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나이 또래의 부자집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는 거리의 거지 정도가 고작이었다.
-'거지와 창녀' 중..
2.
마치 등 뒤에 베개를 괴고 병실에 들어서는 사람을 기다리는 환자처럼 누군가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자 하는 내면의 욕구는 훗날 나로하여금 내가 어떤 여인을 오랫동안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그 여인이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였다.
-'병과 인내심' 중..
3.
파괴적 성격은 지속적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어느 곳에서나 길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벽이나 산과 마주치는 곳에서 그는 하나의 길을 본다. 그러나 이처럼 그가 어디에서나 하나의 길을 보기 때문에 그는 길로부터 비켜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 그는 언제나 조야한 폭력을 가지고 길로부터 비켜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매우 세련된 폭력으로 길로부터 비켜난다.
또 그는 어디에서나 길을 보기 때문에 그 자신은 언제나 교차로에 서있다. 어떤 순간에도 그는 다음의 순간이 무엇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것을 그는 파편으로 만드는데, 그것은 파편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파편을 통해 이어지는 길을 위해서다.
파괴적 성격은 인생이 살 값어치가 있다는 감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살할 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감정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파괴적 성격' 중..
4.
의지력이나 집중력은 독자들의 강점이 아니다. 독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은 감각적인 향락들이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5.
신문의 의도가 신문이 제공하는 정보들이 독자들의 경험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데 있었다면, 신문은 이러한 의도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문의 의도는 이와는 정반대이며, 그리고 이러한 정반대의 의도는 달성되고 있다. 신문의 본질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영역으로부터 제반 사건을 차단시키는 데 있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6.
[영국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위치]라는 저서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런던과 같은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시작도 끝도 없이, 그리고 바로 옆에 확트인 시골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몇시간이고 배회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우 특이한 점이다.
..(중략)..
며칠동안 중심가의 보도를 거닐다보면 우리는 런던사람들은 그들의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문명의 기적들을 모두 완성시키기 위해 그들이 지닌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부분들을 희생시켜야만 했고, 또 그러한 문명의 기적들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힘들이 활용되지 못한 채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중략)..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시선을 던져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들이 작은 공간으로 밀집해서 밀어닥치면 밀어닥칠수록 잔인한 무관심, 즉 자신의 사적인 관심사에만 무감각하게 고립되는 현상은 그만큼 더 역겹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7.
대도시 사람들의 눈이 방어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지나친 부담에 시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게오르그 짐멜은 눈이 담당하고 있는 보다 덜 눈에 띠는 기능에 대해 언급하였다.
'..(중략)..대형버스, 지하철, 및 전차 등이 19세기에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말 한마디 주고 받음이 없이 서로를 몇부 동안 심지어 몇시간 동안이고 빤히 쳐다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었다.'
방어적인 시선 속에는 꿈꾸듯 먼 곳에 망연자실한 채 빠져드는 면이 없다. 방어적인 시선은 심지어 그러한 망연자실한 태도를 유린하는데에서 쾌감같은 것을 느끼기조차 한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8.
[피가로]紙의 창립자인 빌머쌍은 정보의 본질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써 규정짓고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나의 독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마드리드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까르띠에 라땡에서 일어나는 다락방 화재이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이러한 표현이 명백히 말해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듣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는 정보라는 점이다.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은-그것이 공간적으로 낯선 나라든 아니면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전설이든간에-비록 그것이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중략)..
정보가 내거는 가장 중요한 요구조건은 그 정보가 '그 자체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중략)..
매일 아침 우리들은 지구의 새로운 사건들을 알게 되지만 정작 진귀한 얘기에는 빈곤을 겪고 있다. 그 까닭은 우리들이 알게 되는 일들이란 모두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미 설명이 붙여져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중략)..
정보는, 그것이 새로왔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다. 그것은 오로지 그저 한 순간 속에서만 생명력을 가진다. 또 정보는 스스로를 완전히 그 순간에 내맡겨야만 하고 또 한순간의 시간도 잃음이 없이 그 순간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얘기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를 완전 소모하지 않는다. 얘기는 자신이 지닌 힘을 집중된 상태에서 그대로 우지하고 있을 뿐더러 또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다시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9.
꿈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권태는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0.
한때 죽는다는 것은 각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공적 과정이자 또 가장 대표적인 공적 과정이기도 하였다. 임종시의 침대가 왕좌로 변하는-사람들은 활짝 열려진 죽은 사람 집의 대문을 통해 이 왕좌로 몰려들었다.-중세의 그림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러한 죽음이 갖는 공적 과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세가 경과하면서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각의 세계로부터 점점 더 멀리 밀려나게 되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이나 방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중략)..
오늘날의 시민들은 한번도 죽음에 접하지 않았던 공간, 즉 영원성이 사라진 메마른 주거공간에서 살고 있고, 또 만약 그들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게 되면 그들은 그들의 상속자들에 의해 요양소나 병원에 옮겨져 차곡차곡 안치된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1.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소설이 이를테면 제 3자의 운명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제 3자의 운명이, 그 운명을 불태우는 불꽃을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의 운명으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따뜻함을 우리들에게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2.
동화는, 신화가 우리들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방안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동화는 바보의 인물을 통하여 어떻게 인류가 신화에 대해 바보처럼 행동하였는가를 보여주고, 막내동생의 모습을 통해서는 인류가 신화의 원초적 시간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짐에 따라 어떻게 그들의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떠났던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우리들이 두려움을 갖는 사물들이 투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현명한 체하는 영리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자연은 신화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하고도 함께 어울리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3.
사진사가 인위적인 조작을 하고 또 모델의 태도도 계획적으로 조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진을 보는 사람은 그러한 사진에서, 미미한 한 줄기의 불꽃 즉 현실이 그것에 의해 사진의 영상을 골로루 태워냈던 우연과 현재적 순간을 찾고 싶어하고, 또 그 속에서 이미 흘러가 버린 순간의 평범한 삶 속에 미래적인 것이 오늘날까지도 얘기를 하면서 숨어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과거를 뒤돌아보면서도 미래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눈에 띄지도 않는 미미한 부분을 찾고 싶어하는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느낀다.
-'사진의 작은 역사' 중..
14.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어느정도는 이름도 없는 동시대의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
-'수집가와 역사가로서의 푹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