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첩자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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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에 가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 가정을 해보는 것은 즐겁다. 그 당시 무엇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으로 풀어낸 것이 대체역사소설이다. '만약 일본이 우리나라를 계속 지배했다면'이라는가정-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하에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쓰여졌다.

대체역사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부담감은 가정 이전의 역사를 어느 정도는 알아둔다면 그 재미는 배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반대일 경우에는 그만큼의 재미는 떨어지게 된다.

《비잔티움의 첩자》는 대체역사소설이다. 책머리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개글처럼 '무아메트가 이슬람을 창시하지 않고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지 않아 그리스로마문명이 융성했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웹상에서 동로마 제국사를 살펴본 후 부실한 역사 지식에 걱정도 되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러한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대체된 역사는 단지 소설의 배경이 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사 이 소설의 배경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이거나 이슬람 제국이어도 이 이야기는 성립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주인공 아르길로스의 연애가 약간 가미된 모험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르길로스의 연대기이다.

로마군의 척후장교에서 현대의 비밀요원 격인 '마지스트리아노스'가 되고, 온갖 모험을 거듭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 모험의 과정에서 아르길로스는 역사를 대체하게 된다. 전쟁에 필요한 물건을 훔치고, 병의 치료법을 발견하고, 분쟁을 해결하고, 이민족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 자체가 역사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르길로스의 행위는 이슬람교를 창시하지 않고 크리스트교로 개종해 수많은 찬송을 남긴 성 무아메트보다 더 무게가 실린다. 즉 아르길로스는 대체된 역사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대체시키는 존재가 된다.

《비잔티움의 첩자》에는 우울한 이야기도 있지만 즐거운 책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인 '기묘한 발진'에서 가족을 잃게 되지만 이는 역사가 대체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로 인해 그는 병의 원인을 알아내었고 마침내는 자유롭게 되었으니까. 정말로 영화적인 구성이다.

즐겁다. 대체역사소설라고 다소 심각한 기분으로 책을 집었다면 안심해도 좋다.
즐겁고, 이야기의 독특한 접근 방식이 읽는 재미를 준다. 그 방식에 실망할 수도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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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와 함께 읽는 명화 이야기
프랑수아즈 바르브 갈 지음, 이상해 옮김 / 예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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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감상법은 실로 다양하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는 주로 그림에 대한 저자의 신변잡기적인 느낌을 수필 형식으로 쓴 미술 에세이, 또는 그림이나 화가들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놓은 스캔들(?) 중심의 미술책을 즐겨, 아니 가끔 읽는다.

《내 아이와 함께 읽는 명화 이야기》는 이런 나에게도 그림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책은 화가의 생애나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림 속 이미지의 해석에 천착한다. 문학 비평 방법과 비교하자면 내재적 비평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거창하게 나온다고 해서 어려운 책은 결코 아니다. 책제목에서도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미술 전공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전부 30점의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의 눈에 익숙한 명화들뿐만 아니라 현대 화가의 추상화까지 골고루 선별되어 있다. 그 그림들을 보고 아이가 궁금해할 만한, 그동안 우리가 궁금하게 여겨온 점들에 대한 의문에 흥미로운 답을 이해하기 쉽고 명쾌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림 속에서 한 번 보고 지나치기 쉬운 이미지들까지 세심하게 포착하여 우리 머릿속 그림의 퍼즐에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맞춰 넣어준다.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그리고 속도〉에서 달려오는 기차 앞에 토끼 한 마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 책은 명화 30점을 소개하고 있는 2부가 핵심이지만, 1부에는 아이와 함께, 또는 연인과 함께, 또는 혼자 미술관을 관람할 때 꼭 알아야 할 시시콜콜한 점들이, 3부에는 그림을 감상할 때 알아두면 좋을 상식들이 나와 있다. ‘나도 저렇게는 그릴 수 있겠다’ 싶은 그림들이 왜 예술인지도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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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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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하다. 책을 덮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든건 왜일까.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수다'스러운 것은 못 느꼈지만 즐거운 연애소설-SF라기보다는 연애소설 같은 느낌이었다-임에 틀림없지만 왜 저런 느낌일까.

시간여행의 가장 유명하면서도 거대한 모순인 '할아버지 파라독스'가 있다. 과거로 가서 나의 할아버지를 죽이게 되면 나는 태어날 수 없으므로 그 순간 소멸하는가, 아니면 나는 여전히 존재하므로 새로운 인과율이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등장한다. 과거에서 네트를 통해 현재로 가져온 보물들을 더 과거로 가서 파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보물 파라독스'가 생겨버렸다.

