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방의 비밀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8
가스통 르루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유행은 무섭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광풍-뮤지컬, 자동차 광고, 책-이 몰아쳤을때 혹시나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는데 역시나가 되어버렸다. 이 《노란 방의 비밀》의 노란 띠지-색은 기억나지 않지만 노랗지 않았을까-에 《오페라의 유령》을 내세웠던 것이다.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페라의 유령》만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 《노란 방의 비밀》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깎아내리기가 싫을 뿐이다.

《노란 방의 비밀》은 추리소설사에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존 딕슨 카로 대표되는 밀실 살인의 선구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란 방의 비밀》에 사용된 트릭은 현재의 시각으로 본다면 평범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유명 만화에서 보았다는 이유까지 들먹이며 폄하당할 이유는 없다.

밀실 살인은 존재할 수 없다. 이 단순한 명제가 밀실 살인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다. 파릇한 신문기자 룰르타브는 프랑스 최고의 형사 라르상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밀실에 도전한다. 라르상이 가능한 증거를 모아 사실에 접근하려 한다면 룰르타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밀실에서 불가능한 사실들을 지워나가며 사실에 접근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오페라의 유령》의 느낌을 원한다면 이 《노란 방의 비밀》을 읽지 않는 게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오페라도 없고 유령도 등장하지 않는 좋은 추리소설일 따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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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시종
우고 디폰테 지음, 피터 엘블링 영역,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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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고 디폰테가 지었고 자신은 영역만을 했다는 작가의 괘씸한 거짓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시식시종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중세 이탈리아의 끔찍한 상황이 묘사되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사랑하는 딸을 지켜내고,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는 우고 디폰테는 밝고 쾌활하다.

하지만 우고 디폰테의 얄미운 형이 다시 등장해서, 우고 디폰테의 주인이자 포악한 페데리코의 오른팔이 되면서부터 이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버렸다. 게다가 딸까지 얽히는 뻔한 이야기라니! 우고 디폰테 대 페데리코의 유쾌한 갈등 관계는 갑자기 심각해졌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유쾌함이 사라졌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약간 씁쓸한 뒷맛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있다. 역자라 주장하는 작가의 능청만큼이나 중세의 생활상, 음식 등의 묘사에도 탁월하다. 유쾌한 콩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책 말미의 심각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다. 첫맛은 달지만 다 빨고 나면 씁쓸한 것 같은 사카린 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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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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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책’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한껏 누린 미국 여성,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일생을 데이비드 스몰의 멋진 일러스트로 보여주고 있다. 한평생 오로지 책에만 파묻혀 살았던 그녀의 삶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단조롭고 따분한 인생의 극치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평생 책에만 코를 박고 있어도 얼마나 즐거웠을지, 기뻤을지, 재미있었을지, 흥미진진했을지, 지적 유희를 즐겼을지, 가슴 두근거렸을지, 평화로웠을지 안다.

일생을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고 축복이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다른 유희와 희열을 포기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크게 개의치 않으리라. 이미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과 누리지 못한 것까지 모두 누렸을 테니까.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 선택에 충실한 삶이라면 어떤 삶이든 시시하지 않다.

내가 특히 그녀의 삶을 부러워하다 못해 질투까지 하는 이유는 그녀가 몰입한 대상이 바로‘책’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내 짧은 생애 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대상은 책이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책에 대한 열정과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음악, 게임, 홍차, 십자수 등등을 곁눈질할 때는 책 위로 먼지가 보얗게 앉을 때까지 방치해 두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자주 책을 떠나 있었다. 나를 책 이외의 것으로 유혹하는 것들은 너무도 많았다. 그녀도 분명 수많은 유혹을 당했을 텐데, 그녀가 보여준 몰입의 경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책을 읽고 사고 읽고 사기를 수십 년, 더 이상을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집안에 단 한 뼘도 남지 않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책들을 몽땅 기증하여 도서관을 세웠다. 앗, 아까웠다,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녀의 몰입은 나처럼 지적 허영심도, ‘책’이라는 물건에 대한 집착과 물욕도 아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책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저 관심을 두고 있을 뿐임을……. 그 관심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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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6-2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책에 대한 열정.. 너무 궁금합니다 보관함에 담아요.

zipge 2005-06-2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owdrop님에게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합니다.^^

Phantomlady 2005-06-26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알려드릴게요 ㅎㅎ..
 
독화살의 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25
앨프레드 메이슨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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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형적인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사건(대부분은 살인)이 발생하고 탐정-또는 탐정 역할을 맡은 사람, 그사람이 할머니여도 좋고, 연극배우여도 신문기자여도 상관없다-이 개입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마침내는 범인을 지목하는 구성을 가진 추리소설이 좋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합격이다.

