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치 남을 속이는 건 상관없고, 다만 속임수가 들통났을 땐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투다. 미학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2.
소나무 사이에 2,3단의 홍색을 점철하던 단풍은 옛날의 꿈처럼 쳐버리고, 손 씻는 물그릇 언저리에 번갈아가며 꽃잎을 날리던 홍백의 산다화도 남김없이 다 떨어졌다. 5미터의 남향 툇마루에 겨울 햇발이 일찍 기울어지고,하늬바람 찬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거의 드물어지면서부터는, 나의 낮잠 시간도 짧아진 느낌이다.
주인은 매일같이 학교로 간다. 돌아오면 서재에 틀어박힌다. 그러고는 손님이 오면,선생 노릇이 싫어서 죽겠다고 한다.
수채화도 좀처럼 안 그린다. 다카디아스타제도 효능이 없다면서 그만두고 말았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쉬지 않고 유치원에 다닌다. 돌아오면 노래를 부르고,공놀이를 하고,가끔씩은 나의 꼬리를 잡아 거꾸로 공중에 치켜들곤 한다.
내 몸은 맛난 음식도 먹지 못하므로 별반 살이 찌지도 않지만 무엇보다도 건강하며 절름발이도 되지 않은 채, 그날 그날을 지내고 있다.
쥐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하녀 오상은 아직도 싫다.
이름은 아직도 지어주지 않았지만,욕심을 말하면 끝이 없으므로,그럭저럭 만족해하며 평생 이 선생네 집에서 살다가 무명의 고양이로 생을 마칠 작정이다.
3.
세배하러 온 손님을 맞아 술 상대를 하는게 싫은 모양이다.
괴팍도 이만하면 아주 가관이다. 그렇다면 일찌감치 외출을 하면 좋으련만, 그만한 용기도 없다. 끝끝내 껍데기 속에 틀어박힌 굴의 근성을 타나내고 있다.
4.
그런데 이 허공과 대지를 제조하기 위해 그들 인류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소비했느냐 하면,촌척의 도움도 주지 못했지 않은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자기 소유로 정하는 법은 없다. 자기 소유로 정하는 것까진 상관이 없겠으나, 타자의 출입을 금할 이유는 없을 게다. 이 망망한 대지를 약삭빠르게 울타리를 두르고 말뚝을 세우고 모모의 소유지 등등으로 구획하여 가르는 것은 흡사 저 창공에 세끼줄을 치고 이 부분은 나의 하늘이요, 저 부분은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련,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의 소유권을 팔고 사고 한다면 우리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한 자 입방으로 나누어 분매(分賣)해도 좋을 것이다. 공기를 분매할 수 없으며,하늘에 새끼를 치기가 부당하다면 토지의 사유도 불합리하지 않은가?
5.
무더운 여름밤에 한 줄기 찬바람이 소매 속을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6.
쓸데없는 저항은 회피할 수 있는대로 회피하는게 요즘 세상이라, 안해도 좋은 입싸움은 봉건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목적은 구설(口舌)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자기 생각대로 착착 일이 전척된다면,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수고와 걱정과 입싸움이 없고서 일이 진척된다면, 인생의 목적은 극락의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스즈키 군은 졸업 후 이 극락주의로 가네다 부부의 의뢰를 받았고,마찬가지로 이 극락주의로써 제법 어렵지 않게 구샤미 군을 설득해서, 그 사건이 십중팔구까지 성취된 판세에 메이테이라는 상규(常規)로는 다스릴 수 없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심리 작용에 의해..(하략)
7.
세상을 살다보면 사리를 안다. 사리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쁜일이나,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서 방심할 수가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표리(表裏) 두겹으로 된 호신복을 걸치는 것도 모두 사리를 아는 결과이며, 사리를 안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죄다.
8.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게 마련이다. 베이면 피가 나게 마련이다. 죽이면 죽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리면 울게 마련이라고 속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안하지만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 격으로 간다면 냇물에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된다. 튀김을 먹으면 반드시 설사를 하게 된다. 월급을 받으면 반드시 출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된다.
9.
놀려준다는 심리를 해부해보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놀림을 당하는 본인이 태평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어선 안 된다. 둘째, 놀려주는 자가 세력이나 사람 수에서 상대방보다 강하야 한다.(중략)..이는 유도를 익힌 자가 가끔씩 사람을 던져보고 싶어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유도가 능숙하지 못한 자는, 부디 자기보다 약한 자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맞붙어보고 싶다, 문외한이라도 상관없으니 던져보고 싶다고, 지극히 위험한 생각을 품고 동네를 걸어다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10.
스즈키 상은 돈과 다수에 복종하라고 주인에게 가르쳤다. 아마키 선생은 최면술로 신경을 안정시키라고 조언했다. 마지막 진객은 소극적인 수양으로 안심을 얻으라고 설법했다. 주인이 어느 방법을 선택할지는, 주인의 자유 의사다.
11.
무릇 천지간에 알지 못할 것은 수두룩하지만 의미를 붙여서 붙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중략)..주인은 무슨 일에나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이것은 굳이 주인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닐 게다. 알지 못하는 것에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잠복하며,헤아릴 수 없는 곳에는 어쩐지 숭고한 심정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인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고, 학자는 알 만한 것을 알지 못하게 강의하고 해석한다.
12.
세상에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간혹 있다. 고집만 부리면 이긴 것 같은 기분인데, 본인의 인물로서의 시세는 훨씬 하락해버린다. 이상한 일은 고집쟁이 본인은 죽도록 자신의 면목을 세웠다는 양, 그 때 이후로 남이 경명하고 상대해주지 않는다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하겠다. 이런 행복을 돼지 같은 행복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13.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유능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거짓말을 해서 남을 낚는 일과, 선수를 쳐서 남의 눈깔을 빼는 일과, 허세부려 남을 위협하는 일과,올가미를 쳐서 남을 빠뜨리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 소년배 따위도 본 것을 그대로 흉내내어 그렇게 안하면 세력을 얻지 못하는 줄 잘못알고, 본래 같으면 낯을 붉혀야 할 일을 득의양양하게 이행하고는, 미래의 신사인 줄 여긴다.
14.
관계가 엷은 곳에는 동정심도 자연히 엷어지게 마련이다.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남 때문에 눈썹을 찌푸리거나, 코를 풀거나, 탄식하거나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인간이 그다지 동정심이 많고, 인정이 많은 동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 때때로 교제를 위해 눈물을 흘려보이기도 하며, 동정 어린 얼굴을 지어보이기도 할 따름이다.
(중략)..때문에 남들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인간만큼 수상쩍은 자는 없다. 시험해보면 담박 알 수 있다.
(중략)..냉담하다 해서, 결코 주인과 같은 선인을 싫어해선 안된다. 냉담은 인간 본래의 성질이요, 그 성질을 숨기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다. 가령 이러한 때 냉담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야말로 인간을 과대평가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5.
부에몬 군은 비단 자신은 제멋대로 굴어도 타인은 자신을 위해 반드시 친절해야 한다는, 인간을 과대평가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비웃음을 사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게다.
부에몬 군은 담임 선생 댁에 와서 필시 인간에 대해 하나의 진리를 발견했을 게다. 그는 이 진리로 인해 장차 더욱더 진실한 인간이 될 것이고, 남의 걱정거리에는 냉담해질 것이며, 남의 곤란에 대해선 큰소리로 웃을 것이다.(중략).. 나는 부에몬 군이, 한시라도 빨리 자각해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