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한림출판사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사계절

<우리 동화 바로 읽기> 한길사

<동화 쓰는 법> 보성사

<북페템 01 - 어린이책>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2회 바람 단편집 원고 모집


어린이ㆍ청소년 문학의 새 물꼬를 터나가겠다는 다짐으로 신인 발굴에 애쓰고 있는 바람의 아이들에서 다음과 같이 단편집 원고를 공모합니다.


안으로는 바람의 작가들에게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밖으로는 신인 작가의 저변 확대를 위해 시작한 단편집 기획은 지난 10월말 원고 마감이후 14편을 선별하여 지금 한창 출간 준비 작업에 들어가 있습니다. 1회 때 보여 주신 작가(지망생) 여러분들의 응모에 힘입어 2회 때는 청소년, 저학년, 고학년 단편집을 각각 따로 모집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주제 및 소재: 제한 없음

- 원고분량: 1. 저학년 200자 원고지 25매 안팎

            2. 고학년 200자 원고지 40매 안팎

            3. 청소년 200자 원고지 60매 안팎

(원고의 분량은 편의상 책정한 것입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제 나름의 호흡을 가지고 있으니, 원고지 분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참고로 1회의 경우 22매에서 65매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 원고료 :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원고 마감: 2006년 5월 31일

- 보내실 곳: 종로구 신교동 6-35 바람의 아이들 편집부

             아래의 이메일로도 접수 가능합니다. 

- 문의 사항 : windchild04@hanmail.net / 전화 02)3142-0495

- 참고 사항: 원고가 채택되신 분께는 개별 통보합니다.

             원고가 채택되신 분에 대해서는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비돌이 2006-01-0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 연령이 초딩인 사람은 안되나요?

하늘바람 2006-01-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는 달님 직접 연락해보셔요^^ 그런데 이제 웃으시는 건가요?
 

2006 신년특집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우리 동네 마루-김진


발행일 : 2006.01.01 / EX E4 면 기고자 : 김진 
 
종이신문보기

“할머니……. 정말 안 돼요? 네?”

“안 된다! 목숨 달린 짐승을 기르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나? ”

“내가 기를게요, 할머니! 아이, 할머니……제발요, 네?”

“이눔의 자슥! 한 번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야제, 뭔 말이 많노?”

“할머니, 이렇게 귀여운 표정 지어도 안 돼요?”

현수는 살짝 말아 쥔 주먹을 양볼에 갖다 부비면서 어린 양 하며 말했다.

“시끄럽다, 고만! 어여 학교나 가지 못해?”

할머니는 소리를 냅다 지르며 회초리를 찾는 시늉을 했다. 현수는 후닥닥 도망쳐 나왔다.

현수는 사흘째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마루 때문이다. 마루는 버려진 개다. 현수는 마루를 데려다 기르자고 조르지만 할머니는 바윗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할머니 몰래 집어온 멸치 한 줌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현수는 언덕배기를 냅다 뛰어내려갔다. 마루가 있는 큰기왓집에 들렀다 학교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우리 동네가 이제 정말 사라지려나 보다!”

언덕 아랫동네 담벼락은 밤새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공가(빈집)’라고 쓰여져 있는 걸 보자 현수는 시무룩해졌다. 한구네집도, 이화네 집도 구멍이 나 있었다. 현수의 가슴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현수네 동네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있는 달동네다. 언덕 아랫동네는 낡은 집들을 헐고 아파트를 짓게 되면서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동네에서 가장 크고 으리으리한 집인 큰기왓집도 이번 일요일에 이사를 갔다. 이사 가면서 마루는 버려 두고 간 것이다.

“기르던 개는 가족과 마찬가지인데, 어쩌면 그렇게 버리고 갈 수 있죠? 사람들이 참 냉정하기도 하지.”

동네 일을 가장 먼저 아는 옆집 아줌마가 할머니를 찾아와 혀를 찼다.

“자슥도 버리는 세상인데 그깟 개를 와 못 버리노?”

평소 소문을 옮기고 다니는 옆집 아줌마를 할머니는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자식도 버리는 세상이라는 말을 하고는 이내 현수가 걸렸는지 얼른 현수를 돌아보았다. 현수는 모른 체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자네가 길러주지 그라노?”

