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레드메인즈 동서 미스터리 북스 32
이든 필포츠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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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찾기에 골몰하면서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 어느 정도 '범인'을 짐작하게 만들어 준다. 살해당한 사람들에 비해 살아남아 있는 자들의 수가 너무 적은 것도, 이 작품이 황금기의 초기 작품이어서 다른 비슷한 류의 소설을 먼저 읽어버린 것도 그 의심을 가중되게 한다.
오히려 런던 경시청의 마크 브렌던의 사랑에 눈먼 모습을 보며 도대체 이런 '탐정'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하게 될 뿐이었다. 경시청의 유명한 '탐정'이라기 보다는 사랑에 빠진 얼간이같은 모습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사랑에 빠진 진짜 모습이겠지만...)

결국 미국인 탐정인 피터 건즈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면서 얽혀 있던 사건은 풀리게 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마크 브렌던의 끝까지 눈먼 모습과 마지막의 피터 건즈에게 편지를 남긴 사람의 숨겨진 정체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빨강머리 레드메인즈>를 읽으려면 범인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권한다. 아니 범인을 미리 알았다고 해도 실망할 것은 없다. 피터 건즈가 밝히는 진상에는 보다 진정한 '사악한 악'이 숨어 있다. 즐겁게 읽자.

개인적으로 이런 책들을 펴내는 동서문화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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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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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에 의해 감옥에 갇혀버린 전직 이발사 이시도르 파로디는 어찌된 이유인지 한 신문기자의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탐정이 되어버린 문자 그대로의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이시도르는 감옥에 있다. 감옥이라는 지형적인 조건 때문에 그는 수동적인 정보만을 접할 수 밖에 없는 '안락의자형 탐정'이 되었다. 또한 죄수의 신분-억울하건 아니건-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그는 역설적이다.
이런 탐정아닌 탐정을 만들어낸 두 작가에게 경의를...

이시도르 파로디는 감옥에 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여러 계층의,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감옥을 아무 거칠것 없이 찾아와 사건을 이야기한다. 사건을 설명하는 그들의 말은 수사, 비유, 은유로 장황스럽다. 이야기는 비비 꼬여 있으며 사실은 숨겨지고 쓸모없는 것들은 부각된다. 이시도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적으며, 그 정보 자체도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하지만 이시도르는 여섯가지 사건을 해결한다.
자신의 억울한 누명만 제외한다면...

사건 의뢰자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추리소설이라 한다면 이 작품 역시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이 '추리소설'이냐고 묻는다면 머뭇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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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다빈치 art 18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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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이훠이, 휘파람 불며 꽃송이로 장식한 소달구지를 덩실덩실 몰고 가는 사내, 달구지에 하얀 저고리 옥색 치마 입은 단아한, 혹은 하얀 젖가슴을 드러낸 아름다운 아내와 벌거벗은 두 아들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하는 사내의 환한 얼굴에는 이중섭의 뜨거운 사랑과 맑은 예술혼이 깃들어 있다. 이는 이중섭이 외로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꿈꾼 「길 떠나는 가족」의 행복한 환영이다. “아빠가 엄마, 태성이,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에 실린 이중섭의 편지들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싶은 그의 절절한 바람 그 자체이다.

이중섭은 평생 넓디넓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일본인 아내. 광복 직후 이중섭이 살아가야 했던 시절에 한국 땅은 일본인 아내가 용기 있게 살아내기에 결코 쉽지 않은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를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었으니, 이중섭과 남덕 부부의 애틋함은 어떤 말로도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중섭은 편지를 쓰면서 아내를 향한 수많은 사랑의 밀어들을 아낌없이 속삭인다. “나의 귀엽고 참된, 내 마음의 주인”, “나의 품 안에 포옥 안기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단 한 사람”, “나의 거짓 없는 희망의 봉오리”, “나의 가장 멋지고 귀여운 사람”, “나만의 엄청나게 좋은 사람”,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당신”, “둘도 없는 귀중한 내 보배”, “나의 모든 점에 들어맞는 훌륭한 미美와 진眞을 간직한 천사”, “아고리의 생명이요, 오직 하나의 기쁨”, “내 마음을 끝없이 행복으로 채워주는 오직 하나의 천사”, “언제나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고 끝없이 힘을 불어넣어 주는 내 마음의 아내”, “나의 최고 최대 최미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오직 하나인 현처” 이것들은 이중섭이 아내를 향해 보내는 열렬한 사랑과 찬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기에는 편지가 한참 역부족인 듯 이중섭은 사랑의 언어를 끝없이 쏟아낸다. 그렇게 수백 수천 번의 사랑을 늘어놓았어도 이중섭에게는 아내와 주고받는 눈길 한 번, 아내의 따뜻한 체온 한 줌이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서도 텅 빈 병실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외로운 사내, 이중섭의 편지에는 사랑에 대한 그의 목마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그의 허락 없이 그의 편지를 훔쳐보는 나도 알 수 없는 갈증에 애꿎은 물만 계속 들이켜야 했다. 아내의 사랑스러운 발가락과 아내의 볼에 있는 크고 고운 사마귀에 키스를 퍼붓고 싶은 마음, 아내와 두 아들의 일상이 너무도 궁금해서 사흘에 꼭 한 번은 편지를 보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아내를 보챌 수밖에 없는 마음, “나의 호흡 하나하나는 열렬한 사랑의 언어라오”라고 거침없이 고백할 수 있는 마음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치졸함으로 그 빛을 바래고 만다.

