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제인 에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만으로 나의 시선을 확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주인공은 문학 관련 범죄를 담당하는 특수작전망(리테라텍)에서 수사관으로 일하는 ‘서즈데이 넥스트’이지만, 나는 줄곧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재스퍼 포드의 소설 안에서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을 것인지에 관심을 두었다.

내가 어렸을 때 맨 처음 읽은 사랑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연인의 사랑을 비중 있게 다룬 소설들 중에서 《제인 에어》와 같은 고품격 연애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마음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는지 지켜보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여전히 설렌다. 이 책에서는 로체스터에게 미치광이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인이 떠나는 것을 끝으로 샬럿 브론테가 《제인 에어》의 결말을 지었다는 가정하에 전개된다.

서즈데이 넥스트가 리테라텍에서 활약하는 시기는 1980년대 영국으로 시간의 틈이 벌어져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이 소설 속 1980년대는 우리 세대가 경험한 상식적인 시간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 현실, 허구가 혼재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에 광적으로 열광하고 유명 작가들의 초판본과 유명 화가들의 원화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당연히 이것들을 둘러싼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한 시간적 배경 속에서 《제인 에어》 초판본은 도덕적 양심이라곤 전혀 없는 악당 아케론 하데스에 의해 도난당한다. 이미 찰스 디킨스의 《마틴 처즐윗》 초판본을 훔쳐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살해한 적이 있는 그는 끔찍하게도 《제인 에어》에서 제인을 납치한다. 1인칭주인공시점으로 씌어진 《제인 에어》에서 제인이 사라지면 《제인 에어》라는 소설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이제 현실의 모든 《제인 에어》는 제인이 납치당한 순간에서 일그러진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넥스트가 하데스에 대항하여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서 넥스트는 《제인 에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망쳐놓았다. 바로 로체스터와 제인의 감동적인 텔레파시 장면이다. 손필드의 화재로 두 눈이 먼 로체스터가 제인을 그리워하며 그녀를 목청껏 부른다. 그의 절절한 음성은 멀리 있는 그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재스퍼 포드는 이 부분에 넥스트가 영웅적으로(?) 참견하도록 내버려두어, 그녀를 로체스터와 제인의 ‘사랑의 전령사(?)’가 되도록 했다.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말은 모두 넥스트 덕분이라는 듯이…….

물론 그토록 낭만적인 장면이 넥스트의 무례한 개입과 제인의 어이없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재스퍼 포드의 설정임은 알고 있지만, 왠지 내밀한 곳에 숨겨두었던 ‘순수’를 훼손당한 것만 같아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다른 ‘넥스트 이야기’가 나온다면 주저 없이 살 것이다. 어쨌든 ‘문학 텍스트와의 완전한 교감과 직접적인 만남’이라는 재스퍼 포드의 매혹적인 발상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hantomlady 2005-07-27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소설 속으로 뛰어드는 불한당 같은 소설이 좋아요. 흥분해서 이 소설에 리뷰를 썼던 게 기억나네요 ^^

zipge 2005-07-27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좋았는데, 역시 진짜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별이 한꺼번에 세 개로 줄었네요.^^;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 - 기획의 발상부터 인간관계까지
와시오 켄야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편집자는 간혹 판권에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이름 석자로 존재하지만, 그나마도 저자의 이름이나 출판사의 이름에 가려버린다. 사실 판권에 편집자의 이름이 없는 책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모든 책에는 반드시 편집자가 존재한다. 저자로부터 온 날원고를 눈 빠지게 들여다보며 다듬었을 편집자의 노고가 한 권의 책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편집자의 눈길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 책에 대한 애정은 저자보다 편집자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편집자를 두둔한다고 내가 ‘편집’이나 ‘편집자’에 대해 그럴듯한 신념을 내세울 만한 처지는 아니다. 편집자들은 책의 생산자이지만, 사실 나는 책의 소비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와시오 켄야는 일본의 출판 시장과 출판 과정, 편집자의 정체성과 역할, 편집자로서의 그의 경험 등을 총체적으로 들려주면서,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편집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더군다나 읽기만 좋아해서는 더더욱 편집자가 되기 어렵다고 말이다. 그는 ‘책의 생산자’로서의 유능한 편집자를 강조하며, 편집자는 ‘책 읽기’가 아니라 ‘책 만들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적 성향이 아주 강하다. 이 외에도 그는 편집자의 적성으로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의 경우 편집자로서는 거의 절망적이다.

