 ‘선의’로 말이다. 지금이라도 각자의 빈 공간을 직시해야 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무지의 공간은 실패가 아닌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 지식이라는 콘크리트로 굳어진 허례허식을 깨부순 순간, ‘모르는 것’ 속의 유동성과 혁신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대응할 줄 아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p.398 ‘모르는 것‘은 참기 힘든 것처럼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전지한 신들이 부러워하는 선물일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스터리한 것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호기심과 궁금증, 흥분감, 가능성이라는 선물의 축복을 받았다. 마침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의 진정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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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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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제목이 분명 ‘위대한 개츠비’이건만, 소설 내내 개츠비란 인물의 위대한 점보다는 의문스러운 점만 부각이 된다. 모든 것이 ‘닉 캐러웨이’라는 1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까닭도 있고, J. 개츠비, 혹은 제임스 개츠라는 이 인물 자체가 상당히 미스터리하게 보이도록 작가가 설정해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식상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개츠비의 ‘찌질함’을 비난하기 앞서, 닉 캐러웨이의 아버지가 했던 말을 되짚어 본다. 과연, 개츠비는 어떤 불리한 점이 있었던 걸까? 반대로, 개츠비가 혹여나 그의 삶 속에 ‘위대함’이 있다면 과연, 그는 어떤 이점을 누리고 있었던 걸까?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에 소령으로 복무했던 미국인이다. 그는 거대한 전쟁 이후, 붕괴된 기존 질서 하에서 자신의 과거 허접했던 배경을 감추고, 어떤 비밀스러운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된다. 하층계급임에도 그가 미군 소령 출신이라는 점과 젠틀하고 매력적인 인상을 지녔다는 것은 그의 성공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가 부자가 된 다음 한 일은? 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도록, 그래서 그의 성공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그 과정 하에서 옆집 살던 닉 캐러웨이도 개츠비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누구한테나 정중하고 매력을 뿜어대는 저택의 주인 개츠비. 그러나 그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유명 골프 선수 조던 베이커, 그리고 닉 캐러웨이를 거쳐 개츠비는 5년 동안 찾아마지 않았던 그의 사랑,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나자마자 다시금 불타는 사랑을 느끼는 둘. 다만, 그녀에겐 불륜을 일삼는 남편과 그녀를 쏙 닮은 딸이 있다는 장애물이 있었다. 하지만 개츠비는 상관없었다. 그는 그녀를 찾겠다는 일념만으로 현재의 저택으로 이사 왔고 그 후에도 그녀가 이 저택을 찾아줄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왔다. 그러나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다시 마주한 순간, 더 이상 그의 행복을 미루려고 들지 않는다. 아주 강렬하게 온몸을 던져왔던 환상이 현실이 될 기회가 그에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의 ‘위대한 개츠비’는 실은 소설적 재미를 위해 축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은, ‘위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연인을 5년이나 기다리는 끈덕짐, 다시 만난 연인에게 돌진하는 단호함, 그리고 그 연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순애보에 가슴이 뛴다면 우리 모두 가슴 한 켠에 개츠비를 품고 있는 것이다. 고로, 개츠비의 위대함을 찾는 여정은 우리가 꿈꾸는 로맨스의 위대함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p.15 "네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에는 언제든……" … "이 세상 사람들 전부가 네가 지녔던 이점을 누렸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렴."

p.85 그는 이해한다는, 이해한다는 그 이상을 담아 웃어 보였다. 그것은 인생에서 네댓 번 접할 수 있을까 말까 할 영원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보기 드문 미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한동안 외부 세계 전체를 향해 있다가-또는 향해 있는 듯하다가-그런 다음 ‘당신 편‘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편견으로 상대에게 집중하는 미소였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이해 받고 싶어하는 만큼만 당신을 이해했고,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을 믿었으며, 그리고 당신이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전달하기를 희망했던, 당신의 그 인상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증해주는 그런 미소였다.

