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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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홍보문구였다. 소설의 내용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코세대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재현해낸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평균적인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김지영씨'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삶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된다. 이에 반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 (P. 22)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왔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페미니스트>의 저자 서한영교는 남성 중심의 역사와 신화로부터 추방당한 자들의 곁에서 ‘두번째 사람’으로서 폭풍 속에서 폭풍이 멈추기 전까지 모든 걸 걸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세계를 조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혜택을 받아온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두번째 페미니스트>란 책 제목의 의미이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P. 59)


소설 <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두번째 페미니스트>는 “생활도, 일도, 꿈도,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 마저 혼란을 겪는 첫번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두번째 사람의 인생 성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겪게 된 불합리한 사회의 이면을 경험하고, 친구에게 육아의 기쁨에 대해 털어 놓는 자리에서도 '맘충'이라 비난을 받게 되면서 저자는 평범한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달아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페미니즘 공부 한다고... 자기 성찰 모드로 진입하여 잡초 솎듯 내 안에서 자란 못난 남자 하나를 뽑아낸다. 얼마쯤 뽑아내야 할까.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P. 222)


저자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두번째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지만, 나는 ‘두번째’라는 포지션도, ‘페미니스트’라는 사상도 감히 주장하고 자처할 수 없는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다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육아를 하면서 나도 저자가 겪은 상황과 피력하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고백하고자 한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아버지라는 이름은 꽃과 같아서 매일같이 물을 주고 돌봐야한다. 물을 주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라는 이름의 꽃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조화에 불과하다. (P. 206)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 끝에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시인 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재 대들보에 “진리는 구체적이다.” 라고 크게 써놓았다고 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 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한다. 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나가야 한다. 나 역시 “가부장 체제를 박살내야 합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구체적이지 않고서는 관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227)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첫번째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두번째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침치 않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같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번째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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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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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장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관한 것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간다.


“너 그렇게 게임만 하다 뭐가 될래?

“음... 구독자 50만 유투버요?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의 저자인 선바는 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버 (2019 8월 기준)이자 트위치 스트리머이다. 어린시절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있던 아이는 마침내 소원을 이뤘고, 소원을 이룬 소감으로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심오한 철학 대신 “소원을 빌때는 신중해지자”는 유머가 담긴 조크를 건낸다. 단 한번 주어지는 삶이지만 우리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이 정해놓은 진로와 목표를 향해 걷는다. 마치 제도권 내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성공이라는듯이 말이다. 하지만 저자 선바는 인생이 적성에 안 맞아도, 사는게 답이 없어도 우리는 즐거워질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긴 하지만 전문적 에세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자 선바의 생각이 담긴 짧은 글들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인생’에 대해서는 “인생은 한권의 전공서적, 암만 봐도 모르겠어요.”로, ‘내가 직접 체험해본 다음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돈? 명예? 그거 다 부질 없더라구요. 인생은 그런걸로 채워지는 게 아닙니다.”로 저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인기와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유투버가 펴낸 가벼운 책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책의 표지와 마케팅 문구로 사용된 ‘희망으로 2행시’는 이러한 생각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희희

: 망했다. 훌훌 털고 다른 걸 해보자.


책의 표지에서 본 ‘희망으로 2행시’는 저자의 유투버라는 직업과 20대의 나이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저자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보다는 복잡한 걸 싫어하고 재미를 추구하면서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90년대생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는 책을 읽고 저자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었다. 또한 일견 가볍게 보일 수 있는 ‘희망으로 2행시’에 담긴 저자 선바의 희망에 대한 철학에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희망이란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나 자신이 향상되고 성장한다는 의미로 인식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의미 보다는 내가 뭔가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의미의 희망이 나에게는 더 밝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p. 44)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책의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있듯이 저자도 인생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저자는 보편적인 인생에 대한 답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해답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답이 없는 인생이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인생에 있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과 원칙 등 삶의 방향을 명확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선바는 삶의 방향을 설정해 놓으면 가는 길에 넘어지고 굴러떨어져도 적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답이 없어도 질문이 있다면 인생이라는 험난한 항해에서 방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으로 유투버 등의 크리에이터가 높은 순위로 언급되는 설문조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1인 크리에이터인 저자가 자신처럼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에게 남기는 조언은 무엇일까?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공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 조회수와 유행 보단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 보는것을 추천한다. (p. 138)


