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정적(靜的)이다. 책의 모습부터 책을 읽는 행위 자체까지 나서지 않는 조용할 수 밖에 없다. 한 장 한 장 켜켜이 쌓여 있는 책의 모습부터 눈으로 읽어 가는 느낌까지도 정적이다. 한 권의 책을 스마트폰 쓰는 것처럼 휘리릭 넘기며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정적인 재미는 무엇보다 동적이다. 책은 조용한 모습 뒤로 격렬한 힘을 감추고 있다. 강창래의 『책의 정신』은 이런 책의 이면, 책이 가진 흥미진진한 숨겨진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금지된 베스트셀러에는 세 종류의 책, 정치적 중상 비방문, SF, 포르노소설이 있었다. 오늘날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는 계몽사상가들의 책은 당시에는 전혀 인기가 없었는데도 프랑스 대혁명의 한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민중의 승리이기도 한 프랑스 대혁명의 기반에 계몽사상가들의 책이 과연 영향을 미쳤을까? 오히려 당시에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포르노그래피가 더 큰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계몽사상가들 역시 포르노그래피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을 썼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포르노그래피와 진지한 논문을 구별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포르노그래피는 남성들의 인습적 도덕과 전통적인 종교의식을 허무는데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는 포르노그래피를 외설적인 이유로 규제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프랑스의 경우를 본받은 것이라 하겠다. 얼마전 한 작가의 에세이에 장정일과 마광수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 둘이 외설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탄원 서명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왜 이런 사람들을 위해 내가 서명해야 하나' 하며 고민하다 결국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크게 희생하고 서명했다는 이야기다. 그의 에세이는 당시의 자신의 결정을 크게 자화자찬했지만, 현재의 외설적인 TV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시대의 지배구조와 타협하며 살아남은 고전들에 대한 것이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문제’가 그것인데 소크라테스가 글 한줄 남기지 않은 이유로 생긴 문제다. 현재의 소크라테스에 관련된 이야기는 플라톤에 의해 남겨진 것인데, 문제는 실제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후대에 의해 기록된 『논어』, 『성경』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가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책은 재미있다. 그 증거는 현실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의 힘으로 많이 읽혔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영화화 이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책의 힘인가? 뮤지컬이 아니었다면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이 빵을 훔친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며 ‘레-미제라블’이 아닌 ‘레미-제라블’로 기억되었을 일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개츠비』는 제목 그대로 위대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쯤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영상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독서 자체로 재미있다. 저자는 첫머리에서 독서운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데 매우 공감하고 있다. 독서는 애초에 ‘즐거운’ 것인데 왜 운동을 장려하는가? 독서는 운동으로 재미를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고전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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