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은 무얼 좀 분명히 해두고 싶어할수록 더욱 깊어져가게 마련인 것.


2.
운동 시합이란 자주 개인의 사소한 대립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어떤 맹목적인 집단 의지 같은 것을 형성하는 데엔 큰 공헌을 하는 수가 있다. 거대하고 맹목적인 집단 의지 속에 잡다한 개인의 불평이나 의식의 편향 같은 건 일거에 깨끗이 해소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끔 특정 집단의 작은 불평이나 이해 갈등을 해소시키고 그 집단에게 목적하는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엉뚱한 스포츠 행사를 이용하는 수가 있다.


3.
하지만 주정수 시대에도 명분이나 동기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정수에게도 더할 수 없는 동기와 훌륭한 명분이 있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 명분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명분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이었다. 게다가 명분이라는 건 언제나 힘있는 자의 차지였다.


4.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5.
“자유라는 거 그거 말대로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도 없지. 제 가고 싶은 대로 맘대로 가고, 제 살고 싶은 대로 말대로 살고, 제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것보다 우리 같은 문둥이들에게 더 소망스런 바람이 있을 수 있겠나. 하지만 원장도 알다시피 우리한테 언제 한번 그 자유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있었나. 아옹다옹 언제나 싸움질만 되풀이되어왔지. 핍박과 원망과 의심의 버릇만을 길들여왔지.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 또한 당연한 노릇인지도 모르는 일이야. 자유라는 게 원래가 그런 것이었거든. 자유라는 거 누가 가만 앉아 있어도 우리 문둥이들한테 가져다 바쳐주는 게 아닌 터에, 어차피 그건 제 힘으로 빼앗아 가져야 하는 거 아니던가 이 말씀야. 빼앗아 가지려니 싸움질을 해야 하고, 싸움질을 하다 보니 그사이에 자연 의심과 원망과 미움을 익히게 마련이지.…(이하 생략)…”


6.
언젠가도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 내일의 선택이 열려 있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7.
운명을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절대의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8.
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도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


9.
저의 경험에 따른다면 어떤 형태의 울타리 속에 격리된 사회의 질서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 성원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개는 그 사회를 지배하고 대표하는 몇몇 상층부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이며, 이 섬에 관한 한 모든 원장들의 시대가 그것을 똑똑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0.
내일의 꿈을 오늘 미리 가불해주고, 그 가상의 현실을 당장 오늘의 그것으로 착각하고 즐기게 하여 진짜 현실의 갈등을 잠재워버리는 말의 요술은 이 섬을 다스려온 사람들의 해묵은 수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오늘의 삶이라는 것이 늘 힘겹고 짜증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극히 손쉽고 효과적인 지배술의 하나였습니다.



-이상, 소설 본문 중에서




11.
그의 천국론은 이상욱과 황장로에 의해 섬세한 수정을 받는 것이다. 그 수정에 있어서, 황장로는 굴종의 의미를, 이상욱은 감시와 비판의 의미를, 각각 조백헌에게 알려준다. 피지배자의 화해적 굴종은 지배자가 “일신을 위해서는 물 한 모금 사사로이 취하지 않을 것임을” “일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공훈이나 명예도 좇지 않을 것이며,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우상도 만들지 않을 것임을” 선언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감시와 비판은 그것이 정말로 행해지고 있는가 않는가를 따지는 것이라는 것을, 조백헌은 이상욱과 황장로에게서 배운다. 그때 화해적 굴종은 사랑이 되고 감시와 비판은 자유가 된다.


12.
이상욱의 경련적인 자기 감시, 그 어느 것에도 완전히 편들지 못하는 중립주의(그것은 동양의 중용주의와 완전히 다른, 극단적으로 자기의 위치를 지키려는 중립주의이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독선주의는 그 나름의 기능을 갖고 있다. 하나는 현상에 만족하여 무의식적으로 현상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각성자의 기능이며, 또 하나는 현실 개조 의사가 감추고 있는 영웅주의, 유토피아를 상정하여 모든 사람을 그곳으로 이끌어가려는 힘의 행사 속에 감추어져 있을지 모르는 힘의 횡포를 감시하는 감시자의 기능이다. 그 기능이야말로 사실은 진보적 예술이 맡고 있는 기능 중의 하나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현대 예술이 보여주어야 할 인간 중의 하나인 것이다.



-11, 12 김현의 해설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 중에서





13.
그렇다. 조백헌 원장의 소설적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일관되게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계 혹은 타인과 치열하게 만나는 과정을 경유하면서 스스로 그 신념의 허위를 깨닫고 교정하며 재구성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 점에서 조원장은 흔히 소설 이론에서 말하는 ‘발전적 성격’의 인물에 속하거니와, 바로 그것이 주인공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만든다.


-정과리의 해설 ‘모범적 통치에서 상호 인정으로, 상호 인정에서 하나됨으로-‘조백헌’이라는 인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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