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경영 전략
노무라 나오유키 지음, 임해성 옮김, 김진호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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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인간은 지구의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 하나하나의 역량이 뛰어나서라기 보단, 집단으로 존재할 경우의 시너지 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맹수의 송곳니, 조류의 날개, 심지어 어류의 아가미조차 가지지 못한 인간은 전두엽을 통한 이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수천 년을 상호작용한 결과, 현 문명을 이룬 것이다. 점차 고도화되어 가는 인간 문명에 있어 단 하나의 위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보다 더 똑똑한 존재가 아닐까? 수십억의 인류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지적인 존재가 아닐까?


인공지능에 대한 몇몇 명사(名士)들의 걱정은 언론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들 중에 하나다. 너무 경우의 수가 많아 인간을 이기는 데 몇 십 년은 더 걸릴 거라고 봤던 바둑을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이 이겨버렸고,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인공지능들은 인간의 혐오 발언들을 학습하거나 심지어 자기네들끼리의 언어를 만들어 소통한다는 기사들이 대서특필 된다. 이런 경향을 비추어볼 때 언젠가 매트릭스처럼 우리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던 차에 접한 책이 노무라 나오유키 교수의 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저자는 일단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우려부터 불식시키고 시작한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아득히 초월할 것이라는 특이점(Singularity)은 우리 생에서는 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알파고 같이 현재 유명해진 인공지능의 경우,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약한 인공지능이자 전용 인공지능이고, 스스로 학습하며 결과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할 수준까지 이를 강한 인공지능이자 범용 인공지능의 경우엔 막 걸음마를 뗀 정도이기 때문이다. , 스스로 생각하여 인간을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노무라 나오유키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부작용은, 인공지능 그 자체의 결점과 폭주 때문에 발생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보단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인해 과거 단순반복과 계산을 통해 유지되던 사무직들이 소멸하고 인간은 로봇이 할 수 없는 창조적인 일들을 전담하게 되면서 발생될 산업 구조조정을 예견한다. 과거 마르크스가 전망했던 기술의 발전을 통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성취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공지능을 소유한 거대 다국적 기업이 인공지능을 통한 성과를 대중에게 나눠줄까 하는 것은 미지수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른 산업계의 변화에 대한 사회적 대책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는데, 4차 산업혁명 이후 더 이상 사람들이 노동의 주체가 아니게 되어 버린 사회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대비할 필요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유비쿼터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부침을 거듭했던 기술적 결과물들과 결을 같이하진 않을까 하는 염려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 80년대에 마케팅적인 수사로 붙었던 인공지능과 달리, 뛰어난 연산 속도와 빅데이터를 기반한 지금의 인공지능은 진짜라고 말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인공지능 분야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 또한 이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하나의 필수 능력 중 하나에 들어가지 않을까? 전문 연구가처럼 관련 이론과 세부 사항을 체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와 활용해보고자 하는 도전 정신이 없다면 어느 비즈니스 영역에서든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새 우리 앞에 불쑥 다가와 자신과 함께 해주기 바라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필요하다.


p.417-418 ?’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기계의 부품으로서 취급되는 직장이 아닌 한어떤 업계나 직종지위에서도 살아남는다그리고 순수하게 ?’라고 물을 수 있도록주어진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좋은 환경이나 성과물을 만들려는 인간다운 동기 부여를 스스로 키우는 것이 인공지능보다 우위에 서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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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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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신이 무라카미 하루키나 알랭 드 보통 같이 사유의 깊이와 취미의 너비가 넉넉하여 평소에 생각해오던 걸 길어 올리기만 해도 한 편의 글이 된다면 에세이 몇 편 쯤 쓰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쓴) 에세이는 대개 긴 시간 동안 써온 여러 글의 묶음이거나 삶을 관통하는 투쟁의 결과물들이 담긴다. 이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소설은 작가의 삶이 묻어나는 정도에 그친다면, 에세이는 작가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 작가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박상 작가의 삶의 향취가 듬뿍 묻어나 있는 ‘본격 뮤직 에세이’다. 이 책은 박상 작가가 겪었던 구질구질한 일상과 여행 속의 일탈을 바탕으로 노래를 추천해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런 에세이들은 대개 70-80년대 팝을 추천해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클래식부터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등 전 세계의 가요를 소개해주는 것을 보고 내 좁은 식견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마살이 있는지, 스페인, 베트남, 독일, 일본 등 세계의 방방곡곡을 유랑하는 작가라서 이리 다양한 취향을 자랑하는 걸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라는 제목만 보고 사랑에 관한 에세이라고 지레짐작한 이들에게는 조금은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는 책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수백만 솔로부대가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고, 오히려 힐링이 될 것 같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솔로였음을 자백하는 박상 작가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만남이 있기를 바래보지만 결국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 이 세상의 수십만 로맨티스트들의 비애를 묘사하는 데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달달함보다는 혼자의 외로움, 일상의 노곤함이 더욱 깊게 배어 있다.