“저는 혼자 살아서…… 개를 좋아하지도 않고…….”

옆집 아줌마는 할머니가 말을 고분고분 받아 주지 않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기왓집 대문에 들어서자 마루는 주인이 버리고 간 옷가지에 코를 묻고 누워 있었다. 마치 내가 엄마 베개를 밤마다 꼭 안고 자는 것처럼.

“마루야! 마루야!”

현수가 불러도 마루는 커다란 눈만 꿈벅거렸다. 벌써 사흘째 굶은 것이다. 하얗던 털도 때가 묻어 거뭇거뭇하다. 마루는 제법 늠름한 진돗개였는데, 이젠 진돗개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준 밥은 고스란히 밥그릇에 말라 붙어 있었다. 다행히 물은 마시는지 물그릇은 비어 있었다. 현수는 말라붙은 밥 위에 멸치를 얹어 주고 물도 떠 주었다.

“마루야, 형 학교 갔다 올 테니 멸치 좀 먹어. 오늘은 꼭 먹어야 해!”

마루를 다정스레 쓰다듬어주고 현수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어느 날, 할머니는 현수를 보며 말했다.

“애비도 없고, 에미도 없고, 불쌍한 자슥.”

그리고는 돌아서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후우……. 이제 끈 떨어진 운동화 신세가 되었네.”

그 말에 현수 가슴은 얼음장처럼 얼어붙더니 쨍 하고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날, 할머니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하지만 현수는 울지 않았다.

“현수야, 이제 삼학년이니까……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 아빠 돌아가실 때 병원비 때문에 우리 빚진 거 알지? 그거 갚으려면 엄만 돈 벌러 가야 해! 엄마 올 때까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할머니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지만 현수는 믿었다.

그리고 일년이나 지났다.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가 엄마를 미워하는 말도, 현수를 보고 푸념하는 것도 줄어들었다.

그러던 할머니가 마루가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현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루도 끈떨어진 운동화 신세가 되었구나, 쯧쯔! ”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현수는 마루를 돌봐 줘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영리한 개들은 주인에게 버림받으면 죽는대. 마루도 죽으려나 봐!”

옆집 아줌마가 낮에 한 말 때문에 현수는 마음이 다 졸아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온통 마루 생각뿐이었다. 저녁상을 물린 뒤, 할머니는 손끝이 빨개지도록 마늘을 까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현수가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녁 먹을 때, 할머니가 모처럼 구워 준 생선구이를 현수는 일부러 남겼다. 그걸 챙겨들고 현수는 재빨리 집을 빠져나왔다.

어두컴컴한 빈 집에 마루가 누워 있었다. 현수가 마당에 불을 켰지만 마루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야, 임마! 오늘도 밥 안 먹으면 넌 이제 진짜 죽어!”

현수는 생선을 마루 입에 갖다 댔다. 마루는 느리게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돌렸다. 현수는 고개를 돌리는 쪽으로 또 생선을 갖다 댔다. 마루는 그제야 냄새를 킁킁 맡더니 혀를 조금 내밀었다. 그리고는 현수 손에 들린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먹더니 나중에는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준 멸치와 밥도 남김없이 먹었다. 현수는 기뻐하며 마루를 끌어안아 주었다. 마루가 처음으로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어, 마루야! 이 형 보고 꼬리 흔드네? 아이, 착하지!”

현수는 계속해서 마루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빠꼼히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마루에서 아직도 마늘을 까고 있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할머니가 벼락 같은 소리를 질렀다.

“오밤중에 어디 갔다 오는 기가?”

“앗, 깜짝이야! 저……그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루가 밥을 먹었어요. 이제 살려나 봐요! 하하!”

현수가 한껏 너스레를 떨면서 크게 웃었다. 할머니는 현수를 노려보더니 한 마디 했다.

“그래, 니는 이 할매가 고생스럽게 마늘 까서 사다 준 생선을 개한테 갖다 주나? 철부지 자슥!”

“아니, 그게 아니고, 마루가 죽을 거 같아서요. 아이, 할머니,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현수는 헤헤거리면서 할머니 뒤로 돌아가 어깨를 주물렀다.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더니 잠자코 현수에게 어깨를 맡겨 주었다.