이러한 조언은 삶의 원칙과 방향을 중요시하는 저자의 삶에 대한 자세와 “쓸모 있는 일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쓸모 없는 일도 없다. (p. 103)는 인생에 대한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는 책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공연도 좋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그 웅성웅성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한 기쁨을 앞두고 있는 불완전한 시간이 자아내는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가 오히려 공연 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잠시 후 있을 공연의 셋리스트를 상상하면서,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를 이 공연, 바로 이 순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건 분명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이번에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를 읽으며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책에서 인생에 답은 없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남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도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밝고 따뜻한 긍정의 에너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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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 사전 - 컴퓨팅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위한 나만의 비밀 노트! 궁리 IT’s story 시리즈
김현정 지음 / 궁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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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의 대상은 잇츠 스토리 (IT’s story) 시리즈의 세번째 도서인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사전>이다. 잇츠 스토리 시리즈는 IT의 문화와 역사, 미래를 그림과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내어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디지털 용어를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리즈다. 그 중에서도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사전>는 이러한 잇츠 스토리 시리즈의 장점이 극대화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인 김현정은 KAIST에서 소프트웨어공학을 전공하고 IT컨설팅 업계에서 현장을 경험하면서 10여년 동안 소프트웨어 분야 강의를 진행한 IT 전문가다. 저자는 현장감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단지 코딩 방법론 기술만이 아닌 컴퓨팅 사고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 본 도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p. 11)


이를 위해 저자는 본 도서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마치 공기처럼 우리 생활 모든 곳에 존재하며 동작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네트워크의 정의와 개념원리, 역사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 책의 장점과 다양한 활용도에 대해서는 IT 업계를 대표하는 이들의 추천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발자,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표, 교수 및 교사들이 추천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코딩에 관심이 있는 성인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IT라는 큰 숲 안에서 소프트웨어의 개념과 원리와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적절한 비유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걸 언급하고 있다. 내가 궁리 출판의 잇츠 스토리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 정립을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다양하게 언급되는 융복합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신입사원이 IT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아마 모르는 말투성이일 겁니다. 학교에서 실무를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레거시와 같은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 등장하면 당황스럽기 그지 없지요. 더구나 ‘레거시 (legacy)’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유산’으로 뜻을 알려주니,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쯤은 어느 정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p. 353)


저자가 레거시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위 사례는 부끄럽지만 필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IT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IT 회사에 입사하여 기획과 경영지원 업무를 맡게 되면서 관련 사업부 및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외계어처럼 난무하는 IT 전문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IT의 개념과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비전공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막막했었는데 궁리 출판의 잇츠 스토리 시리즈는 필자의 상황에서 정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사전>는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오피스 프로그램 부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와 펌웨어, 인공지능과 머신러닝까지 코딩 언어로 작성된 응용 소프트웨어들을 다룬다. 2장에서는 시스템 소프트웨어나 운영체제 등 컴퓨터를 통솔하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운영체제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운영체제가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소멸된 피처폰의 사례를 언급한 것이 인상 깊었다.


“전화통화만 할 수 있던 당시에 피처폰은 문자 보내기, 알림 기능까지 제공하는 훌륭한 핸드폰이었죠.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feature’라는 이름까지 붙었지만, 다양한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는 견줄 바가 되진 못했습니다. 피처폰에는 운영체제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핸드폰에 다양한 앱을 설치할 수 없었거든요.” (p. 75)


