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세계사 - 등대는 바다를 건너서, 시간을 건너서 온다
주강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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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언제부터 어두운 바다를 비추며 인류와 함께해온 것일까? 이는 아마 항해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할 것이다. 등대는 낮과 밤, 지형지물 등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바다와 육지에서의 활동반경을 넓히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고민의 산물이다. 등대는 등대의 세계사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또, ‘해양문명의 아이콘이라는 헌사처럼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오고 있다.

 

기원전 280년 파로스섬에 세워진 등대는 고대의 랜드마크였다. 오늘날의 40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120미터가 넘는 거대 건축물 파로스 등대는 현재까지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회자되며 등대의 상징이 되었다. 등대를 의미하는 라이트하우스 (lighthouse)는 후대의 영어식 표현일 뿐 지금도 이베리아반도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등대를 파로스로 지칭하고 있다. 도시국가와 항구의 형성, 대항해시대의 전개와 함께 등대는 진화해왔다. 영국의 에디스톤 등대는 시멘트 공법을 적용하며 근대의 시작을 알렸고, 프랑스의 프레넬은 당대 광학기술의 집약체인 프레넬 렌즈를 발명하여 등대의 광달거리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킴으로서 항해 역사의 신기원을 이루어내었다.

 

근대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는 등대의 시대이기도 했다. 국민국가와 제국주의의 확산은 인류 최대 규모의 이민과 식민을 낳았고, 등대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맞물려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 편향적인 시각으로서 해양 문명과 등대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구 중심의 해양사에 가려져 소외되어 있던 동양의 항로표지 기술을 해양환경을 개척하기 위한 동아시아 문화권 특유의 고민의 산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중국의 불탑과 일본의 석등, 한국의 제주도 도대불 등은 전통적 등대의 귀중한 예다.

 

등대의 존재 목적과 형태는 지난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변하고 인류문화가 변하여도 인류가 항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배가 들어오는 뱃길의 노선은 변함없이 존재하고, 등대는 칠흑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위해 밤새 빛을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등대의 효용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선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범선과 뛰어난 신체능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나이가 들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스파이처럼 현대의 첨단 항로기술 앞에서 등대는 바닷가의 낭만과 추억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져가게 되는 것일까?

 

<등대의 세계사>의 저자 주강현은 등대는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이자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인류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최신형 네비게이션이 탑재된 자동차를 타고 있다고 해서 도로와 신호 시스템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듯이 전통적인 항로표지로서 등대는 아직도 묵묵히 인류의 앞길을 비추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등대는 광파와 형상표지 방식뿐만 아니라 음파와 전파를 이용한 표지로 진화하여 여전히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우리가 등대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인류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육지의 한계를 넘어 해양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그 모든 과정에서 등대는 숨은 조력자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등대의 역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인간문명을 밝혀온 또 앞으로도 밝혀갈 등대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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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경제사 -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
최우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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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동문학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 받는 안데르센은 사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한 문학가였다. 『 미운오리새끼 』,『 인어공주 』, 『 성냥팔이소녀 』 등 빛나는 그의 동화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시와 소설, 기행문을 남겼고 작가이기 이전 연기자를 꿈꿨던 자신의 청년시절을 대변하듯 극작가로서도 재능을 드러냈다. 안데르센이 자신이 아동문학가로만 인식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일화는 유명하다. 말년에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안데르센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그의 모국 덴마크에 있는 안데르센의 동상들은 모두 오롯이 그 혼자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동화를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산문문학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본다면 동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 보편의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센이 아동문학가라는 평가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이유도 동화의 의미를 좁게 보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가 『 동화경제사 』라는 이름의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은 부모가 되고 나서 어린 아들과 동화 함께 읽기를 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첫 번째 동화 읽기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행복한 세계로 인도해주었다면, 어른이 되어 텍스트 뒤에 숨겨진 컨텍스트를 찾아낸 두 번째 동화 읽기는 동화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중요한 기록이자 증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음을 저자는 고백하고 있다. 동화경제사란 책의 이름이 대변하듯 저자가 두 번째 동화읽기를 통해 주목한 것은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동화 탄생의 역사적 기원이 된 자본주의의 민낯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서 가난, 장시간 노동 등 산업혁명 속 어두운 시대상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달콤한 초콜릿 속에 숨겨진 착취와 불공정 거래관행을,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에게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 앞에 저물어가는 수공업과 새롭게 자리잡은 산업화시대의 노동질서를 읽어내었다. 동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를 침범 당하는 것 같아 약간의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했던 이유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분석하고, 꿀벌 마야의 모험에 표현된 개인의 합리적 행동과 공익의 놀라운 조화를 아담 스미스 보다 60년 앞서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고 해석해낸 것, 빨간머리 앤이 타는 자전거에서 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을 읽어내는 등 동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비밀스런 장치들을 색다른 시각을 통해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경제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가가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의 메시지를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현실 속 구원보다 상징적이고 종교적 구원으로 결말을 맺은 이유와 오스카 와일드가 행복한 왕자를 통해 개인의 선행이나 인간애 보다는 사회구조적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한 이유를 저자는 시대정신에서 찾고 있다.

