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냐하면 우리는 웃기 전에 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슬픔에서 깨달음이 생기고, 그 깨달음에서 온정과 관용을 겸비한 철학자의 큰 웃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2.

<창세기>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또다시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번에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정말 영생을 얻게 될 것을 하느님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3.

말하자면 인간은 하늘과 땅,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숭고한 사상과 비천한 번뇌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것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 원래 인간성의 본질이다. 지식에도 갈증을 느끼고 물에도 갈증을 느낀다. 훌륭한 사상도 좋지만 한 접시의 맛있는 돼지고기도 좋으며, 지언명구(至言名句)도 좋지만 미인도 버리기 어려운 것이 인간적이다.

 

4.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에 대해 언급한다면, 자연계의 온갖 생물은 놀라우리만큼 완전한 것이다.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자연계에서 멸종되고 만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자연에 적응하라는 명령은 받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기 자신, 즉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에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5.

세상 사람의 반은 자기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반은 남에게 자기 일을 시키기 위해서든, 남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든 그중 하나를 위해 살고 있다.

 

6.

그런데 인간에게는 불합리성도 있거니와 모순도 있고, 어리석은 짓도 하고 바보 같은 짓도 하며, 축제일에는 들떠서 돌아다니고, 편견과 옹고집과 건망증이 있다. 인간의 재미는 바로 그런 데 있는 것이다.

 

7.

그러므로 만일 전쟁놀이를 그만두고 싶다면, 각국 정부는 20세에서 45세까지의 국민을 징병제도식으로 선발하여 10년에 한 번쯤 유럽 여행을 시키고, 박람회나 그 밖에 다른 흥미 있는 것을 구경시켜 주어도 좋을 것이다.

영국 정부는 그 재군비(再軍備) 계획에 50억 파운드를 투입하고 있다. 50억 파운드라면 모든 영국인을 리비에라로 여행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그러나 전비(戰費)는 필요하지만 여행은 사치라는 반대론이 제기될 것이 뻔하다. 아무래도 나는 그 반대론에 찬성할 수가 없다. 오히려 여행은 필요하되 전쟁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

 

8.

결국 자기 사상을 소탈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사상의 주인공이며, 그러한 사람만이 사상에 예속되지 않는 것이다. 진실성이란 결국 노력의 표시일 뿐이다. 노력한다는 것은 완전히 숙달되어 있지 않은 증거이다.

…(중략)…

저술가가 어떤 개념에 시달리고 있을 때는, 틀림없이 그 개념 쪽도 저술가에게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9.

인생을 가장 즐길 수 있는 이상적인 성격은, 마음에 온정이 있고 근심이 없으며, 그러면서도 용기 있는 성격이다.

 

10.

그러나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성공, 즉 명예와 부귀에 대한 욕망이란 실패, 빈곤, 무명(無名)에 대한 공포를 완곡하게 표현한 명칭이며, 이같은 공포가 우리의 생활의 지배한다.

 

11.

그 결과 모든 종파에서 보듯이 이론으로 신앙을 정당화하면 할수록 편협에 빠지게 된다. 이리하여 종교는 가장 질이 나쁜 집착과 고루와 편파와 편협, 그리고 개인생활의 철저한 이기주의에까지 결부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도 다른 종파에 대한 관대한 태도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종교의식을 신과 인간의 사적 거래로 둔갑시킴으로써 인간의 이기주의를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을은 갑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회에 찬송가를 부르고, 신의 이름과 갑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 대신은 갑은 또 을을 축복해야만 한다. 단, 이때는 다른 누구보다도 우선 자기 자신을 축복하고, 다른 어느 가족보다도 우선 자기 가족을 축복하는 것이다.

 

12.

생활의 사색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만 철학의 영광이나 숨막히는 기분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으며, 동심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직관력의 신선함과 소박함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다. 어떤 철학자든 만일 진짜 철학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면,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고 절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략)…

신이 부여한 완전이 종종 사람들로 인해 불완전하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 철학자는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안경을 쓰고, 식욕도 없고, 가끔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인생의 아름다운 맛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13.

그러나 백 퍼센트의 능률을 바라는 것은 거의 추잡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14.