밥을 먹여 준 뒤로 마루는 현수를 주인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현수가 골목 끝에서 이름만 불러도 마루는 겅중겅중 뛰어왔다.

토요일, 학교를 마치자마자 현수는 마루에게로 향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자고 했지만 현수는 거절했다.

골목 안으로 접어들자 왠일인지 큰기왓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 개를 끌고 간단 말이가.”

할머니 목소리다. 현수는 급한 걸음으로 그리로 뛰어갔다. 어른들 사이로 자전거가 보이고, 자전거 뒤에는 커다란 철망이 실려 있었다.

‘개장수다!’

현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할머니! 버려진 개니까 끌고 가지 주인 있는 개를 끌고 갑니까?”

개장수 아저씨가 할머니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버리지긴 와 버려져! 이 개 우리집 개야!”

“할머니, 제가 이 동네 다니면서 며칠 봤어요! 이 개가 이 집에 혼자 있는 거! 이 집 이사 간 거 맞죠?”

현수가 어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개장수 아저씨가 마루 목에 목줄을 걸고 있었다.

“안 돼요, 아저씨! 마루야!”

현수가 큰기왓집 감나무 가지가 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현수를 보자 마루는 목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앞발을 쳐들고 뒷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이거 보소! 이 개는 여기 있는 우리 손자 개란 말이다. 여그 사람들한테 물어보소. 안 그라요?”

할머니는 더 당당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요. 얘가 얼마나 정성껏 돌봤는데. 빨리 풀어 주세요!”

옆집 아줌마가 끼어들었다. 개장수 아저씨가 그제야 씩씩거리며 할 수 없다는 듯 목줄을 풀어 주었다. 묵줄이 풀린 마루가 현수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에이, 재수없어.”

개장수 아저씨는 자전거에 올라타고는 휙 가 버렸다.

“현수야! 마루 데리고 집에 가자! 나 원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버려진 개라고 개장수 저그들 맘대로 데리고 가 팔아 버려도 된다 말이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팔을 휘휘 내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구경꾼들도 흩어졌다. 얼떨떨한 채 마루를 안고 있던 현수가 옆집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할머니가 지금 하신 말 들었죠?”

“현수야, 너, 나한테 고맙다고 해! 내가 얼른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겠지?”

옆집 아줌마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우쭐댔다.

현수는 옆집 아줌마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 신춘문예 문화 일보 동화 당선작

'알갱이 요정의 첫 번째 임무'

 

 


“으아아아아”

철퍼덕

세상에…. 나는 내가 이런 품위 없는 소리를 내면서 세상에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떨어진 곳은 두리의 손에 들린 커다란 돋보기 위였습니다. 제대로 떨어지긴 한 것 같습니다.

“누나 여기가 수상해 빨리 와봐”

잔뜩 의심에 차서 돋보기를 노려보는 두리의 눈과 딱 마주치자 나는 순간 움찔했습니다.

“어디 어디? 음마 진짜네? 칠이 벗겨져 있어”

한나가 흥분하며 동생의 돋보기를 뺏어들었습니다. 한나 역시 두 눈이 가운데로 몰리도록 열심히 돋보기를 노려보는 바람에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될 뻔했습니다.

‘경기1다 8537 흰색 칠 벗겨져 있음. 오른쪽 문 찌그러짐. S떨어져있음. 아주 수상함.’

한나가 수첩에다 열심히 적어 넣자 두리도 자기 수첩에다 누나 것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이로써 수상한 자동차들은 열세대로 늘어났습니다. 둘은 지금 지구평화를 위해 수상한 자동차들을 색출해내는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난 차를 발견하면 당장 폭탄이라도 터질 것처럼 호들갑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를 꼬마도깨비쯤으로 여기고 있겠죠?

나는 아이들이 아끼는 장난감에 마음이 되어 깃드는 ‘알갱이 요정’입니다. 천사들이 날갯짓을 할 때 그 광채 부스러기에서 때때로 생겨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지만 나름대로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지요. 아이들이 사랑하는 곰돌이나 장난감자동차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것들이 마음도 가지지 않은, 단지 헝겊이나 플라스틱일 뿐이라면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요? 그런 쓸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알갱이 요정들의 임무죠. 나도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는 한창 인기높은 엽기토끼의 맘이 너무너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두리의 돋보기 쪽을 택한 거예요.

