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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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되는 사랑... 포스트잇의 마법은 두 사람의 인생을 펼쳐놓았고, 마침내 두 사람의 삶을 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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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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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법 (p. 7)

 

<셰어하우스>는 여주인공 티피가 절박하게 무언가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시대나 로맨스는 필요했지만, 우리시대에 어울리는 로맨스는 따로 있다.’며 강렬하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이 소설은 본격적인 연애소설임을 선언하고 있는 소설의 카피문구처럼 티피는 그녀의 운명의 동반자를 찾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연인이 아니다. 그녀가 손톱만한 구석이라도 좋은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것은 자신이 새로 세들어 살 공간이다. 형형색색의 곰팡이와 더럽다는 말도 무색한 매트리스까지 외면하면서 티피가 긍정의 여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현실적인 그녀의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티피는 그와 같이살던 곳에서 나와야 했다. 하지만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기에는 쥐꼬리만한 월급의 소규모 출판사 편집자로 살아가는 그녀가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중 발견한 셰어하우스 광고는 그녀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었다. 셰어하우스의 집주인은 야간에 일하는 간호사였고 자신이 집을 비우는 시간에 집을 나누어 쓸수 있는 나인투식스 (오전 9to 오후 6) 근무 루틴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직장인을 룸메이트로 찾고 있었다





 

집주인이자 소설의 남주인공인 리언이 독특한 조건의 셰어하우스를 결심하게 된 사정은 이렇다. 3개월 전 친동생 리치가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갑작스럽게 감옥에 수감되었고, 항소를 위한 변호사 수임료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리언은 나이트타임 간호사로 일하면서 얻는 월급 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당장 수입을 늘릴 별다른 방도가 없었던 리언은 자신의라이프 스타일을 이용한 이 기발한 형태의 셰어하우스를 생각해냈다. 리언은 여자친구인 케이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설득과 고민 끝에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이자 유일한 옵션인 셰어하우스를 하기로 결정한다. 야간에 일을 하는 리언은 평일 오전 9시에서 6시 사이에만 집에 있었고 주말에는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여자친구의 공간에서 생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평일 오후 6시부터 아침 9시까지와 주말까지 자신의 집을 셰어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로맨스 그 위대한 서막은 시작되었다.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한번도 마주친 적도 없는 남녀가하나의 집과 같은 침대를 낮과 밤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시간차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경제적 상황과 거주조건을 적당히충족시켜주면서도 룸메이트와 마주치는 등의 곤란한 상황은 최소화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는 리언과 티피 모두에게 완벽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타인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타협하며 서로간에 지켜야할 선을 하나하나 정립해나가는 지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성별, 취향, 성격 모두다르고, 안면도, 공감대도,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없던 두 사람이었다. 애초부터 실용적인 이유에 의해 시간차 동거를 선택한 이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는 것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티피는 페이스북으로리언을 검색하여 자신의 타입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을 확인하고 셰어하우스를 결정하였고, 리언은 여자친구 케이의 허락으로 티피와의 셰어하우스를 하게 된다. 리언의 여자친구 케이가 리언의 룸메이트를 선정하는 기준은 적정한 수준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었고 케이의 눈에는 티피가 그러한 범주에 속했다.

 

 

별나 보여. 사람이 아닌 것처럼 크고. 아직 한 겨울인데 커다란 뿔테 선글라스를 썼더라고. 꽃을 잔뜩 그려놓은 부츠를 신고 말이야.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녀가 빈털터리인 데다가 이렇게 싼 방을 구해서 신바람이 났다는 거야.” (p. 49)

 

셰어하우스 초기에 리언과 티피가 서로를 오해하게 된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침대 밑에 놓여있는 열개가 넘는 손뜨개 목도리를 발견하고 티피가 리언이 사람들이 목도리를 두르는 겨울철에 활동하는 연쇄 살인마로 오인한 건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 리언은 셰어하우스를 시작하기 전 직장에 지각까지하면서 침대 시트를 세탁했지만 새로운 시트로 갈아져있는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잡동사니 더미와 기괴한 램프, 무지개 날염을 토해놓기라도 한 것 같은 알록달록 장식된 침실을 보게 되면서 리언의 티피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런 그들을 연결시켜준 건 포스트잇 쪽지였다. 시작은 티피였다. 두툼한 팬케이크와 함께 놓여 있는 쪽지를 보며 리언은티피를 향한 반감을 덜 수 있었다.



