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사일런스
외이뒤르 아바 올라프스도티르 지음, 양영란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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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이 궤도를 이탈하였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소설 <호텔 사일런스>에서 49세의 평범한 남자 요나스는 삶을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고,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 님페아도 자신의 핏줄이 아님이 밝혀진다. 그런 이유로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고 한다. 하지만 죽은 후 자신의 모습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발견하였을 때 그들이 받을 충격을 고려하여 죽음을 위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그가 선택한 곳은 전쟁이 막 끝나 죽음이 만연했던 곳,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전 중에 있는 나라다. 그는 천장에 밧줄을 달아 자살할 생각으로 ‘공구함’을 챙겨 여행을 떠난다.

그는 목적지인 호텔 사일런스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전쟁의 참극을 온몸으로 겪은 호텔의 직원들 메이, 피피, 아담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자살을 위해 준비해간 도구로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고쳐주면서, 서로를 위로하게 되고, 삶을 이어갈 용기를 서서히 회복하게 된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의욕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이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배꼽은 태어날 때 탯줄이 떨어지면서 생긴 흉터로,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을 자름으로써 어머니 몸과 아기 사이의 연결을 끊는다. (25)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삶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재앙 앞에서 두 눈을 꼭 감고 모든 게 순조로운 것처럼 사는 것 같은 사람도 실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삶의 형태를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전쟁의 참상을 겪은 메이는 말한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거예요. (261쪽)

절망 속에서 헤매던 요나스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되살린 것은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의 반증이다. 호텔 사일런스에 찾아온 몇 안되는 손님 중에는 전쟁의 혼란기를 틈타 한몫 잡으려는 남자도 있었다. 그는 요나스를 보며 시소한 온정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정말로 ‘이 나라 전체를 땜질하듯 수리할 작정이오? 기껏 드릴 하나와 알량한 스카치테이프만 가지고 말이오? 산산조각 난 나라를 정말로 다시 붙일 수 있다고 믿느냔 말이오? 세상은 고작 스카치테이프만으로 좋아질 수 없소. (264쪽)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재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나스의 엄마는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도 세상을 향한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엄마가 보청기를 조절하려 애쓰는 이유는 아들 요나스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과 같은 파장 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이고 잠시나마 세상의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이다.33쪽)

여자가 별안간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손을 내민다. “메이”
나도 여자쪽으로 손을 내민다. “요나스”
우리는 이제 개인적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가 된다. 이 말은 곧 여자가 근무하는 동안에는 내가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173쪽)

모든 삶의 희망을 버리고 절망의 땅에 죽음을 구하고자 찾아온 요나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진다.

아들과 동생을 데리고 어떻게든 비 오듯 쏟아지는 폭탄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이 젊은 여자에게 나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이 여자와 그의 동생에게 천장에 매달린 나를 끌어내리는 일까지 맡길 수는 없다.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먼지와 폐허뿐인 상황에서, 나의 불행은 아무리 후하게 봐주어도 하찮기만 하다.“(177쪽)

 

작가는 독자에게 전하는 말에서 침묵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침묵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묻어나는 진정성 아닐까? 나도 다른 이의 삶을 응원하며 지지를 보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침묵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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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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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으로 잠복해 들어간 정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태양 같은 존재를 위해’...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런 자세로 일했었어...’ (2권 123쪽)


<골든아워>의 저자 이국종 교수는 빛 바랜 수첩에서 전공의 시절 자신이 필사해놓은 문장을 보며 의사로서의 초심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저자가 언급한 안개는 진실이 가려진 채 불의가 행해지는, 질서와 혼돈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을 의미할 것이다. 안개는 손에 잡히진 않지만 우리 곁에 뚜렷이 존재하면서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곳까지 퍼져나가 진실을 질식시킨다. 2018년, 그 안개는 이제 걷혀졌을까?


2018년 10월 이국종 교수는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닥터헬기 운용에 대한) 문제점들이 1992년에도 똑같았고요. 한발짝도 못나갑니다.” 출근길에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20여년전 저자가 필사한 문장을 떠올렸다.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의 물질로 대기를 부유한다. 하지만 눈으로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미세먼지의 폐해는 더 파괴적이고 치명적이다. 미세먼지는 호흡기를 거쳐 폐 등에 침투하거나 혈중으로 유입되어 뇌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하고 사망률을 증가시킨다.