와일드 시대 (1880년대)의 해법은 안데르센 시대 (1840년대)의 그것과 달라야 했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더 이상 개인 혹은 단체의 선이나 시혜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행복한 왕자는 동화라는 외피를 입었으나 1880년대를 풍미한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는 문학작품이다 (p. 240)

결국 저자가 동화탄생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 이유는 동화의 재해석에 있다. 숲 속을 노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하나 둘씩 눈떠가는 사랑스런 아기 노루 밤비의 이야기의 기저에는 반유대인 정서와 전체주의 비판이 깔려 있었고, 덩치 큰 말벌들의 침략에 단결하여 맞선 꿀벌들의 이야기에서는 자연과 삶을 예찬하는 낭만주의적 코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코드와 1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의 사기와 전의를 북돋우는 정훈도서의 이미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와 표면적 의미를 넘어선 동화의 재해석을 언급한 것은 비단 안데르센만이 아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한 헌사로 시작된다. 이 유명한 헌사를 통해 작가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 나름의 헌정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작가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라는 것, 이해심이 깊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이해한다는 것, 또한 현재 그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런 모든 이유들로도 부족함이 있다면, 한때는 어린 아이였을 자신의 친구에게 이 책을 헌정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작은 소년이었을 때의 자신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자신의 책 『 어린 왕자 』를 헌정한 것이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19세기 자유주의 시대, 20세기 산업사회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기나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빈민층 자녀의 자유분방한 모험담에서 산업화 시대 새로운 노동의 기준으로, , 디즈니에 의해 재생산된 중산층 신화로 재해석되었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본격화되는 미래 세상에서 피노키오는 또 어떤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까? 시대를 거슬러 우리 곁에 있는 동화처럼 동심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든 어른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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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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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을 듣고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갖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 치앙마이에 대한 묘한 끌림과 그곳에서는 왜 천천히 걸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겼던 관심을 누르며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저 한구석에 넣어 두어야만 했던 건 아무래도 여행과 관련된 책인것 같아서 였다. 두돌이 갓 지난 아직 어린 딸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치앙마이로 여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은 멀어만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인 율리와 타쿠도 출근길에 자주 지나던 공덕역에서 우리도 언젠간 공항에 가려고 공덕역을 지나는 날이 오겠지?’라는 말을 자주 주고 받았다는 대목을 읽고, 내가 여행이 갖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했던 건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우연에서 비롯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다음 모임 도서로 이 책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책을 선정하는 방식은 회원들 각각이 자신이 꼽은 도서와 그 이유에 대해서 1분 정도 홍보의 시간을 갖고 표결에 부치는 것이었다. 이 책이 내가 아닌 다른 회원에 의해서 후보로 나왔을 때, 그리고 마침내 최종선정 도서로 투표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선정된 도서도 아닌데 약간의 떨림과 흥분을 느꼈다.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책을 읽으며 묘한 설레임과 흥분을 느꼈다. 그러한 감정은 저자들이 본격적으로 치앙마이에 대한 여행기를 전개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 육아를 하게 되면서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됐던 것이 몇가지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해외 여행 공연 관람이었다. 짧은 국내 여행은 아이를 동반하고 갔던 적이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고도 장거리로 움직여야 하는 해외 여행은 아이를 위한 짐의 무게와 도착해서도 호텔 밖의 공기를 맡아볼 수 없으리란 체념에 지레 포기해야 했었다. 또 결혼 전이나 신혼시절에는 한달에 한번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를 즐기는 것이 나름의 취미생활이었는데, 육아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이는 자연스럽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저자들이 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막 공항으로 떠날 때의 심정,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그날의 셋리스트를 예상하면서 느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저자들의 여행기에 쉽게 동참할 수 있었고, 저자들의 여행이 돌이켜보면 좋았던 날들로 남는 성공적인 여행이길 기원했다.

