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하다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안 그럴지 모르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신화적 분위기가 조금씩 사라진다. 즉 개인적 자만심은 형제들에 의해, 가족에 대한 자부심은 학교 친구들에 의해, 계층에 대한 자부심은 정치에 의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패전과 경제 실패에 의해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자부심 혹은 허영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실 사회적 관계가 드러내는 결과를 볼 때 이런 자부심과 관련된 신화 만들기는 끝없이 진행되는 것 같다.
2.
자신의 왜소함에 대범할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이 가진 위대함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3.
실용주의자들은 우리 의견의 비이성적인 면을 강조하고, 정신분석학자들은 우리 행위의 비이성적인 면을 강조한다. 두 부류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견해와 행위에 유용한 척도가 될 만한 ‘이상적 합리성’은 없다는 생각을 사람들의 머리에 심어놓았다. 그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당신과 내가 의견이 다를 때 정돈된 논리로 설득하거나 객관적 외부 중재인을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재정 상태와 군사력에 따라 현란한 언어나 광고, 돈의 힘을 빌어 각자의 의견을 사수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관점은 극히 위험하고 종래에는 문명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4.
인간사 바깥에 놓여 있는 것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다. 진실이란 믿음의 속성을 띠며, 믿음은 심리적 사건이다. 나아가 믿음과 사실의 관계는 논리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단순한 도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중략)…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사람들이 ‘위대한 사상’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정적을 괴롭히는 좋은 구실이기 때문이다.
5.
신비주의자들이란 원래 기질은 활발한데 무위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 이들이며, ‘행동주의자들’은 원래 기질은 수동적인데 행동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다.
6.
우리의 욕망이 경쟁에서 비롯되는 한 전체적으로든 구체적으로든 부가 증가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행복이 따라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아무튼 이런 기근 예방을 위한 때를 빼놓고는 부의 증진 자체는 인간의 행복에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인간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될 두 요소를 잃게 되었다. 그것은 기계가 나름의 속도를 가질 뿐만 아니라 거부하기 힘든 것은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싼 공장을 가지고 있는 공장주는 끊임없이 기계를 돌려야만 한다. 감정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기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규칙성이다. 물론 기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감정의 가장 큰 허점은 불규칙성이다. 자신을 ‘진지하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대체로 기계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자신이 확실함이나 정확함 혹은 분명함 같은 기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칭찬으로 생각한다. 이들에게 ‘불규칙한’ 삶은 ‘잘못된’ 삶이다.
7.
전통 철학에서는 변하지 않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천상에도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하프가 연주되겠지만, 항상 같은 찬송가가 불리어지고 하프는 항상 맑은 소리를 낼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현대인은 하품만 할 뿐이다. 신학이 현대인에게 별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천상에 ‘현대적인’ 악기를 설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턴은 현대적 악기를 지옥에다 설치했다.)
윤리 체계들은 모두 불합리한 추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철학자는 먼저 사물의 본질에 관해 잘못된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런 다음 악한 행위란 자신의 이론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는 결론을 추론해 낸다. 먼저 기독교인을 살펴보자. 기독교인은 만물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므로 하느님의 뜻에 거역하는 것이 바로 악이라고 주장한다.
8.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열정적으로 성취해 내지만, 그것들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중략)…
또한 우리는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도 능률적 경찰 체계를 두고 있어 한편으로는 범죄를 탐지하고 예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새롭고 건설적 생각을 품고 있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가둔다.
9.
그리고 우리 자신이 어떤 이론을 띠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생활에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덕스러운 것이라고 여전히 우리는 생각한다. ‘죄’라고 불리는 특정 행위들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착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중략)…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불의로 득을 보는 이들은 바로 처벌과 보상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사회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독창적 이론을 개발하는 이에게는 보상이, 그 폐단을 고치려고 하는 이에게는 벌이 내린다. 내가 아는 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은 국가는 없다.
10.
‘공식적인’ 도덕은 언제나 압제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즉 이 도덕은 ‘그것을 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면서 그 도덕규범이 금지하지 앟는 행위들이 초래하는 결과를 전혀 조사하려 하지 않는다.
11.
