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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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즈음에야 어느 분야에서건 장르를 규정짓는게 우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마저도 모호할텐데 단일 장르에서의 구분은 오죽할까. 일본 추리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격 추리소설이 쇠퇴하고 사회파가 득세하더니 신본격이 등장하고 하드보일드에 코지 미스터리까지 장르는 세분화되어 있지만 사실 한 작품을 어느 장르 안에 우겨넣기에는 현대 소설의 복잡함이 이를 거부한다.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리라. 자신의 작품이 어느 한 장르에 구속되어 있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그래서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캐릭터 속에 녹여 낸다. 이것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달콤함이 될 수도 있다.

『점성술 살인사건』,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마다 소지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미스터리와 함께 융화시켜 풀어내는 작풍을 가진 작가지만 신본격의 거장이라는 평답게 절묘한 트릭과 미스터리가 논리에 의해 해결되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탁월하다. 특히 우울한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와 이와 반대되는 캐릭터인 요시키 다케시 형사 시리즈는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란 이런 것이다'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개인적으로 트릭 계열 추리소설의 팬이기 때문에 신작인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에서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했다.

안개가 자욱한 밤, 순찰을 돌던 경관이 고글을 쓴 남자를 목격하고 그의 고글 속이 피처럼 붉게 물든 것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냥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마을의 담배가게 노인이 살해되고 현장에 남겨진 노랗게 물든 5천 엔 지폐와 고글을 쓴 남자가 목격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한편 인근의 마을에서는 국책사업인 원자로의 연료를 생산하던 회사의 사고로 직원이 피폭당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아 보이던 이 사고에 고글을 쓴 남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수사 끝에 그를 체포하여 감금하지만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피로 물든 고글을 쓴 남자를 보았다는 목격정보가 나오게 되자 사건은 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고 고글을 쓴 남자는 도시괴담처럼 번지게 된다. 두 사건은 과연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고글을 쓴 남자는 과연 사고의 망령일까.


미타라이 기요시나 요시키 형사를 기대했지만 새로 등장한 캐릭터는 다나시와 사고시 형사 콤비다. 좋게 말하면 리얼하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런 매력이 없다. 미타라이 기요시의 예리함도, 요시키의 매력도 없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캐릭터라 작가가 이야기의 신비함을 더하기 위해 일부러 캐릭터를 완화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트릭과 해결이라는 측면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 이야기의 환상적인 측면을 표현하는데 강점이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평가 그대로 신본격 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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