 

아무리 흐른 날에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맑게 개인 하늘과 빛이 있다.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돌이켜보면 좋았던 날들로 남을 그런 여행이 되기를!! (p. 23)



 

책 제목을 듣고 생겼던 호기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왜 치앙마이이었을까?’ 왜 천천히 걸어야 할까?’에 주목하며 읽었다. 저자들은 별 이유는 없고, 한번 살아볼 만 한 것 같아서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책 속에서 단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단서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책의 곳곳에 있었다. 미소의 나라 (Thailand, The Land of Smiles)라고 불리는 태국의 이미지도 한 몫 했을 것 같고, (여기에 와서 문득 처음 보는 많은 얼굴들이 나를 향해 짓는 미소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 반가워 또는 이곳에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p. 38), 디자이너란 저자들의 직업을 고려해보았을때,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리는 치앙마이의 특성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며 세계를 떠돈다고 하는 그 이름은 디지털 노마드’,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나 다른 몇몇 직업과 함께 디지털노마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 대표적인 직업이었다. 그 일하기 좋은 도시 리스트의 상위 랭크, 아니 아예 디지털노마드의 성지로 불리는 위상을 가진 곳이 바로 태국, 치앙마이였다, p. 95)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더운 날이 대부분인 태국에서는 흐린 날을 좋은 날씨로 부른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다고 툴툴거릴 게 아니라 덥지 않아서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에 대해 여행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던 것이다.

 





자고, 먹고, 일하고, 더불어 놀고, 운동하는 일상들이 작은 병정 무리마냥, , , , 줄지어 간다. 에너지가 넘치는 여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익숙했던 일상도 아닌, 딱 그 중간쯤 되는 생활. 별 것도 아니면서 가끔은 새로 발견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하루를 채우는 날들. 내가 알기론, 바로 그런 걸 평화로운 날들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P. 116)




 

이 책은 저자들의 89일간의 치앙마이 여행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처음엔 이 여정을 여행이라고 불렀지만 언젠가부터 살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루하루 화려하고 신나지는 않아도 매일이 은은히 빛나고 안심되는 것. ‘여행과는 제법 다른 살이라는 것. , 치앙마이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색 중에서 그들만의 색을, 치앙마이를 즐기는 그들만의 방식을 찾아냈던 것이다.

 




나에게 치앙마이는 다채로운 색을 내보이며 다가왔다. 그 새로운 색들이 내 기억에 알록달록 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치앙마이의 색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화려한 색깔들 사이로 어느 평범한 하루가 떠오른다. 평범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평범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하루를 새롭게 만드는 타국의 색. (P.178)





왜 치앙마이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어쨌든 떠나봐야 한다는 저자 타쿠의 말에 동의한다. 그들은 89일간의 여정의 끝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답을 찾았고, 나는 그들이 답이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지레 포기했던 건 어쩌면 여건이 안되서 그런것이 아니라, 나와 맞는 방식의 여행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나도 나만의 답을, 우리 가족만의 색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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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말고 커피
데이브 에거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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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이라는 국가가 내포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무엇일까? 급성장하는 알카에다와 IS의 세포조직들, 또 그러한 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드론 공격이 이루어지고 대량의 난민이 발생하는 곳? 현재의 예멘에서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행복한 나라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본서 <전쟁 말고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쟁커피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공존이었다.

