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이 작가가 지었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서 이 책을 망설임 없이 선택을 했다.
10년만의 저작이라고 해서 엄청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도 힘들었다.
엽편소설이라고 하나?
약 25여편 정도의 짧디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져 있다.
 
첫 이야기부터 날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도끼가 머리에 박힌 채 침대에 떨어져 죽은 남편을 보고 아내는 자신이 절대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도둑이 들어올까 봐 남편이 지레 겁먹고 도끼를 침대 옆에 두었는데 자다가 우연히 떨어져 도끼가 머리에 박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난 죄가 없다.
(아무튼) 너무나 홀가분하다. 오랫동안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짐을 내려 놓은 것처럼...'
 
혹은
 
잘못된 전화가 자주 걸려오는 한 남자에게 어떤 여자로부터 역시 전화가 잘못 걸려온다.
"마르셀?"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전화였지만, 남자는 처음엔 짜증나서 마르셀이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답을 한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며 남자의 목소리가 좋으니 내일 꼭 만나자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왠지 당신은 청반지 검은색 폴라티에 신문을 옆구리에 차고 나올 것 같네요."
 
그렇다.
남자는 싫다 짜증난다 대체 먼 일이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자의 말대로 준비를 하고 여자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바로 다가가지 않는다.
여자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한동안 기다리던 여자.
갑자기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온다.
청바지, 검은색 폴라티. 여자가 주문했던 그 모습 그대로.
여자는 외친다.
 "마르셀!!"
여자는 진짜 '마르셀'에게 만나러 온 사람도 없고 약속도 없다며 활짝 웃으며 마르셀과 같이 밖으로 나가 버리고..
 
(아무튼) 여자를 만나러 왔던 가짜 '마르셀' 남자는 아무런 존재로 아닌 채로 남겨진다.
 
[아무튼]을 읽는 내내 너무도 힘들었다고 했다.
정말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바짝 말라서 바로 바스러질 것 같은 차랑차랑한 낙엽들을 만지는 느낌이다.
사건도 많고, 고통, 아픔들이 가득하다지만 정작 있어야 할 그 감정들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있다'라는 것만 알게 된다.
그렇다. 아무튼 있다..있는 것이다. 그러나 느껴지지 않는다.
메마르고 허전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글들이 읽는 나로 하여금 감정들을 소모시키게 하고 있다.
억지로 고통스러워 하고, 억지로 슬퍼하려고 하고, 억지로 아파하려다 보니..
정말로 (아무튼) 힘들어질 수 밖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퐁당 빠졌던 난 의심없이 아고르의 새로운 작품인 [아무튼]을 선택했고, 그 결과에 후회는 없지만...
혹여 이 책을 읽을 또 다른 분이 계시다면...
에너지 만땅으로 채워 놓고 읽으시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