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유년에서 장년으로 특별한 일이 없이 지냈지만,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면서 괴상해지고, 노년에서 죽음을 맞기까지는 더욱 기상천외하게 변해 소년들의 길을 막고, 소년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자신들이 다 마셔버리는 인간들 말이다.


-‘진화의 길‘ 중..


2.

그런데 냉소하는 사람들은 개혁을 반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를 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략)..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소리를 내며, 열이 있으면 있는 만큼 빛을 내야 한다. 설령 그 빛이 반딧불만하다 할지라도 어둠 속에서 다소라도 빛을 뿌릴 수 있을 것이기에, 횃불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얕은 못의 물이라도 바다를 본받을 수 있다.‘ 중..


3.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에 팔릴 수는 있습니다.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중..


4.

혹시 자신을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믿음직스러울지도 모른다. 청년들이 금 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중략)..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청년과 지도자’ 중..


5.

폭군의 신민들은 폭정이 남의 머리에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남의 참혹함을 자신의 오락으로 삼고, 남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위안을 얻는다.

‘운 좋게 걸려들지 않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능력이다.


-‘폭군의 신민‘ 중..


6.

노비는 걸핏하면 남에게 신세타령을 하곤 했다. 그럴 줄 밖에 몰랐고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총명한 사람을 만났다.

“선생님!”그는 슬프게 말했다. 눈물 한 줄기가 금세 볼을 탔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사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밥은 하루 한끼 먹을까 하고, 그것도 수수 찌꺼기로, 개나 돼지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지요....(중략)”....”거, 참으로 불쌍하군“ 총명한 사람은 안 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요!”그는 기뻤다. “밤낮 일하느라 쉴 새가 없어요. 이른 아침에는 물을 길어야 하고,...(중략)”....“쯧쯧, 저런...” 총명한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전 이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무슨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해요.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을지...”

“내 보기에, 자네에게는 분명 좋은 날이 올 걸세”

“정말요? 그렇게만 된다면야. 어쨌든 이렇게 선생님께..(중략)...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말이에요”

(중략)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또다시 불평을 하기 시작했고, 신세타령을 들어줄 상대를 찾았다.

“선생님!”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 집은 외양간만도 못하답니다. 주인은 저를 사람 취급도 안해요...(중략)”

“이런 멍청이!” 듣던 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는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어리석은 자였다.

“선생님, 제가 사는 데는 다 쓰러진 오두막이고요,..(중략)...사방에 창문 하나 없고요...”

“주인한테 창문 내달라는 말도 못해?”

“어떻게 그러겠어요?”

“좋아! 나랑 같이 가 보자구!”

어리석은 자는 노비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이내 흙담을 허무는 것이었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자네한테 창문을 내주려는 게야”

“안돼요! 주인님께 혼납니다!”

“괜찮아!”그는 계속 벽을 허물었다.

“누구없어요? 강도가 집을 부숴요! 빨리요, 꾸물거리다가 벽에 구멍나게 생겼어요” 그는 울부짖으며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노비들이 우르르 물려와 어리석은 자를 쫓아냈다.

(중략)

그날,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중에는 총명한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이번에 제가 공을 세워 주인님께서 칭찬해 주셨지요. 선생님이 지난번에 그러셨죠, 분명 잘 될거라고요. 정말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그 노비는 꿈에 부푼 듯 유쾌하게 떠들었다.

“암,그렇고 말고” 총명한 사람은 덕택에 자신도 유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자, 그리고 노비’ 중..


7.

선두를 다투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꼴찌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도 없다...(중략)..나는 운동회를 보러 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우승자는 당연히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거이 경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보는 관객, 그들이야말로 중국 미래의 대들보이리라.


-‘선두와 꼴지’ 중...


8.

물론 현재에 불만일 수 있다. 하지만 뒤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앞에도 길이 있기 때문이다.


-‘등불 아래서 쓰다’ 중..


9.

설사 쓰는 것이 대부분 가시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간 평화로운 마음을 필요로 한다.

(중략)

먹으로 쓴 것이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꽃없는 장미’ 중..


10.

망각이라는 이름의 구세주가 강림하려 한다.


-‘류허쩐 군을 기념하며’ 중..