    

역사적으로 예멘은 오스만 튀르크에서부터 영국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력에게 침공당하여 식민 지배를 받아왔고,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을 때는 늘 민족적, 지역적 분쟁이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도 예멘은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아랍어 와 알라이쿰 아살람이 어울리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자와 마찬가지로 예멘이 500여년 전 야생 커피를 최초로 경작해 커피의 대량 생산과 체계적인 유통이 가능하게 한 커피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접하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커피가 아라비아에서 탄생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커피에는 로부스타와 아라비카라는 두 가지 품종이 있다. 그중 맛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간주되는 품종은 아라비카이며, 이 커피가 아라비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원산지가 아라비아, 구체적으로는 로마 사람들이 아라비아 펠릭스’, 행복한 아라비아라고 부르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이 바로 예멘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커피콩을 처음으로 음료 형태로 우려낸 곳이 예멘 해안의 항구도시인 모카였다고 한다.” (p. 97)

 

우리가 지금 커피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커피콩을 처음으로 우려낸 사람은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 (우리에게 익숙한 모카커피의 유래가 된 곳이다)에 살던 수피교도 성직자 알리 이븐 오마르 알샤딜리였다고 한다. 당시 이 음료의 이름은 카화라고 불렸지만, 튀르크족이 카화르리 카흐베로 바꾸었고, 이것이 다른 언어들에서는 커피라고 불리게 되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묘목을 훔쳐가 자바에 심었고, 그걸 프랑스에 넘겨주었으며, 프랑스인들이 커피를 마르티니크에 심었고, 포르트갈 사람들이 다시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밀반출해 브라질에 심었다고. 그래서 이제는 700억 달러 규모의 커피 시장이 생겼고, 모두가 커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멘인들, 애초에 이 사업을 시작한 예멘인들을 제외한 모두가.” (p. 214)

 

커피를 처음으로 경작하고 체계적으로 유통하기 시작한 곳은 예멘인데, 최근 몇십년 동안 예멘은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지는 못했다. 커피의 수출량은 무시해도 될 정도이고 예멘 커피의 품질은 대단히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800년 중반에 예멘은 일 년에 75,000톤의 커피를 수출했지만, 21세기에 생산한 커피는 고작 11,000톤이었고 그중 4%만이 명품 품질을 유지했다. 품질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교역조건도 걸림돌이었다. 커피를 재배하는 산악지역은 그 지역 토착 부족과 민병대의 비공식적 지배를 받고 있어 안전한 무역을 불가능하게 했다. 또한, 커피와 비슷한 기후에서 자라지만 당시 훨씬 더 많은 이윤이 냈던 카트의 존재도 예멘이 커피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게 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주인공 목타르 알칸샬리는 미국의 예멘계 이민 2세대인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 살고 있는 흙수저 사업가다. 책의 저자 데이브 에거스는 커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람 받는 상품이 되기 까지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젊은 흙수저 사업가의 개인 역사를 매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전쟁 말고 커피>는 목타르 알칸걀리가 목격하고 체험한 사건들을 담은 논픽션이다. 이를 위해 저자 데이브 에거스는 사전조사를 하면서 목타르와 거의 삼년에 걸쳐 수백시간의 인터뷰를 했다.

 

커피가 인도와 유럽으로 퍼져나가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정작 커피의 기원지인 아랍은 이 성공신화에서 소외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을 때부터 주인공 목타르는 커피사업에 주목하게 된다. 지나간 역사를 안타까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커피 종주국으로서 예멘을 부활시키고자 한 목타르의 기업가 정신이 돋보였다.

 

기계를 위한 연료가 휘발유라면 사람을 위한 연료는 커피가 아닐까 할 정도로 커피는 경기를 타지 않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목타르는 불순물이 많고 품질이 고르지 못하다고 알려져 있는 예멘 커피의 품질을 끌어올리고 안정적으로 교역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목타르는 사업계획서에 비전과 미션을 명시한다.

