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초등학교 6학년생 소녀 다나카 하나미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 단편소설집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좀 망설여졌었다. 모녀간의 따스한 감정이 묻어나는 제목과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감동 소설이라는 홍보문구만 봤을 때는 딸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자연스레 관심이 갔었다. 하지만 일본 문학의 미래를 책임질 작가’, ‘가능성이 끝이 없는 작가’, ‘최연소 천재 작가등 화려한 수식어로 대변되는 작가가 14세의 중학생이고, 소설도 초등학생인 화자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과연 작가의 시선과 호흡을 따라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을 바꿔 책을 선택한 건 추천사 덕분이었다. ‘성숙한 중학생이 아닌 작가의 눈을 지닌 한 명의 표현자’, ‘작가라는 일에 나이는 상관없다.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는지가 전부다.’ 등 기성 작가들의 추천사를 보며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성인 작가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인생에 대한 체험적 진리를 표현한 책은 기존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생생한 필치라는 문예지 다빈치의 표현처럼 어린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보면서, 또 힘든 일상 속에서 긍정적인 자세로 원망보다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 가졌던 의구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5편의 단편 중 마지막 단편 <안녕, 다나카>를 제외하고 모든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하나미의 캐릭터였다.



엄마는 꽃도 있고 열매도 있는 명()과 실()을 겸비한 인생을 살라는 바람을 담아 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미다. 그런데 이건 남이 묻거나 학교에서 이름의 뜻을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냈을 때를 위한 공식적인 에피소드이고, 사실은 죽은 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겠는가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P. 71)



하나미라는 이름에는 그늘이 드리워진 엄마의 과거와 딸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동시에 담겨 있다. 엄마는 죽은 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겠는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하나미에게 어쨌든 살아 있으라는 소리야라고 대답한다 (P. 72)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의미의 이 말 속에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꿋꿋이 살아나가고자 하는 엄마의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엄마의 삶에 대한 자세가 가장 잘 표현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 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P. 266)



부모나 형제자매도 친척과 남편도 없이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외롭게 버티며 살아온 엄마는 어떻게 이런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엄마의 삶의 태도는 딸 하나미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P. 131)



하나미는 자신 보다 확연히 나은 처지의 친구를 보며 너무나 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질투의 대상도 아니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P.194) 아이스크림 막대기의 당첨이라는 문구 그 이상의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면서도 뭐 없는 것 보단 낫지.‘ 라며 툭툭 털고 일어나는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가졌다. (P. 140)



모녀가 직면한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 않고, 한 끼에 담긴 에너지로 그 다음의 한 끼까지 견뎌야할 정도로 절박하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며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모녀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어린 하나미가 주위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 시절에서 흐뭇함이나 향수를 찾아볼 수 없는 엄마의 삶을 안쓰러워하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P. 82) 빨리 돈을 버는 어른이 되어 엄마를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고, 그때가 오면 오늘을 떠올리고 웃을 것이라고 다짐을 하는 소녀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쩜, 꽃도 있네.” 엄마가 말해서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복숭아꽃과 열매가 있었다. 꽃도 열매도 있다. 엄마.” 나는 빛을 잡으려는 듯이 가지로 손을 뻗었다. (P. 167)



그리스어 '없는(ou-)''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 유토피아 (Utopia)’ 처럼 대부분의 이상향들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거나 천국처럼 죽어서나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하나미가 꿈꾸는 이상향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친근한 모습이다. 그곳은 각종 금은보화가 넘실거리는 엘도라도도 축복 받은 이들만 살 수 있는 엘리시움도 아니다. 하나미가 꿈꾸는 이상향은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복숭아나무 아래서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소탈하고 평범한 곳이다. 지극히 현실적임에도 이상향이라고 부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무겁고 슬프게 다가온다.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거나 그런 게 어디 있어. 엄마는 앞으로도 내 엄마인걸.P. 279



복숭아꽃의 꽃말은 희망용서이다. 하나미가 꽃도 열매도,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도 함께 있는 그 곳에 엄마와 함께 꼭 도달했으면 한다. 그곳에서 손을 뻗어 희망의 빛을 꼭 움켜쥐었으면 좋겠다.



책을 덮고 잠시 표지를 바라보았다. 미소 띤 얼굴로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와 이러한 엄마를 향해 손을 내미는 딸 하나미가 있었다. 표지를 벗겨 뒤집으니 새로운 표지가 나왔다. 복숭아 열매와 꽃 사이에서 하나미와 엄마가 각각 케이크와 홍차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소설에서 겐토가 하나미에게 선물한 케이크와 엄마가 게키야스당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홍차이리라. 그들만의 이상향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녀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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