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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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전 어느 서점에 있는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 『티베트 방랑』을 두고 고민하다 『티베트 방랑』을 구입한 후 『인도 방랑』은 나중에 사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가 잊고 그대로 절판된 적이 있다. 『티베트 방랑』은 여전히 책장 구석에 꽂혀 있지만 『인도 방랑』을 구하지 못해 찜찜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황천의 개』를 다시 만났다. 하지만 책 소개글에도 있는 것처럼 전작들이 카메라로 쓴 시집이라면 이 책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사진이다.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된 글을 모은 것으로 시작은 여행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후지와라 신야는 『황천의 개』를 통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며 시대의 터닝포인트라도 불렸던 1995년에 발생한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사건에서 밝힐 수 없던 미공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미나마타병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인한 일본 사회의 관료적인 병적 현상과 학생운동의 죄절로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 종교에 무차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서 인도나 티베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피처가 되었다. 게다가 전체적이고 관료적인 일본 사회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구속 자체가 없는 인도나 티베트의 삶이 한결 색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옴진리교의 교주였던 아사하라는 이처럼 좌절한 사람이 망상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과거 아사하라의 행보를 따라가던 후지와라는 그가 중금속에 오염되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가 인도로 떠나 광신적인 종교를 만들게 된 과정을 추적한다. 옴진리교를 통해 진실된 울림이 없는 종교는 모래성과 같아 그저 망신의 힘에 쌓여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처럼 광신교의 신도들이나 삶에 좌절한 젊은이들처럼 현실에서 도피해서 인도나 티베트의 종교에 심취해 망상과 자아도취 속에 빠지고 싶은 ‘허약한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들려주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책의 제목과 같은 2장 『황천의 개』의 흑백사진 한 장이야말로 후지와라 신야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길가에서 죽은 사람을 불태우고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시체의 발을 물어뜯어 먹는 황천의 개. 티베트에서도 죽은 사람을 독수리에게 던져주는 조장(鳥葬)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삶과 죽음, 종교가 별개가 아니다. 망상이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의 삶 자체는 ‘리얼’이다. 삶의 한 부분인 갠지스 강에서 태어나 갠지스 강으로 돌아간다는 인도인의 삶을 그곳에서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체를 불태워 강에 내려 보내거나 아프리카 부두교의 주술과 같은 것처럼 신기한 것들만 바라보거나 숭배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잠깐이나마 나 자체의 삶을 느낀다면 여행자로도, 그 여행자의 글과 사진을 보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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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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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양이 빌딩’이라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엄청난 서고를 보며 부러워했지만 그가 독서에 관한 책에서 밝힌 픽션 무용론을 보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실용적인 독서, 정보의 습득과 축적을 위한 독서를 강조하고 자신의 흥미에 맞는 책만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픽션을 거부한다. 이른바 지적 생산형 독서로 책에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습득해야 하고 재생산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상력과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치바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도 없고 공감하지도 못한다. 내가 고양이 빌딩을 세운다면 4층 중 3층은 픽션으로 채울 것이다. 

이런 다치바나가 『지식의 단련법』을 통해 정보를 수집, 분류하고 생산하는 과정을 들려 준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책이니 지금 본다면 그 방법론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저널리스트로서 다치바나의 지적 생산의 기술-은 여전히 효과적이다. 아니 그의 방법론은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시대인 요즈음에 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자료를 오리고 스크랩하는 과정은 가위에서 마우스로 변한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색인과 차례는 네트워크의 하이퍼텍스트와 검색엔진으로 대체되었으며 정보를 검색하는 행위 또한 과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모으는 도구가 아니라 정보의 가치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른바 정보의 바다, 정보의 쓰레기라고 불리는 네트워크의 정보과잉 속에서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지혜를 과거의 방법론을 통해 현대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요즈음도 국어책에 실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하윤의 <메모광>이라는 수필이 있다. 자신에게 떠오른 시문이나 여러가지 생각들을 광적으로 메모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는 다치바나의 실용적 정보와는 거리가 멀겠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입력하는 과정과 별다르지 않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굳이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정보를 출력할 수 있는 여건은 네트워크에 널려 있다. 블로그나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도 정보를 출력하는 것인데 그 과정이 너무 손쉬워진 탓에 정보의 입력과정을 생략해 네트워크의 쓰레기들이 양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치바나의 정보입력의 방법론에는 전부를 동의할 수는 없지만 끊임없는 입력에 의해 축적되고 형성된 풍요롭고도 개성적인 지적 세계야말로 좋은 출력의 토양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가치를 파악하고 왜곡된 정보를 가려 내는 것과 같은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서는 역시 그의 말처럼 좋은 문장을 많이 읽고 우직하게 발품을 팔아 조사하는 것, 잡념을 떨쳐 내고 정신을 집중해 눈 앞의 문장을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정보를 재생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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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를 리뷰해주세요.
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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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 푸르니에는 두 아들의 아빠다. 내가 간절히 가지길 원하지만 내게는 찾아와주지 않는 아이를 둘이나 두었다. 그래도 푸르니에를 감히 질투하지 못한다. 푸르니에가 묘사한 대로라면 첫아이, 튜마는 “밤새도록 배기관도 없이 죽어라 부릉! 부릉! 달려대고”, 튜마보다 아주 조금 똑똑한 두 번째 아이, 토마는 “아빠, 어디 가?” 라는 말만 끊임없이 건넨다. 