“편집자가 되려면 우선 호기심이 왕성해야 한다.”

내 관심권 내에 들어야 호기심이 생긴다. 관심권도 그다지 넓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베스트셀러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편이다. 나중에 주로 뒷북치는 형이다. 열린 시야를 가지려고 애는 쓰지만, 내 눈과 귀는 어느새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으로 돌아가 있다.

“편집자에게는 풋워크가 요구된다. 행동력이라 할 수 있다. 뭐든 가벼운 마음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순발력이다.”

이 부분에서 남 앞에서는 전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예로 들고 있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할 일이 생기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건다. 주위 사람보다 전화를 받을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자존심이라기보다 똥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잘 사과할 줄은 안다. 한 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줘도 될까.

“‘인간성은 나쁘다’ 하더라도 편집자만큼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오래 배기기 힘든 작업도 없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딱 그만큼만 사람을 좋아할 뿐, 남보다 유별나게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늘 꿈을 잃지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꿈은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 이런 저자의 글을 언젠가는 꼭 받고 싶다. 이런 그림을 넣어보고 싶다’ 등등을 의미한다. 〈빨강머리 앤〉을 아름다운 우리말 문장을 살려서 최고의 우리말 판본을 만들어보고 싶긴 하다.

“사회, 시대, 문화의 동향이나 변용에도 끊임없이 관심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지도 못할뿐더러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편이다.

“술도 못 마시는 것보다는 마실 줄 아는 편이 낫다.”

술은 조금도 못 마신다.

“취미가 많은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일과 관련된 취미를 가지는 게 좋다.”

책, 게임, 십자수, 홍차, 음악 외에는 즐기는 취미가 별로 없다.

“편집자는 과묵하기보다 약간은 말이 많은 편이 좋다.”

나는 말이 많지는 않다. 낯선 사람에게는 과묵하기 그지없다.

와시오 켄야가 들고 있는 편집자의 적성은 내가 극복하기에 너무 버거운 벽이었다. 그러나 내게 편집자는 ‘첫 독자’라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또 가끔은 ‘책 읽기’를 훨씬 좋아하지만 가끔은 ‘책 만들기’에 대한 욕구를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와시오 켄야가 들고 있는 편집자의 적성을 모두 갖춘 편집자를 유능한 편집자라고 치고, 누가 나에게 유능한 편집자와 무능한 편집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과감히 무능한 편집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채산성에 상관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책만 만들 수 있게 되길 꿈꾸는 무능한 편집자 말이다. 굳이 나의 본질을 바꾸지 않더라도 유능한 편집자가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꾼다. 뭐, 안이한 철부지 생각이라도……, 생각도 못 하나? 꿈도 못 꾸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르미도르 - 전3권
김혜린 지음 / 길찾기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대혁명은 절대 권력, 신분 사회, 봉건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기초한 정치혁명이요 사회혁명이요 계급혁명으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혁명이라는 데 누구나 주저 없이 동의한다. 프랑스대혁명은 자유와 혁명 정신의 위대한 영광을 상징한다. 학창 시절, 내가 프랑스대혁명의 원인과 결과, 영향, 역사적 의의를 달달 외워야 했던 것도 그 영광만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도 그 영광 뒤에 피를 흘리며 스러져간 영혼들의 상처와 아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테르미도르》는 프랑스대혁명의 위대성을 찬미하기보다 그 영광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무수한 살육과, 시대의 변화와 이념의 맹목성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자들의 뼛골 스미는 아픔과 지독한 외로움을 상처받은 영혼 ‘유제니’를 통해 그려냈다.