엄마가 편찮으신 한나와 두리의 친구가 되기로 한 게 내가 요즘 연속극을 너무 많이 봐서일 거라고는 절대 생각지 말아주세요. 하기야 구름 속에서 방향을 잃은 전파들을 붙잡아 켜보면요, 연속극 속 엄마들은 모두 아프고 아이들은 또 모두 가엾게 울어요.

그러나 한나와 두리는 울지 않아요. 내가 본 한나와 두리는요, 날이 어둑해지고 땅거미가 지면 어쩔 수 없이 먼 하늘이 바라봐지고 눈물이 맺히려고 그러지만요, 한나는 두리 때문에, 두리는 누나 때문에 울지 않아요. 울지 않으려고 마음만 굳게 먹으면 씽긋 웃을 수도 있어요. 어떤 땐 그런 모습이 더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구평화를 지키는 놀이는 어찌나 재미나던지! 두리 손에 끌려 집으로 들어오면서도 내 눈은 여전히 수상한 차들의 흔적을 쫓을 지경이었다니까요.

막상 돋보기 맘이 되고 보니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음…. 이건 진짜 비밀로 하려했는데. 돋보기가 된 후로 사람들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 있죠? (여러분도 조심하셔야할 걸요?)

 

“노할머닌 엉터리야. 이렇게 햄만 반찬으로 먹다가 우리가 병 걸려 죽으면 어떻게 해?”

증조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상을 대하자마자 한나가 잔뜩 심술을 냅니다. 증조할머니는 자기들과 통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고오… 점슴 때는 또 햄 반찬 없다고 난리디만….”

내가 보기에도 노할머니는 이 팔딱거리는 변덕쟁이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늙으신 것 같습니다. 그저, 어린 것이 엄마가 곁에 없으니 마음이 안 좋아서 그러는 것이리라 이해하십니다.

뻐꾸기시계가 아홉시를 알릴 때까지 나는 아이들과 만화영화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한순간에 텔레비전을 탁 꺼버리고 촛불을 켜지 뭐예요. 한창 재미있던 차에 막 화까지 나려 하잖아요. 두리도 나처럼 미련이 남는지 꺼진 텔레비전 쪽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갔어요.

“철딱서닌 없어도 정성이 용하구마는.”

기도를 해본 적 없으신 노할머니도 어린것들이 기특하다 하셨습니다.

“하느님. 우리 엄마가 얼른 낫게 해주시고 덜 토하게 해주시고 과학자들이 얼른 암을 치료하는 약을 발명하게 해주시고 우리 집이 계속 부자라서 약값이 없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아멘.”

두리가 목청을 높여 멋지게 기도하자 한나가 거실 구석에 계신 노할머니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기도를 보탰습니다.

“할머니가 얼른 추수를 끝내고 오셔서 노할머니가 다시 시골로 가버리시도록 해 주세요, 아멘.”

나는 기도가 끝난 줄 알고 이젠 텔레비전을 켜주겠구나, 좋았는데 진짜 기도는 그때부터 시작이지 뭐예요? 가만… 저런! 한나와 두리는 자기들이 애쓰는 만큼 엄마가 덜 아프실 거라 믿고 있군요! 저렇게 다리가 저려 비비 꼬아가며 하는 기돈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아이들은 씻지 않고 잠들어버렸습니다. 이 돋보기의 눈에는 커다랗게 확대되어 보이는 꼬질꼬질한 땟자국이 침침한 노할머니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잠든 얼굴을 그 거친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운 것들 불쌍한 것들, 하시더니 불을 꺼주십니다.

 

시험이 끝난 놀이터는 아이들로 넘쳐납니다. 그동안 한나와 두리를 빼고는 전부 엄마들 손에 끌려 들어가 나름대로는 시험공부를 한다고 애를 먹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그네를 타고 어지럽도록 뺑뺑이를 돌아도 성이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5학년 형 하나가 좀 더 재미있는 놀이는 없을까 궁리 끝에 경비실 앞에서 신문지를 한 아름 가지고 왔습니다.

“너 돋보기 좀 줘봐.”