 

비전 : 커피 품질과 삶의 질을 긍정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지식과 도구를 예멘의 커피 농부들에게 제공한다.” (p. 143)

 

미션 : 예멘에 경제적으로 생존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며 높은 윤리적 기준과 사회의식을 갖춘 사업 관행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커피의 품질, 일관성, 생산량을 향상시켜 재배자들과 생산자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커피 회사를 만든다.” (p. 144)

 

목타르는 수확과 건조, 저장, 운송을 잘 해내기만 하면 커피 종주국으로서의 유산을 되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면 예멘의 전설, 모카의 수도승 (The Monk of Mokha)이 부활할 수 있다고... 목타르의 성공에는 주위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너희 부모님이 너희를 여기 데려오신 건 너희들에게만큼은 선택지가 있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야. 그런데 너희가 그 선택지를 날려버리고 있어. 어른이 됐을 때 뭔가 다른 걸 하고 싶다면 정신 차려야 해.” (p. 49) 라고 이민자 출신의 목타르를 일깨워 준 갓산 투칸의 현명한 조언과 길 건너편에 예멘 사람이 커다란 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동상이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어. 어쩌면 그게 네 길일지도 몰라.” (p. 93)라고 격려하며 목타르가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미리엄의 따뜻한 조언이 인상 깊었다. 실행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약속하지 말거라. 실천할 자금이 생길 때까지도 약속하지 말고.” (p. 210) 라는 할아버지의 조언은 목타르의 사업가적인 기질을 만들어준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201669, 드디어 목타르의 모카항 커피회사의 커피가 미국 전역의 블루보틀 매장에서 처음으로 판매되었다. 블루보틀에서 팔았던 커피 중 가장 비쌌다. 목타르 어머니의 레시피에 따라 만든 카르다몸 쿠키까지 곁들여 시키면 한잔에 16달러였다. 20172<커피 리뷰>는 목타르의 모카항 커피회사의 커피에 97점을 주었다. 21<커피 리뷰>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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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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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으면서, 내가 하루키의 소설 이상으로 그의 에세이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한권 한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서가에 꽂으며 살펴보니 그의 에세이가 생각 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장수 고양이의 비밀>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의 에세이 시리즈 마지막권으로 1995년에서 1996년까지 <주간 아사이>에 연재된 에세이 60여편이 수록되어 있다. 20여년이 지난 연재물을 한권의 에세이로 묶어낸 것이라 그의 신작 에세이라고 하긴 좀 뭐하지만, 오히려 이제 막 작가로서의 인지도를 쌓아갈 무렵의 하루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고, 삶과 일상에 대한 빛나는 통찰 등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매력도 여전히 살아 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표제작인 장수 고양이에 대한 에세이들이다. 장수 고양이의 이름은 ‘뮤즈’다. 당시 하루키의 아내가 푹 빠져 있던 유리의 성이라는 순정만화 속 등장인물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데 하루키 자신은 야단스러운 이름이 싫어 심히 저항했지만 중과부족에 밀려 고양이의 이름은 끝내 ‘뮤즈’로 정착하고 말았다고 한다. 애묘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하루키는 어린 시절부터 꽤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이십년 넘게 산 고양이는 ‘뮤즈’ 한 마리뿐이었다고 한다. 하루키는 본 에세이집에서 장수 고양이의 비밀 몇 가지를 공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뮤즈’가 하루키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 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실은 전작 장편을 하나 써드릴 테니까 부디 이 아이 좀 부탁합니다. 하고 떠안기다시피 했더랬다. 그래도 그때 ‘고양이와 교환’해서 쓴 장편이 결과적으로 내 책 중에 제일 많이 팔린 노르웨이의 숲이었으니, 녀석을 ‘복덩이 고양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p. 92)

또 다른 장수 고양이의 비밀은 출산에 관련된 것이다. 고양이는 보통 사람 눈을 피해 어두운데서 은밀히 새끼를 낳고 태어난 새끼도 사람의 손길에 닿지 않게 두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하루키가 길렀던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인간과 한가족으로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얆은 막 같은 것이 한 겹 끼어 있다고 해야할까? 하루키의 표현대로라면 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 ‘나는 고양이, 당신들은 인간’ 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는것 같은... 하지만 오직 뮤즈만은 반드시 밝은 데서, 그것도 하루키의 옆에서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서서히 진통이 찾아와 산기를 느끼면 뮤즈는 오히려 야옹야옹 울면서 다가와 하루키의 무릎에 기대어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고 한다. 덕분에 하루키는 고양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볼 수 있었고 고양이와 인간의 구분을 넘어서 마음을 교류하는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이 있고, 괴로움이 있었다.