‘테르미도르’는 프랑스대혁명의 정점기였던 열월(熱月)을 의미한다. ‘자유’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혁명 정신조차 광신적인 ‘혁명’에 휘둘려 점점 과격해지고 무자비해졌으며 잔혹해졌다. 혁명은 피를 불렀고, 그 피는 또 다른 피를 불렀으며, 또 다른 피는 수많은 다른 피들을 불렀다. 혁명이 내세운 고결한 이상은 피비린내 아래 근사한 허울이 되고 무고한 피까지 부르는 명분이 되었다. 혁명은 혁명 자체를 유지하려다가 혁명에 배신당했다. 그렇게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시시각각 다가왔다.

유제니는 그 혁명의 미친 소용돌이 한가운데 뛰어들었다. 그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귀족이 되기 위해서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생부, 그로 인한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 어머니, 생부를 죽여달라는 어머니의 악다구니……. 생부에 대한 증오는 곧 귀족에 대한 분노였으며, 유제니가 단 한 번의 의심 없이 혁명 투사로서 행동대원이 되어 두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너무도 순수한 신념이었다. 그의 때 묻지 않은 혁명 정신은 그를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그는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정작 혁명은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작은 위안조차 되어주지 못했다. 유제니는 언제나 칼날 같은 혁명의 선두에 있었지만 늘 고독했다. 늘 상처받고 있었다. 늘 아픔으로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격변의 시대가 유제니를 배반했고, 삶의 의미였던 혁명이 유제니를 배반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배반의 끝에 피어 있을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시대가 급격하게 변하고 허물어질 때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무수한 배반의 꽃이 피고 진다. 그 배반의 대상은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 구시대의 지배계층도, 피지배계층도 모두 희생당한다. 새시대의 영광은 그 무수한 희생 위에서야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그러기에 영광의 이면은 너무나 쓸쓸하다. 희생된 자들이 영광을 이루어냈으나 그것을 누리는 주인은 그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 줘야 한다. 한시도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테르미도르, 그것은 꽃과 길로틴이 공존하는 계절. 그리고 지금은 슬픈 울림을 남긴 채 세월의 지평으로 사라진 이름. 태양의 계절, 테르미도르. 나는 피빛의 꽃잎들이 눈물처럼 후둑후둑 지는 소리를 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자부
윤인완.양경일.윤승기 지음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데자부》에는 윤인완의 스토리로 양경일이 그린 〈봄〉, 윤승기가 그린 〈여름〉, 김태형이 그린 〈가을〉, 박성우가 그린 〈겨울〉의 연작 네 편과 단편 변병준이 그린 〈유틸리티〉, 이빈이 그린 〈해(海)〉가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데자부deja-vu’가 일어나게 하는 ‘환생’ 모티프이다. 데자부는 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기시감(旣視感)’이라고도 한다.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 들이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곳,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만 같은 사람, 또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데자부 현상’이라고 말한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데자부 현상’의 과학적인 원인이나 근거를 설명하고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봄∙여름∙가을∙겨울〉에서는 너무나 낭만적인 ‘환생’의 인연에 기인한 데자부가 네 번의 삶과 사계를 지배한다. 어느 봄밤 달빛 아래에서 한 번 맺은 지독한 사랑은 ‘인연’이라는 실바람을 타고 생(生)과 계절을 거듭하여 어느 겨울 인류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봄.

‘모든 일의 시작’ 혹은 ‘인생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봄. 673년 휘영청 달 밝은 봄밤, 파문당한 화랑 원술이 덫에 걸린 구미호 소휼을 구해 주면서, 그들의 인연이 금기된 사랑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종족을 초월한 그들의 사랑은 소휼이 사냥되면서, 여름까지 그 연이 닿지 못한 채 봄의 아른거리는 벼랑에서 다음 생을 기약한다. 화랑 원술은 신라의 명장인 김유신 장군의 아들이었으나, 화랑도의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의 규율을 어기고 전장에서 홀로 돌아온 벌로 가문에서 영원히 파문당했다. 그 후 원술은 수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쓸쓸한 생을 마쳤다.