3장에서는 월드와이드웹과 URL, 데이터베이스 서버, 사물인터넷 등 전 세계 웹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4장에서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DBMS), 정형 데이터와 비정형 데이터 등 빅데이터를 위한 소트트웨어를 다룬다. 5장은 보안과 보호를 위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내용인데 화이트 해커 (white hacker)의 유래에 대한 소개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화이트 해커는 사이버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선의의 목적으로 사이버 공격을 수행하는 선의의 공격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화이트햇 (white hat, 하얀색 모자)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1920년대 미국영화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영화에서 영웅들은 흰색 모자를 쓰고, 악당들은 검은색 모자를 쓰며 선과 악을 대표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장은 코딩을 위한 소프트웨어들을 다룬다. 6장에서는 최근에 왜 코딩의 패러다임이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는 순서대로 코드를 작성하는 ‘절차적 프로그래밍’에서 객체를 중심으로 객체의 행동과 속성 등을 정의하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해당 언어와 프로그래밍 방식의 특성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코딩언어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코딩 언어인 ‘C언어’의 이름은 왜 ‘C’가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B언어’ 다음으로 탄생한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B언어’의 능력 부족으로 ‘C언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로서 수많은 코딩 언어에 영감을 주는 인플루언서 ‘C언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p. 304) 또한, 전세계 사용률 1위이자 가장 배우기 쉬운 코딩언어로 알려져 있는 ‘파이썬 (python)’의 이름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몬티 파이썬 플라잉 서커스’라는 코미디쇼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p. 305) ‘모든 사람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고자 한 파이썬의 창시자 ‘반 로섬’의 생각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은가?


코딩은 키보드로 코드를 작성하는 단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도록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자는 소프트웨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코딩을 잘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주장한다. 본 도서를 통해 IT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을 느끼고 소프트웨어의 개념과 원리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끝으로 이 책의 장점이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6장의 모듈과 인터페이스를 설명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드웨어 부품처럼 소프트웨어에서도 모듈이 있고 이 모듈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합니다. 케이블과 같이 손에 잡히는 것은 없지만 인터페이스는 두 모듈이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요.” (p. 360)


이 대목을 읽으며 소프트웨어의 모듈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자동차의 사례와 같이 하드웨어에서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듈화를 통해 한 부품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부품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수리가 간단해지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 부품의 규격 통일을 통해 브랜드간 호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부품 재활용에 이점이 있다는 것 등 모듈화의 장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모듈화의 장점을 취하면서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기 위해 모듈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터페이스이며, 대표적으로 API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의 한 종류로 우리가 웹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웹쇼핑을 할때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IT 용어의 개념과 유래, 장점 그리고 적용까지 이렇게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또 있을까? 코딩과 소프트웨어, IT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생 및 초심자 부터 개념정립을 하길 원하는 실무 개발자들 모두에게 본 도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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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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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종에 달하는 나무들의 이름의 유래와 뜻을 총 정리한 책입니다. 나무의 이름을 매개로 한 생태와 문화, 역사,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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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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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인상 깊은 하나의 장면이 있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제임스 본드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고 두 척의 배까지 나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 저자의 전작 그림 속 경제학에 소개된 <전함 테메레르>와 관련된 내용을 보며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예술이 일상이고 글쓰기가 직업인 저자 문소영의 신작에세이다. 전작들이 명화를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를 가로지르는 삶에 대한 통찰을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에세이에서는 저자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자유분방하다. 미술을 포함하여 영화, 음악 등 예술 전반과 사회, 경제, 정치, 철학 등 광대한 주제들을 개인적 성향 및 취향을 드러내며 다소 인간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게으르게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다양한 주제를 다룬 42편의 에세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해 다룬 <메멘토 모리에서 카르페 디엠으로>였다




신은 존재할까? 영혼이란 무엇이고, 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아직 인류가 탐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생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삶은 한번뿐이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 주어지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소중한 것이다.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메멘토 모리카르페 디엠이 어떻게 절묘한 한 쌍을 이루는지 프란츠 할스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해골을 든 청년과 꽃을 든 처녀는 누구나 언젠가 맞게 될 죽음을 일깨우고 있다. 싱그러운 젊음이 해골로 변하고, 오늘 미소 짓는 꽃이 내일은 지듯이 삶은 유한한다는 것을 유념하고, 오늘의 이 시간을 잘 누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게 핀 대가를 꿈꾸며, 프랭크 매코트의 서늘하고 무거운 조언에 귀기울이라는 저자의 충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이다.

 

계속 끄적거리세요! 뭔가가 일어날 겁니다.”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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