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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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해리성 인격장애자인 '이해리'와 위선적인 카톨릭 신부 '백진우'로 대표되는 불의한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낸 악의 카르텔을 포착하고 이에 맞서고자하는 약자들의 투쟁을 담은 이야기다. 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종교라는 성역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존재를 파헤치는 과정이 자못 충격적이다. <도가니>와 마찬가지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무진에 펼쳐진 안개는 진실이 은폐되고 거짓의 치부가 가려져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어버린 현실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안개는 손에 잡히진 않지만 우리 곁에 뚜렷이 존재하면서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곳까지 진실을 질식시키고 악이 번성하게 만든다. 안개는 모든 것을 가리는 환하고 하얀 어둠이다. (1112)

 

카프카는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악은 항상 선을 의식하기에 선을 알고 있지만, 선은 악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악을 모른다는 것이다. 선은 상식의 영역에서 옳은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상식의 악의 세계를 알 필요가 없지만, 악은 비상식의 영역에 위치하면서 상식의 가면을 쓰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선을 의식하게 된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서 보면 밝은 곳의 세세한 부분이 잘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카프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선도 악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동기적인 측면에서 선은 악을 알 필요가 없지만 악은 선을 필연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도 악을 알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선은 상식의 기준으로 내린 자신의 결정이 악을 번성하게 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고 악에 대해 무지하다. 이에 반해 비상식의 영역에 위치한 악은 선을 알고 이를 이용하면서 수더분한 얼굴과 선한 목소리로, 또한 자기 합리화라는 도구로서 자신을 포장할 정도로 치밀하고 영악하다.

 

안타깝게도 삶은 상식만으로 구성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을 악은 이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알프레드 델프가 '악이 역사 속에서 번창했던 이유를 선이 삶에 대한 시험의 극복을 삶의 한복판이 아닌 그 주변에서 행하기 때문이라고 한 것'(280)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리>를 읽으며 어쩌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가시화된 폭력과,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자신의 상처에 갇혀 발동되는 이기적 방어기제, 행동하지 않는 지식 등이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기기만과 진실에 대한 외면이, 그 오만한 태도와 피상적 단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잔디에서 하나둘씩 싹이 돋아나듯, 작은 실개천이 하나둘 모여들듯, 어느 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192)의 도래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인간이 쌓은 언어들, 이념들 혹은 평가들은 그저 허구에 불과했다.'(2273)는 작가의 말처럼 이념이라는 것은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인 인간의 산물이기에 본질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개라는 환하고 하얀 어둠에 둘러싸여 있을 때 인간은 해가 솟고 바람이 불어 세상이 스스로 정화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안개 속에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깨어 있는 비판의식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였을 때 침묵하지 않고 여기 악이 있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이다. '안개를 뚫고 나올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은 소리이며, 그 소리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을 통해야 한다.'는 소설 속 이나의 말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인간 스스로 빛을 내고 바람을 일으켜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201610월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20174월까지 전국 150여개 시군으로, 전 세계 31개국 71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1,700만여 개의 빛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며 찬란하게 빛났다. 독일의 에버트 재단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우리 국민을 2017'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사례였다.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며, 악을 극복하게 하는 건 두려움을 떨쳐내고 이루어낸 신뢰와 연대이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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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 미드나잇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를 위해 하루 15분 차분한 글쓰기
단디 편집부 지음 / 단디(도서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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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미드나잇>은 시, 명언, 소설 등을 다양한 그림과 같이 구성하여 독자들이 자신만의 필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책의 성격상 필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독자들은 여기에 구속될 필요는 전혀 없다. 차분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한획, 한획 그어가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필체가 완성되어갈 것이다. 만년필을 처음 사용하거나 오랜만에 사용하는 사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서 선 긋기 페이지도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이 있는 그림 위에 선 긋기를 하다 보면 나만의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채색 여부의 선택도 독자들의 자유다.

 

 

 

필기구가 왜 만년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도 책에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만년필은 아름다운 손글씨에 최적화된 필기구로 정의된다. 그 이유는 만년필은 잡는 법은 볼펜과 비슷하지만, 붓글씨를 쓰는 것처럼 필체수정에 적합하다는 점, 펜촉의 필압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필압과 촉압의 강약을 고려하며 글씨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 글씨를 쓸 때도 펜촉의 리듬과 탄력을 살려서 쓰기 때문에 쓰는 사람의 감정과 의지가 나타나는 필기구라는 점을 들고 있다. 사용자의 마음과 감정상태가 필체에 그대로 나온다는 것, 정말 매력적인 필기구가 아닐까? 이러한 만년필 사용을 위한 팁과 펜촉 세척 등 관리방법에 대한 설명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책은 Part1 한글쓰기, Part2 영문쓰기, Part3 한문쓰기의 3가지 Part로 이루어져 있다.