『아빠 어디 가?』는 “유전자 로또에 도전했으나 본전도 못 뽑은” 아빠, 푸르니에의 깊은 부정(父情)이다. 머릿속에 “지푸라기”만 잔뜩 채워 넣은 것도 모자라서 신체적으로도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두 아들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헌사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두고 짖궂은 농담도 서슴지 않지만, 그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못한 장애아에 대한 세상의 편견 섞인 조롱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을지라도 세상 대부분의 부모가 여느 아이들을 품듯 그렇게 똑같은 사랑을(아이의 장애를 부각하는, 부모도 아이를 동정하는 유별난 사랑이 아니라) 주려는 애틋한 마음이다. 자식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더하고 덜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겠냐만, 푸르니에의 부정은 그래서 더욱 깊고, 슬프고, 따뜻하고, 진하게 다가온다. 

『아빠 어디 가?』에 쓰여진 문장들은 단 한 문장도 진정이 아닌 것이 없다. 푸르니에 특유의 블랙유머가 올올이 배어든 문장 하나하나는 가벼운 유머로 위장하고 있어도 뼈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연이어 두 아들을 장애아로 세상에 내보낸 부모로서의 끝없는 미안함과 죄책감, 그럼에도 두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과 고통, 아이들의 의식 있는 의도가 아니어도 자식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까지 모두 짧은 문장들에 내려앉는다. 

이제 푸르니에도 일흔 줄에 접어든 고령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슬하에 평범한 아이들을 두었다면 손자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마주 잡고 산책하는 일에 생의 기쁨을 느낄 연세인 노작가다. 그는 이제야 “나는 눈물로 호소하며 동정을 사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두 아들의 이야기를 두 아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글로 쓴다.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 오지 못할 곳으로 공을 날려 보내는 것으로 엄마, 아빠와 유일하게 소통하던 마튜는 공을 너무 멀리 던져버려 아무도 찾아줄 수 없는 그 공을 홀로 찾으러 나섰다. 맑은 웃음을 가득 지으며 “아빠, 어디 가?”라고 연신 말을 걸어대던 토마는 이제 자기 안에 홀로 침잠하고 있다. 글을 결코 읽지 못할 두 아들에게 한 번도 선물해 주지 못한 책을 푸르니에는 이제야 선물한다. 아비의 마음만은 전해지길. 

마튜를 끝내 잃었을 때 “차라리 잘됐다는” 세상의 위로에 푸르니에는 가슴이 찢긴다. “장애아라는 이유로 아이를 잃는 것이 덜 슬프다는 생각은 말아야 한다. 정상인 아이를 잃는 것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단 한 번도 행복해 보지 못한 아이의 죽음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오로지 고통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죽음은 너무나 처량하다.” 늘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었던 자신 때문에 두 아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태어난 것만 같다고 자책하는 푸르니에가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느꼈던 작은 기쁨, 스누피 인형, 따뜻한 목욕물, 고양이의 부드러운 몸짓, 햇살, 공, 마트 산책, 타인의 미소, 장난감 자동차, 감자튀김……, 이 모든 것이 있어 아이들의 삶도 살아볼 만한 것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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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요리책>을 리뷰해주세요.
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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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떤 사회든 통치 체제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따라 ‘지식’은 두 종류로 그 범주를 나눌 수 있다.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기꺼이 허용되는 지식과 결코 허용되지 않는 지식! 이때 전자에는 대중의 눈을 가리고 이성을 원천 봉쇄하여 권력의 굳건한 기반이 되어주는 지식이거나 그 기반에 흠집 낼 염려조차 없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지식,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널리 알려져 인력(人力)으로는 눈 가리고 아웅,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꼴밖에 안 되는 지식이 포함된다.