5학년 형이 나를 가져가 해를 비추자 견딜 수 없이 따끔하고 환한 빛이 내 몸을 통과하더니 마침내 구겨진 신문지에 불이 붙었습니다. 빙 둘러서서 신문지를 던져 넣던 아이들의 마음에 무서움이 일도록 불은 점점 커졌습니다. 겁 많은 한나와 두리는 이미 일찌감치 물러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변이람! 아저씨! 빨리 물 좀 가져오세요!”

장보고 돌아오던 엄마들이 기겁을 했습니다. 경비아저씨가 물통을 가져오고 불을 끄는 동안 아이들은 와르르 흩어졌습니다. 연기를 보고 뛰어나온 엄마들이 제각각 아이들을 찾기 바빴습니다. 다행히 신문지 외에는 탄 게 없다는 걸 알고서야 엄마들은 아이들을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이 한 짓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그런데, 불은 무엇으로 붙였느냐는 엄마들의 채근에 아이들이 모두 두리의 돋보기, 즉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두리 엉덩이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엄마들이 두리를 야단치기 시작하자 한나는 억울해서 말보다 눈물을 먼저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3학년 4반 반장인 한나가 그냥 그렇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아줌마. 우리 두리가 그런 거 아녜요. 저기 저 오빠가 두리 돋보기로 불붙인 거란 말예요.”

“정말 네가 그랬냐?”

5학년 형의 엄마가 다그치자 그 형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우리 애는 아니라는데?”

짜증스런 아줌마의 목소리에 한나는 비겁한 5학년 형을 뚫어질 듯 쏘아보았습니다. 그 자리에 역성 들어줄 엄마가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서럽기만 했습니다.

“얘네 엄마 요즘 병원에 들어가 있잖아….”

“그렇다고 애들을 이렇게 방치해서야 돼? 누가 화상이라도 입었음 어떡하고?”

엄마들은 쯧쯧 혀를 차면서 목소리를 줄이는 척만 했지, 한나와 두리에게 다 들리도록 쑤군거렸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숨까지 가빠졌습니다. 냉랭한 눈으로 돌아서며 쟤들하고는 놀지 마, 하는 엄마들 마음이 다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말로는 불쌍하다면서 한나와 두리에게 마치 위험팻말이라도 붙은 것처럼!

이럴 때보면 사람들은 꼭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동물 같습니다. 동물들은 약한 동물을 기막히게 알아보니까요. 병들거나 약하다 싶으면 은근히 따돌리거나 쫓아냅니다. 사람들이 동물처럼 그래서는 안 되는 거 아녜요?

그날 밤 한나는 의사가 되기로 한 오랜 꿈을 바꿨습니다. 정의로운 판사가 되어서 이 억울한 일을 다시 재판하고 아줌마와 불붙인 오빠를 꼭 감옥에 보내버리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한나의 화난 눈을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치료를 마치고 간병하던 아빠와 잠시 외출을 나왔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다시 입원하셔야 하기 때문에 한나와 두리는 기쁘면서도 또 미리 불안한 마음입니다.

“엄마. 우리 두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아줌마들이 막 뭐라 그러는 거 있지?”

이 억울한 일을 일러바치고 싶어서 한나는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엄마는 한나 편도 들어주시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계십니다. 아이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파서 엄마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아빠가 위로했습니다. 한나는 나중에 판사가 되어 복수하겠다는 결심을 엄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엄마도 순간 많이 화나긴 했지만 한나의 미움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입니다.

“그러지 말고 이렇게 복수하자.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는 거지. 네 친구 중에 엄마가 아픈 애가 생기면 네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엄마도 그 친구 임시 엄마가 되어주고.”

한나의 고개가 끄덕거려졌습니다. 나는 한나의 꿈이 슬그머니 다시 바뀌는 걸 기쁜 맘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한나는 늘 한솔소아과 선생님처럼 예쁘고 친절한 의사선생님이 너무너무 되고 싶었거든요.

오늘은 촛불을 켜고 엄마와 아빠도 함께 앉았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기도했어? 텔레비전도 안보고? 그래서 내가 덜 아픈 거였구나!”

눈물이 글썽하도록 기특해하시는 엄마 앞에서 한나와 두리는 딴 날보다 더 많은 기도를 생각해내고 더 길게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엄마가 침대로 가서 누우시자 한나와 두리는 침대로 달려가 엄마 양 겨드랑 사이를 파고들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엄마 날개 한 쌍인 것처럼. 두리는 누운 채로 자기가 쓴 동시를 목청을 돋우어 읽어드렸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갔다.

