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요리책>을 리뷰해주세요.
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어느 시대 어떤 사회든 통치 체제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따라 ‘지식’은 두 종류로 그 범주를 나눌 수 있다.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기꺼이 허용되는 지식과 결코 허용되지 않는 지식! 이때 전자에는 대중의 눈을 가리고 이성을 원천 봉쇄하여 권력의 굳건한 기반이 되어주는 지식이거나 그 기반에 흠집 낼 염려조차 없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지식,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널리 알려져 인력(人力)으로는 눈 가리고 아웅,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꼴밖에 안 되는 지식이 포함된다.

이에 비해 후자는 권력이 기반하고 있는 전자의 지식을 근원부터 뒤흔들어 송두리째 전복할 수 있는 지식이다. 전자의 지식에 의해 가려져 있는 대중의 깜깜한 눈을 뜨게 하고 잠자는 이성을 깨워 불합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은폐된 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 그리하여 권력이 두려워하는 ‘담대한 행동’으로 이끄는 힘이 후자의 지식에는 담겨 있다. 무자비한 권력 앞에서 공공연해지지 못하고 더욱 은밀해져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금기 ‘판도라의 상자’처럼 결국 뚜껑은 열리게 되어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막 르네상스를 향해 가는 매혹적인 도시, 15세기 베네치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엘르 뉴마크의 『비밀의 요리책』에서, 매독에 걸려 죽어가는 베네치아 총독은 영생의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로마 교황과 베네치아의 실질적인 지배자 ‘십인 평의회’의 란두치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의 소년 마르코는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을 손에 넣기 위해, 그리고 어리석지만 앞으로 성장해 갈 주인공 루치아노는 사랑하는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사랑의 물약을 얻기 위해 그들이 믿고 싶은 대로 ‘책’을 탐한다. 하지만 그 책은 ‘판도라의 상자’다. 그들이 ‘무지(無知)’로 탐욕스럽게 집착한 영생의 불사약도, 연금술도, 사랑의 물약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그 시대 권력이 결코 허용해 주지 못하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어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로 전수해 주어야 할 희망의 지식뿐이다. 『비밀의 요리책』에서는 중세의 막강한 종교적 영향력 아래 숨죽이고 있었던 ‘과학’과 ‘이성’에 기반하여 싹튼 지식들이 그 희망이다.

오늘날도 15세기 베네치아처럼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지식들이 분명코 존재하겠지만,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풍요로운 지식들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두운 그늘에서 목숨으로 그 지식을 지키고 전수해 준 무수한 인류의 스승들, ‘지식의 수호자’들 덕분이다. 『비밀의 요리책』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그런 자의 주방에서 요리하는 페레로 주방장 같은. 그들은 시대의 금기된 지식을 암호화한 요리법을 기록한 자신만의 너덜너덜한 요리책을 주방 한 켠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꽂아둔다. 인류의 위대한 자산인 지식은 언제나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축적되어왔던 것이다.

『비밀의 요리책』은 부조리한 기득권을 영원히 향유하려는 기존 권력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지만 지식의 스펙트럼을 풍요롭게 해주는 ‘희망의 지식’이 어떤 노력과 희생으로 지켜져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는 ‘지식의 수호’가 가장 낮은 주방에서 이루어져서 맛있고 감미롭고 향기롭고 매혹적인 요리 이야기도 가득하다.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공간적 배경도 이탈리아로 유사하고, 시대적 배경은 이 책의 바로 직전인 피터 엘블링의 『시식시종』과 함께 읽어도 재미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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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ko 2009-04-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소통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고맙게 잘 읽고 글 엮어 나눕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