“출산하는 고양이와 한밤중에 몇 시간씩 마주하고 있던 그때, 나와 그 애 사이에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서 어떤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고, 그것을 우리가 공유한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니 인간이니 하는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뭇 기묘한 체험이었다.” (p. 140)

어쩌면 ‘뮤즈’의 잠꼬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고양이의 비밀일 수 있겠다. 자면서 인간의 언어로 잠꼬대를 하는 고양이라니? 어느날 하루키가 고양이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자고 있었는데 (수사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배게를 나란히 놓고 누워서, 뮤즈는 사람처럼 베개를 베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게 그런 말을 해봤자...”하는 작은 여자 목소리가 귓전에 또렷이 들렸다고 한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뮤즈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더니, 뮤지는 ‘꿍얼꿍얼, 뭐야, 귀찮게’ 하면서, 토라진 아내 같은 태도로 일어나 이불에서 나와 고개를 저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마치 고양이가 자신의 중요한 비밀을 무심코 사람한테 들켰고, 그것을 대충 얼버무리려고하는 듯이... 또한 뮤즈는 최면술을 걸어 새를 사냥하는 재주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p. 145)

하루키는 뮤즈를 몇백 마리에 한 마리 있을 귀중한 고양이로, 또 그런 고양이를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로 생각한다. 하루키는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장수 고양이에게 건네는 소박한 마지막 인사임을 책의 후기를 통해 밝히고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뮤즈가 하루키를 생각하는 마음도 동일하지 않았을까?

 


또, 하루키는 세상은 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빨리 변하는지 궁시렁 거리면서도 귀여운 얼리 어답터의 면모도 내비친다. 에세이를 통해 원고지에 만년필로 한자씩 써내려갔던 시절과 팩시밀리의 시대를 거쳐 매킨토시 컴퓨터 키보드와 PC통신 시대에 완벽하게 적응한 하루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문과계와 이과계  두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고 하루키 자신은 원래부터 수학과 물리와 화학이 압도적으로 약한 전형적인 문과계 인간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의 세상은 (1) 남이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를 자유로이 구사해 일하거나 노는사람과, (2) 그 프로그램을 부지런히 만들어야 하는 사람, 이 두 부류로 나뉘어가지 않을까?” (p. 312) 라는 전망을 하는 걸 보면, 그는 확실히 기술 지향적인 사람인것 같다. 더군다나 만약 대대적인 연구에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면 특별 세금을 내도 좋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걸 보면 더더욱...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취향 그리고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독자에게 건네기도 한다. 외국 바에서 시원한 맥주를 순탄하게 즐기려면 ‘하이네켄 맥주’를 선택하라는 팁을 주기도 하고, (이유는 직접 읽고 확인하시길), 여행과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이거라면 언제 어디서든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만능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직접 읽고 확인하시길)

“언제까지고 마음을 울리는 한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렇듯 귀중한 인생의 반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긴 세월이 흐른 뒤 사람의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p. 241)

또한, 음악애호가 답게 공연을 관람 중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똑바로 날아와 마음에 꽂혀 몸의 조성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체험을 한 걸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 때면 마치 열일곱 살로 돌아가 다시 한번 격렬한 사랑에 빠진 기분이다. 그렇게 근사한 체험은 자주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실제로는 몇 년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기적 같은 해후를 찾아, 우리는 공연장과 재즈 클럽을 드나든다. 실망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다 하더라도.” (p. 151)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마냥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선 작가 답게 “이야기를 쓰는 일,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차피 비정한 세계다. 모두에게 웃어주기는 불가능하고,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한다. 그 책임은 내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p. 136)라고 작가의 숙명을 언급하기도 하며,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 (p. 31)이나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다.” (p. 171) 처럼 하루키 자신만의 아포리즘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것은 좀더 다른 것이다. 하루키가 책 속에서 밝혔듯이 어쨌든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하루키의 에세이의 매력은 읽고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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