p.72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삶을 구성했던, 그리고 현재 구성하고 있는 음악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신해철과 산울림에 대한 그의 사랑은, 서른과 마흔 사이 언저리에 있는 청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일 터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인생곡’의 시대가 좀 다르다. 넬, 에픽하이, 엠씨더맥스 등 2000년대 후반에 찬란하게도 빛을 내던 그들의 노래에 힘을 얻어 학창시절을 보냈더랬다. 누군가에겐 김동률·윤종신 같은 발라드의 전설들이, 누군가에겐 마릴린 맨슨의 사탄스러운 노래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p.89 모든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음악은 마음을 열고 들을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음악이 비즈니스가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반추해보면서 드는 염려는, 언젠가 ‘뽕짝’이라고 불리는 트로트 외엔 새로운 노래에 대한 관심도 없고 수용하지도 못하는 칠십 넘은 노인처럼 되어버리진 않을까하는 점이다. 지금도 요새 신곡들 중에 도대체 이게 노래인가 싶은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편협해질 것인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나 버스커버스커의 ‘봄바람’, 빅뱅의 ‘Loser’ 등을 추천하는 박상 작가는 상당히 감각이 젊고 유연한 편인 것 같다. 글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감각도 이러한 다양성의 추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고 나니, 우리 삶에서 음악이란 것이 이토록 힘이 되는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반복되는 일상에 흥겨운 리듬을 주고, 급작스러운 일탈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부여해주는 음악의 힘을 이 에세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가을 한복판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부여잡고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이 에세이에 소개된 음악들을 들어보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아보아도 좋을 것 같다. 혹시 아는가? 지금까지 미처 만나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 곡’을 이 책에서 찾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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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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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실연이라는 깊은 심연에도 끝은 있다


‘사랑 안 해’ 혹은 ‘밥만 잘 먹더라’


p.38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함께하실래요?


실연 앞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별 이후를 노래한 음악들을 살펴보면, 백지영의 ‘사랑 안 해’처럼 앞으로 모든 관계의 가능성을 차단하곤 한다. 반면에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에선 생각보다 견딜 만 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하림의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같이 새로운 사랑을 통해 옛 인연을 극복하기도 한다. 백영옥 작가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의 주인공인 윤사강, 이지훈, 정미도는 아직 싸이월드를 한다면 배경음악으로 ‘사랑 안 해’를 설정해 놓고 삼시세끼를 굶어가며 청승을 부릴 이들이다.


실연이란 편지에 동봉된 죄책감과 그리움


p.26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그들은 야생동물이 큰 상처를 입으면 동굴로 들어가 자신을 핥듯, 자신을 고립시켜 스스로를 회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흘러흘러 어느 수상한 이가 주최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한 후 여러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 소설의 큰 줄기다.


p.44 실연은 오래된 미래다. …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p.55 실연의 흔적이 남긴 것들이 어째서 이토록 반짝이는 걸까.