엄마는 외롭겠다.

엄마가 없으니 공부나 해야겠다.”

나는 정말, 두리가 그처럼 동시를 잘 쓰는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두리의 돋보기라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입니다. 금방이라도 울듯이 듣고 계시던 엄마가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오늘밤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아침이 오자 엄마는 다시 병원 갈 채비를 합니다.

“엄만 언제 병원 안 가도 돼?”

학교를 가려다말고 현관에 붙어 서서는 두리가 눈물을 꾹 참고 물어봤습니다.

“우리 두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기도해 줄래? 엄마도 열심히 낫도록 애쓸게.”

두리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낮에는 지구를 지키고 밤에는 기도로 엄마를 지키는 게 요즘 두리의 일인 걸요.

한나와 두리는 힘없이 아파트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는 갑자기 경비실 앞에서 딱 얼어붙었습니다. 오늘은 진짜 운이 없는 날입니다. 엄마도 다시 입원하셔야 되고 불을 낸 그 5학년 형과 아줌마를 딱 마주치기까지 했으니까요.

“안녕하세요.”

어? 한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인사가 자동으로 막 나오잖아요? 생각 없는 두리는 물론 제 누나랑 합창이고요. 이런 걸 보면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겁니다. 어른만 보면 완전자동으로 고개가 꺾이고 ‘안녕하세요’가 나오니까요.

“응….”

아줌마가 쑥스럽게 인사를 받아줍니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다 5학년 형을 꾸짖습니다.

“얘들 인사하는 거 좀 봐라. 5학년이나 된 것이….”

5학년 형은 툴툴거리다 괜히 애꿎은 꿀밤까지 벌었습니다. 입안에서만 뱅뱅 돌다가 끝내 나오지는 못했지만 아줌마는 지금 한나와 두리에게 사과를 하고 싶으신 겁니다. 5학년 형이 어젯밤 집에 들어가자마자 금방 자수를 했거든요.

아줌마는 등교하는 한나와 두리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서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할 걸… 끝내 말하지 못한 그 얼굴이 씁쓸합니다. 아줌마는 자기가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는 사실도 깜박 잊고 집으로 도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하 참… 조금 안된 생각이 드는데요?

아줌마, 한나는 벌써 아줌마가 미안해하신 걸 알아요, 한나가 얼마나 영리한데요. 한나 걸음걸일 보세요, 저렇게 나비처럼 나풀거리잖아요?

 

엄마가 안 계시니 한나와 두리의 지구 지키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자동차들은 더 이상 수상쩍은 점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출했습니다. 재활용품이 빼곡히 들어찬 지하창고는 정말 수상쩍은 점의 집합체였습니다. 헝겊을 친친 감은 파이프들과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 모든 것이 지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나와 두리는 심각한 얼굴로 수상한 점을 수첩에 모두 적었습니다. 이제 수첩도 몇 장 남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안 계셔도 또 하루해가 갑니다. 나도 이제 땅거미가 지면 먼 하늘이 바라봐지고 눈물이 맺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도 한나와 두리처럼 절대 울지 않아요. 우리는 한 팀이니까 서로를 지켜줘야 하거든요.

 

엄마가 병원으로 가신 첫날밤은 언제나 더 길고 어둠도 더 짙게 까만 것 같습니다.

“두리야. 우리 바깥에 나가자!”

아홉 시가 되자 한나는 두리에게 오리털 점퍼를 입혔습니다.

“왜?”

눈꺼풀 근처까지 잠이 놀러왔던 두리 목소리에 불만이 대단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단 추운 걸 참고 기도하면 하느님이 더 잘 들어주실지도 몰라.”

요즘은 누나 말이면 무조건 믿어지는 게 두리입니다. 나까지도 하는 말마다 엉뚱한 한나 말이 이제는 믿어지려고 합니다. 한나와 두리는 졸고 계신 노할머니를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놀이터로 나왔습니다.