11.

쇼펜하우어의 수필집 <부업과 보충>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슴도치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막으려고 한데 모인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픔을 느끼고는 떨어진다..(중략)..사람들은 사교의 필요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살고, 또한 각기 싫어한는 많은 성격과 흉한 결함 때문에 떨어져 산다. 그들이 마침내 발견한 것은 ‘거리’이다. 그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중용의 거리가 바로 ‘예절’과 ‘상류사회의 풍습’이다. 이 거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영국에서는 이렇게 소리친다. “keep your distance" 그러나 이렇게 소리쳐도 그 효력은 고슴도치 간에나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고슴도치들이 서로간의 거리를 지키는 것은 아프기 때문이지, 남이 소리를 쳐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슴도치들 사이에 가시가 없는 다른 것이 끼어 있다면 아무리 소리를 치더라도 그들은 비비고 들 것이다. (중략)..그러나 이는, 그대만이 가시가 없어 그들로 하여금 적당한 거리를 지키도록 하지 못한 탓이다.


-‘양과 고슴도치’ 중..


12.

사람들은 “출세도 하고 돈도 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병렬적인 것이 아니다. 출세는 오직 돈벌기 위해서일 뿐이며, 돈을 벌기 위한 실마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료들은 현재 조정에 의지하고 있다 하여도 조정에 충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공무원들은 관청에 의지하고 있다 하여도 결코 관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님이 청렴하라, 명을 내려도 졸개들은 들은 시늉도 안하며, 오직 ‘은폐’로 답할 뿐이다.


-‘모래’ 중..


13.

사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만 그래도 우리는 그의 영웅적 행동에 탄복해 마지않는다. 심지어 우리들 조상이 몽골 사람들에게 노예로 된 적이 있으면서도, 우리는 칭기즈 칸을 공경한다. 그리고 나치 입장에서 볼 때, 황인종은 하등 인종으로 떨어졌음에도 일부 사람들은 히틀러를 자랑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들 세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살성(殺聖)들이기 때문이다.

(중략)..우리가 천연두라는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이처럼 종두법이 발명되고부터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구원받았는지 모른다. (중략)..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종두를 발명한 제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살인자는 세계를 파괴시키고, 구세자는 세계를 보수하고 있다.


-‘나폴레옹과 제너‘ 중..


14.

감각이 섬세하고 예민한 것은 마비된 것보다는 물론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한계 내에서 그렇다. 생명이 진화하는 데 관계가 없거나 심지어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진화 속의 병태적인 것이어서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여유로운 복’을 누리고 ‘가을날의 사색’을 누리는 고상한 사람과 누더기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는 천한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누가 살아나갈 수 있는지는 결국 분명해진다. 그래서 차를 마시고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좋은 차를 몰라보고, 가을날의 사색이 없어도 그것도 괜찮다고.


-‘차를 마시며’ 중..


15.

죄를 심문할 때 그들은 이게 아니라면 또 다른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 세상사라는 것이 흔히 죄를 심문하기 전에 미리 죄가 정해져 있고 그런 뒤에 구체적인 죄상(보통 10가지)을 수집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지나치게 밝게 본 잘못’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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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치 남을 속이는 건 상관없고, 다만 속임수가 들통났을 땐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투다. 미학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2.
소나무 사이에 2,3단의 홍색을 점철하던 단풍은 옛날의 꿈처럼 쳐버리고, 손 씻는 물그릇 언저리에 번갈아가며 꽃잎을 날리던 홍백의 산다화도 남김없이 다 떨어졌다. 5미터의 남향 툇마루에 겨울 햇발이 일찍 기울어지고,하늬바람 찬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거의 드물어지면서부터는, 나의 낮잠 시간도 짧아진 느낌이다.
주인은 매일같이 학교로 간다. 돌아오면 서재에 틀어박힌다. 그러고는 손님이 오면,선생 노릇이 싫어서 죽겠다고 한다.
수채화도 좀처럼 안 그린다. 다카디아스타제도 효능이 없다면서 그만두고 말았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쉬지 않고 유치원에 다닌다. 돌아오면 노래를 부르고,공놀이를 하고,가끔씩은 나의 꼬리를 잡아 거꾸로 공중에 치켜들곤 한다.
내 몸은 맛난 음식도 먹지 못하므로 별반 살이 찌지도 않지만 무엇보다도 건강하며 절름발이도 되지 않은 채, 그날 그날을 지내고 있다.
쥐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하녀 오상은 아직도 싫다.
이름은 아직도 지어주지 않았지만,욕심을 말하면 끝이 없으므로,그럭저럭 만족해하며 평생 이 선생네 집에서 살다가 무명의 고양이로 생을 마칠 작정이다.

