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오아라
이승민 지음 / 새움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칼렛 오아라 / 이승민


1. 그리스의 영원한 고통 3종 세트

고대 그리스 신화의 지옥인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한 형벌로 고통 받는 세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시지프스, 탄탈로스, 익시온이다. 셋 모두 신의 권위를 손상시키려한 죄목이다. 시시포스는 제우스를 속이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사로잡아 가두었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지혜를 시험하고자 자기 자식을 죽여서 먹이려고 했다. 익시온은 여신 헤라를 탐해 헤라 모습의 구름과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불경한 일을 행한 결과로, 셋은 각기 벌을 받는데 시시포스는 돌덩이를 꼭대기에 굴려 올리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미끄러져 내려간다. 탄탈로스는 음식에 손을 데려고 하면 먹을 수 없게 된다. 익시온은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인 채 영원히 돌게 되었다. 이렇게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범한 자들이 처벌 받는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가르쳤다.


2. ‘채울 수 없는 빈 독을 마주한 오아라

소설 스칼렛 오아라의 주인공 오아라는 지방지 신춘문예에 등단했지만 그녀가 바라던 유명인의 삶이 아닌, 푸석푸석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고, 잡지에 기고하려고 한 단편은 담당자에게 핀잔을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희망은 옅어지고 절망은 짙어진다. 점점 눈앞에 다가오는 한계를 보며 그녀는 결심한다. ‘오피스 걸스칼렛이 되기로. , 자신의 몸을 팔기로 말이다.

아직까지 성에 대해서 많이 개방화되었지만, ‘매춘은 엄연히 불법의 영역이다. 설령, 현재 성매매 특별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그 본질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하면서 (성적 만족을 위한) 수단이 되어도 되는가?’ 다시 말해, 자신의 욕망(, 생존)을 위해 신(도덕)이 금한 것을 탐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남아있다. 그 질문은 오아라를 이 소설 내내 괴롭힌다.


3. 창녀 스칼렛, 그녀에게 구원은 있는가?

스칼렛이란 이름으로 남성들에게 스폰을 받으면서 그녀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지만 정신은 지쳐간다. 그것이 에만 국한될 수 있다면 성노동만큼 정직한 노동은 없다. 숫자로 사람을 홀리지도 않고, 다분히 육체적이다. 하지만 오아라가 남성들에게 더 많은 을 원하듯, 그들도 그녀에게 더 많은 그 무엇을 원하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트러블이 생긴다. 그러면서 그녀의 소설 집필도 지지부진해진다.

소설 내에서 오아라는 이리저리 자신의 삶에 구원을 찾는다. 소설가의 명성을 부여해 줄 장편 소설 집필, 청담동 저택에 사는 성형외과 원장 김중권과의 로맨스, 호스트바 출신의 미남 노아그런데 그녀의 뒤편 스칼렛의 존재는 그녀가 바라는 구원의 서사를 계속 삐걱거리게 만든다. 이는 자신의 도덕적 무감각에 대한 신의 징벌인가? 하지만 그 어떤 인간이 그녀의 욕망에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4. 11스칼렛 오아라

이 책을 읽으며 파울로 코넬료의 11이 떠올랐다. 둘 다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이 겪는 스토리와 관계에서의 성찰을 담았다는 유사점이 있지만, 세부내용은 좀 다르다.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오피스 걸을 시작한 오아라와는 달리, 11의 주인공 마리아는 우연히 섹스를 하고 대가를 받게 되면서 그쪽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오아라는 세 명 정도로 그치지만, 마리아는 몸을 직업적으로 판다.

두 소설의 결정적 차이점은 두 주인공의 멘탈과 그에 따른 결말의 차이다. 마리아는 매춘을 한다는 것이 자신을 좀먹지 않는다. 오히려 매춘을 통해 버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 창녀 생활을 졸업하고, 그 와중에 만난 남자와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이에 비해 오아라는 계속적으로 자기 부정과 합리화를 왔다 갔다 하다가, 자신이 스칼렛을 졸업할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고 만다.


5. 속물적인게 언제부터 솔직한게 되었나

오아라는 시시포스와 탄탈로스, 익시온을 알고 있었을까? 익시온은 수레바퀴에 매달려 불타고, 탄탈로스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벌을 받고, 시시포스가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쳇바퀴 속에 영원히 놓인다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 실제 인간의 정신 상태를 비유한다. 실제로 자신이 스칼렛으로서 얻어낸 것들에 대해 오아라는 불안해하면서도 속물적인 것이 아니라 욕망에 솔직한 것이라 포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약간의 불편함이 무엇일까 계속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은 아마 오아라의 현실성일 것이다. 이 한국 사회 어딘가에 있을 오아라. 생활고든 사치든 어떤 이유에서 스스로를 팔아치우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그것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몸만 안 팔았지, 이 거대한 사회 속 소비 주체의 일부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팔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p.16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감 혹은 착시. 언제나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일 때가 많다. 그리고 간절함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p.251 "럭셔리한 삶이라. 물론 앞서 얘기했던 물질적이고 정신적 풍요도 중요하죠. 한데 제가 꿈꾸는 가장 럭셔리한 삶은 욕망으로부터, 운명으로부터, 그리고 쓸데없는 희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무언가를 갈급하거나 채우기 위해 자존감까지 꺾여가며 괴로워하지 않다도 되는. 굳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필요가 없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