계절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미끄럼틀 아래서 기도하는 두 아이 몸이 달달 떨립니다. 기도하는 소리도 함께 달달 떨려서 저절로 하늘로 막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렸던 친할머니께서 추수를 끝내고 올라오셨습니다. 아이들이 환호를 울리며 할머니를 맞이하는 모습을 노할머니는 웃으며 지켜보았습니다. 한나와 두리는 정말 철딱서니가 없습니다. 좋은 티를 조금만 덜 내면 어디가 덧나나요? 노할머니가 쓸쓸해 보여서 내 마음이 다 짠한데….

친할머니가 오시자마자 바통을 넘겨주듯 한나와 두리를 맡기고 노할머니는 떠나려 하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노할머니가 시골로 가시면 속 시원할 것 같았는데 막상 가신다니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젯밤 짐을 챙기시는 걸 볼 때부터 목구멍에서 슬픈 것이 자꾸 올라오려 했거든요.

“내가 노할머니 미워해서 지금 가는 거지?”

“하이고… 느그 할매가 여그 와서 촌집이 텅텅 비었는데 곡슥이며 짐승들은 누가 지킬끼고?”

노할머니는 만 원짜리 한 장씩을 한나와 두리 손에 쥐어주시고는 저금해라 하셨습니다. 한나와 두리가 훌쩍거리며 노할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게, 날마다 심통 부리는 걸 보면서 저렇게 후회할 날이 올 줄 진작에 알아봤다니까요?

 

한나와 두리는 노할머니가 타신 택시가 까만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듭니다. 나도 눈물이 나와서 눈이 다 흐릿해지려는데 한나와 두리가 갑자기 문방구로 뛰어갑니다. 어어? 노할머니가 저금하라고 주신 돈으로 수첩을 사네요? 나도 지구를 지키는 놀이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나와 두리는 참 해도 너무합니다. 노할머니 때문에 울고불고 한 지 십 분도 채 안됐잖아요?

“오늘은 305동을 조사한다!”

한나로부터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자 두리가 옷소매로 나를 반짝반짝하도록 닦습니다. 둘은 바람소리가 나도록 달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직도 좀 슬픈데 둘 다 어느새 노할머니를 까맣게 잊었나 봐요. 내가 이 배신자들하고 한 팀이라니….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재미나도 나까지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아! 난 진짜 갈등이에요! 이 순간 나는 정말 이러는 내가 너무너무 싫어요! 의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한나와 두리를 따라가면서 내 가슴이 왜 이렇게 사정없이 뛰기 시작하는 거예요?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착한 어린이 이동영’ - 강이경


그림 김유대
선생님이 상장을 들고 들어오셨다.

“지난번 교내 글짓기대회 상이야. 지금부터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김병수!”

김병수가 나가고, 그 다음엔 이보람이 나갔다. 나는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짝, 보람이가 자리로 돌아오자, 내가 말했다.

“이보람, 너 상 되게 많이 받는다!”



 

“뭐 이 정도쯤이야……. 왜? 너도 상 받고 싶어?”

보람이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튼튼하기만 하면 돼.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보람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선생님이 목청을 높이셨다.

“모두들 주말 즐겁게 보내라. 참, 월요일에는 그림그리기대회가 있으니까 그림 그릴 준비 해 와.”

“네!” 하고 아이들이 대답했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먹을 걸 사러 가시고,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병실로 달려갔다.

“그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들었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 한 분과 남자아이 한 명이 들어왔다. 아이는 곧장 아주머니께 달려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엄마, 이거!”

“어머, 또 상 받았구나!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 병이 빨리 낫겠는걸.”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엄마가 끼어드셨다.

“아줌마는 참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상장도 받아 오고. 어디 저도 좀 보여 주세요.”

‘치,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 놓고서…. 순 거짓말쟁이….’

나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빠가 먹을 걸 잔뜩 사가지고 오셨지만, 하나도 맛이 없었다.

월요일 3교시, 모두들 그림을 그리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도무지 무얼 그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보람, 넌 뭐 그릴 거야?”

“난 나무 그릴 거야. 넌?”

“몰라.”

내가 말하자, 보람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보람이가 나무 두 그루를 그렸을 때, 내가 말했다.

“나도 나무 그릴래.”

“안 돼. 넌 딴 거 그려!”

보람이는 성질을 내며 저쪽으로 휙 가 버렸다.

‘나무가 다 자기 건가 뭐. 가다가 팍 넘어져라!’