3.
세배하러 온 손님을 맞아 술 상대를 하는게 싫은 모양이다.
괴팍도 이만하면 아주 가관이다. 그렇다면 일찌감치 외출을 하면 좋으련만, 그만한 용기도 없다. 끝끝내 껍데기 속에 틀어박힌 굴의 근성을 타나내고 있다.

4.
그런데 이 허공과 대지를 제조하기 위해 그들 인류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소비했느냐 하면,촌척의 도움도 주지 못했지 않은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자기 소유로 정하는 법은 없다. 자기 소유로 정하는 것까진 상관이 없겠으나, 타자의 출입을 금할 이유는 없을 게다. 이 망망한 대지를 약삭빠르게 울타리를 두르고 말뚝을 세우고 모모의 소유지 등등으로 구획하여 가르는 것은 흡사 저 창공에 세끼줄을 치고 이 부분은 나의 하늘이요, 저 부분은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련,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의 소유권을 팔고 사고 한다면 우리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한 자 입방으로 나누어 분매(分賣)해도 좋을 것이다. 공기를 분매할 수 없으며,하늘에 새끼를 치기가 부당하다면 토지의 사유도 불합리하지 않은가?

5.
무더운 여름밤에 한 줄기 찬바람이 소매 속을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6.
쓸데없는 저항은 회피할 수 있는대로 회피하는게 요즘 세상이라, 안해도 좋은 입싸움은 봉건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목적은 구설(口舌)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자기 생각대로 착착 일이 전척된다면,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수고와 걱정과 입싸움이 없고서 일이 진척된다면, 인생의 목적은 극락의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스즈키 군은 졸업 후 이 극락주의로 가네다 부부의 의뢰를 받았고,마찬가지로 이 극락주의로써 제법 어렵지 않게 구샤미 군을 설득해서, 그 사건이 십중팔구까지 성취된 판세에 메이테이라는 상규(常規)로는 다스릴 수 없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심리 작용에 의해..(하략)

7.
세상을 살다보면 사리를 안다. 사리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쁜일이나,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서 방심할 수가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표리(表裏) 두겹으로 된 호신복을 걸치는 것도 모두 사리를 아는 결과이며, 사리를 안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죄다.

8.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게 마련이다. 베이면 피가 나게 마련이다. 죽이면 죽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리면 울게 마련이라고 속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안하지만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 격으로 간다면 냇물에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된다. 튀김을 먹으면 반드시 설사를 하게 된다. 월급을 받으면 반드시 출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된다.

9.
놀려준다는 심리를 해부해보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놀림을 당하는 본인이 태평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어선 안 된다. 둘째, 놀려주는 자가 세력이나 사람 수에서 상대방보다 강하야 한다.(중략)..이는 유도를 익힌 자가 가끔씩 사람을 던져보고 싶어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유도가 능숙하지 못한 자는, 부디 자기보다 약한 자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맞붙어보고 싶다, 문외한이라도 상관없으니 던져보고 싶다고, 지극히 위험한 생각을 품고 동네를 걸어다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10.
스즈키 상은 돈과 다수에 복종하라고 주인에게 가르쳤다. 아마키 선생은 최면술로 신경을 안정시키라고 조언했다. 마지막 진객은 소극적인 수양으로 안심을 얻으라고 설법했다. 주인이 어느 방법을 선택할지는, 주인의 자유 의사다.

11.
무릇 천지간에 알지 못할 것은 수두룩하지만 의미를 붙여서 붙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중략)..주인은 무슨 일에나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이것은 굳이 주인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닐 게다. 알지 못하는 것에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잠복하며,헤아릴 수 없는 곳에는 어쩐지 숭고한 심정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인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고, 학자는 알 만한 것을 알지 못하게 강의하고 해석한다.