마음껏 드세요! 좋은 밤/낮을 보냈기를. 티피



 

 

처음에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서 남겨두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지만 쪽지가 계속되면서 연락에 대한 메모부터 화장실사용방법에 대한 요청, 공간이나 정리되지 않은 짐의 처리 방식, 나아가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확장되어갔다. 또한, 서로가 남긴 쪽지에 답장이 쌓이게 되면서 식탁 위, 침대, 냉장고, 세면장 진열대, 화장실, 보일러에 이르기까지 집안 곳곳 발길 닿는 곳에 두사람이 적은 포스트잇으로 도배가 되게 된다. 포스트잇과 함께한 일련의 시간을 거친 후에리언이 질색하던 티피의 총천연색 추레한 물건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물건으로 생각했던 브릭스턴 담요는 티피만의 개성이 담긴 물건이자 정을 붙일 수 있는 물건이 되어 갔다.





 

 

냉장고 문에 이마를 잠시 얹었다가 종이 쪼가리와 포스트잇 쪽지들을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엄청난 양이었다. 농담, 비밀, 이야기, 두 사람의 인생이 천천히 펼쳐지고 있는 광경.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가는 광경. 아니면 뭐랄까. 동시에 똑같이 바뀌는 장면이랄까. 다른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p. 251)

 

 

포스트잇의 마법은 두 사람의 인생을 펼쳐놓았고, 마침내 두 사람의 삶을 변하게 만들었다. 전남친 저스틴의 왜곡된 사랑안에 갇혀 현실감각과 판단력이 흐려져 있던 티피가 용감하게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고 저스틴 앞에 당당하게 마주서는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더 이상은 아니야. 내가 보고 믿고 생각하는 걸 스스로 의심하게 하는거. 그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더라. 일종의 학대라고. 더이상은 안돼.” (p. 403)

 

 

또한 리언은 연인인 티피도 심지어는 그 자신도 생각지 못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절제하고 과묵한 성격 때문에 티피에게 다가가는걸 망설이고, 프라이어에게 닫힌 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리언이 발코니에 있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하수관을 타고 올라 과감히 연인에게 다가가는 사람으로 변할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신은 확실히 나에게서 최대치를 끌어내는 재주가 있어요.” (p. 443) 라는 리언의 고백은 참 로맨틱하다. 입꼬리가 내려가는 연인 특유의 사랑이 담긴근사한 미소를 바라보면서 예쁘고, 기발하며 모호하기까지 한 대사를 들으면 어느 누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티파니 무어, 달이 아주 여러 번 차고 기우는 동안 이런 눈으로 계속 당신을 바라볼 생각이예요.” (p. 448)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유머는 로맨스의 달달함을 더 키워주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아직 연애초반이잖아. 아직은 지구인인척해야 한단 말이야.”라는 티피가 절친에게 하는 사랑스러운 투정이나 편안한 브라가 시판되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한 요즘에는 비욘세가 여자들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다는 티피의농담은 독자들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세상에 굶는 사람이 없어지면 U2의 보노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감이 떨어질 것이란 리언의 귀여운 표현이나 달콤한 주말 아침잠을 날려버린 티피를 도널드 트럼프와 내내 콧소리를 흥얼거리는 우버 기사를 젖히고 증오 리스트의 탑에 올려놓았다는 티피의 친구 거티의 표현은 또 어떤가?

 


 