우리가 조금이라도 정치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정치 문제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권을 잡을 정당은 국민들 대다수가 호응할 수 있는 것에 호소해야 한다. 나중에 논거를 펼칠 때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만, 현 민주주의 체제에서 폭넓게 지지받는 제안은 거의 해를 끼쳤다. 따라서 유용한 강령을 가진 중요한 정당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그러므로 유용한 정책은 정당 정치와는 다른 절차를 통해서 통과되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민주주의와 어떻게 결합하는가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다.
…(중략)…
정치인에게, 깬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좋은 것을 대변하라고 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이들이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중략)…
정당 정치가 있는 모든 곳에서는 정치인들이 특수 계층에 호소하면, 이들의 반대 세력은 그 반대 계층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의 성공은 한 계층을 다수 집단으로 만들 수 잇는가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모든 계층에 똑같이 호소하는 정책은 대체로 모든 정당들의 공통적 기본 틀이기에, 정당 정치인에게는 별 쓸모가 없다. 따라서 그는 반대파의 핵심 지지자 집단이 싫어하는 정책을 집중 공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정책이라도 그 근거를 정치인이 연단에 서서 보통 사람들에게 먹히게 설명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정당 정치인들이 중요시하는 정책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그 정책이 국민 일부만을 겨냥해야 한다. 둘째, 정책을 합리화하는 논변은 극히 단순해야 한다.
…(중략)…
나아가 정치인들은 라이벌 집단끼리 갈리기 때문에, 전쟁 시처럼 외부의 적에 대항해 뭉칠 때 외에는 나라 전체를 분열로 몰고 간다. 즉 그들은 의미 없는 소리와 분노를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 설명하기 힘든 것이나, 국가들 간에 혹은 한 국가에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 일, 나아가서는 정치인들 계층의 힘을 약화시키는 일은 이들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12.
악행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런 경향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이익을 보는 사람 탓이고, 임금이 내려가면 자본가 탓이다. 길 가는 사람들 중에 임금이 오르면 왜 자본가가, 가격이 하락하면 왜 이익을 보는 자가 무력해지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은 없다. 또한 이들은 임금과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고 하락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본가는 임금이 하락하는 반면 가격이 상승하기를 바랄 테고, 임금 노동자는 반대의 상황을 바랄 것이다. 이익을 보는 자나 노동조합, 고용주가 이와는 실제로 무관하다는 사실을 통화 전문가가 설명할라치면, 사람들은 마치 그가 독일 사람들의 잔인무도한 행위를 감싸기라도 하듯 짜증을 낸다. 우리는 ‘적’을 우리 삶에서 제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13.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임금 노동자가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한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실제로 고통을 덜 겪을지를 입증하지 못할뿐더러 입증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냥 그가 글을 쓰는 형식과 각 장을 배열한 방식에서 기정사실이었을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계층 특유의 편견을 가진 독자가 이 책을 읽을 때도 마르크스처럼 이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기에, 그 사실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14.
전쟁 시 연합국들 사이에 존재했던 범국제 정부와 같은 국제단체가 평화 시에도 널리 확대된다면,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의 물질적·심리적·도덕적 안녕이 증진될 것이다. 사업가들도 여기에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난 3년간 평균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을 평생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실업과 전쟁에 대한 공포, 빈곤, 생산 부족, 생산 과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주장과 방법이 로이드의 책에 자세히 나온다. 이렇게 분명하고 폭넓은 장점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체제는 전 세계에 혁명적 사회주의가 설제로 설립되는 것보다도 먼 현실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문제가 너무 많은 반감을 사는 데 반해, 공무원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너무 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신의 적이 손해를 입었으면 하는, 적어도 무의식적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정책에 반대한다. 따라서 그 어느 쪽도 상하게 하지 않는 정책은 전혀 지지를 얻지 못하며, 지지를 많이 받는 정책은 그만큼 강한 반대 세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15.
현대 정치인들과 정부가 쓰는 선전 기술은 광고 기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고인들 덕분에 심리 과학이 많이 발전했다. 과거에는 심리학자들 대부분이 한 사람이 자신의 뛰어남을 순전히 말로 반복해서 많은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심리학자들의 생각이 틀렸음이 경험을 통해 드러났다. 만약 내가 공공장소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돈을 끌어 모아 버스나 모든 주요 철로 광고판에 똑같은 문구를 광고하면,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피한다는 말을 해도 믿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구멍가게에 가서 “저기 길 건너에 있는 경쟁 가게를 보십시오. 선생님의 사업을 잠식하려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그만 접고 길 한복판에 나가, 먼저 총에 맞기 전에 저 인간을 쏘아버리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요?” 하고 말하면 어떤 구멍가게 주인이든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군악대까지 동원해 주장을 되풀이하면, 구멍가게 주인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정부의 선전 내용과 달리 자신의 사업이 오히려 고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왜 그런가 하고 놀라게 된다. 광고주들이 성공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선전은 이제 모든 선진국가의 정부들이 인정하는 방법들 중의 하나이며, 특히 이 방법으로 민주적 의견이 창출된다.