중국 옷과 양복 속에 내포된 철학의 차이는, 양복이 인간의 자태를 나타내려는 것에 반하여 중국 옷은 그것을 숨기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중략)…

그런데 양복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우리의 허리둘레가 32인치인지 38인치인지 짐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인간이 왜 “내 허리 둘레는 32인치요” 하고 세상을 향해 공언해야만 하는가.

…(중략)…

다만 인간이 아직도 네 발 짐승의 단계에 있다면, 혁대도 다소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즉 말에 안장을 얹듯이 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미 두 발의 직립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혁대는 인간이 아직도 네 발 짐승이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져 있다. 해부해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배의 근육은 모든 무게를 등뼈로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두 발 직립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 비참한 결과로 인해 인간의 어머니들은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유산(流産)이라는 재앙을 짊어지게 되었고, 남자의 혁대는 중력으로 흘러내리는 경향을 갖게 된 것이다.

 

15.

공자는 사려없는 학식이 학식을 수반하지 않는 사려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공자는 “배우더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사물은 확실하지 않다. 생각하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훈계를 한 이유는, 공자는 당시의 많은 학자가 전자에 속해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이 경구는 현대의 학교에도 아주 적절하다. 다 알다시피 현대의 교육과 학교제도는 대체로 지식을 장려하고 판단력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식 주입주의를 최종 목적으로 생각하고, 학식만 많으면 교육받은 인간이 되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면 학교에서 사색이 배제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중략)…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의 교육제도가 대량교육이며, 따라서 공장이나 다름없고, 공장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생명 엇는 기계적 시스템에 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교명(校名)을 지키고 제품을 표준화하기 위해 학교는 졸업증서를 발행하여 제품을 증명해야만 한다. 졸업증서와 함께 등급을 매겨야 할 필요가 있고, 필요성에서 점수가 생긴다. 점수를 매기려면 암송과 시험이 있어야만 한다. 교육 전체가 완전한 논리적 연쇄를 이루고 있어서 빠져나갈 길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기계적인 시험의 결과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치명적인 것이다.

 

16.

대학이 전국경기에 출전하는 소수의 운동 선수나 축구 선수를 양성하는 것보다도, 잘하든 못하든 모든 학생이 테니스나 축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국가가 한 사람의 로댕을 낳는 것보다도, 모든 국민이 저마다 자기의 창작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극소수의 전문 예술가가 있는 것보다는 전국 학생에게 점토세공(粘土細工)을 가르치고, 모든 은행장과 경제 전문가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수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기발한 제안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즉 모든 분야의 아마추어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17.

유희적 정신이 상실되지 않을 때, 예술은 비로소 상품화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18.

황산곡에 따르면, 독서의 목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은 인간의 용모에 매력을 더하고 그 담화에 풍미를 주는 것밖에 없다.

 

19.

중국에서는 ‘각고면려(刻苦勉勵)’라 하여 학생을 격려한다. 옛날 이 각고면려를 한 유명한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밤에 독서를 하다가 졸리면 송곳으로 정강이를 찔렀다. 또 어떤 학자는 밤중에 책을 읽을 때 하녀를 옆에 세워두고는 졸면 깨우도록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책을 펼치고 선철(先哲)이 자기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잠이 오면 지체 말고 침상에 들어가 자야 한다.

 

20.

마음의 평화란 여러분이 최악의 것을 받아들였을 때의 정신상태를 말한다.

 

21.

내 안에 있는 이교도가 긍지와 겸허함 때문에, 즉 기분상의 긍지와 이지적인 겸허함 때문에 기독교를 거절한 것이다.…(중략)…기분상의 긍지가 왜 하나의 동기가 되었느냐 하면, 우리가 근엄하고 단정한 신사숙녀로서 행동하는 데는 인간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중략)…다음에 겸허함, 이지적인 겸허함이 기독교를 배격하게 한 더 큰 동기가 되었다는 것은 간단한 이유에서다. 즉 우주에서 극히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한 태양계, 또 그 한 조각에 불과한 지구, 그리고 또 그보다 극미한 한 조각인 개개의 인간이 대조물주의 눈에 몹시 중요한 존재로 비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문학상의 지식으로 이미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뻔뻔스러움과 자만심, 그리고 오만함은 나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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