한국의 환자 이송 시간은 평균 4시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 지역과 다르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194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1권 52쪽)


한국사회의 안개는 걷혀지지 않고,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더 위협적인 미세먼지로 퇴보한건 아닐까?


중증외상은 국민의 3대 사망 원인 중 하나이며, 특히 40대 이전 젊은층의 가장 큰 사망원인으로 노동자, 농민과 같은 블루칼라 계급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중증외상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의료공백 없이 환자가 의료적 시술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골든 아워’이며, 이는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그들을 살리기 위해 절박하게 지켜내야 할 60분이다.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데 필요한 것은 한명의 영웅이 아니라, 골든 아워를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책은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열악해서 길에서 허비되는 시간과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삶을 건져내기 위해 노력해 온 이국종 교수와 팀원들의 20여년 동안의 분투기이다.


얼마전 이국종 교수의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는 혼돈과 질서의 기로에 선 경계인으로 삶을 살아간다. 안정된 삶 속에서도 갑작스럽게 사고는 발생하고,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안타까운 생명은 스러져간다. 가난해도,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쓸쓸하게 생명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상환자를 위한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 죽음은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는 않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였을때 극복이 가능하게 하는 주위의 도움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가 ‘원칙’과 ‘표준’을 지향하는 시스템 구축을 거듭 주장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이국종 교수에게 ‘원칙’은 어떤 환자라도 조건은 같고 환자는 언제나 상황에 우선한다는 것, 환자에게 가능한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가야 생존율이 높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을 깎아내며 추진력을 얻는 헬리곱터처럼 이국종 교수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며,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 표준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팀원들의 삶을 깎아내며 버티고 있었다.


점점 짙어지는 안개와 미세먼지 농도처럼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태양이 비추고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고 세상이 스스로 정화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고 바람을 일으켜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개와 미세먼지로 뒤덮인 현실에서 표준 외상센터 시스템 구축이라는 좌표까지 도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이라는 불빛이다. 또한 현장을 위한 정책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지속적 지원과 관심’이라는 바람이다.


최근 들어 의료행위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는 요양급여 고시가 개정되고, 경기도에 24시간 닥터헬기가 도입되는 등 희망적인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봄은 형형색색의 꽃으로 구성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과 배려와 온정의 시민의식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모습일 것이다. 더이상 봄날이 그에게 피와 죽음의 바람이 부는 계절 (1권 18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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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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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끝날진 모르겠어. 내 진짜 위치를 모르겠어.
그녀는 어둠에게 말했다
.
하지만 그녀가 받은 유일한 답은 더 깊은 어둠뿐이었다
.
하지만 위층에는 빛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시 밖으로 나가면 분명 빛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빛이 없다면
,
세상에 남는 것이 밤뿐이고 빠져나갈 길이 없다면
?
그렇다면 그녀는 밤과 친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 495쪽

 

<우리가 추락한 이유><미스틱 리버>, <살인자들의 섬>, <운명의 날>의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데니스 루헤인은 애드거 상, 앤소니 상, 배리 상 등 수많은 저명한 추리 문학상을 수상한, 범죄 소설의 대가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가 그의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여성 시점으로 서술되는 루헤인의 첫 로맨틱 스릴러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출간 전부터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치열한 판권 경쟁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드림웍스에서 판권을 획득해 영화화를 진행중이고, 데니스 루헤인이 직접 각색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루헤인은 이번 소설에서 어린 시절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주인공 레이철이 살인, 사기, 복수, 탐욕 등이 뒤섞인 사건에 휘말리며 거침없이 폭주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레이철의 삶을 추적하는 전반부와 반전을 내포하고 있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는 남편을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레이철의 독백을 도입으로 해서 그녀의 삶과 가족에 대한  대한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성격 파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멋대로인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와 생이별한 레이철, 그녀는 어머니와의 끝없는 반목 속에서 생부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어만 간다. 그녀가 대학생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레이철은 물려받은 적지 않은 유산으로 생부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제임스'라는 이름과 과거의 아버지의 직업, 그리고 어릴적 그녀의 곁을 떠나던 모습이 전부였다. 의뢰를 받은 사설 조사원마저도 친부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돈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의뢰를 거절한다. 낙담한 레이철은 이후에도 여러 노력을 거듭하지만 끝내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