16.
소수를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중 가장 주류에 속하는 이들도 언젠가 소수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다수의 횡포를 억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략)…
이 전쟁은 종교적 관용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과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져야 한다. 그 경우처럼 여기서도 열렬한 믿음 자체를 잦아들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구교든 신교든 그 종교를 절대 진리라고 믿었던 시기에, 사람들은 그 진리를 위해 박해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17.
관용적인 세상을 만들려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증거 자료를 잘 검토하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 주장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신문을 읽는 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는 오래전에 일어난 일들 중 당시에 뜨거운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을 골라낸 다음, 아이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한쪽에서는 어떻게 보도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떻게 기사화했는지 읽어주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제대로 된 독자는 편향된 양쪽 보도를 통해 어떻게 사실을 유추하는지를 교사는 설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사실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양성된 ‘비판적 회의주의(cynical scepticism)'가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점잖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아 불한당들의 계획을 더 추진하게 만드는 이상주의적 선전에 휩쓸리지 않게 할 것이다.
18.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도덕의 부재만큼이나 지성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까지 도덕적 병폐를 근절시킬 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설교나 훈계는 위선이라는 항목을 지금까지 악의 명단에 첨가시킬 뿐이다. 이에 반해 지성은 유능한 교육가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방법으로, 쉽게 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따라서 덕을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도덕보다는 지성의 수준을 끌어올림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앞당기는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지성을 고양하는 데 주된 걸림돌 중의 하나가 쉽게 믿는 경향이다.
19.
자유방임주의자들은 가난한 이들이 살인과 무장 폭동을 할 수 없게 하는 법을 발동시켰으며, 심지어는 노동조합주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의 관여가 최소화되면 그들은 나머지를 경제적 힘으로 이룩하려 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당신, 굶어죽을 줄 알아.” 하고 말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고용인이 이 말에 “당신이 먼저 총알에 갈 줄이나 알라고!” 하고 응수할 수는 없었다. 법률적 탁상공론을 즐기지 않는 한, 이 두 협박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양쪽 모두 최소한의 기본적 자유를 위반하는데,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한 사람에게서 안락함을 빼앗는 것은 ‘선험적으로(a priori)' 합리화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행위는 특정 시기에 특정 공동체에서는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고 도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서 필수품을 박탈하는 경우가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 잉여물의 축적을 막는 경우보다 큰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21.
자유에 관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이 첫째, 다른 사람의 손실을 통해 한 사람이 가지는 이익과 둘째, 다른 사람의 손실과 무관한 이익, 이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만약 내가 정당한 양 이상의 음식을 가진다면 이로 인해 배고픈 사람이 생기지만, 내가 교육 기회를 독점하지 않는 한 내가 엄청난 양의 수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도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사실은 음식과 집, 의복 같은 것들은 삶에 필수적이어서, 이것들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없을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민주주의 저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런 모든 문제는 정의가 그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민주 사회에서 정의는 평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계층 간의 수직적 서열이 있고, 그 서열을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정의가 평등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22.
그리고 의견의 문제에서는 ‘자유 경쟁’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자유주의자의 오래된 구호가 적용되어야 할 분야는 정신적 분야인데, 이제까지 경제학이라는 잘못된 분야에 적용이 되었다. 우리에게 ‘자유 경쟁’이 필요한 곳은 생각이지 경제가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경제 분야에서 자유 경쟁이 점점 사라져 감에 따라 ‘승리자들’이 자신의 경제력을 정신적·도덕적 분야로 확대 적용하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고 살게 해줄 테니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르게’ 살 것을 설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실제 여기서 ‘바른 삶’은 위선을, ‘바른 생각’은 어리석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3.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말하는 것을 배운다. 아이들을 지켜보면 아이들이 이때 얼마나 많이 노력하는지 알 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주의 깊게 듣고, 다른 사람 입술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하루 종일 말을 연습한다. 물론 어른들은 이것을 칭찬으로 격려한다. 아이들이 새로운 단어를 하나도 습득하지 못하는 날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매를 들지는 않는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기회를 제공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다른 교육 단계에서도 이런 기회와 격려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24.