여름.

성장의 계절, 열정의 계절, 여름. 원술과 소휼은 1944년 여름 후쿠오카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윤동주와 일본 여군의관 나츠메로 녹록지 않은 인연을 다시 이어간다. 그러나 비정한 역사는 그들의 사랑을 결코 용납해 주지 않는다. 필연적인 운명에 따라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1945년 광복을 앞두고 그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여름의 끝자락에서 윤동주는 마루타로 희생된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인 윤동주는 광복을 코앞에 두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일설에 의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마루타로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한다.

가을.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 가을.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마지막 순간 윤동주의 염원은 또 생을 뛰어넘어, 1995년 가을 미국의 어느 번화가에서 가수와 눈먼 여인으로 마주친다. 오로지 한국에서 발매할 첫 앨범의 운만을 알고 싶어하는 가수 앞으로, 운명은 눈이 멀었으되 전생에서 마주 본 사람만큼은 환히 볼 수 있는 여인 수잔을 보낸 것이다. 이제 한 번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방심하는 사이에 그들의 세 번째 인연도 여지없이 우그러진다. 김성재의 모습이 담겨 있는 솔로 데뷔 앨범만 남겨놓고. 1995년 11월, 비운의 가수 김성재는 솔로 앨범 1집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가 여전히 미궁으로 남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겨울.

생명이 얼어붙는 계절, 깊은 동면에 빠져들어 편안한 잠을 청하는 계절, 겨울. 김성재와 수잔에서도 결실을 맺지 못한 질긴 사랑은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못다 한 전생의 연을 계속한다. 지구의 모든 문명이 사라지고 인간이 멸종한, 어느 겨울의 폐허 위에 유일한 남성 ‘환웅’과 열성 인간 ‘호’로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우성 인간 ‘웅’을 통해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할 의무와 책임은 윤회를 거듭한 그들의 지독한 사랑 앞에 하잘것없어 보인다. 이제 그만 그들을 사랑하게 해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환웅은 호된 대가를 치르고 호를 선택한다. 그들의 사랑의 윤회도 이제 안식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네 번의 생과 계절을 함께 사랑한 나의 힘겨운 윤회도 ‘완전한 사랑’ 앞에 편안해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각기 다른 네 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네 편의 이야기이든, 한 편의 이야기이든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은 뛰어나다. ‘데자부’라는 피크로 베이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줄 네 개를 연주하는 스토리 작가 윤인완과 만화가 양경일, 윤승기, 김태형, 박성우의 섬세한 손놀림이 사랑의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 중후한 울림에 가슴이 그만 먹먹해지고 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2-0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는 건 자유지만요, 줄거리를 다 적는 건 좀 그렇군요..

zipge 2006-02-1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줄거리도 요즘은 '스포일러'라고 하나요? 저 이야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전부는 아닐 텐데요. 제 리뷰로 <데자뷰>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휴지 님께 해가 되었다면, 그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웅진 세계그림책 15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은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놀러 간 한 가족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앤서니 브라운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은 말한다. 그날 어머니 생신에 색다르고도 특별한 그곳에 갔기 때문에 동화를 그리게 되었노라고……. 그곳은 바로 미술관이었다.

아빠와 엄마, 형, 그리고 나(지금부터 ‘나’는 편하게 ‘어린 앤서니 브라운’이라고 해두자.), 이렇게 네 식구는 썩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엄마를 따라 미술관 나들이를 나선다. 엄마가 앞장서고, 그 다음에 아무래도 좋은 어린 앤서니 브라운이,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하는 중요한 스포츠 경기를 놓친 아빠와 형이 투덜거리며 멀찍이 뒤따른다. 그렇게 그들은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 도착한다. 어느 나라나 웅장한 미술관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인가, 가족은 긴장하고 썰렁한 농담을 일삼는 아빠와 잔뜩 찌푸린 형도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들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미술품을 구경하면서 점점 그림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으로 그려진 세상은 그들이 살고 있는 일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시큰둥하던 아빠와 형도 미술관 관람의 매력에 흠뻑 빠질 즈음, 어린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은 총천연색의 모습을 되찾는다.

