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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새
김수현 지음 / 열매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밤이 깊어 새벽을 향해 가는 시간에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었다.
남아 있는 감정이라고는 울분과 답답함과 약간의 어지럼증.
제목에서 부터 알아 봤었어야 했는데...
저자가 누구인지 알면서 왜 읽을 생각을 했을까...
읽는 도중에라도 난 왜 이 책을 덮어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본다.
겨울이라는 삭막하고도 한기가 스며드는 날에 한없이 여려 보이는 두 날개로만 온전히 날아야 하는 겨울새와 그런 겨울새의 작은 아픔조차도 무작스레 헤집을 수 있는 펜을 가지고 있는 김수현 작가. 이 두가지가 만났을 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그 퍼석한 메마름을 어쩌면 난 알고 있으면서도 달려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김수현 작가의 매력이 아니었던가.
여자에 너그럽지 않는 작가의 펜은 이번 책에서도 여과없이 제 목소리를 드러낸다.
도랑물 같이 도랑도랑, 혹은 찰박찰박한 물기를 가득 머금은 검은 눈동자의 여린 소녀 영은.
그녀는 열 여섯의 나이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가게의 단골 손님이었던 정회장의 양녀로 들어간다.
친딸같이 자랐으나 남은 남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모자람 없다 여겨지던 영은이었으나 정회장 내외는 1남 1녀의 자식 중 아들을 영은과 연결시켜 주기를 꺼리며 서둘러 맞선을 보게 하고 결혼을 시킨다.
그러나 영은은 약혼과 파혼, 또다른 결혼과 그 결혼 속에서의 가출, 임신, 이혼..을 겪어간다.
여자라면 아마도 여자라면 행복에 크게 무리가 없는 한 정 붙이고 잘 살아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기 마련일 것이다.
시집살이나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따뜻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건 분명한 일이다.
그것이 다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가며 말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아니다.
홀어머니와 외동아들은 뒤틀린 시각과 뒤틀린 가족애를 보여준다.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의 모성애와 효심은 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땐 그 이름을 빌린 더럽고 지저분하기만 한 관계인 것이다.
영은은 눈동자만큼이나 찰박거리는 생각으로 인생을 그러쥐고 살아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방관자도 아니면서 자존심만은 세워보려는 어설픈 여자로 살아가지만 겨울새가 찬 바람 속에서도 의연히 살아가는 것처럼 자신을 찾아가는 눈을 뜨기 시작한다.
김수현 작가는 처음부터 마지막 장 앞까지 주인공들을 한없이 몰아간다.
극단적으로, 고양이에게 물리기 직전인 쥐같이 몰아가다 마지막 장에서 '턱'하고 풀어 놓아 버린다.
영은이 어떻게 살게 될지는 '네 몫이다!!' 라며 펜을 놓는 작가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기까지 한다.
또렷하고 명료한 생각으로 세상을 바르게만 살 수가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거창한 인생론을 펼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의 환경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는 게 우리네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나 영은과 같은 모습이고 싶지는 않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길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 할지라도 영은보다 조금 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싶다.
여자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며느리라는 이유로.. 온갖 이름들을 둘러쓴 나의 모습이 아니라 온전히 '나'라는 모습을 가진 한 '사람'으로 길을 나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영은에게 불어 넣어 주고 싶다.
하나밖에 없던 친구마저 잃어버린 그녀에게 또다른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