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홍보문구였다. 소설의 내용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코세대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재현해낸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평균적인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김지영씨'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삶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된다. 이에 반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 (P. 22)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왔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페미니스트>의 저자 서한영교는 남성 중심의 역사와 신화로부터 추방당한 자들의 곁에서 ‘두번째 사람’으로서 폭풍 속에서 폭풍이 멈추기 전까지 모든 걸 걸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세계를 조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혜택을 받아온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두번째 페미니스트>란 책 제목의 의미이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P. 59)


소설 <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두번째 페미니스트>는 “생활도, 일도, 꿈도,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 마저 혼란을 겪는 첫번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두번째 사람의 인생 성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겪게 된 불합리한 사회의 이면을 경험하고, 친구에게 육아의 기쁨에 대해 털어 놓는 자리에서도 '맘충'이라 비난을 받게 되면서 저자는 평범한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달아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페미니즘 공부 한다고... 자기 성찰 모드로 진입하여 잡초 솎듯 내 안에서 자란 못난 남자 하나를 뽑아낸다. 얼마쯤 뽑아내야 할까.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P. 222)


저자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두번째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지만, 나는 ‘두번째’라는 포지션도, ‘페미니스트’라는 사상도 감히 주장하고 자처할 수 없는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다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육아를 하면서 나도 저자가 겪은 상황과 피력하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고백하고자 한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아버지라는 이름은 꽃과 같아서 매일같이 물을 주고 돌봐야한다. 물을 주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라는 이름의 꽃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조화에 불과하다. (P. 206)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 끝에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시인 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재 대들보에 “진리는 구체적이다.” 라고 크게 써놓았다고 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 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한다. 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나가야 한다. 나 역시 “가부장 체제를 박살내야 합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구체적이지 않고서는 관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227)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첫번째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두번째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침치 않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같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번째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지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