12.
세상에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간혹 있다. 고집만 부리면 이긴 것 같은 기분인데, 본인의 인물로서의 시세는 훨씬 하락해버린다. 이상한 일은 고집쟁이 본인은 죽도록 자신의 면목을 세웠다는 양, 그 때 이후로 남이 경명하고 상대해주지 않는다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하겠다. 이런 행복을 돼지 같은 행복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13.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유능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거짓말을 해서 남을 낚는 일과, 선수를 쳐서 남의 눈깔을 빼는 일과, 허세부려 남을 위협하는 일과,올가미를 쳐서 남을 빠뜨리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 소년배 따위도 본 것을 그대로 흉내내어 그렇게 안하면 세력을 얻지 못하는 줄 잘못알고, 본래 같으면 낯을 붉혀야 할 일을 득의양양하게 이행하고는, 미래의 신사인 줄 여긴다.

14.
관계가 엷은 곳에는 동정심도 자연히 엷어지게 마련이다.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남 때문에 눈썹을 찌푸리거나, 코를 풀거나, 탄식하거나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인간이 그다지 동정심이 많고, 인정이 많은 동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 때때로 교제를 위해 눈물을 흘려보이기도 하며, 동정 어린 얼굴을 지어보이기도 할 따름이다.
(중략)..때문에 남들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인간만큼 수상쩍은 자는 없다. 시험해보면 담박 알 수 있다.
(중략)..냉담하다 해서, 결코 주인과 같은 선인을 싫어해선 안된다. 냉담은 인간 본래의 성질이요, 그 성질을 숨기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다. 가령 이러한 때 냉담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야말로 인간을 과대평가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5.
부에몬 군은 비단 자신은 제멋대로 굴어도 타인은 자신을 위해 반드시 친절해야 한다는, 인간을 과대평가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비웃음을 사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게다.
부에몬 군은 담임 선생 댁에 와서 필시 인간에 대해 하나의 진리를 발견했을 게다. 그는 이 진리로 인해 장차 더욱더 진실한 인간이 될 것이고, 남의 걱정거리에는 냉담해질 것이며, 남의 곤란에 대해선 큰소리로 웃을 것이다.(중략).. 나는 부에몬 군이, 한시라도 빨리 자각해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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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마법의 사중주 클리나멘 총서 1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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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뭐길래..'하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 책은 돈이 뭔지, 화폐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번역본 이외에 국내 저자가 이렇게 화폐론에 대해 직접 책을 쓴 것은 잘은 모르지만 분명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흔한 주제가 아닌만큼 감을 잡기도 어려운데, 책의 두께도 두껍고 다루고 있는 내용의 깊이 또한 얕지 않다. 그런데도 생각한 것보다는 신기하리만큼 술술 잘 읽혔다. 저자의 글솜씨 탓일까?

 

언뜻 보면 정말 말 그대로 화폐가 어떻게 오늘날의 '화폐'가 되었는지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연구공간 수유+너머 출신이라는 것, 맑스에 대한 한계나 비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주제 자체(화폐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파헤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친자본주의적 발상은 아니다.)를 볼 때 저자가 전하고싶은 메시지는 분명 '화폐의 탄생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만은 아니다.

 

부로서의 화폐, 상품으로서의 화폐, 명령,권위로서의 화폐, 관계로서의 화폐..저자는 화폐가 무엇인지 알기위해 네가지 시각을 제시한다. 시장, 국가, 사회, 과학. 각각을 화폐와 관련해서 화폐거래네트워크, 화폐주권, 화폐공동체, 화폐론이라고 부른다. 시장이나 국가, 사회의 형성과정을 화폐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화폐론의 경우는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추적한다.

책의 구성에도 정성을 많이 들였다. 마법의 사중주를 듣기 전에 인트로에서 대강의 개념을 잡아주고 있다.(사실 이건 일정 수준을 갖춘 책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것이다.) 고마운 것은 아웃트로이다. 마법의 사중주를 듣고 나서 혼란스러운 머리를 짧은 쳅터 하나로 정리(?)해주고 있다. 엄청난 후주와 각주도 저자의 노력을 짐작케 한다.