보람이는 넘어지기는커녕 어느새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보람이에게 갔다.

“이보람, 나 좀 도와줘. 도와주면 너 대신 청소당번 할게.”

순간, 보람이 눈이 반짝였다. 나는 보람이가 마음을 바꿀까 봐 겁이 났다.

“그림만 그려 주면 색칠은 내가 할게.”

보람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쓱쓱 하더니 나무들을 멋지게 그려 주었다.

“색칠은 저기 가서 해. 내 옆에서 하지 말고.”

나는 신이 나서 도화지를 들고 멀리 갔다. 색칠을 하고 나니 나무들이 제법 그럴 듯했다. 색칠이 삐죽삐죽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그때 그림은 멀리서 보는 거라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림을 세워 두고 뒤를 돌아 몇 걸음 걸어갔다.

그림을 보려고 기분 좋게 뒤를 돌았을 때였다. 도화지가 바람에 날려 저만큼 가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도화지를 잡으려고 냅다 뛰었다. 도화지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만 도화지를 밟고 만 것이다. 나는 천천히 발을 들었다. 나무 그림 위에 운동화 자국이 쿡 찍혀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저녁에 밥을 먹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난 수학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글짓기도 못하고, 달리기도 항상 4등밖에 못 해. 그리고 운도 없어! 죽을 때까지 상장 한 번 못 받을 거야…….’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 나는 이불을 휙 젖혔다. 어둠 속에서 모니터 전원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우리 반 민수와 함께 집으로 왔다.

“우리 손자 인자 오나? 친구도 왔네. 어서 온나.”

할머니 목소리가 다른 날하고 달랐다. 할머니가 웃으며 나에게 눈을 흘기셨다.

“아이고, 니도 참, 상장을 탔시마 말을 해야쟤, 그래 처박아 두면 우야노. 상장은 이래 액자에 넣어가 벽에 쫙 걸어 놓는 기라.”

할머니 뒤로 상장이 죽 걸려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 우수상, 교내 글짓기대회 최우수상, 달리기 일등상, 착한 어린이상……. 상을 이래 마이 받고도 말을 안 하다이, 니가 속이 보통 깊은 아가 아인 기라…….”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민수를 보았다. 민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는 민수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저게 상이냐? 가짜로 인쇄한 거지! 하하하하…….”

민수가 겨우 웃음을 그쳤을 때, 내가 말했다.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나는 민수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 카드를 주었다.

다음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왕 천재님 오셨다!”

“와하하하….”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민수를 노려보았다. 민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좀 조용히 하자. 너희가 만날 이렇게 떠드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지난 토요일에 교장 선생님이 일기장 걷으라고 하셨는데 까맣게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내일 일기장 꼭 가져와. 오늘 일기도 꼭 쓰고.”

그 날 저녁, 일기를 쓰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

토요일날 나는 엄마한테 가지 않았다. 아빠 차가 멀리 사라질 때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전화로 엄마 목소리만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

오늘은 엄마한테 가려고 학교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이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또 상장인가 보았다. 무슨 상장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셨다.

“이도영!”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했다. 보람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큰소리로 상장을 읽으셨다.

“상장. 최우수상. 2학년 1반 이도영. 위 어린이는 꾸준히 일기를 써서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상장을 줌. 양촌초등학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상장을 다 읽고 나서 일기장을 펼치셨다.

“아이들한테 이 일기 좀 읽어 줄 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는 아프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계신다. 수술도 받으셨다. 내가 일을 하나도 안 도와드려서 엄마 허리가 아픈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다 나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상을 받아서 빨리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빨리 나으라고 컴퓨터로 상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수한테 들켰다. 부끄럽고 화도 났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은데도 안 갔다.

하지만 그까짓 상장이 없어도 이번 토요일에는 엄마한테 갈 거다. 상장을 못 받는 대신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할 거다. 옷도 아무 데나 벗어 놓지 않고, 가방도 항상 제자리에 놓겠다고 약속할 거다. 그러면 엄마가 기분이 좋아져서 빨리 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보람이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났다.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도 모르게 꾸벅 절을 했다.

“수업 끝! 월요일날 만나자.”

선생님이 웃으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상장을 안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꾸 웃음이 났다.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강이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