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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성장 심리백과 - 미국아동청소년심리협회의
미국아동청소년정신과협회 지음, 권상미 옮김, 노경선 감수 / 예담Friend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아이, 그것도 예쁘고 깜찍한 딸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꽤 늦은 나이에도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 친구가 첫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우리의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 쏠렸다. 친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신 먼저 아이에 대해 묻기 바빴다. 아이가 언제 무엇을 처음 했는지는 순식간에 친구들 사이에 퍼지곤 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 “아니야!”라는 말을 아이가 입술 끝에 달고 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다음에 친구들이 모였을 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를 건네면서 “딸기 줄까?” 두근두근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아니야!”라고 결연하게 외쳤다. 그러면서도 작은 손은 내밀어 딸기를 움켜쥐었다. 그게 너무 웃겨서 우리는 여러 번 계속했다.
그런 모순적인 행동은 발달단계상 아이가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이나 동생의 어린 시절을 어설프게 떠올리는 게 아니라 눈앞에서 한 생명이 발달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는 건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이다. 그 결연한 “아니야!”는 아이가 “고유한 인격체가 되고자 분투하고 있다는 증표”였다. 그렇게 알고 나니, 친구는 무조건 머리부터 옆으로 흔들고 보는 아이의 고갯짓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져서 조금은 참을 만해졌다고 했다.
아이의 “아니야!”에 대한 그토록 근사한 표현은 『미국아동청소년정신과협회의 아이성장심리백과』에 나온다. 0세부터 초등학교(영아기→유아기→학령전기→학령기)까지 폭넓게 다루는 만큼 각 시기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해 주지는 못하지만,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신체적 성장 단계에 따른 정서적 심리 발달을 아이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짚어준다는 점이다. 아이의 연령에 따라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신체적, 정서적 특징들을 제대로 잡아내는 이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만 3~4세가 되면 아이의 상상력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 수 있는데, 만약 아이가 자기 잘못을 상상 속의 친구에게 돌린다면 무조건 혼나지 않으려고 비겁하게 거짓말하는 나쁜 아이라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비판할 줄 알게 됐다는 뜻”, “아이가 자신이 허용할 수 없는 잘못에 대해 반감을 가진다는 뜻”, “아이의 양심과 가치관이 발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를 거짓말쟁이라고 혼내는 대신 상상 속의 친구는 현실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부드럽게 설명해 주라고 권한다. 거짓말이 의도적인 기만행위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은 만 7~8세에 생긴다.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거짓말이 지름길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때는 거짓말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이가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이때도 나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행동’이라는 걸 분명히 해준다.
이 책은 보통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보통 아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소 특별한 가정(이혼 가정,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 입양 가정, 동성 부모가 이룬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부터 여러 질병으로 아픈 아이, 심지어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아이에 대해서까지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들여다봐줘야 덜 상처받는지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가 우리 집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리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부모가 전체적인 육아의 원칙을 세우고 건강한 가치관을 아이에게 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국 책이어서 아이들의 음주나 흡연, 폭력 조직 등까지 다루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좀 과하고 너무 이른 이야기이지 않나 싶지만, 아이들의 반사회적 행동이나 폭력성은 이제 비단 미국 아이들의 문제만은 아니게 됐다.
아이의 육체적인 건강과 관련한 육아 백과는 단연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따라갈 책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육체만 발달하지 않는다. 아이의 정신, 즉 정서와 심리도 함께 성장한다. 아이의 연령별 발달단계에 따른 아이의 정서+행동+인지 발달을 다루는 『미국아동청소년정신과협회의 아이성장심리백과』는 엄마를 성가시게 하는 아이의 행동이 사실은 아이가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게 발달 중이라는 증표임을 알려준다. 아이는 엄마를 괴롭히려고 엄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부러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아이는 지금 아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즉 온몸으로 끝없이 세상을 탐구할 뿐이다.
친구의 딸아이는 벌써 다섯 살배기로 자랐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책의 이전 판본을 선물했다. 그런데 분리불안 장애, 틱 장애, 투렛 장애, 선택적 무언증, ADHD, 자폐증, 야경증, 몽유병 등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심리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록을 더해 제목을 달리 단 책이 새로 나왔다. 사실 아이의 심리 장애를 진단하는 일은 신중하고 섬세한 주의를 필요로 하고 반드시 소아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하는 일이지만, 엄마가 가정에서 아이를 관찰하는 데 일차적인 기준은 되어줄 수 있을 듯하다.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용한 정보이다. 다시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