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세계사 - 5000년 인류사를 단숨에 파악하는 여섯 번의 공간혁명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오근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공간의 세계사 / 미야자키 마사카쓰

1. 역사는 공간안에서 이루어졌다

역사는 대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된다. ‘연도라는 훌륭한 도구를 사용해서, 기원전 몇 천 년, 기원후 몇 백 년 같은 식으로 나열되는 역사는, 별다른 설명 없어도 그 자체로 연결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단순한 시간의 변화에 따른 사건의 나열로 인지했을 때의 문제 중 하나는, 마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되어서 일어난 것 같은 착시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역사는 삼간(三間),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대의 역사는 시간이라는 서사에만 몰두한 채, 정작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켰던 물적 토대인 공간의 변화에 대해선 가벼이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농업 혁명, 대항해시대, 산업 혁명 등의 세계사적 사건에 기반엔 항시 공간에 대한 재정의가 있어왔고 공간의 주인이 곧 역사의 주도권을 쥐었다.

2. 생동감 넘치는 공간의 역사

사건이 일어난 순서 그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의 역사와는 달리, ‘공간의 역사는 변화하는 공간의 성질과 그에 따른 인간들(대개 국가)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징기스칸은 그 넓은 유라시를 지배하는 제국을 세울 수 있었을까? 그건 을 통해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며 재빠르게 기병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제공해주는 속도와 전투력이 세계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징기스칸이 말의 제국을 세웠듯, 새로운 기술이 공간을 재편하는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 기술을 잉태하기도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그런 예다. 영국이 북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등 광활한 식민지를 가지게 되자, 자국의 모직물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다. 그 결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이는 증기기관의 계발로 이어져, 증기선, 철도 등을 통해 또다시 공간을 변화시킨다.

3. 작은 세계 대륙 세력 VS 큰 세계 해양 세력

이 책의 저자인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칼 슈미트의 육지와 바다를 인용하며, 공간의 성질과 그것에 의존해서 형성된 나라들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작은 세계와 큰 세계등의 대립각으로 설명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바탕으로 성장한 몽골 제국, 오스만 투르크 등은 대륙 세력이자 작은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고, 대서양을 통해 성장한 영국, 네덜란드 등은 해양 세력이자 큰 세계의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두 세력들은 계속 대립해왔는데, 그 절정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옆에 끼고 상업적 영역을 구축한 미국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지하자원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비등비등하게 세력 다툼을 해왔던 소련의 모습은, 저자가 말하고자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의 차이를 한 눈에 보여준다. 결국 역사의 승자는 미국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이 물려받아 아웅다웅하고 있다.

4. 국가의 명운은 공간에 달렸다?

공간의 세계사를 읽다보면, 지금 떵떵 거리며 선진국 자리를 꿰차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의 나라들이 그런 위치에 올라간 것이 채 수 백 년이 안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대의 4대 문명 중심지들은 모두 아시아에 있었고, 유럽은 버려진 땅이었고, 아메리카는 교류가 없는 땅이었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자본의 축적과 생산성의 개선이 지금 개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과의 격차를 벌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훈 족부터 시작해서, 게르만 족, 반달 족, 유목민, 이슬람 세력들에게 차례차례 국토를 점령당하고 쫓겨나 울분을 삭히던 선조들이 정착해 세운 나라인 에스파냐(스페인)가 맨 먼저 풍요로운 신대륙을 식민지 삼아 대서양을 호령하게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결국 공간 혁명의 흐름에 누가 먼저 탑승하고, 그 흐름을 활용하느냐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5. 역사는 반복된다 :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목적으로 진보하는 시간적 역사관을 정립한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라는 말을 남겼다. 공간 혁명은,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났을 때부터 말을 의존한 제국이 생기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인류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계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지금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전류와 전파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전자 공간의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에 식민지라는 비극을 이미 겪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공간적으로만 보자면 그 당시 바다를 기반으로 한 열강 세력들의 각축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버린 것이다. 광복 후 60년이 넘게 지났다. 과연 전자 공간 이후의 또 다른 공간 혁명은 어디서 발생할지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까닭은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극적으로반복될 수 있는 민족적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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