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2.
우리의 사랑이야기가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이 되지 못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 누군가 비행기를 놓치거나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쓰이지 못했던 로맨스들을 간과해버릴 수 있었다.
..(중략)..
주사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향으로 구르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필연성의 패턴을 그려보려고 한다.
3.
잠시 후 나는 클로이가 나를 향해서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고통스럽고 약간 불안해보이는 표정이었는데, 나중에 나는 그것이 그녀의 평상시 표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5.
우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아는 것-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성,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6.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7.
내가 필자였다면 견고하고, 단단하고, 문법적으로 강력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펜을 잡는다)
8.
나는 듣기보다는 해석을 했다.
9.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자기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중략)..
진정한 연인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안 선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랑에 걸려 넘어지고, 욕망에는 명료한 표현이 결여되어 있다(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는 나의 말의 변비를 자작의 능란한 어휘와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10.
클로이의 질문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했다. 무심결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그녀를 불쾌하게 만드는 내용이 들어간 대답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1.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육체의 산물이다. 무분별하며, 디오니소스적이며, 직접적이며,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며, 희열을 동반한 육체적 욕망의 해소이다.
12.
신화에 나오는 정열적인 사랑의 행위는 팔찌가 걸린다든가, 다리에 쥐가 난다든가, 상대의 쾌락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상대를 아프게 한다든가 하는 사소한 방해물로부터 자유롭다. 엉킨 머리카락이나 팔다리를 풀어내다보면, 욕망만 존재해야 하는 곳에 당혹스러울 정도의 이성이 침투할 수밖에 없다.
13.
인간은 둘로 나우어져 행동을 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나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분열로부터 반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분열을 다시 통합할 수 없다면, 어떤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면, 그것은 자의식 과잉이라는 병이 된다.
14.
자연적인 것이라는 관념에는 모순이 있다. 자연이라는 신화는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자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에 나타난 것으로, 원시주의에 대한 향수와 사라진 에너지에 대한 애도를 표현한 것일 뿐이다.
15.
사랑을 바라지만,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드러나면 상대가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마르크스주의자는 자신의 핵심적 자아가 남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자신이 협잡꾼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6.
나는 그녀에게서 내 자신 안에서 생겨날까봐 두려워하는 의존성을 비난했다. 그러나 연약성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건, 독립성 역시 그 나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7.
철학자들은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생각할 때 그곳을 차이가 용해되는 용광로로 생각하기보다는 비슷한 마음과 통일성, 유사성과 동일성, 공동의 목표와 가정을 기초로 세워진 사회로 보는 것 같다.
18.
보들레르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자와 하룻동안 파리를 걸어다닌 남자에 대한 산문시를 쓴 적이 있다. 그들은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의견이 같았기 때문에, 저녁이 되었을 무렵 남자는 자신의 영혼과 결합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완벽한 벗을 만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들은 목이 말라서 대로 한 구석에 있는 화려한 새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남자는 가난한 노동계급 가족이 카페의 판유리 너머에서 우아한 손님들, 눈부신 흰 벽, 황금장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 가난한 구경꾼들의 눈은 실내의 부와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화자는 동정심과 더불어 자신이 그런 특권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에 수치를 느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눈에도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여자를 보았다. 그러나 남자가 영혼의 결합을 준비하고 있던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불쌍한 사람들이 눈에 거슬린다며, 남자더러 주인한테 이야기해서 그들을 쫓아내버리라고 말했다.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19.
상대가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한다면 그것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
낭만적 사랑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반성이 아니라 독특함이다. 그것은 이웃 A가 자기와는 다른 미소나 주근깨나 웃음이나 의견이나 발목 때문에 이웃 B를 사랑하게 되는 문제이다. 예수는 사랑에 기준을 갖다붙이지 않음으로써 이 까다로운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사랑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은 기준 때문이다.
21.
유머가 있으면 직접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었다.
..(중략)..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없이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22.
그녀는 플라톤주의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는 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플라톤적으로 완벽한 얼굴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아름다움은 추함과 고전적 완벽성 사이의 동요의 영역에서 발견된다.
23.
진정한 아름다움은 흔들리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하다.
..(중략)..