추리소설을 조금 읽어본 사람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것이다.
이 《독화살의 집 》에는 의외성이 없다는 것인데, 이른바 추리소설의 정형을 확립한 작품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안다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범인이 누군가가 아니라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나, 심리는 어떠했나'를 보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다시 읽을 것을 권한다. 범인인 그(또는 그녀)가 그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의도적인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책의 뒷표지를 한 번 보자. 내가 보기엔 아노는 홈즈라기보다는 포와로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별 하나 감점이다. 내 마음이다.

P.S. 이런 책들을 내주는 동서문화사에게 감사하다. (물론 전해지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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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마법사 오즈 - 개정판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1
L. 프랭크 바움 지음, W.W. 덴슬로우 그림,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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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개월의 긴 모험을 마쳤다. 오즈의 세계는 아주 넓었다. 도로시와 토토,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무수히 등장해서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오즈의 매력은 수많은 캐릭터의 개성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오즈의 평화로움, 저자 프랭크 바움의 원색적인 색깔 감각과 성선설, 그리고 바움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나라들이다.

오즈의 평화로움은 《오즈의 마법사》를 쓰면서 바움이 독자에게 한 최대의 약속이다. 1권 서문에서 “내가 하려는 이야기 속에는 판에 박힌 마귀, 난쟁이, 요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동화 작가들이 공포심을 끌어내기 위해 곧잘 써먹는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이나 잔혹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기쁨을 선물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썼습니다”라고……. 그 약속대로 오즈에서는 나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갈등’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갈등’이라는 것을 바움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읽게 되는 긴장감 대신 ‘화해’를 기반으로 한 평화로운 해결을 미리 내재하고 있으며, 오즈의 ‘갈등’은 곧 수많은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종소리 같다. 그래서 오즈에서의 모험은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나서도 된다. 나쁜 일은 하나도 없는 좋은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잘 맞는 책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고유색은 원색이다. 오즈의 중심부인 에메랄드 시는 온통 초록색, 에메랄드 시를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윙키의 나라는 온통 노란색, 동쪽에 있는 뭉크킨의 나라는 온통 파란색, 북쪽에 있는 길리킨의 나라는 온통 보라색, 남쪽에 있는 쿼들링의 나라는 온통 빨간색이다. 사람들의 옷, 집, 식물들의 색깔,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색깔까지 모두. 바움은 오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나 요정, 말하는 동물, 풍경 들의 색깔을 자주 묘사하는데, 바움의 색깔 감각은 너무나 원색적이고 알록달록하다.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어른에게는 낯간지러울 만큼 촌스럽다는 말을 연발하게 할 만큼 색깔의 보색 대비가 뚜렷하다. 바움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덕분에 오즈는 무채색으로 일관된 바깥 세계와는 달리 온갖 유채색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바움의 촌스럽기 그지없는 색감이 빛을 발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순간이다.

에메랄드 시에는 ‘망각의 샘’이 있다. 망각의 샘은 바움의 성선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망각의 샘물을 마시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잊고 무(無)로 돌아간다. 가장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 전체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나쁜 캐릭터는 지하 세계 놈나라의 놈왕 루게도라고 할 수 있다. 루게도는 두 차례에 걸쳐 오즈의 에메랄드 시를 정복하려 하는데, 두 번 모두 망각의 샘물을 마신다. 그때마다 루게도는 악한 심성을 버리고 아기처럼 순진무구해진다. 바움은 루게도를 통해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악하게 된다’는 성선설의 신념을 보여준다.

《오즈의 마법사》를 펼치자마자 나오는 것은 오즈의 지도이다. 에메랄드 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자리 잡고 있는 윙키, 쿼들링, 뭉크킨, 길리킨의 나라에는 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마다 훨씬 많은 나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어느 누가 그 많은 나라들을 상상하고 생생하게 창조해 낼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오즈에서 모험을 하면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길을 따라가면 이번에는 무슨 나라가 나올까’이다. 오즈의 지도에서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기쁨도 아주 크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바움이 가장 부각시키고 있는 캐릭터는 오즈마 공주이다. 각 권마다 이야기를 이루는 중심 인물은 모두 다르지만, 《오즈의 마법사》 전체 이야기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심적인 인물은 오즈마 공주이다(‘오즈마’라는 이름은 프랭크 바움의 손녀인 ‘오즈마 바움’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오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바움이 극찬하고 또 극찬하는 오즈마 공주는 오즈의 중심부인 에메랄드 시를 포함해서 윙키의 나라, 쿼들링의 나라, 뭉크킨의 나라, 길리킨의 나라 모두를 다스리는 최고선의 존재이다. 오즈마는 지고선(至高善)을 기준으로 오즈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

오즈는 좋은 나라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민을 권하고 싶은 최고의 나라이다. 그저 평화롭게, 그저 행복하게, 그저 한가롭게만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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