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패 1 - 피로 물든 시조묘
정명섭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에게 영웅과 같이 여겨지는 사람이다.
그의 발자취들을 보아도 쉽게 볼 수 없는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패]는 젊고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을지문덕과 경험이 일천하지만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태학박사 이문진이 열흘동안 살인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을지문덕이 고구려의 시조 추모성왕의 사당을 지키는 당주로 부임한 첫날에 사건은 벌어진다.
바로 그 사당 안에서 황궁의 한 늙은 관리가 발견되고, 뒤따라 이 관리를 부검하던 늙은 의원마저 살해된 것이다.
의원의 조카 손주인 태학박사 이문진은 큰할아버지인 의원의 복수를 위해 을지문덕과 함께 살인자를 추적해 가지만...
단순한 살인사건이라고 하기엔 점점 커져가는 그림자들로 두 사람은 지치기 시작한다.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하는 사건의 둘레에서 터져 나오는 단서들은 '간주리'라는 이름으로 좁혀지기 시작하고 이 이름과 함께 고구려의 내전을 일으킬 수도 있는 '문서'의 행방을 찾는 권력자들의 암투가 드러난다.
과거와 과거들이 맞물려 현재를 핍박하고 미래의 위기마저 끌어 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 섞이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매끄럽지 못한 연결들이 간혹 보이긴 하나 이 정도의 긴장감과 이 정도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라니 흥겹기만 하다.     
 예전에 읽었던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과 영화 <혈의 누> 역시 이 [적패]와 비슷한 역사 추리소설로 다르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중 [적패]가 가장 탄탄하고 흥미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패]를 읽고 났다면 [별순검]은 입맛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탕과 커피의 관계라고나 할까. 사탕만 먹으면 달고 맛있으며, 커피만 마시면 또 커피만의 맛이 있지만 이 둘을 순서를 바꿔 먹으면 차이가 난다. 사탕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실 경우 커피는 쓴 맛만 날 것이고 커피를 마신 후 사탕을 먹으면 사탕 맛이 더욱 달짝지근하게 느껴져 불쾌함이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별순검]을 읽은 후 [적패]를 읽으면 더욱 감질맛 나는 이야기들로 신바람이 나겠지만 순서가 바뀐다면 어쩜 그 맛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옛날의 수사 방식은 현대적이지 못한 대신 관찰수사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추리방식 역시 멋지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가장 감동한 부분은... 요즘은 시신 외의 증거들과 알리바이 수사에 많이 치중하는 한편 옛날의 수사는 주로 시신에서 증거들을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들의 수사과정을 따라가며 상상해 보면 '죽은 자는 말이 없다'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소 매끄럽지 않은 전개과정이긴 하였지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며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고, 갑작스레 등장하는 '바보 온달' 장군의 모습도 충분히 즐거웠다. 결국 권력이란 것이 승리를 하고 말지만... 이 당시의 이야기 전개상으로는 그것이 답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를 하는 그들의 고민과 그들의 생각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었고,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뿌듯하게 만들어 준다.  

아직도 법과 사람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이냐는 것은 많은 이야기거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을 위한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와 하나를 두고서 하는 고민이 아니라 둘이 어우러져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즐거운 책읽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