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우리 부부에게 오랜 기간 간절하게 기다리던 딸이 가족의 일원으로 찾아와 주었던 날, 나는 딸의 태명을행복이라고 지었다. 무엇보다 딸과 함께 만들어갈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이 그때 당시 내가 직면한 가장 큰 화두였기 때문이었다. 한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익숙지 않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 , 가정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가 눈을 떠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내게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하고 나와 소통했던 순간들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정재승 교수는 <열두 발자국>이란 제목에는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11) 정재수 교수는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 등장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경험을 떠올리며 본서의 제목을 지었다. 나는 <열두 발자국> 한 생명의 탄생과 미래의 삶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 읽었다. 이 세상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게 있어 딸의 탄생은 움베르토 에코의 체험 못지 않게 신비롭고 낭만적이고 때론 비현실적인 경험이었고, 그 체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챕터는 세번째 발자국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가?), 네번째 발자국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일곱번째 발자국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아홉번째 발자국 (4차산업혁명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이었다. 여기서는 <열두 발자국> 중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4개의 발자국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번째 발자국에서 다루는 주제는결핍이다. 경제학도인 내게 결핍은 희소성 (Scarcity)과 근접한 개념이었는데, 저자는 경제학적 희소가치가 아닌 심리학적 결핍과 삶과의 연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결핍 없는 삶을 원한다.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 결핍에는 동기부여 (Motivation)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저자가 결핍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이 결핍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만난 친한 형의 고민은 초등학생이 고교 교과과정인수학의 정석을 선행 학습하는 강남 일대의 교육열이었다. 남보다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과도한조기교육’, ‘선행학습이 행해질 때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 공부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정규교육 시스템은 서서히 무너진다. 세번째 발자국을 보며아이들이 진정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할 시간과, 기회,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번째 발자국에서 저자는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나의 성정과정과 마찬가지로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딸이 성장해가면서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가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가는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제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너는 커서 뭐가 될래?”에 대한 질문은 많이 받지만어떻게 놀며 성장할래?”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노는데 사용한다. 어떻게 노는냐가 그 사람을 규정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도 바로 노는 시간이다. 더군다나 이제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 시대 아닌가? 놀이가 창의력을 높이고, 혁신의 열쇠가 된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를 보며, 일과 더불어 놀이를 함께 성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곱번째 발자국은 창의적인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긴 하지만 창의성으로 가는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창의성은 남과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노력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세상과의 의미 있는 충돌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 ‘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순간의 있을뿐’ (220)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한가지 궁금했던 건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저자가 제시한 주장이다. 동양인은 대체로 눈을 보고 감정을 읽어내는데, 서양인은 입을 통해 감정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본서를 접하기 이전에 저자가 알쓸신잡에 출현해서 동일한 내용을 소개한 것을 보고 상당히 흥미를 느꼈었다. 헬로키티는 그러한 주장에 딱 맞는 사례였지만, 딸아이가 사랑하는 입이 없는 형태의 유럽회사의 국민 애착인형을 보면서 이 경우 어떻게 해석을 내려야 하는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자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아홉번째 발자국은 제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은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는 내용이다. 나는 딸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 세대가 살아온 세상보다 분명 더 나은 곳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버지로서 딸이 살아갈 세상은뿐만 아니라우리가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존재한다. ‘증기’, ‘전기’, ‘인터넷등 단일의 기술로서 이루어 낸 1, 2, 3차 혁명과는 달리 여러 가지 기술이 융복합되는 4차 혁명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아직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선언된 혁명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볼테르의 말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혁신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니라 업무의 지형도이다.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하다.’ (270)는 저자의 주장이 인상 깊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딸 아이가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자신이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과 사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사랑과 신뢰 속에서 하나의 조각 (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아직은 대화하고 토론하기에 어린 나이의 딸이지만 언젠가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열두 발자국>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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