정치적 의견은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25.
과거에는 지배 계층이 권력을 대물림했기 때문에, 많은 지배 계층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능해져 다른 계층 사람들이 파고들 틈을 제공했다. 그러나 만약 지배 계층이 각 세대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자기 노력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로 구성된다면, 평범한 인간들에게 다가올 미래는 그야말로 캄캄하다. 그런 사회에서는 게으른 이들, 즉 다른 사람의 일에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할 사람을 찾기가 힘들 것이다. 밀치고 설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에서, 조용한 사람들은 작은 기회라도 잡기 위해 어렸을 때 대담무쌍함과 활력을 배워야 한다. 아마도 민주주의는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26.
산업화는 통합적이다. 산업화는 거대한 경제 단위를 창출하고, 사회를 더 유기적으로 만들며 개인 욕구를 제한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 아래의 경제 조직은 지금까지 소수 독점 체제였으며, 정치적 민주주의가 분명히 승리하는 그 순간에 그 민주주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새로운 ‘통합적 편협함’의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시대는 으레 그렇듯 경쟁하는 철학 혹은 신념 간의 전쟁을 야기할 것이다.
27.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개인은 사회 체제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무능력을 수치스러워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듣고 자란 개인주의 철학의 영향 때문에, 단체 행동이 좋은 결과를 맺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28.
나로 말하자면, 다가오는 두 집단 간의 갈등에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줄 능력은 없고 에라스무스처럼 바라볼 뿐이다. 여러 면에서 미국의 부호들보다 공산주의자들의 의견에 더 공감이 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철학이 궁극적으로 참이라거나 혹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점점 발달하고 있는 개인주의가 매우 멀리 갔다는 사실과, 또한 산업 사회가 안정되고 보통의 남녀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으려면 협동 정신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29.
결국 공식·비공식적 검열의 결과 반대 주장이 이성적이기보다는 열띤 주장으로 변해 새로운 것에 대한 찬반의 근거를 차분하게 논할 장을 흐려 놓는데, 이런 식으로는 일반 대중들에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다.
…(중략)…
극단적 의견은 보도가 되지만, 온건하고 이성적인 것들은 당국의 반대를 뚫기에는 색깔이 없다고 여긴다.
30.
예를 들어, 만약 한 나라에 사는 사람이 자신이 사는 지역이 다른 나라에 속한다고 말하면, 그는 반역죄로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의견 자체는 다른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정치적 논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1.
그러나 나는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학교 교육이 부자들의 이익을 증진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해고의 이유가 되지만 보수주의자라서 직장을 잃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일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이유들로 인해, 만약 우리 문명이 부자의 이익만을 계속 쫓는다면, 결국에는 망할 것이다.
32.
가족이란 방어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조직이다. 개미와 벌의 경우 이 역할을 집단이 담당하기 때문에 가족이 필요 없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에도 부모들의 보살핌 없이도 어린이들의 삶이 안전하다면, 가족생활이 점차 사라질 것이다.
33.
점점 더 동인들이나 몇몇 부유한 후원자들만의 것이 된 예술은 종교와 공공 생활에 관계할 때처럼 보통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간주된다. 세인트 폴 성당을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건립 자금을 영국 해군에게 주어 네덜란드 군대를 물리치는 데 쓸 수도 있었지만, 당시 재위 중이던 찰스 2세가 그 성당 건립을 더 중요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34.
거대한 조직은 개인에게 무기력을 심어주고 게으르게 만든다. 이런 위험을 조직 운영자들이 깨닫는다면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운영자들이 체질적으로 깨닫기 힘든 것이다. 인간의 생활양식을 정리하는 깔끔한 ‘계획안’에는 약간의 무정부주의가 ‘첨가’되어야 하는데, 그 양은 부패 상태로 이어지는 부동(不動)의 상태를 막을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 하되 붕괴를 가져올 정도로 많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뒤범벅된 실제 생활에서는 좀처럼 풀기 힘든 아주 조심스러운 문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