 

 

 

 

Part1의 한글쓰기는 다양한 명화들과 명언과 소설문구, 시구절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 마음 안에 정답이 있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언은 고흐의 자화상과 같이 구성되어 있고, 김소월의 시 <산유화>와 디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내용에 걸맞는 아름다운 그림과 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독서에 어찌 장소를 택해서 하랴, 향리에 있거나 서울에 있거나, 오직 뜻을 세움이 어떠한가에 있을 따름이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퇴계 이황이 아들에게 남긴 편지 문구를 필사하면서는 학자로서의 이황이 아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로서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을 울렸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유>는 원고지 형식을 차용하여 독자들이 다양한 형식에 자신의 필체를 적용시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Part2의 영문쓰기는 영문 캘리그래피 (calligraphy, 손으로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의 기초를 익힐 수 있는 알파벳 필사 연습 페이지가 영문필체를 연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볍게 따라 써보면서 영문 필사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영어명문을 따라 써보는 동시에 이에 대한 해석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Part3의 한문쓰기는 무엇보다 감각적인 페이지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이규보의 <술을 보낸 벗에게 사례하다>나 강세황의 <노상소견>, 권필의 <뚝뚝> 등의 페이지 구성은 한시와 그 배경이 되는 그림의 조화가 하나의 소장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구성되어 있다.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순함이야말로 궁극적인 세련됨이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는 말을 했다. 바쁜 하루를 마감한 저녁, 잠시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 소설 속 글쓰기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여기 여유로운 마음으로 따라 쓰며 그리는 라이팅 & 드로잉 노트가 있다. 준비할 것은 만년필 한 자루와 진정한 나와 마주할 시간뿐이다. 행복은 결코 종착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길에 펼쳐져 있다고 로이 굿먼이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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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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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 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모두 지난 후에는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 신해철, 70년대에 바침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는 소설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에서 예술과 권력의 충돌로 점철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묘사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예술과 문화의 영역마저 재단 받으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당국의 일방적인 오해로 인해 하루 아침에 형식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극도의 불안 속에서 음악가로서의 예술적 자유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존경하는 동료 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를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 매도할 것을 강요 받았고, 말년에는 자신의 신념까지 부정하면서 그의 삶에 수많은 상처를 남긴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나는 시대의 소음을 읽으며, 마왕 신해철을 생각했다. 그 이유는 내가 시대의 소음을 처음 접했던 시점이 그의 기일인 10/27 무렵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시대의 소음에 맞서 문화는 물론 사회, 정치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데 두려워하지 않았던 음악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해철은 나에게 음악인로서 처음 다가왔다. 지금도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인용될 정도로 강렬했던 데뷔의 순간은 당시 어린 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데뷔 후 무한궤도와 솔로 활동들 그리고 밴드 넥스트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내 청소년 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넥스트의 전성기는 락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기 시작한 내 중고등학교 시절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콘서트 티켓도 넥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아티스트로서 그가 제공하는 음악만이 아닌 더 큰 차원의 음악이라는 넓은 세계로 인도해 준 초대자인 동시에 안내자이기도 했다. 고스트스테이션의 DJ로서 그는 이제 막 음악이라는 세계를 탐구해가는 내게 지도였고 네비게이션이었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이전이었던 시기였고, 많은 음반을 사기엔 금전적으로 많이 부족했던 학생신분으로서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최신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창구였고 동시에 좋은 음악을 선별하고 음악관을 확립하는데 지침이 되는 바이블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강헌은 예술가는 예술로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그러한 주장은 예술을 신비화하여 현실로부터 소외시키려는 생각 보다도 더 불순한 사고임을 지적하고 있다. (p. 159) 나도 예술가는 그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영역 안에서는 자유로운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예술의 영역 안에서 마저도 예술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음악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음악이 시대의 소음에 맞서는 역사의 속삭임 이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존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권력의 폭력 앞에서 그들은 예술가 이전의 한 명의 고독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쇼스타코비치가 존경한 스트라빈스키는 혁명후의 러시아에 등을 지고 서방세계에 건너와 미국시민으로 죽었다. 그의 동료 프로코피에프는 서방세계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탄압과 굴욕 속에서 죽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를 떠나지 않고 러시아에서 성장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당신이 예술가라면 예술과 권력의 불협화음이 빚어 낸 시대의 소음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당신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비판하고 지적할 수 있을까?

 

 

 

내가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신해철은 개인의 자유, 그리고 그 한 사람 한사람의 행복만이 인생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 사람이며, 자신이 가진 모든 무기를 동원해 그것을 위협하고 훼손하는 모든 적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고자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p. 199) 그는 예술가로서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현실의 영역에서도 자신과 공동체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알려준 아주 멋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마왕 신해철 (p. 444)

 

 

 

락키드 출신답게 내 젊은 시절의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마왕 신해철에 바치는 헌사도 락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언 헌터의 노래 'Old records never di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 가끔, 인생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하지만 음악은 어디에나 있어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말이죠."

(Sometimes you realize That there is an end to life.

But music's something in the air. Old records never die.)

