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진주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17살의 나이차를 크게 부각시키며 나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책이었으나 17살의 나이 차이는 이 책에서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7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듯이 거의 20여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만나는 사이가 아닌가.

중견 판화가 우치다 사요코, 그리고 다큐멘터리 작가인 모토키 이 둘은 서로 만나자 마자 첫눈에 반한다.

난 아직도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 어려운 현상인 것 같은데... 첫인상에 끌림은 있다는 것을 알아도 어떻게 한 눈에,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검은 사요코

검은 색과 흰 색의 공간 속에 자신을 담아 내는 사요코.

그녀에게 삶은 작품 외엔 모두 실패로 점철된다.

한 번의 결혼 실패.

사랑하는 아이를 가져보지 못한 채 겪게 되는 갱년기 장애.

사랑이라 이름 붙여도 불륜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다쿠지와의 욕망 가득한 만남.

사요코 그녀에겐 하루하루의 삶이 짙은 검은색으로 칠해지고 있다.


오늘도 그녀는 자주 가는 카페를 찾는다.

손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웨이터 청년 모토키 그를 바라보며 마흔 다섯의 나이를 한 번 더 생각하는 사요코에게 느닷없는 핫플래시의 공격이 시작되고 모토키의 애정 어린 눈빛 또한 시작된다.

모토키는 말한다.

사요코에게서 나는 잉크냄새가 너무 좋다고...

그녀의 삶에 있어 가장 정열적이고 단 하나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존중해 주는 남자의 말이다.

그녀 역시 두려움 없이 사랑에 빠져든다.

사연이 있어 한동안 카메라를 놓았던 모토키는 사요코의 작업과정을 다큐멘터리화 하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손에 든다.

사요코의 다큐멘터리는 사요코와 모토키의 사랑의 과정이다.


이 둘의 사랑에 장애가 없을까?

사랑을 가장 사랑답게 하는 것은 아픔과 슬픔이라는 장애물이다.

그것이 이 둘에게는 17살의 나이차라고 하지만 왠지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솔직히 서로를 가로 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 이외에는...

영화를 찍기 위해 사요코를 두고 돌아가야 하는 모토키.

작업과 불륜 대상이었던 다쿠지와의 문제로 인한 사요코의 흔들림.

무엇보다도 모토키의 젊은 인생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사요코의 마음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나이가 많기에, 마흔 다섯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로 인해 그 나이에는 당연히 포기하는 것이 답이고, 젊은 사람을 위해 물러서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이 바로 검은 사요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하얀 사요코

모토키와 사요코의 사정을 모두 인정하고 시작되어진 한정된 시간...

그 사이에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사랑은 시작된다.

그래... 거침없이라고는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진주의 표면 같은 은은한 펄색 같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감성이 더없이 풍요로워지는 사요코에게 검은색은 더 이상 어둠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따뜻한 검은색, 풍성한 검은색, 밝아지는 검은색...

그리고 그녀는 검은색을 벗어난다.

표착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사요코는 이제 하얀색으로 거듭난다.

사랑이 충만한 하얀색.

사요코는 모든 색을 아우르는 색이 검은색이라 했지만 단 하나 하얀색만큼은 검은색이 안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사요코를 딸처럼 아끼는 우치에 마마는 말한다.


"그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지.

다이아몬드 같은 여자와 진주 같은 여자.

밖으로 광채를 뿜어내는 타입의 여자와 광채를 안으로 품는 타입의 여자.

행복을 손에 쥐는 것은 누구한테나 금방 눈에 띄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같은 여자지.

좋은 진주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남자는 드물거든."

이라고.


사랑은 결코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적당히 포기해야 할 것이 있고,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고 욕심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수 있고, 한 순간 내어 놓아야 할 것이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한 모습이 아닐까?

그런 과정 끝에 만들어진 사랑은 다이아몬드 같은 광채보다는 은은한 광채와 좋은 진주 같은 모습을 지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꿋꿋하고 서로에게 충실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이 둘의 사랑은 따뜻한 햇살 아래 ‘함께’라는 이름으로 다시 묶인다.

반짝이며 밖으로 드러나는 사랑이 아닌 충실함과 충만함으로 가득한 진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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