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안개 속으로 잠복해 들어간 정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태양 같은 존재를 위해’...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런 자세로 일했었어...’ (2권 123쪽)


<골든아워>의 저자 이국종 교수는 빛 바랜 수첩에서 전공의 시절 자신이 필사해놓은 문장을 보며 의사로서의 초심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저자가 언급한 안개는 진실이 가려진 채 불의가 행해지는, 질서와 혼돈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을 의미할 것이다. 안개는 손에 잡히진 않지만 우리 곁에 뚜렷이 존재하면서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곳까지 퍼져나가 진실을 질식시킨다. 2018년, 그 안개는 이제 걷혀졌을까?


2018년 10월 이국종 교수는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닥터헬기 운용에 대한) 문제점들이 1992년에도 똑같았고요. 한발짝도 못나갑니다.” 출근길에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20여년전 저자가 필사한 문장을 떠올렸다.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의 물질로 대기를 부유한다. 하지만 눈으로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미세먼지의 폐해는 더 파괴적이고 치명적이다. 미세먼지는 호흡기를 거쳐 폐 등에 침투하거나 혈중으로 유입되어 뇌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하고 사망률을 증가시킨다.


한국의 환자 이송 시간은 평균 4시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 지역과 다르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194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1권 52쪽)


한국사회의 안개는 걷혀지지 않고,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더 위협적인 미세먼지로 퇴보한건 아닐까?


중증외상은 국민의 3대 사망 원인 중 하나이며, 특히 40대 이전 젊은층의 가장 큰 사망원인으로 노동자, 농민과 같은 블루칼라 계급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중증외상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의료공백 없이 환자가 의료적 시술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골든 아워’이며, 이는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그들을 살리기 위해 절박하게 지켜내야 할 60분이다.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데 필요한 것은 한명의 영웅이 아니라, 골든 아워를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책은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열악해서 길에서 허비되는 시간과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삶을 건져내기 위해 노력해 온 이국종 교수와 팀원들의 20여년 동안의 분투기이다.


얼마전 이국종 교수의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는 혼돈과 질서의 기로에 선 경계인으로 삶을 살아간다. 안정된 삶 속에서도 갑작스럽게 사고는 발생하고,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안타까운 생명은 스러져간다. 가난해도,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쓸쓸하게 생명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상환자를 위한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 죽음은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는 않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였을때 극복이 가능하게 하는 주위의 도움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가 ‘원칙’과 ‘표준’을 지향하는 시스템 구축을 거듭 주장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이국종 교수에게 ‘원칙’은 어떤 환자라도 조건은 같고 환자는 언제나 상황에 우선한다는 것, 환자에게 가능한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가야 생존율이 높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을 깎아내며 추진력을 얻는 헬리곱터처럼 이국종 교수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며,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 표준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팀원들의 삶을 깎아내며 버티고 있었다.


점점 짙어지는 안개와 미세먼지 농도처럼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태양이 비추고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고 세상이 스스로 정화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고 바람을 일으켜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개와 미세먼지로 뒤덮인 현실에서 표준 외상센터 시스템 구축이라는 좌표까지 도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이라는 불빛이다. 또한 현장을 위한 정책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지속적 지원과 관심’이라는 바람이다.


최근 들어 의료행위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는 요양급여 고시가 개정되고, 경기도에 24시간 닥터헬기가 도입되는 등 희망적인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봄은 형형색색의 꽃으로 구성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과 배려와 온정의 시민의식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모습일 것이다. 더이상 봄날이 그에게 피와 죽음의 바람이 부는 계절 (1권 18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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