이에 비해 후자는 권력이 기반하고 있는 전자의 지식을 근원부터 뒤흔들어 송두리째 전복할 수 있는 지식이다. 전자의 지식에 의해 가려져 있는 대중의 깜깜한 눈을 뜨게 하고 잠자는 이성을 깨워 불합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은폐된 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 그리하여 권력이 두려워하는 ‘담대한 행동’으로 이끄는 힘이 후자의 지식에는 담겨 있다. 무자비한 권력 앞에서 공공연해지지 못하고 더욱 은밀해져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금기 ‘판도라의 상자’처럼 결국 뚜껑은 열리게 되어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막 르네상스를 향해 가는 매혹적인 도시, 15세기 베네치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엘르 뉴마크의 『비밀의 요리책』에서, 매독에 걸려 죽어가는 베네치아 총독은 영생의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로마 교황과 베네치아의 실질적인 지배자 ‘십인 평의회’의 란두치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의 소년 마르코는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을 손에 넣기 위해, 그리고 어리석지만 앞으로 성장해 갈 주인공 루치아노는 사랑하는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사랑의 물약을 얻기 위해 그들이 믿고 싶은 대로 ‘책’을 탐한다. 하지만 그 책은 ‘판도라의 상자’다. 그들이 ‘무지(無知)’로 탐욕스럽게 집착한 영생의 불사약도, 연금술도, 사랑의 물약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그 시대 권력이 결코 허용해 주지 못하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어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로 전수해 주어야 할 희망의 지식뿐이다. 『비밀의 요리책』에서는 중세의 막강한 종교적 영향력 아래 숨죽이고 있었던 ‘과학’과 ‘이성’에 기반하여 싹튼 지식들이 그 희망이다.

오늘날도 15세기 베네치아처럼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지식들이 분명코 존재하겠지만,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풍요로운 지식들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두운 그늘에서 목숨으로 그 지식을 지키고 전수해 준 무수한 인류의 스승들, ‘지식의 수호자’들 덕분이다. 『비밀의 요리책』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그런 자의 주방에서 요리하는 페레로 주방장 같은. 그들은 시대의 금기된 지식을 암호화한 요리법을 기록한 자신만의 너덜너덜한 요리책을 주방 한 켠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꽂아둔다. 인류의 위대한 자산인 지식은 언제나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축적되어왔던 것이다.

『비밀의 요리책』은 부조리한 기득권을 영원히 향유하려는 기존 권력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지만 지식의 스펙트럼을 풍요롭게 해주는 ‘희망의 지식’이 어떤 노력과 희생으로 지켜져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는 ‘지식의 수호’가 가장 낮은 주방에서 이루어져서 맛있고 감미롭고 향기롭고 매혹적인 요리 이야기도 가득하다.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공간적 배경도 이탈리아로 유사하고, 시대적 배경은 이 책의 바로 직전인 피터 엘블링의 『시식시종』과 함께 읽어도 재미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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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ko 2009-04-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소통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고맙게 잘 읽고 글 엮어 나눕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표류기>를 리뷰해주세요.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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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태어나 70년대생이라는 마지막 기차를 잡아 탄 허지웅의 『대한민국 표류기』는 그가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과 새로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블로그라는 열린 공간과 솔직해 보이는 그의 성격처럼 책 자체도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다. 첫 번째 장인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두 번째 장 ‘큰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눈을 돌려 지금 이 시대를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에서는 도대체 왜-설마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글이 『대한민국 표류기』라는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이 실려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글만 따로 내면 어땠을까 할 정도로 영화 이야기도 꽤나 즐거웠다. 

허지웅은 머리말을 통해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20대로 살아 버틴 기록’이며 앞으로는 평범하게 살기를 거부하겠노라고 밝힌다. 하지만 그는 이미 평범하지는 않다. 그럭저럭 대학에 나와 작은 회사에 취직해 집과 자동차를 할부로 사고 하루하루 갚아 나가는 ‘위대한 삶의 관성(이라고 비꼬는)’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심하다는 딱지를 서슴없이 붙이는 그가 어찌 평범한 사람이랴. 도시 빈민의 아이돌이며 다음 세대의 찌질한 리더라는 명칭은 절대 평범한 사람에게 붙여 줄 수 있는 별명이 아닐 터. 조금은 너그럽게 주위를 바라봐도 좋지 않을까? 

허지웅의 글쓰기 방식은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듯 하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야 그에게 환호를 보내겠지만, 그가 증오해 마지않는 반대편에 선 꽤나 많은 기성세대들은 손사래를 치며 싫어할 테고(물론 읽지도 않겠지만) 좌빨 딱지를 붙이려 할 지도 모르겠다. 그 간극은 마치 100분 토론의 상대방과도 같은 것이어서 시간이 흘러 세대가 완전히 물갈이되기 전까지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허지웅은 솔직하다. 너무 솔직하다 못해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 보이며 이야기를 꺼낸다. 그의 글쓰기 방식은 진중권이나 김규항의 그것-『호모 코레아니쿠스』, 『B급 좌파』-을 따르는 듯싶다. 그런 거침없는 방식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가장 큰 그의 매력일 수 있는데. 이제 젊은 스타 작가로서 조금 더 교묘한 방법으로 자기 혐오와 변화를 거부해 버리고 삼성과 기자, PD만을 꿈꾸는 동세대와 더 어린 세대를 끌어 안았으면 좋겠다. 아, 참! 그리고 허지웅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 중에도 아이들을 위해 촛불을 들고 공정택을 거부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우석훈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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