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사일런스
외이뒤르 아바 올라프스도티르 지음, 양영란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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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이 궤도를 이탈하였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소설 <호텔 사일런스>에서 49세의 평범한 남자 요나스는 삶을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고,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 님페아도 자신의 핏줄이 아님이 밝혀진다. 그런 이유로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고 한다. 하지만 죽은 후 자신의 모습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발견하였을 때 그들이 받을 충격을 고려하여 죽음을 위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그가 선택한 곳은 전쟁이 막 끝나 죽음이 만연했던 곳,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전 중에 있는 나라다. 그는 천장에 밧줄을 달아 자살할 생각으로 ‘공구함’을 챙겨 여행을 떠난다.

그는 목적지인 호텔 사일런스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전쟁의 참극을 온몸으로 겪은 호텔의 직원들 메이, 피피, 아담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자살을 위해 준비해간 도구로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고쳐주면서, 서로를 위로하게 되고, 삶을 이어갈 용기를 서서히 회복하게 된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의욕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이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배꼽은 태어날 때 탯줄이 떨어지면서 생긴 흉터로,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을 자름으로써 어머니 몸과 아기 사이의 연결을 끊는다. (25)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삶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재앙 앞에서 두 눈을 꼭 감고 모든 게 순조로운 것처럼 사는 것 같은 사람도 실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삶의 형태를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전쟁의 참상을 겪은 메이는 말한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거예요. (261쪽)

절망 속에서 헤매던 요나스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되살린 것은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의 반증이다. 호텔 사일런스에 찾아온 몇 안되는 손님 중에는 전쟁의 혼란기를 틈타 한몫 잡으려는 남자도 있었다. 그는 요나스를 보며 시소한 온정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정말로 ‘이 나라 전체를 땜질하듯 수리할 작정이오? 기껏 드릴 하나와 알량한 스카치테이프만 가지고 말이오? 산산조각 난 나라를 정말로 다시 붙일 수 있다고 믿느냔 말이오? 세상은 고작 스카치테이프만으로 좋아질 수 없소. (264쪽)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재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나스의 엄마는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도 세상을 향한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엄마가 보청기를 조절하려 애쓰는 이유는 아들 요나스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과 같은 파장 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이고 잠시나마 세상의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이다.33쪽)

여자가 별안간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손을 내민다. “메이”
나도 여자쪽으로 손을 내민다. “요나스”
우리는 이제 개인적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가 된다. 이 말은 곧 여자가 근무하는 동안에는 내가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173쪽)

모든 삶의 희망을 버리고 절망의 땅에 죽음을 구하고자 찾아온 요나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진다.

아들과 동생을 데리고 어떻게든 비 오듯 쏟아지는 폭탄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이 젊은 여자에게 나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이 여자와 그의 동생에게 천장에 매달린 나를 끌어내리는 일까지 맡길 수는 없다.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먼지와 폐허뿐인 상황에서, 나의 불행은 아무리 후하게 봐주어도 하찮기만 하다.“(177쪽)

 

작가는 독자에게 전하는 말에서 침묵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침묵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묻어나는 진정성 아닐까? 나도 다른 이의 삶을 응원하며 지지를 보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침묵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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