p.158 내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다시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마치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의 가치에 대한 옅은 의심이 일어난 것 같았다. 거의 오 년이었다! 심지어 그날 오후 데이지가 그의 꿈의 일부를 혼란스럽게 했다 해도 틀림없이 그것은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환상이 가진 거대한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창조적 열정을 가지고 그 자신을 환상 속에 던졌고, 계속해서 더해 갔으며, 그의 길 위에 표류된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아무리 많은 불길과 새로움으로도 한 남자가 자신의 유령 같은 마음에 축적하려는 것에 도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p.241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에 대해 자네에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군, 친구. 나는 심지어 한동안 그녀가 나를 차 버리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네. 그녀 역시 나를 사랑했었기 때문이지. 그녀는 내가 그녀와 다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었네……. 그래, 거기에 내가 있었네. 내 야망과는 멀어진 채 매순간 사랑에 빠져들었고, 갑자기 모든 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그녀에게 들려주며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과연 해야 할 대단한 일이 무엇이 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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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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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같은 지옥, 일상 없는 지옥

1. 우리가 평소에 누리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출퇴근을 위해 버스를 타고,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면, 그 일상은 팔이 부러지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심지어 전날에 잠을 설쳤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붕괴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일상이 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너무 달콤하기에, 우리는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의 비극들을 외면하고, 현재 누리는 얄팍한 이권들을 부여잡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일상이라는 것이 탈출하고 싶은 지옥이다. 여성, 외국인, 입시생, 취준생이 사회에서 어느새 약자가 되어 그 존재만으로 절망의 구렁텅이 속을 헤매는 자들은 우리 시야의 밖에서 그들의 울분을 삭히고 있다는 건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을 착취하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약자이며 결국 약자들이 더 약한 자를 잡아먹는 정글의 모습이다.

2. 손솔지 작가의 단편 소설집 는 그런 사각지대의 약자들, 그래서 일상적인 지옥을 체험하는 이들에 대한 르포라 말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차라리 버림받았으면 하는 이들이다. 시작부터 불행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현재 처한 상황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그런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일상을 활자 속에 꾹꾹 담아놓았다. 읽다보면 내 삶과 그 주변에서도 발견되는 구조적 학대와 트라우마의 조각들을 마주하게 되어 불편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8개의 단편들은 한국사회의 만연한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착취의 굴레, 속칭 왕따의 메커니즘을 각기 다른 시점에서 조망한다.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떨기 희망의 꽃을 노래하다가도, 장마철 자취방 벽면을 점령한 곰팡이 마냥 다시금 피어오르며 자신의 존재감을 떨치는 이 세계의 비극들을 조명한다. 단편집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집었다가는 자신의 멘탈이 부숴져 가볍게 흩날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혐오와 증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동시에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는다. 필연과 같은 우연이 반복되며 운명적인 만남으로 그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 끝에는 가족 혹은 가족과 진배없는 이들과의 재회로 이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치유는 아니다. 우리는 종종 떠오르는 기억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 기억들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증거이기도 하다. 앞에 말했듯,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 종종 우리는 잊곤 한다. 일상을 잃는 데는 내 존재의 아주 작은 일부가 상처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일상이 지옥 같았던 이들이 그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상징적 죽음이든 물리적 죽음이든, 그 죽음마저 극복한 이후에야 그들은 일상이 회복된다. 그렇기에 그들을 옥죄는 죽음의 공포와 학대의 기억마저 일상의 회복과 앞으로 보장될 평범한 일상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4. 소설집 에 있는 8개의 단편 중 는 다른 단편들에 비해 이질적이다.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에필로그라고 봐도 될 정도다. 소설을 빙자한 에세이에서, 주인공은 어떤 봄, 제주도를 향해 항해하던 어떤 선박에서 일어난 비극과 집권 세력의 무능,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합당한 분노에 대해 침묵과 망각을 강요하는 세력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 세력들을 결국 패퇴시켰던 소시민들 간의 촛불의 연대에 대해서 말한다.

