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솔시선(솔의 시인) 12
이흔복 지음 / 솔출판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문구님의 작품에 대한 토론을 위해 서울길에 올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시집을 선물받았었다. 왜일까.. 생각하고 훑어본 곳에 작은 표시가 있다. 이문구님을 추모하며 지은 시가 있었던 것이다. 고마운 마음과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왔으나 쉽게 열어보지를 못했다.

난.. 
시에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매번 시를 대할 때마다 당황스러워한다.
시인의 감수성에 놀래고 시인의 격렬함에 놀래고 시인의 억누른 감정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부딪히는 그 느낌이  시를 대할 때마다 가혹하게 다가와 매번 당황하고 부산스러워진다.

이흔복님의 시를 읽노라면 어쩐지 이를 악물고 적은 것 같아 나마저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서예작품을 보았을 때 글자에서 힘이 느껴지거나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듯이, 이흔복님의 시에는 악다문 힘이 느껴진다.

이 시집 안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시는

길 아닌 길에 들다

별이 빛나는 밤, 하늘 가득 비명의 메아리 소용돌이친다. 별빛조차 파편처럼 튄다. 입을 벌리고 괴로워하는 내 운명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가혹하다. 어디로부터 들려 오는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도망치듯 멀어지는 내가 놀라 더욱 생생하게 증폭되는 비명의 메아리, 다 내게로 온다.

내 가슴 속에 블랙홀 하나 들어 앉아 있는 것을 찾아낸 느낌이다.
그 소리들이 나의 블랙홀로 까무러쳐 가는 듯한 기분, 내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느라 생긴 어지럼증이 술렁술렁 다가오는 듯해 절로 눈을 감게 한다.
어쩐지 힘들게 오른 서울행만큼 고생스럽게 다가오는 시들이었지만 진득한 그 무게가 나를 칭찬하는 듯해 뿌듯한 자랑스러움이 생겨난다.
좋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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