수년이 흐른 후, 레이철은 자신의 재능을 살려 언론사에서 기자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뜻밖에 친부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고 수소문 끝에, 드디어 제임스란 이름의 남자를 찾아낸다. 레이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제임스는 그녀를 따뜻하게 반기지만, 자신이 레이철의 생부가 아님을 알려준다. 어머니의 외유로 인해 자신이 태어났음을 알게 된 레이철은 절망에 이르고, 급기야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친부를 찾다가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과 기자로서 겪게 된 일련의 사건 때문에 레이철은 극심한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집안에만 틀어박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친부를 찾는 것을 의뢰했던 사설 조사원 브라이언과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그와 결혼 후 2년 동안 남편의 한결같은 헌신과 노력으로 레이철은 트라우마를 조금씩 극복해 나간다.

 

하지만 연인과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이 시점부터 소설의 전반부는 정리되고 반전이 내포되어 있는 후반부가 시작된ㄷ. 어느 비오는 날,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나온 거리에서 해외 출장을 떠났을 남편 브라이언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레이철,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불안감과 의혹에 남편 브라이언의 정체를 캐내려 그의 주변을 탐문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 그리고 살인과 폭력, 속임수 등 하나씩 남편의 정체를 알아가며 레이철은 돌아올 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루헤인이 처음으로 시도한 로맨틱 스릴러의 결말을 어떻게 될까? 직접 책을 읽고 확인해보시길

#데니스루헤인, #황금가지, #우리가추락한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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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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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Too Old to Rock and Roll!! (락앤롤을 하기에 결코 늙지 않았다!!)
 
영화 '로큰롤 인생'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노인 밴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평균나이 81세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엔 다소 많은 나이의 노인들이마음은 청춘이라는 이름의 밴드에 모여 가사를 까먹고 박자를 놓치면서도 세계적인 락밴드의 곡을 열정적으로 부르는 모습은 당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슷한 평균연령과 합창단 출신이라는 이력 그리고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메르타 할머니 일행은영앳하트밴드의 멤버를 연상시킨다. ‘영앳하트밴드에 메르타 할머니와 같은 리더가 있었다면 그들도 소설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

 


전 시리즈에서 은행과 박물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까지 털었던 메르타 할머니 일행은은행 터는 일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메르타 할머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에서는 쓰레기 수거차와 진공 파이프를 이용한 통쾌한 은행털이극으로 그 포문을 열고 있다. 우리가 메르타 할머니 일행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미 은퇴할 나이를 넘어선 노인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에 살고있는 노인들이 그들이 직면한 각종 사회 부조리를 통쾌하게 비꼬고 저항하면서 정치와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에게 잘 모른다는 이유로 사회의 부정과 비리에 눈감지 말라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
 

 


또한 그들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한 명확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돈은 모두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지만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33) 는 메르타 할머니의 말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메르타 일행은 모든 구성원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작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빈티지빌이나환희마을’, ‘회색 표범들이 사는 동굴로 이름을 붙인 그곳은 노인들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남은 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메르타 할머니는 그 곳을 만드는 일을 연인과의 결혼 보다도 우선순위로 두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지만 원칙을 세워 일정 수준의 선을 지키고 있다. 범죄의 대상을 부패한 자본가로 정하는 것,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도주시 길거리에 타이어 펑크용 쇠못을 뿌리지 않는 것, 차량을 불태우거나 인질극을 벌이지 않는 것 등 그들이 정한 원칙은 범죄 후 도주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사회 개혁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억울하고 불필요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그들의 의지의 표명 아닐까?