 

 

 

시대와 기술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 ‘New Experiment Team’이라는 팀명에서도 드러나듯이 락과 밴드음악 포맷 뿐만이 아닌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영화음악, 재즈 등을 넘나드는 도전정신은 아티스트로서 그가 가진 장점이다. 그가 남긴 30여장의 디스코그래피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Adios! 내 어린 시절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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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는 아이들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23가지 방법
나카무라 슈지 지음, 조수기 옮김 / 양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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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의 부제 『 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는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23가지 방법 』에서 알 수 있듯이 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가 쓴 책이다. 책의 제목 『 아이들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교육을 책임의 문제로 본다면 교육의 당사자는 아이들의 삶과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질 수도 없는 제도권 교육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이와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접하는 사람은 부모기 때문에 아이의 개성과 자질,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부모일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메인스트림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주류는 아니며 교육에 있어서도 비전문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부모와 일본의 제도권 교육의 수혜자로서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겪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교육 개혁을 위한 23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세계가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포기한 질화갈륨으로 청색 LED 개발에 성공하여 노벨상까지 수상한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가망 없는 아이는 없고 가망 없다고 보는 편견과 가망 없게 만드는 교육제도가 더 문제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과학의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빗대어 각양각색으로 개성과 꿈이 다른 아이들을 한가지 잣대로만 평가하고 교육하는데서 교육의 근원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한국에서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역자는 한국과 일본 교육현실의 괴리 문제와 대학입시제도 철폐와 같은 저자의 과격한 주장을 독자들이 한국적 현실에서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얼마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 기사단장 죽이기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저자 나카무라 슈지의 말처럼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 깊숙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부모라면 아이들에게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부모가 아닐까? 한국에서 자녀교육에 성공하기 위한 3대 요소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속설이 있다. 어쩌면 한국의 사(私)교육이 성공하지 못하고 사(邪)교육으로 전락하는 건 자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 때문 아닐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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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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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위해 막 집을 나섰을 때 아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의 친한 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었다. 자식들이 임종도 지키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그 자신 조차 예상하지 못한 이별 앞에서 먼저 떠난 이는 삶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했다. 남겨진 이들은 되돌릴 수도, 잊을 수도, 없던 일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준비 없는 이별의 슬픔을 견디며 삶을 살아 갈 것이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의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있다. 이우는 가장 소중한 친구 태이를 사고로 잃었고, 이삐 할미는 세 명의 아들을 바다에서 차례로 잃었다. 천국은 도서관일 거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믿는 정모는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판도는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이들의 슬픔의 중심에는 상실과 결핍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터무니 없는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 된다는 (p.130) 소설 속 정모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결핍의 경험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든다. 하지만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엔 동굴이 하나 있다. 만 번 또 만 번의 파도가 저 동굴을 만들었겠지. 넌 모르겠지만 내 안에 저만한 구멍이 있어. 내 몸보다 더 커. 휑하고 휑해서 나는 가끔 내가 없는 것 같아. 그 구멍이 언제 생겼는지. 너한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무리 네가 못 듣는다 해도. 구멍이 생긴 순간, 그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거든. (p. 136)

 

아직도 태이의 크레파스처럼 쨍한 파랑색 베스파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 같고, 바다에서 눈을 감으면 태이의 숨결이 묽은 콘크리트 반죽처럼 몸을 휘감는다는 이우의 고백처럼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눈부신 자연을,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한다.

 

먼 하늘에 별 몇 개가 가까스로 돋아났다. 저 별빛은 지푸라기로 변한 누군가가 놓쳐버린 행복의 순간일 수도 있고 스쳐갔으나 잡지 못한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며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지상의 음악일 수도. (p.194)

 

그들은 눈 앞에서 반짝이는 저 별이 누군가의 행복했던 과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래에 들을 수 있을지 모를 지상의 음악 같기도 하지만 결코 현재의 내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게 슬픔은 그들을 하나의 섬으로 만든다. 이우가 언급한 슬픔은 깎다 만 사과라는 시 구절처럼 그들 각자는 맑은 슬픔, 헛헛한 슬픔, 차가운 슬픔, 말간 슬픔 등을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그들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그들은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저기 섬과 섬 사이. 유난히 빛나는 한점. 거기 어디쯤 네가 있는 듯하다. (p. 105)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슬픔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슬픔의 따뜻함에 대해 긍정하고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슬픔이라는 그릇에 담긴 따뜻함이라면 그 힘으로 당분간은 팔을 돌리며 달려갈 수 있지 않겠나 (p. 135)

 

소설 속 정모의 말처럼 그들은 소금꽃을 닮았다. 짜디짠 기운으로 제 슬픔을 절이다 못해 하얗게 엉겨드는섬을 떠났으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출발했으나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친 삶의 흔적들과 슬픔을 간직한 채 섬에서 만난다.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했던 건 말 못하는 판도가 이우의 손바닥에 적었던 따스함, 시력을 잃어가는 정모를 위한 이우의 약속이었다.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내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 타인의 온기를 느낄수 있다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위로가 있을까?

 

그냥 소금이잖아!, 꽃이 별거냐. 징하게 모인 기운이 터져나오면 그게 꽃이다.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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