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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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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와 도가 사상을 학교에서 배웠을 때, 비틀즈의 'Let it be'가 연상됬다. 아마 중학교 때 도덕 선생님이 도가 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냅둬라'라고 축약해서 설명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로 나는 노자의 사상을 체념적이고 수동적이라 여겨왔다.


  어린 나에게 논리성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서양 철학에 비해 도가는 너무 초라하고 허술해보였고, 같은 동양철학인 유가에 비해서도 현실성이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인 듯 느껴졌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라는 혼란기에 부흥했던 제자백가 중 하나라는 역사적 가치를 제외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으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우리나라 공교육이 얼마나 철학과 사상을 엉망진창으로 가르치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누구보다도 능동적이고 체계적인 노자 사상이, 무기력하고 체념적인 사상으로 변모하다니 말이다. 그나마 이 책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접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서양 철학이 사상적 한계에 부딪힌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동양 사상은 주목을 받고 있고, 그 중에서 노자 사상은 오늘 같은 탐욕의 시대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노자는, 기존의 이성 중심적이고 관념 중심적인 철학을 거부하고, 인간 본연의 욕망과 자연적 질서를 쫓는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도 어느 정도 차이점이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실존적으로 나약한 존재이며, 구조에 의해서 얼마만큼 휘둘리며 상처 받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 혹은 '우리'라는 차원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고민하는 것에 비해, 노자는 '인간'을 초월하여, 대자연의 법칙인 '(道)'를 본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말에 담긴 뜻, 즉 어떤 대상을 개념화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며 가능성을 제약하는 일인지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 머리를 탁 하고 깨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분쟁은 자신의 신념을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 IS를 필두로 한 테러리즘이나,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집단 간의 분쟁들이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참으로 '인간적'인 이유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방책인 , 다른 말로 하자면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배워야한다. 상대의 불변하는 (有)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 상대와 빚어낼 상호작용이 나타나는 (無)를 생각해야한다는 가르침에 감명 받았다.


  수동적이고, 미련하게 보였던 무위(無爲)적 삶이 최고의 처세술이라는 점도 하나의 수확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 다들 각자 생각대로, 주관대로 살아가는 데 그것을 나의 의지대로 뒤틀려고 하는 것은 나를 비롯한 주위사람들만 피곤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인 일인 것이다.


  내 욕망대로, 나답게 살아가기. 이 책은 계속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길 권한다. 하지만 이게 참 힘든 일이다. 내 욕망보단 부모의 욕망, 미디어가 주입한 헛된 꿈에 휘둘린다. 하지만 강요된 욕망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노자가 말한 도(道)를 실천한다면 그리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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