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8년을 열면서 나는 42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를 읽었다. 세대간, 성별간 시각 차이의 기저에 내려앉은 상실과 절망에 대해 무겁고 깊게 성찰한 소설이었다. 작가의 전작 <그 남자의 가출>에서 다룬 좌절, 실패, 상실감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더욱 깊게 침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은 유예 기간을 겪어야만 진정한 슬픔에 이르게 되지. 깊은 슬픔은 단번에 그냥 주어지지 않아. 어느날 문득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두 눈에서 용암처럼 눈물이 흘러나와 귓속에 고이지 않던가.”(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65)하고 읊조리던 소설 속 늙은 불한당의 독백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작가의 수상소감은아짐찮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아짐찮다는 말,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말. 유언처럼 아껴둔 이 말.” 작가가 이 말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작가는 작품집에 수상소감과 함께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을 남겨 놓았다. 이것이 나를 작가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으로 이끌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작가의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느꼈고, 동시에 온 생애를 다해 성과 속의 경계를 떠돌아야 하는 소설가로서의 그의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은 본 산문집 1부에도절망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우리에게 문학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 손흥규에게 문학은 소다. 소는 그에게 다정한 동무인 동시에 소통불능의 벽이었고, 긴 세월 그의 삶을 담담하게 지켜봐온 목격자인 동시에 그를 배신하고 다른 세계로 떠난 그 무엇이었다. 또한 그것은아직 차갑기만 한 불꽃’ (18)처럼 삭혀지는 서투른 욕망과 분출되려는 욕망의 충돌이었고, ‘육식동물의 송곳니’ (20)처럼 단단하고 투박한 그의 잃어버린 일부분이기도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이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문학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눌 수 있을테니. <그 남자의 가출>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소설은 온기가 남은 아궁이라고 하였다. 그 앞에 앉아 손을 내민 우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삶의 숨결을 느낀다. 산문집 뒷편의 미니픽션 <불한당의 소설사>에서 노소설가는문학은 감동을 통해 평범하고 흔한 진리를 비범하고 독특한 진리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341)라고 말한다. 이는 노소설가의 입을 빌린 작가 손흥규의 아포리즘 (Aphorism)임을 나는 이 산문집을 읽으며 깨달았다. 결국 문학은 우리가 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118)

 

산문집에는아짐찮다.’는 작가의 수상소감의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아짐찮다는 사전에 담기지 않은 말로 저자의 할머니가 자주 사용한, 저자가 결코 흉내낼 수 없다고 말하는 단어다. 언어는 기표 (Signifiant)와 기의 (Signifie)가 유동적인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작가는 할머니의 말투와 어휘를 흉내낼 수 없는 이유는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사연들과 그 말에 깃든 정서를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하나의 낱말 속에 담긴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운 한 사람의 인생과 진심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사전은 할머니의 삶과 정서, 목소리의 떨림까지는 담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작가는 소설가로서 사전에 없는 말을 탐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어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서 소설가는 사전이 아닌 삶에서 언어를 발굴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미 아는 삶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을 추구하는, 불확정의 영역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작가가 가진 사연의 일면들을 엿보면서 나는 조심스레 짐작을 해본다. ‘아짐찮다는 작가의 수상소감 속 마지막말은 긴 세월동안 함께 해온 문학에게 그가 건넨 인사 아니었을까?

 

산문집 전반에 흐르는 감정 중 하나는 작가의 딸을 향한 애정이다. 산문집의 제목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도 딸과의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아이가 오른팔을 다쳐 아픔을 달래기 위해 왼손으로 감싸쥔 모습을 보고 작가는 결국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최소의 방법은 자신에게 기대는 것임을,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과 불안을 견디는 일이 우리 자신에게 속한다는 걸 (212) 부모의 입장에서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나이들수록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이 많아지게 될 아이가 타인의 오른손에 나의 왼손을 살풋 얹어 서로에게 기대는 일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길 바란다. 어쩌면 나에게도 작가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어 더 마음이 가고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딸 아이도 나이가 들면서모호한 단어들을 하나씩 명백한 단어들로 뒤바꿔가고’ (52), 슬픔과 고통으로 인해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구겨진 은박지처럼 삶에 흔적이 남을’ (195)것이다. 하지만 딸 아이가 삶을 살아가며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최고이자 최선의 응원은 자신이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과 사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종국에는가난하고 고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장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임을,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하는 건 사람과 사랑뿐임을 (241) 깨닫게 되길 바란다.

 

“괴물은 숲속에 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숲속에는 네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이 있어. 잃어버린 걸 찾고 싶으면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해... 우리는 우리라는 하나의 사연이 되어 깊어가는 가을밤에 소리 없이 지는 낙엽처럼 서로의 손안에서 바스락거렸다.” (5)

 

우리가 잃어버린것들, 두고온 것들은 무엇일까?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문학이라는 숲에 머물 것이다. 나 역시 그 속에 머물면서 앞으로의 작가의 여정을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다. 2018년 한해의 시작과 끝을 손흥규라는 한 사람의 작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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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보이 2018-12-3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잭와일드 2018-12-31 23:57   좋아요 0 | URL
2019년 새해 첫 책으로 추천 드립니다^^
골든보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