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하룻밤 - 서재에서 방까지 네 시간
이안수 글.사진 / 남해의봄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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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문명화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지만 현실의 삶에서 항상 괴로움을 느껴왔다. 인간의 낙원에 대한 갈망은 현실의 고통에 대한 반증이다. 낙원에 대한 열망은 현실의 삶의 고통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상향에의 갈망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서양에 '유토피아', '아르카디아'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태평성세의 상징 '요순시대', 홍길동의 '율도국'이 있었다. 이상향은 '인간의 의지'의 유무를 기준으로 유토피아형과 아르카디아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유토피아형은 토마스 모어의 구상처럼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인공적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베이컨의 '노바 아틀란티스',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르카디아형은 산과, , 초원에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목가적 이상향을 의미한다. 아르카디아형에는 인류 최초의 고향 '에덴동산', 요정들의 낙원 '아발론', 축복 받은 이들이 사는 땅 '엘리시움' 등이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현실적 이상향은 어떤 형태에 가까울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반전시켜줄 수 있는 희망이자 꿈과 같은 것… 문명화가 진행된, 일과 삶의 조화 (Work & Life Balance)가 중요시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적인 이상향의 모습은 아르카디아형 보다는 유토피아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은 현대인들이 가정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목기적 이상향 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고 실현되는 사회가 이상향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안수씨는 모티프원 (motif#1)의 주인이다. 모티프원은 예술마을 헤이리에 최초로 생긴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다. 여행을 좋아하던 저자는 자신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지리적 풍경 때문이 아니라 여행 도중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티프원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였다. 모티프원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공간 안에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인 '살아갈 이유'에 대해 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다. 2006년 오픈 이후 약 10년 동안 80여개 나라의 2 4천여명의 사람들이 모티프원에서 휴식과 충전, 창조와 나눔을 경험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나눈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지구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이 책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깨달은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노년학 전문가 프랜츠 콜랜드 박사는 운동, 레드와인, 일과 물, 사회관계, 유머라는 건강하게 나이드는 법 6가지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콜랜드 박사의 진정한 통찰은 삶의 기준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라는 것은 저처럼 나이든 사람이 아닌, 젊은이에게도 해당되나요?"

", 이 말은 노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예요. 젊은이들은 미래를 지향하고 모험할 필요가 있지요. 삶의 기준은 나이에 따라 달라야 해요." (p.62)

 

저자의 아들이 유학생활 동안 머물렀던 한 미국 가족의 생활방식을 보며 행복의 비결을 엿보았던 사례도 흥미로웠다. 한국인 하숙생 한명을 차로 픽업하기 위해 왜 매번 다섯 명의 가족 전원이 차로 같이 이동하는지에 대한 매튜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낮 동안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이렇게 차 안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니 좋지 않아?" (p.283)

 

효율을 기준으로 보면 시간 낭비일수도 있지만 좁은 차 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 매튜네 가족의 행복의 기준은 효율성이 아닌 참여와 공유였다. 매튜 가족의 사례는 모든 삶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행복의 씨앗이 숨겨져 있고, 꽃을 피우는 방법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부산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부부 여행객은 아이들과 함께 나이 드는 서점을 꿈꾼다. 산골서점에서 책을 읽던 어린이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둔 어른이 되면 아이와 함께 어린 시절의 서점을 다시 찾는... 그 서점의 이름은 "책과 아이들"이다.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책나라 군포 출신의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고 이제는 아이와 함께 추억할 서점을 꿈꿔온 나는 이들 부부에게서 미래의 삶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은퇴 후 인생의 후반기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저자도 이 땅에서 생을 마치는 것에 대한 회의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유토피아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었음을 고백한다. (p.247) 모티프원은 현대인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삶에 지친 이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리프레쉬할 수 있는 짧지만 달콤한 휴가는 유토피아형 이상향의 하나의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티프원을 세상이라는 격랑에 지친 항해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피항지로 만들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은 현실적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질문을 만들어낸 사고방식으로는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이상향은 우리가 원하는 객관화되고 정형화된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즐기는 자와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이상향은 삶의 순간순간을 빛나는 것으로 만드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설령 이상향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세상의 주인이 된 우리에게 삶은 여전히 가슴 뛰는 여행이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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