물리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를 해결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평행우주-패러럴 월드이다. 이 평행우주론에 입각한 것이 바로 대체역사소설이다. '만약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면' 이라는 무한한 가정을 설명해 주는 것인데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는 이러한 단순한(?) 방식을 거부하고 '모순의 교정'이라는 방식으로 단일우주를 치유하려 든다. 여기에서 소설 자체의 재미와 수많은 의문이 들게 된다.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우주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우주의 붕괴이다.

미래를 통해 과거로 간 사람들의 말 한마디, 고양이 구하기, 심지어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마저도 우주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했겠지.

결국 이 소설대로라면 악순환의 연속이다. 과거를 여행하고, 그 결과로 우주가 붕괴될 만한 모순이 발생하고 그 모순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과거를 여행하고... 마치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는 뱀 같다.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수밖에...

재미있게 읽은 책에 이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쓰게 된 것은 책 말미의 시간 여행의 이유가 밝혀지면서이다. 
암담하고 허무한 이유. 자유 의지의 배반.

덧붙여서 생소한 단어인 '비명아지'가 등장하는데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단어는 원작자가 만든 단어를 역자가 번역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각주라도 달아줬다면 덜 궁금했을텐데. (혹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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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사랑한 파리 - 파리에 매혹된 어느 화가의 그림현장 답사기
류승희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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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라고 하면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 숨쉬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무슨 수학 공식처럼 툭 튀어나온다. 이제 파리의 낭만은 사실 식상할 정도로 많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라면 다시 한 번 눈여겨볼 만하지 않을까? 이것은 내가 류승희의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화가들 앞에 발가벗긴 파리는 화가들의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화가들의 눈길과 붓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파리의 곳곳은 화가들의 캔버스에 담긴 채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영원의 안식을 얻었다. 그리고 파리는 또 한 번 류승희의 카메라 앞에 발가벗겨진다. 류승희는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과거의 풍경이 있던 자리를 사진으로 찍어 현재로 생생하게 옮겨놓으면서 파리의 풍경을 살아 있게 하는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 류승희는 명화 속의 아름다운 파리 풍경들을 실제로 눈앞에 펼쳐 보인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보면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즐기는 내내, 화가들이 안내하는 파리와 류승희가 안내하는 파리의 어제와 오늘이 내 망막에서 묘하게 교차되었다. 그렇게 화가들이 바라보던 파리의 풍경, 류승희가 카메라 셔터를 들이대던 파리의 풍경은 단순히 ‘파리’가 아니라,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서울’이 되었고, 그리운 ‘고향 산천’이 되었고, 거대한 ‘대지와 자연’이 되었다. 화가들이 그린 ‘아름다운 파리’가 내가 보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발견하는 눈은 화가들의 눈이나, 류승희의 눈이나, 내 눈이나 투명하기 그지없다. ‘아, 아름답다, 그립다!’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마음에 와 닿는 풍경들은 화가들의 화폭에서나, 류승희의 사진에서나, 내 망막에서나 똑같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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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을 찾아라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4
패트리셔 매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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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남편을 살해한 아내입니다!!!

잠깐... 들고 계신 돌을 내려놓으세요. ㅡㅡ; 이 책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추리소설사에서 특이한 형식의 작품을 꼽자면 절대 빠지지 않을 이 책은 탐정이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닌 범인이 탐정을 찾는 역설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탐정을 모른다른 점만 본다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에서도 어느 정도 유사한 상황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을 독살한 아내에게 남편은 죽어가면서 탐정이 올것이라고 최후의 경고를 합니다. 남편을 죽여 안락한 생활을 꿈꾸던 아내는 남편의 충격적인 경고에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폭설이 내린 호텔에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고 아내는 완벽한 범죄를 위해 탐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범죄자의 시각에서 탐정을 대할 수 있는 점입니다.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는 탐정의 갑갑한 심정 대신, 탐정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범인의 심리상태를 맛볼 수 있습니다. 범인이 주가 되는 소설답게 적당히 무능하고 게으른 탐정이 나타납니다만 범인에게는 이런 탐정은 더 해로울 뿐입니다. 게다가 투숙객들이 내뱉은 한마디에도 범인은 가슴이 철렁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다 탐정같아 보이기 때문이지요.

범인은 탐정이 아니므로 서투르고 감정적이어서 일을 꼬이게 만들고 결과는 약간의 허무함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탐정을 찾아야만 한다는 급박하고 특수한 상황설정으로 인해 책의 긴장감은 계속 유지되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원제는<Catch Me If You Can>으로 <탐정을 찾아라>라는 원초적인 제목보다 어울릴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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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2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제가 ' 나 잡아 봐라~' 군요! 재밌겠어요!

zipge 2005-07-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 행크스와 디카프리오의 주연의 동명 영화도 있었지요. ^^ 책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