 

 


이번 시리즈의 백미는 소설의 중후반부 5억 크로나 ( 625억원)의 초호화 요트를 훔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앞에서 열거한 메르타 할머니 열풍의 원인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 그들은 은행털이에 몇 십번 이상 성공해야 모을 수 있는 부를 축적한 요트의 주인이 사기꾼이자 조세 포탈범이라는 것을 포착하고 지중해 생트로페에 있는 그의 요트를 훔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또한 탈취한 요트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달러를 굴리면서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 올레크와 보리스를 만나게 된다. 요트를 헐값에 갈취하려는 그들과 메르타 일행의 싸움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연륜을 기반으로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어느새 그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
 
모지스 할머니가 자전 에세이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에 남긴 말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화가를 꿈꿨지만 삶의 무게로 인해 76세가 되어서야 붓을 잡았고, 10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때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으며,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었다. 그녀는 그녀가 살아낸 삶과 삶의 순간순간을 표현한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누구나 다른 삶의 밀도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소설 속 그들의 삶 보다 높은 밀도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음 시리즈에서는 표범동굴에서 회색표범이 되어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때는 메르타와 천재의 사랑도 완결되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게 될 당신의 삶에도 그들처럼 열정과 유쾌함이 깃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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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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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1999 4월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고통과 인내로 점철된 고3 시절을 지나 꿈에 그리던 대학 캠퍼스의 낭만과 여유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의 내게 이 사건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유난히 싱그럽게 느껴졌던 캠퍼스라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살인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그 대조적인 상황적 간극이 내게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에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연구실 문 앞에 놓여진 신문 1면의 조승희의 사진과 사건에 대한 헤드라인을 보고 받은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se)'...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타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지켜보면서 내가 주목하게 된 용어이다. '샤덴'은 상처를 주는것, '프로이데'는 환희라는 뜻으로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줌으로서 느끼는 환희를 의미한다. 총기난사사건의 범인들처럼 우리는 삶의 어느 한 순간에 세상의 멸망을 꿈꾸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부정적 파괴욕구를 경험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나의 행위로 인해 타인이 처하게 되는 고난적 상황을 기뻐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일까? 사회를 향해 날이 서 있는 가시적 폭력을 간접 경험하면서 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무해한 존재』의 주인공들은 지나온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 관계의 '형성'이 아닌 '단절'이 남긴 균열의 흔적들을 세월이 지나 되새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가시적이고 의도된 폭력이 아닌 가시화되지 않은 무의식적인 폭력을 조명한다.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어주는 진희와 언제나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주나가 있었던 학창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행복은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깨닫는다. (『고백』, 196) 또한, 자신이 눈빛으로서 주나가 진희에게 했던 말 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애써 부정해 오던 잔인한 진실을 인정하게 된다. (『고백』, 207) 모래는 공무의 사진 속 어느 순간처럼 영원을 꿈꾸지만 (『모래로 지은 집』, 131), 그들의 관계는 프레임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진 속 모래의 모습처럼 불안정했고, 결국 영원이 아닌 멈춤과 단절을 향해 나아간다. 혜인은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또한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관계가 남긴 흔적을 통해 깨닫는다. (『손길』, 226)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공무와 모래, 나비가 함께 길고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 서로의 섬에 발을 내디뎠 듯이 (『모래로 지은 집』, 181)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이로움만을 건네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영원히 굴러가는 구와 같은 삶은 바람직한 삶일까? 이경은 수이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너에겐 아무 잘못이 없어. 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야 (『그 여름』, 49) 이경은 관계의 미숙함으로 인한 상실의 경험을 훗날 아프게 회고하지만, 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그 말만큼은 어리숙했던 시절의 그녀도 상대에게 위안이 아닌 상처를 주는 말임을 알았다. 랄도는 비록 부정적인 방향이지만 자신이 엄마를 아직 요동치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런 식으로라도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며 관계에 아직도 피가 흐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기뻐한다. (『아치디에서』, 248)


어쩌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가시화된 폭력과,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와 배려로 포장된 무례, 자기기만과 이기적 방어기제 등이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상처와 균열은 삶을 영위하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부정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무해한 존재였다는 자기기만과 진실에 대한 외면이, 그 오만한 태도와 피상적 단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세상의 진화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작년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작년부터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또한, 가시적인 폭력의 파괴력을 넘어서는 비가시적 폭력의 힘을, 그 지난한 세월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은 편견과 관습의 실재를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간은 의도의 유무를 떠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상처와 균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일 수 밖에 없다. 함께라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흩어지는 안개와 모래, 이름 없는 고양이처럼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이해 받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라는 것은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타인의 배려에 대한 무시와 거부 (『모래로 지은 집』, 127) 넘어서야 하고, 또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이해를 이용하는 위선 (『모래로 지은 집』, 121)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백』, 209)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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