왜 작가는 이 8개의 단편 중 마지막에 이것을 배치했을까? 그전까지 단편들에서 작가는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들이 보는 이 약자들의, 고통 받는 자들의 삶에 대해서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들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아마도 작가는 일상이 지옥인자들, 그리고 일상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연대만이 그 지옥 속에서 그들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p.238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깊이 가라앉고 있는지를. 불 꺼진 암흑 같은 마음속에서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도 우리는 배운 적이 없었다. 더 이상 뉴스에서 기대하는 소식을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불처럼 번지는 마음속 분노와 설움을 잊기 위해서 불에 탄 부분을 싹둑 잘라냈다.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연명하는 데에 쓸데가 없고 타기 쉬운 말랑한 부분부터 잘라내야 했다. 그중 하나가 희망이었다.

p.240 나는 절대로 남이 되어보지 않고는 남의 심정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어쩌면 세상은 이대로 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검푸른 바닷물 속에 잠들어 있는 진실은 그대로 영영 잊힌 유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p.45 "계집은 요물이야." … "우리를 유혹하기 위한 가느다란 목소리나 긴 머리칼을 봐라. 두부처럼 부드럽고 조기 살점처럼 뽀얀 젖가슴은 어떻고. 그들이 허연 속살을 벌려 보이며 군침을 유도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저희 몸뚱이에 우리가 홀려버리면 그 뒤엔 우릴 제 맘대로 부리기 위해서지. 눈을 현혹하는 살덩어리와 웃음을 빌미로 우리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려는 거야. 흙탕물 한번 안 디디고 어깨 위에 업혀서 알맹이만 날름 핥아 먹겠다는 심산이지. 하지만, 얘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가여운 족속이냐. 그렇기 때문에 속으면 안 되는 거다."

p.79-80 어쩌면 십일 등이나 십 등이 학교에서 죽는 것은 당연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둥지나 다름없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서 집에 돌아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등교하는 수험생들은, 집 안의 가구 배치가 바뀌어도 단번에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집보다 학교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것에 익숙해져, 집 안에도 폭신한 침대를 놔둔 채 책상에서 꼬꾸라져 잠드는 아이들이었다.

p.106-107 "나는 사람 아니야."
한밤중에 슬그머니 마당으로 빠져나와 서성이다가 며느리가 중얼거렸다. 그러곤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언어로 울었다. 모든 울음은 가엽다. 며느리는 사람이 맞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아니야."
개도 뱀도 닭도 그런 일로 울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그렇게 운다.

p.215-216 "나는 포기했어요. 사람은 고장난 물건 같아요. 좀처럼 맘대로 되질 않죠."
… "마음대로 할 필요가 없죠. 남의 의지는 관할구역이 아니에요. 울타리 밖의 일이니까요."

p.5 한글에는 한 글자마다 주문처럼 큰 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단하고 작은 몸 안에 아주 많은 의미를 끌어안고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되곤 합니다. 소설은 그 글자들을 드문드문 징검다리처럼 이어 붙여, 한 발자국씩 돌을 밟고 따라올 사람들을 내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속으로 인도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p.250-251 얼굴도 모른 채로 살아온 수많은 인파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두려워했던 것의 실체를 깨달았다.
나는 가만히 있는 내가 무서웠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누군가 가만히 옹송그린 채로 눈을 감을 때, 언제나 그래왔듯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를 안전한 세계로 데려가기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던 관람자인 내가 두려웠던 것이다.

p.249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끝을 알 수 없이 길게 이어지는 초의 행렬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가차 없이 잘라내고 살아가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모두의 마음에 빛을 밝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의 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대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252 나는 초가 된다. 말없이 미소를 건네는 앞사람의 촛불에서 불씨를 빌려와 더 뜨거워진 불덩이를 옆으로 옮긴다. 심지가 뜨거운 초의 마음으로, 찬 바닥 한곳을 밝히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꼿꼿이 선다. 불길은 점점 더 먼 곳까지 널리 퍼져 우리는 다시 물결을 이룬다. 사방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그 누군가였다. 스위치를 눌러서 끌 수 없는, 방대하고 광활한 불길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낯설지만 익숙한, 거울에 비친 마음 같은 표정들.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은밀하고 그늘진 구석까지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비춰줄 뿐이다. 한순간 바람이 깊이 불어와 심지에 달라붙어 타오르던 불씨를 앗아간다. 그러나 이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치듯이 푸른 불꽃이 심지를 붙들고 일어선다. 또렷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눈동자처럼, 절대로 꺼지지 않을 등대의 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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