앤서니 브라운은 ‘색깔’로 한 가족의 친밀 지수와 행복 지수를 보여준다. 처음의 어두운 색조가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밝은 색조로 변해 간다. 그렇게 가족이 제 색깔을 찾아가는 동안 아빠의 썰렁한 농담도 가족의 냉랭한 침묵이 아니라 가족의 웃음보와 공명한다. 이제 가족은 완전한 행복 속에 소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숨은그림찾기 시간.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서 빠뜨릴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숨은그림찾기라는 사실…….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이 그린 그림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으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지만, 그의 그림책을 보다 보면 서서히 숨어 있는 그림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기발한 그림들을 한번 찾아볼까.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스포일러성이 강한 글이다. 내가 찾은 숨은그림을 모두 적었다. 자신이 찾은 그림과 비교해 보고 싶은 사람만 읽길 바란다.




첫 번째, 어린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이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그린 그림에 축구공과 몽당연필이 빌딩들 사이에 숨어 있다.

두 번째,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정문 그림에는 손가락, 강아지, 고양이, 야구하는 천사, 웃고 있는 임금님 얼굴이 숨어 있다.

세 번째, 미술관에 막 들어서면서 긴장해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는 찌푸린 얼굴과 티포트와 커피잔이 숨어 있다. 아, 티포트와 커피잔이 너무나 앙증맞다.

네 번째, 가장 반가운 그림. 옛날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 커다란 전시실 그림에는 많은 명화들이 걸려 있다. 그중 정면에 바로 보이는 커다란 그림은 라파엘 전파 중 한 사람인 존 에버렛 밀레이의 「Hearts are Trumps」.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나머지 그림들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꼭 언젠가는 찾고 말 테다.

                                                                                 John Everett Millais 「Hearts are Trumps」


다섯 번째, 「콜몬들리 가의 여자들」, 언뜻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세부적인 모습들은 조금씩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목걸이, 그 외에도 옷의 장식, 아기의 모습도 다르다.

여섯 번째, 배불뚝이 선장 그림에서는 선장의 모자 위 검은 고양이, 선장의 코트 깃에 있는새, 밧줄에 숨어 있는 코브라와 오리(?), 나팔, 아이스크림, 그리고 코트의 단추 한 개, 선장의 콧수염와 그림자가 다르다. 넘실대는 파도에 섹시한 입술 하나도 교묘하게 숨어 있네.

여섯 번째, 존 에버렛 밀레이의 「롤리의 어린 시절」을 흉내 낸 그림에서 ‘달걀 프라이 꽃’과 ‘소시지 새’를 보고 어찌나 웃었는지……. 그 밖에, 이 그림에서는 수많은 소시지가 숨어 있다.

일곱 번째, 카렐 웨이트의 「알레그로 스트레피토소」를 흉내 낸 그림에서 사자의 꼬리를 유심히 보라. 그리고 조지 스터브스의 「사자의 공격을 받은 말」에 숨어 있는 코끼리와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도 찾아보라.

여덟 번째, 피터 블레이크의 「만남 또는 좋은 하루 되세요, 호크니 씨」를 흉내 낸 그림에서는 수많은 아빠의 황당하고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빠 모자 위에 있는 달걀 프라이를 얹은 식빵, 개로 변한 아빠, 땅에 뿌리를 내린 지팡이, 팔에 걸친 외투 끝에 숨어 있는 수상한 동물 등등, 많은 것들이 숨어 있는 그림이다.

아홉 번째,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을 그린 그림에는 여우 두 마리와 날개를 활짝 편 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아, 즐겁다.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