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유정 문학상 수상 작품집의 출간을 기다리고 찾아 읽어본지 어느덧 3년이 된 것 같다. 김유정 문학상은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모든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선별하고 시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걸맞게 올해 역시 표제작인 한강의 <작별>을 포함하여 7명의 빛나는 작품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2018년을 이 책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강화길의 <>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자기본위적 편향에서 기인한 오해를 극복하고 삶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감춰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음을 소설 속 화자와 독자들이 동시에 깨닫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은 악의 없는 무심함과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소외된 자들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그린다. 그럼으로서 종국에는 약자이자 소수일수 밖에 없는 우리를 지탱하는 건이해배려임을 보여준다. 김혜진의 <동네사람>은 집단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로 인한 왜곡된 인식과 믿음이 진실에 이르는 눈을 멀게 하고, 인간이 인간을 장담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아프게 그려낸다.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은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에 대한 일화를 통해서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집단적 광기와 비이성적 열기, 욕망의 실체에 대해 밀착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차분히 성찰한다. 정이현의 <언니>는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패악과 구시대적 질서 속에서 희생되는 가치와 약자들의 삶을 다룬다. 정지돈의 <Light from Anywhere>는 신기루와 같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허망함이 1970년 한국 뿐만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수상작인 한강의 <작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흰색을 말할때, ‘하얀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하얀과 달리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책이었다.” - <> 작가의 말 중 -

 

폴란드 바르샤바의 천변을 걸으며 썼다는 작가의 전작 <>을 읽었을 때, 어쩌면 나는 본작 <작별>을 이미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로 시작하는 <작별>의 첫 대목부터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에게 생긴난처한 일이란 겨울날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는데, 눈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눈사람으로 변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상식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는 그녀의 상처를 읽어내기 어렵다.

 

합의금으로 대체된 오빠의 죽음, 생존에 급급한 가난한 연인,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자본주의 시스템의 도구로서의 삶... 그녀는 희지도 검지도, 뜨겁지도 차지도,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삶을 살아 왔다. 자신을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물화된 그 어떤 것이라고 상상하는 그녀의 삶은 개인의 취향인 식성마저 억압당하는 <채식주의자>의 영혜를 연상시킨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몸도 사회와 권력을 통해 규제되고 강제된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자본주의 사회와 가부장적인 권력과 대면하여 저항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작별>의 그녀에게서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녀에게 눈사람으로 변하는 일은 그저 난처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녀의 절망감이,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는 체념적이고 순응적인 태도가 슬프고 아프다. 멀쩡한 사람이 눈사람이 된 기막힌 사실 조차 그저 난처한 일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녀 주변을 둘러싼 참담한 현실이 가슴을 울린다. 눈사람이 된 이후에도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동안 어떤 시간들을 견뎌왔던 것일까?

 

하이데거는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매순간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다 종국에는 모두 소멸하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46)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53

 

<작별>은 인간적 가치가 소실되는 임계점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녀가 인간으로서 존재했던 것은 언제까지일까? 눈사람으로 변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아직  미미하게 따뜻하다. 그녀는 몸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홀로 남겨질 아이와 연인을 걱정하며 서둘러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한다. 부모님의 안위를 물으려 한 전화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안부를 묻자 그녀는 차마 대화를 더 이어나가지 못하고 잠시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사력을 다해 가까스로 뒤를 돌아본 이유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미련 때문 아니었을까? 동시에 그것은 슬픔과 외로움이 삶의 근원적 속성이며, 마지막 순간에도 그 사실 자체는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그녀의 마지막 몸짓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스러져 간다. 다만 눈 알갱이 안에 담긴 슬픔처럼 잠시 바닥을 적셨다가 고독하게 증발해버리고 말 뿐이다.

 

<작별>을 읽고 난후 내리는 눈을 하염 없이 바라 보았다. 눈은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하얀눈이 아닌 아닌 슬픔과 고독,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 있는눈으로 보였다. 저 내리는 눈이 세상을 정화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공중에서 제각각으로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지면에서 서로의 냉기를 견디며 하나가 되고 공기 입자들을 덜어내며 단단해진다.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연약하고 쉽게 증발해버리는 것이지만... 모든 군더더기를 덜어낸 뒤에야 남는 한마디 그 말... 사랑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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