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옹졸한 독자이다.
늘 독자는 작가에게 있어 신성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취미 역시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자란 존재는 바닥 저편 어딘가에 독을 숨겨 놓은 잡곡밥 같은 존재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말없이 글자만으로 날 삼켜버렸다. (뱉어내!! 뱉어내!!!)
알베르토 망구엘을 욕할 수만은 없다.
왜냐.. 그는 일기를 썼을 뿐이니까..
그러나 기분 나쁘게도 그는 아주 사적인 부분들의 집합체인 일기를 떡하니!! 공개적으로, 것도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것으로 펼쳐 놓았다.
그는 일부러 생각을 드러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라는 독침에 난 꽂혀 버렸다.
책을 읽을 땐 그 책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읽는 것'을 즐거워 하고 '읽기에 미치는 것'이 행복하고, '읽은 내용에 생각을 굴리는 것 '이 비록 버벅대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극히 생산적이라는 자아도취적인 생각에 또다시 기뻐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독서의 즐거움을 만들어 놓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옹졸한' 독자인가...?
그를 질투하기 때문이다. 질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다.
작가임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직업이 독서가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그는 독서광이며, 또한 그것은 그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 많은 책을 읽어 왔다고 자부하나, 그의 목록에 나의 자부심은 발끝으로 끄적거리고 만다.
나의 생각들에 도취하고 있었으나, 그의 깊이 있는 생각들을 읽고 나의 도취감에 물을 끼얹어 버리고 만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줄거리를 읊어 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줄거리보다는 그만의 생각, 혹은 그가 읽었던 다른 책들의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다.
일기라는 형식이 가지는 있었던 일들과, 생각과,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섞어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방대하게 펼쳐지는 책들의 세계에 난 메모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수없이 많이 읽었던 책들 중에서 그는 다시금 읽고 싶은 책들을 선정한다.
그리고는 1년 동안 한달에 한권씩 읽고서 그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데...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책으로 인해, 나는 이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말았다.
방대한 책들의 목록과.. 처음 알게 된 작가들... 행복함으로 소리소리 질러야 하는데... 난 지금 무척이나 불쾌하다.
지금처럼 내가 천재이길 바랬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게 산타가 와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모르는 언어가 없게 해달라!!!라고 말하고싶다.
이 책에 나오는 목록들 중 많은 책들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없다.
원서로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어려운 일이다.. (ㅠㅠ.. 정말이지 눈물이 절로 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무척이나, 무척이나 밉지만 그로 인해 늘어난 목록들과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 생겨난 어학공부라는 목표 때문에 조금은 이뻐해 줘야겠다는 얄팍한 이기심 하나 생겨난다...
해야할 말, 하고 싶은 말,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아야 한다고 혼자서 생각했던 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키보드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은 소심하고 감정적이다.
그러나 취미는 취미일 뿐.(글쓰기 말이다)
나 역시 잘하는 것은 글읽기이기에 미련없이 이쯤에서 3할 부족한 만족감을 내려 놓으려 한다.
물론 [독서일기]가 극찬을 받아야 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책이라는 게 있을까?
세상에 완벽한 독서라는 게 있을까?
세상에 아직은 없는 그 부족함들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난 책읽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색하고,(사색이라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냥 생각이라고 할까?) 메모하고, 경험하고...
언젠가 나만의 목록에, 나만의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때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 같은 감상문 하나 세상에 내어 놓고 싶다는 욕심도 자그마하게 자라나고 있는 걸...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