추를 향하여 계산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것에 미는 있을 수 없다.
..(중략)..
고전적인 비례를 갖춘 사람을 "아름답다"도 생각하는 데에 무슨 독창성이 있을까?
24.
다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 신중하여 그것을 (사랑을 합병하고 있는)낭만의 닳아빠진 사회적 언어로 말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녀의 감정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음에도, 묘한 의미에서, 그 감정들은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25.
그 어느 때보다 언어가 독창적이고, 개인적이고, 완전히 사적이기를 바라는 순간에 나는 마음의 언어의 어쩔 수 없는 공적인 성격과 마주치게 되었다.
..(중략)..
'사랑'과의 거울 단계 동일화가 필요하지만, 나 자신을 그 말과 동일화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말에는 이질적인 역사가 너무 풍부했다. 음유시인들로부터 카사블랑카까지 모든 것이 그 단어를 이용해왔다.
26.
그러나 그들은 마치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세속적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중략)..
그러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기껏해야 다른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27.
의학사를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찢어질까봐" 아니면 "노른자가 흘러나올까봐"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그의 공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진정제 등 온갖 약을 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어떤 의사가 미망에 사로잡힌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늘 토스트를 한 조각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앉고 싶은 의자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고 앉을 수가 있고, 노른자가 샐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환자는 늘 토스트 한 조각을 가지고 다녔으며, 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8.
갑자기 클로이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중략)..
고아에게 고아라고 말해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29.
"이 꿈틀꿈틀거리는 건 다 뭐야?" 내가 물었다.
"아, 그건 내가 너하고 있을 때는 흔들리는 느낌이기 때문이야"
30.
나는 그녀의 내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 절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중략)..
클로이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를 지니고 있는-일 뿐이었다.
31.
내가 현재 그녀에게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어떤 정의("남자", "남자친구") 안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클로이의 눈에 비친 존재(그 존재들 중에서는 특별하다고 해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32.
나는 나무를 나무라고 부르지만, 1년 내내 나무는 변하고 있다.
33.
행복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 워낙 희귀하기 때문에 눈앞에 다가오면 무시무시하고 불안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중략)..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중략)..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아름다워 보이는 클로이는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이상했다. 나는 어서 그 사건이 역사 속으로 흘러들어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4.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 소리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35.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위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다.
36.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그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중략)..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겠다면,(정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결과 근육이 통제하는) 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중략)..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37.
그녀의 짝이 자신의 목에 입을 맞추는 방식, 책장을 넘기는 방식, 농담을 하는 방식에 유혹을 당했던 여자는 바로 이 연결점들 때문에 짜증을 낸다.
..(중략)..
나는 내가 하는 말이, 과거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말이, 갑자기 왜 화를 돋우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38.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39.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40.
모든 삐치는 일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그 일을 나중을 위해서, 좀더 고통스럽게 폭발시키기 위해서 쌓아둔다.
41.
그녀의 눈물 때문에 내 짐도 잠시 유예를 받았다. 나는 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를 배반함으로 해서 생긴 고통을 놓고 배반당한 남자가 배반한 여자를 위로하고 있다니.
42.
거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딱지가 붙고, 거부를 당한 사람은 선의 화신이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43.
예수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은 단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려놓은 울 듯한 눈과 창백한 안색 때문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착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중략)..
그 인물은 모든 사람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그 관대한 메시지를 그의 면전에 내던져버렸다.
44.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이제 클로이가 떠났다고 해서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
45.
오랫동안 내 소파와 함께 살고 나서야 클로이가 드레싱 가운을 입고 거기 누워있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 그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의 이미지라든가 내 외투가 가로놓여 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46.
그러나 사랑이 미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중략)..
우리가 바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현자가 되지는 않았다.
47.
금욕주의자들은 사랑을 고통과 비합리성으로 단순화시켜서 그것으로 사랑에 대항하는 결정적인 논증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좇다보면 틀림없이 받게 되는 상처를 피해갔다고 하지만, 감정적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낭만적 실증주의자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심리적 지혜로 문제를 단순화시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모두 고통 없는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지혜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켰다고 하지만, 그 지혜의 교훈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무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