그의 편지들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나는 화공 이중섭도 만났지만 필부 이중섭과도 만났다. 그 감동적인 만남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간 아쉬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이중섭의 편지 원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인 아내에게 쓴 편지라 일본어로 씌어져 어차피 무슨 말인지 모르긴 할 테지만, 이중섭의 그림들보다 이중섭의 진심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실제 편지를 도판으로 실어주는 것이 독자를 위한 훨씬 세심한 배려였을 것이다. “편지지 상하좌우에 뽀뽀라는 글자 60번”과 같은 지나친 친절로 독자의 상상력을 시험하면서 염장을 지르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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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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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은 <레몬>을 위한 시대 같다는 말이 나온다.
동감한다. 요사이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레몬>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는 데 충분하다. 다만 이런 상황과는 상관없이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레몬>의 내용은 과거로부터 이어온 '인간 본질에 대한 접근'의 또 다른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제목 중의 하나였던 도플갱어에 대한 것이나, 인간을 한없이 닮은 로봇에 대한 이야기까지, 인간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항상 흥미로운 주제였다. 하지만 이 <레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클론'은 실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직접적이다.

마리코는 자신이 어머니와 닮지 않았다는 의문에 이어진 어머니의 자살로, 또 다른 후바타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TV쇼에 출연한 후에 이어진 어머니의 타살로 인해 자신들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 장씩 펼쳐치는 마리코와 후바타의 이야기. 자신들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만나고 싶어한다.
마리코와 후바타를 이어주는 것은 레몬이었다.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 자신들이 같다고 느낀 것은 서로에게 레몬이 있다는 것, 또 다른 나는 레몬을 어떻게 먹을까 하는 것이었다.
"평소 레몬은 어떻게 먹어?"
"물론, 이렇게"
레몬을 깨물어 먹으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도플갱어처럼 만나도 죽지 않았고, 한없이 인간을 닮은 로봇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라벤더 향이 나는 꽃밭에서 레몬을 함께 먹은 그녀들은 레몬을 나누어 먹고 또 다른 나를 보며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을까...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음에도, 설혹 자신과 어딘지 다른 분위기를 가졌더라도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해, 클론에 대해 과연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마리코와 후바타의 이야기는 라벤더 향이 나는 곳에서 레몬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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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12-1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한혜연의 만화 '레몬' 이 생각났어요. 솔로몬의 재판같은 레몬 나누기.

zipge 2005-12-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혜연의 레몬, 찾아서 꼭 읽어봐야겠군요.^^
 
페넬로피아드 -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세계신화총서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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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현대의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등장한 책 중 하나이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페넬로피아드>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수의로 대표되는 정숙한 여인인 페넬로페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한다.

'재창조'가 문학에서는 종종 '反'의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그것이 사람이 대상일 경우에는 화려한 치장 속에 숨겨진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역사일 경우에 밝은 면 아래에 숨어 있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이다. 이 <페넬로피아드>도 그러한 법칙을 잘 따르고 있다. 사실 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은 <오디세이아>로 족하니까...

트로이 전쟁의 위대한 영웅 오디세우스의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가 아니라 질투하고 의심하고 갈등하는 페넬로페의 입을 빌어 숨겨져 왔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교활한 사기꾼인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트로이 전쟁 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전쟁의 원인이 된 아름다운 헬레네-오디세우스가 원했던-에 대한 질투를 느끼며, 신들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주색에 빠져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심에 빠지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인 열두 명의 시녀들 눈에는, 정혼자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위해 밤에 수의를 풀고 아침에 다시 짠다는 정숙의 화신 페넬로페가 아니라 정혼자들과 밤을 즐긴 사실을 아는 자신들을 죽이는 페넬로페가 보인다.
결국 마거릿 애트우드는 위대한 영웅과 정숙한 아내의 서사시 <오디세이아>가 아니라 주색을 즐기는 사기꾼과 그에 걸맞는 요녀의 이야기인 <페넬로피아드>를 기록했다.

이 <페넬로피아드>는 역사의 '재창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주 모범 답안이다. 보기 좋은 포장 속에 덮어두었던 어둠 속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맛깔 나게 만들었다. 채점자인 독자에게는 이 '재창조'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이 만족스러울 수도, 충분히 예상한 답안이라 심심할 수도 있겠다. <오디세이아>를 읽은 독자라면 충분한 재미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페넬로피아드>를 먼저 읽고 <오디세이아>를 읽겠다면 말리고 싶다. 위대한 영웅과 정숙한 아내는 다시 살아날 수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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