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암담하다. 책을 덮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든건 왜일까.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수다'스러운 것은 못 느꼈지만 즐거운 연애소설-SF라기보다는 연애소설 같은 느낌이었다-임에 틀림없지만 왜 저런 느낌일까.

시간여행의 가장 유명하면서도 거대한 모순인 '할아버지 파라독스'가 있다. 과거로 가서 나의 할아버지를 죽이게 되면 나는 태어날 수 없으므로 그 순간 소멸하는가, 아니면 나는 여전히 존재하므로 새로운 인과율이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등장한다. 과거에서 네트를 통해 현재로 가져온 보물들을 더 과거로 가서 파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보물 파라독스'가 생겨버렸다.

물리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를 해결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평행우주-패러럴 월드이다. 이 평행우주론에 입각한 것이 바로 대체역사소설이다. '만약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면' 이라는 무한한 가정을 설명해 주는 것인데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는 이러한 단순한(?) 방식을 거부하고 '모순의 교정'이라는 방식으로 단일우주를 치유하려 든다. 여기에서 소설 자체의 재미와 수많은 의문이 들게 된다.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우주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우주의 붕괴이다.

미래를 통해 과거로 간 사람들의 말 한마디, 고양이 구하기, 심지어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마저도 우주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했겠지.

결국 이 소설대로라면 악순환의 연속이다. 과거를 여행하고, 그 결과로 우주가 붕괴될 만한 모순이 발생하고 그 모순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과거를 여행하고... 마치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는 뱀 같다.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수밖에...

재미있게 읽은 책에 이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쓰게 된 것은 책 말미의 시간 여행의 이유가 밝혀지면서이다. 
암담하고 허무한 이유. 자유 의지의 배반.

덧붙여서 생소한 단어인 '비명아지'가 등장하는데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단어는 원작자가 만든 단어를 역자가 번역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각주라도 달아줬다면 덜 궁금했을텐데. (혹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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