 

책을 읽으며 기호학 수업을 자주 떠올렸다. 이 책을 토대로 화폐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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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1교시 -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
헨리 해즐릿 지음, 전동균.임석빈 옮김 / 행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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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건 인정해야겠다. 대충 읽었다.

 

60년간 읽혀온 경제학의 고전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본주의 옹호자, 자유주의 신봉자.

당연히 효율성이 가장 최우선시되는 덕목이며,

정부의 개입은 일단 반대.

분배의 문제는 분배할 것을 더 늘리면 해결된다.

(파이를 더 키우자. 자본은 무한히 필요하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책이다.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개입에 대해) 일부분만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것.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이 말하는 일부분은 사회적 약자이며

전체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내 느낌은 그렇다. 자기 모순이며 자기 함정을 파는 듯 했다.

번역의 탓일까?

 

 

 

경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야한다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볼 수는 없다고 말하는 책.

 

 

 

 

사족:

경제학을 공부하지도 않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주제넘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을 무시하거나

불변한다고 가정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학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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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전3권 - 한홍구 역사이야기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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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면 반드시 현대사 수업을 들어보라고 하셨던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의 말씀이 꽤나 머리에 남아서인지, 현대사에 너무 무지한 자신에게 영양을 좀 공급하고자 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고 그러던 차에 나에게 온 책은 이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도 세 권 중에 하나는 항상 대출중인 것을 보며 나는 '아, 정말 인기가 많군.소문대로 재밌나보네'했다. 방학즈음에 기하여 세권이 우연히 동시에 있었고 나는 1권은 일반대출, 2,3권은 장기대출까지 해가며 빌려왔다.

 

1권부터 3권까지 근 5일동안 다 읽었다. 이게 6월에 읽은 책의 권 수를 늘리려는 나의 천박한 의도였는지, 아니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는 친구의 말처럼 나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조금씩 작용했으리라.

 

나는 이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한홍구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고, 이 글이 한겨레21에 연재하는 글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오히려 내가 기대한 것은 있었던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내게는 현대사의 기초적인 순서를 잡는게 필요했다.)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면에서는 전혀 내 기대를 벗어났다. 현대사의 순서는 전혀 상관없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을 읽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시사주간지'를 읽는 기분이었다.

 

1권을 읽을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옮겨적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현대사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2권을 읽었을 때도 재밌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1권에서 나왔던 표현이 또 나오고 1권에서 다루었던 주제가 또 나오는 것을 보고(이건 3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연재되는 글이라지만 '입심좋은 글쓰기'라는 글이 이렇게 식상해서야..) 약간 루즈해지기 시작했다. 3권을 읽으면서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권의 책 중에 아무거나 먼저 읽어도 상관없는 책이었다는. 그리고 역사에 굉장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권,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나는 지금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말하는게 아니다) 두권 정도만 읽어도 이 사람이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편향을 거부하는 눈'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상적 지표에서 무엇이라 나누면 좋을까, 그래 한겨레와 조선일보라 하자. 책 자체가 한겨레에서 나왔고 한겨레 쪽에 선 사람들을 '우리'로 보는데 편향된 시각이 아니라고? (어차피 이 표현도 '광고'일 뿐이지만.)

 

글솜씨도 1권을 읽으면서는 역시 소문대로구나했다. 우리 현대사가 워낙 웃기지도 않았던 일이 많아서인지 킥킥 웃었던 부분이 꽤나 있었다. 이건 3권까지도 그랬다.

연재 글이라는 성격상, 그리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전에 다뤘던 주제와 관련될 때, 그때 썼던 표현을 또 쓸 수는 있다. (사실 읽는 사람들에게 그 부분은 스킵되기 일쑤지만) 하지만 세련되지 못한 비유와 은유들은 약간 억지스러운 구석과 함께 '적절하지 못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짧은 기간 동안 가볍지 않은 방대한 정보를 머리에 넣다보니 그에 대한 반발심리가 있었나보다. 역사라는 것이 워낙 쓰는 사람의 사관이라는 것이 반영된 분야이기 마련이고, 또 읽는 사람도 그것은 감안하고 읽어야 하지만 조금은 감정적인 이런 성격의 글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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