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 가?>를 리뷰해주세요.
-
-
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평점 :
장-루이 푸르니에는 두 아들의 아빠다. 내가 간절히 가지길 원하지만 내게는 찾아와주지 않는 아이를 둘이나 두었다. 그래도 푸르니에를 감히 질투하지 못한다. 푸르니에가 묘사한 대로라면 첫아이, 튜마는 “밤새도록 배기관도 없이 죽어라 부릉! 부릉! 달려대고”, 튜마보다 아주 조금 똑똑한 두 번째 아이, 토마는 “아빠, 어디 가?” 라는 말만 끊임없이 건넨다.
『아빠 어디 가?』는 “유전자 로또에 도전했으나 본전도 못 뽑은” 아빠, 푸르니에의 깊은 부정(父情)이다. 머릿속에 “지푸라기”만 잔뜩 채워 넣은 것도 모자라서 신체적으로도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두 아들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헌사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두고 짖궂은 농담도 서슴지 않지만, 그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못한 장애아에 대한 세상의 편견 섞인 조롱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을지라도 세상 대부분의 부모가 여느 아이들을 품듯 그렇게 똑같은 사랑을(아이의 장애를 부각하는, 부모도 아이를 동정하는 유별난 사랑이 아니라) 주려는 애틋한 마음이다. 자식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더하고 덜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겠냐만, 푸르니에의 부정은 그래서 더욱 깊고, 슬프고, 따뜻하고, 진하게 다가온다.
『아빠 어디 가?』에 쓰여진 문장들은 단 한 문장도 진정이 아닌 것이 없다. 푸르니에 특유의 블랙유머가 올올이 배어든 문장 하나하나는 가벼운 유머로 위장하고 있어도 뼈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연이어 두 아들을 장애아로 세상에 내보낸 부모로서의 끝없는 미안함과 죄책감, 그럼에도 두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과 고통, 아이들의 의식 있는 의도가 아니어도 자식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까지 모두 짧은 문장들에 내려앉는다.
이제 푸르니에도 일흔 줄에 접어든 고령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슬하에 평범한 아이들을 두었다면 손자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마주 잡고 산책하는 일에 생의 기쁨을 느낄 연세인 노작가다. 그는 이제야 “나는 눈물로 호소하며 동정을 사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두 아들의 이야기를 두 아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글로 쓴다.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 오지 못할 곳으로 공을 날려 보내는 것으로 엄마, 아빠와 유일하게 소통하던 마튜는 공을 너무 멀리 던져버려 아무도 찾아줄 수 없는 그 공을 홀로 찾으러 나섰다. 맑은 웃음을 가득 지으며 “아빠, 어디 가?”라고 연신 말을 걸어대던 토마는 이제 자기 안에 홀로 침잠하고 있다. 글을 결코 읽지 못할 두 아들에게 한 번도 선물해 주지 못한 책을 푸르니에는 이제야 선물한다. 아비의 마음만은 전해지길.
마튜를 끝내 잃었을 때 “차라리 잘됐다는” 세상의 위로에 푸르니에는 가슴이 찢긴다. “장애아라는 이유로 아이를 잃는 것이 덜 슬프다는 생각은 말아야 한다. 정상인 아이를 잃는 것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단 한 번도 행복해 보지 못한 아이의 죽음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오로지 고통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죽음은 너무나 처량하다.” 늘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었던 자신 때문에 두 아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태어난 것만 같다고 자책하는 푸르니에가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느꼈던 작은 기쁨, 스누피 인형, 따뜻한 목욕물, 고양이의 부드러운 몸짓, 햇살, 공, 마트 산책, 타인의 미소, 장난감 자동차, 감자튀김……, 이 모든 것이 있어 아이들의 삶도 살아볼 만한 것이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