이미 죽어버린 후에도 이 빛들은 왜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걸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실연’은 두 연인 간의 열정적 관계의 소멸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별을 선언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던 비극적 죄책감이든, 말라가는 관계와 더불어 빛이 바래가는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실연’이란 편지의 뒷면에 동봉되어 있다. 그것들은 이별 자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의 잔재들이기에 그들은 결코 자력으론 극복할 수 없다. 그것이 정신과 의사든, 친한 친구든 혹은 비슷한 이별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이든 ‘털어놓아야’한다. 그렇게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시키고 그것에 직면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p.280 스스로의 삶을 관통하는 말은 하기 힘들다. 죄책감은 말의 껍질을 깨뜨리고, 분노와 슬픔은 껍질 안의 말을 짓눌러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 정신과의사 프로이트를 찾아 억압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회복되었던 수많은 환자들처럼, ‘조찬 모임’이라는 틀 안에서 참여자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자신만의 이별 기념품을 청산하며 비로소 그동안 외면해왔던 이별을 직면할 용기를 얻는다.


p.317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실연을 겪는 이들을 위한 깔끔한 처방전


p.288-289 "하지만 전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이에요. 전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아요. …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예요."


사랑에 관한 이야기고, 여행을 주된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가 떠올랐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가능한 한 ‘사랑’이라는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문장의 나열을 사용했다면, 백영옥 작가는 카피라이터 출신답게 깔끔한 한 문장으로 핵심을 짚어내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이 소설의 외피를 쓴 사랑에 대한 보고서라면, 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은 소설 그 자체의 재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 중에서 하정우와 전도연이 주연을 맡았던 〈멋진 하루〉도 실연 후의 연인들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 쪽이 책보다 좀 더 질척거리고 현실적이다. 이별의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조찬 모임이라는 특이한 아이디어를 통해 일탈적 맥락 속에서 치유의 경험을 하는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채무 상환의 목적으로 전 남자친구를 찾아온 여자가 그와 함께 하며 겪는 고된 하루가 묵묵히 진행되며 일상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익숙한 편함 속에 주인공들은 위안을 얻는데, 이별 뒤에 숟가락을 놓지 않고, 몇 숟갈이라도 떠먹는 현실주의자들은 이쪽이 어울릴 것 같다.


당신을 위해 준비된 따뜻한 유기농 문장


소설과 에세이 등 다방면을 종횡무진하는 백영옥 작가의 책을 하나의 단어로 묶는다면 그것은 ‘위로’다. 나도 다 해봤다면서 배려없는 조언을 내뱉곤 하는 꼰대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며 너도 극복할 수 있다며 은근히 전하는 따뜻함이 그녀의 글에선 느껴진다.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이 책은 상처 입은 내면을 토닥여주는 잘 차려진 따뜻한 밥상이라고 되어줄 수 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그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조찬 모임’에 참여한다면 그녀가 준비한 유기농 문장들을 곱씹으며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p.321 '고마워'로 시작하는 사랑보단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힘들다. 상대보다 힘들어지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별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로 새겨질지 알 수 없다. …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 가끔, 아주 가끔은, 지루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진짜 이별을 이해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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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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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캐리비안 해에 있는 멋진 섬나라라는 건 어디서 얼핏 들었을 것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훌륭한 몇몇 야구 선수들 정도면 양호하다. 당신이 시사나 역사에 좀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3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몰고 갔던 쿠바 핵미사일 배치라던가 아직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시절 미국과의 오랜 적대를 멈추고 국교를 맺었던 것도 알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그것을 얼마나 고까와 하는 지도.)


만약 당신이 문화적 소양이 깊다면, 혁명 이후 자취를 감췄던 쿠바 음악인들의 열정적 공연을 담아낸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떠올릴 것이다. ('석봉아'로 유명한 밴드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이름이 여기서 왔다.) 애연가라면 쿠바산 시가도 빼놓을 수 없다. 물리적·정서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일상엔 이미 쿠바의 편린(片鱗)들이 흩날리고 있다.


이렇게 드문드문 떠다니는 조각들로 한 나라를 파악했을 때의 폐해는,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을 때의 문제점과 유사하다. 상대방을 '일상을 영위하는 존재'가 아닌, '일탈적 존재'로 파악하고 자신의 고정관념에 맞는 행동을 해주길 기대한다. 라틴 박자의 맞춰 춤추는 쿠바인, 야구를 잘하는 쿠바인, 시가를 입에 문 쿠바인,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후예로 혁명을 부르짖는 쿠바인! 오호,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미친듯이 잘하고,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샤이한 한국인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p.31 아바나에서 밤낮의 바뀜은 이데올로기적이다. 당신은 현대의 아바나에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동시적 세계를 이루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초현실적인 마주침, 경이로 받아들었던 것이다.


