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구에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하고 말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축구경기장에는 가지 않지만,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밤에 밀라노의 중앙역 지하 통로에 가서 잠을 자지 않는 이유나
저녁 6시 이휴에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배회하지 않는 이유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멋진 경기를 보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한눈을 팔지 않고 재미있게 본다.
그만큼 나는 그 품위 있는 경기의 모든 장점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셈이다.
요컨대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축구팬들을 싫어할뿐이다.
..(중략)..
내가 축구광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지않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자기네들과 똑같은 축구광으로
간주하고 한사코 축구얘기를 늘어놓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그 들의 태도와 비슷한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중략)..
이제 내가 기차를 타고 있다고 가정하고 , 맞은편에 앉은 승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런 물음으로 말문을 연다고 치자.
"프란스 브뤼헨이 최근에 CD를 냈는데, 그거 들어 보셨어요?"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지요?"
"[눈물의 파반]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초입 부분이 너무 느린거
같더군요"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반 아이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또박또박한 말투로)
블록플뢰테말이예요"
"음..저는 그 방면에는 당최..그게 활로 켜는 악기인가요?"
"아 이제 알겠네요.그러니까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시는게 전혀.."
"그래요 문외한입니다."
"그거 참 재미있군요. 그래도 수제품 쿨스마를 손에 넣으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그런 점에서 보면
흑단으로 만든 뫼크가 낫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 중에서는
최고죠, 그건 그렇고 [데르드레 둔 다프네 도버]의 5번 변주 정도는
들어보셨겠지요?"
"금시초문인데요 사실 저는 파르마에 가는데.."
"아하~ 알겠어요 C보단F로 연자하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어떻게 보면 그 편이 더 듣기가 좋지요.말이 나왔으니 얘긴데요
뢰이예의 소나타 하나를 찾았는데 그 게 어떤 곡이냐면.."
"뢰이..뭐라고요?"
"그 곡보다는 텔레만의 환상곡들을 한번 연주해 보셨어면 해요.
해내실수 있겠어요? 설마 독일식 운지법을 사용하시지는 않겠지요?"
"아시다시피, 저는......독일에 관해서라면.....독일의 BMW는 대단한
차죠, 그래서 독일인들을 존경하기는 합니다만......."
"알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바로크식 운지법을 사용하시는가 보군요.
좋습니다. 다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사람들은..."
이런 식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
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독자들은 나와 마주 앉은그 불운한 승객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열차의 비상 제동 장치를 잡아당긴다 해도 그의 심정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축구광을 만날때도 바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가장 고약한 경우는 택시 운전사가 축구광일때다.
"비알리 경기하는 거 봤어요?"
"아뇨, 내가 안볼때 나왔나봐요."
"오늘밤 경기 보실꺼죠?"
"아뇨 [형이상학] 전집 Z권 작업을 해야되요"
"좋아요, 그 경기를 보면 내 말이 옳은지 그른지 알게 될꺼예요
내가 보기에 반 바스텐은 90년대 마라도라가 될 재목이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반 바스텐도 그 렇지만 하지도
눈여겨 봐야돼요."
그의 얘기를 중단시키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건 벽에 대고 지껄이는 거나 진배없다.
그는 내가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게
아니다. 그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에 있다.
설령 내가 눈이 세개 달리고 후두부의 초록색 비늘에 안테나 두개가
솟아 있는 외계인이라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것이다.
그는 도대체가 다양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사람이다.
..(중략)..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을 그토록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는
자들이 다른 지방에서 온 축구광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고 드니 말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이런 보편적인 쇼비니즘을 대하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마치 극우 연맹의 지지자들이 이렇게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때 처럼.
-아프리카 인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내버려둬라.
그래야 놈들에게본때를 보여 줄 수 있을 테니.-
-'축구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