백민석 작가의 <아바나의 시민들>은 이러한 기존의 쿠바인들에 대한 편견을 배반하지도, 그렇다고 계승하지도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여행기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묘한 긴장 사이, 온전한 통제도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도 영위하지 못하는 경계의 나라 쿠바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다.


p.136 당신이 좋았냐고 묻자 아바나에는 뭐 볼만한 자연경관이 없잖아, 라고 했다. … 아바나의 진정한 볼거리는 자연경관이나 유적보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아바나의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향한 시민들인데.


이 책에서 작가는 '당신'이라며 독자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사실상 이 '당신'은 작가 자신이다. 자신의 경험에 2인칭을 덧붙여 우리를 쿠바의 아바나 시 어딘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거기에 더불어 생생한 사진들이 완벽한 짝을 이룬다… 기계 눈으로 포착한 사진들에 작가의 덤덤한 듯 자상한 설명이 덧붙여 지며, 나는 어느새 가보지도 않은 쿠바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p.155 쿠바에서는 스펙터클한 대자연의 장관이 언제나, 다양하게 펼쳐진다. 당신이 알던 그 태양이 아니고, 그 구름이 아니고, 그 파도가 아니고, 다신이 알던 그 하늘이 아니다. 아바나에서 황도를 가로지르며 당신의 정수리를 태우는 그 태양은 전혀 새로운 태양이다. 쿠바는 햇볕이 강하고 대기오염이 적은 탓에, 카메라로 피사체를 겨냥할 때마다 명암의 멋진 대비를 맛볼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셔터만 눌러도 사진이 되어 나온다.


강렬한 태양, 맑은 하늘, 그리고 바다와 사람들… 피사체들에 목마른 사진가들에겐 쿠바의 아바나는 천국과 같은 곳일 것이다. 다만, 백민석 작가가 포착하려는 것은 쿠바는 배경 앞 멋진 모델들의 전경도, 유명한 유적지와 관광지도 아니다. 그는 사진을 통해 이곳에서 퇴색해버린 도시와 다양한 인종들이 자아내는 미묘한 감상들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며, 그 간격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 또한 제시한다.


p.309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생산의 실천에 익숙하다. 아바나의 시민들이 어딘지 모르게 당신보다 행복해 보인다면, 이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은 우연히도 대중매체가 시원찮은 아바나에서 태어나 살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겐 쿠바가 그저 먼 나라이고, 어떤 관광객에겐 쿠바는 그저 와이파이도 잘 안 터지는 불편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민석 작가는 그 불편함에서 오히려 즐거움과 행복을 본다. 대중매체가 시원찮아 스스로 즐거움을 생산하게 된 쿠바인들은 지금 우리가 산업화를 거치며 어느새 잃어버린 '생산'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p.233 당신이 한국에서와 똑같이 생활하고 싶다면, 아바나가 싫어질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란 변화를 싫어해 습관과 규범에 묶여 있고, 귀가 얇아 통념에 휘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디네이터의 말처럼 이런저런 영혼의 족쇄를 훌훌 벗어던질 수 있다면, 당신은 아바나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자본의 힘을 빌어 더 나은 일자리를 얻고,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다. 허나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살아가는지, 어떤 것에 기쁜지조차 사유할 기회조차 잃어버린다면 그만큼 애석한 일이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면, 아바나의 시민들의 삶은 당신을 회복시킬 실마리를 제시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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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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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 우리들은 내면에 사자의 송곳니를 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추리 소설의 질문


p.28 어린아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혹하다. 인간은 원래 타고나길 파괴 충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더할 나위 없이 흉악하고 난폭한 생물이다. 남자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곤충과 작은 동물들을 밟아 죽인다. 여자아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풀을 잡아 뽑고 꽃을 봉오리째 꺾어버린다.

어린아이는 이윽고 예의범절과 정서 교육에 의해 '가엾다'는 개념을 이식받고, 살아 있는 생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리하여 금지된 행위에는 심리적인 제동이 걸리고, 함부로 산 생물을 죽이는 짓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은 가르쳐도, '왜 안 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흉악하고 난폭한 본능이 드러나지 않게 막고 있을 뿐이다. 떨어지면 위험한 깊은 구멍 위에는 뚜껑을 덮어두는 것처럼.

그러나 아무리 감쪽같이 숨겨도 구멍은 늘 그자리에 존재하고, 누군가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떤 찰나에 뚜껑이 벗겨지면, 그 깊은 구멍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어 입을 쩍 벌리고 사람을 집어삼킨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개인적으론 악하다는 쪽을 지지한다. 인간에게 '교양'이라는 것이 생기기 이전, 혹은 교양 따위는 챙길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잔혹한 일들을 보았을 때 애초에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추리·스릴러 소설들은 우리의 사악한 본성을 덮어두는 뚜껑이 벗겨졌을 때 일어나는 일들과 또다시 그 벌어진 일들을 덮어내기 위한 기만의 장막을 걷어낸다. 주로 기묘한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 장르의 소설들은, 단순히 잔인하게만 보였던 사건들 사이에 치밀하게 짜여진 내막을 목도했을 때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인간의 심리는 물론, 범죄에 대한 지식과 탄탄한 반전이 있어야 하기에 추리 소설은 쓰기 어렵다.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가와이 신지다.


나약한 외모 속에 숨겨진 사자의 송곳니 : 단델라이언


p.387-388 단델라이언.
영어로 민들레를 가리키는 단어. 그 의미는 사자의 이빨 또는 사자의 송곳니. 그렇게 귀여운 꽃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사납기 그지 없는 이름이 붙어 있다니, 나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민들레가 가엾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단어의 의미를 모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제아무리 나약한 생물일지라도 무언가 한 가지가 어긋나버리면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흉포한 송곳니를 맹수처럼 드러낼 때까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 지금의 나처럼…….


가와이 신지 최신 작인 「단델라이언」은 영리하게도 '기묘함'과 '사실성'을 잘 배합한 작품이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대학생 '히나타 에미',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환경주의 모임 '민들레 모임' 그러나 그 만남의 끝은 16년 만에 미라화된 시체로 발견된 히나타 에미였다. 그녀는 어느 방치된 목장의 사일로에서 공중에 떠있는 채로 복부가 쇠파이프로 관통되어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보수계 야당인 민생당의 국회의원 모토야마의 비서 가와호리가 고층 호텔의 옥상에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도망칠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 두 명이 '민들레 모임'의 멤버였다는 것.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할 수록 '민들레'라는 순박한 이름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의 욕심과 이상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앞서 말했던 '폭력적 본능'을 지닌 인간들은 상식과 도덕으로 인해 그들 속의 깊은 심연을 덮어놓은 채 산다. 가와이 신지가 전작의 「데드맨」에서 컬트적이고 기묘한 이야기 구성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마저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심리와, 예정된 파멸의 운명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는 여러 우연들에 더 집중한 것 같다. 그렇게 내면의 송곳니를 천진난만한 도덕의 외피로 숨긴 우리들은 모두 단델라이언(Dandelion)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뻔하지 않은 트릭, 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


p.414 "저,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싫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 인간 속에는, 살아남기 위해 기르고 있는 악마가 있는 거다, 때때로 인간은 그 악마에게 자기 자신이 먹혀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그 악마와 결별하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들은 형사로서 살아가는 거라고."


가와이 간지 소설의 매력은, 코난이나 김전일 같이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니라 인간이 '범죄'라는 진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쥐어짜낸 마지막 삶의 발악이 느껴져서다. 소설 속에 악인(惡人)은 존재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지금도 뉴스에 틀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다. 온전히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오히려 피해자의 가까운 이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가슴 속에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뻔하지 않은 트릭, 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가와이 신지, 단델라이언을 포함한 가부라기 형사 팀의 이야기인 <데드맨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그의 작품이 있다고 하니 이번 여름을 그의 작품으로 불태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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