소설은 티피와 리언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이는 티피와 리언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생각, 행동에 대한 독자들의이해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두 사람 서로간의 오해가 쌓여갈수록 지켜보는 독자의 안타까움을 증폭시킨다. 또한 두 사람뿐만 아니라 티피와 리언의 지인들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관계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준다. 리언의 솔직하고 믿음직한 동생 리치와 뜨개질 속도가 번개 같아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필요도 없는, 기계 보다 더 빠른 손의 소유자 프라이어, 할리우드 스타처럼 조각 같은 턱에 눈이 반짝이던 조니 화이트, 백혈병에 걸린 사랑스러운 아이 홀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는 리치의 조력자다. 리언이 티피에게 결정적으로 마음을 열게 된 이유도 리치를 대하는 티피의 태도와 말때문이었다. 티피의 오랜친구로서 리치의 사건을 해결해준 변호사 거티와 심리학자 모, 티피의 직장동료 사랑스런 푼수 레이철과 <코바늘 뜨기로 내옷 만들기>의 저자 캐서린은 티피의 조력자다. 두 사람의 전 연인인 저스틴과 케이, 티피의 직장동료 마틴도넓게 보면 두 사람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굳건하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조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는 용어 중에 금사빠라는 말이 있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또 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요즘 사랑의 한 단면을 포착한 용어라고 한다. ‘금사빠라는 말이 생겨나고 또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사랑의 인스턴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키워나가고 마음이 더 깊어지며 마침내 연인이 되는, 사랑을 하면 거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 마저도 인스턴트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셰어하우스>가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소설을 읽고 우리시대에 어울리는 로맨스는 따로 있다는 광고 문구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혁명의 거론되는 시대에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히어로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종이책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이북은 아직 종이책 시장을 넘보지 못하고 대중들은 다시 LP판을 찾는다. 최신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가슴 속에는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구할 수 있는 따스함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삶의 정수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일상 속에, 평범하고 지루하기 때문에 더 고귀하고 위대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삶 속에 있다는 것 때문 아닐까? 이들은 청혼과 승낙도 아날로그로, 포스트잇 쪽지를 통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한다.

 

스톡웰 마데이라 하우스 3호의 티파니 로즈 무어. 내 아내가 되어줄래?”

리언 투메이. 오직 당신만이 그 자리에 없는 채로 청혼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예스. 분명히. 확실하게 예스야.” (p. 493)

 

당신은 집 냄새가 나. 당신은 집이야.”

당신이 오기 전까지, 그곳은 집이 아니었어 티피.” (p.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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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필리파 페리 지음, 이준경 옮김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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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점이 많은 책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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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출세작 - 운명을 뒤바꾼 결정적 그림 이야기
이유리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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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어디선가 보았던 독자들과 미술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흐릿한 창을 닦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저자가 풀어놓는 화가들이 남긴 걸작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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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모조 사회 1~2 - 전2권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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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우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그의 등단작 <스파링>을 통해서였다. 고아원 출신의 문제아가 복싱 챔피언이 되는 다소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성장 스토리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안정된 호흡 속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심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공에 이르는 과정보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이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과정, 또 이를 극복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에 더 중점을 둔 구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낡고 닳은 소재를 2016년에 읽게 되다니,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라는 심사평에 공감하며 한동안 소설이 주는 여운 속에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 있다. 후속작 <저스티스맨>도 시대의 사회상을 반추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익명성과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 사회악으로 표면화되는 과정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표현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작에서 느낀 만족감과 신작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모조사회>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 머물러 있던 작가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고, 작가는 이를 SF라는 예상치 못한 장르와 스타일로 구현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SF야말로 작가의 몸에 맞는 옷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모조사회>라는 이름처럼 어쩌면 먼 훗날 인류가 도달할지모를 미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 있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전작들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그 대안에 대한 고민까지 담고 있다. 특정 세계관과 시스템 속에서의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SF의 장르적 속성을 생각해볼 때 데뷔작부터 이어져 온 작가의 고민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은 SF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세계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믿느냐는 거예요. - 1P. 125 -

 

어느 날 도시 한복판에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는 갑작스럽게 재난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낯설고 신비한 공간에서 눈을 뜬 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단 두 개의 대지 중 한 곳인 복지 자본 공동체라고 말한다. 인류의 헛된 망상이 한순간에 인류를 절멸케 한 바이러스를 출현시켰고, 살아남은 인류는 유일한청정구역으로 남은 좁은 반도에 새로운 도시 문명을 일구어냈지만 사회 시스템과 분배 방식에 대한 갈등으로 반도의 도시는 다시 모조사회복지 자본 공동체라는 두 개의 사회로 나뉘어 각각 독자적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세계는 인공지능 중앙 통제시스템이 필요에 의해 구축한 시스템 아키텍처이며, 초확장 현실로 구현된 가상의 세계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모조사회는 반도라는 한정된 물리적 공간으로 인해 수직형으로 발전한 도시사회로 그려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지상의 빌딩과 동력 마련을 위해 지하 깊은 곳까지 개발된 모조사회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구조도 수직화된 사회다. 메인 컴퓨터인 퀸과 중앙 통제 시스템이 위치한 원형 구조물의 이름이 콘클라베(Conclave)라는 사실에서 도시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시스템이 인공지능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의 이름이 되었다는 건 과학이 신이고 종교인, 실용적 가치가 극대화된 도시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도시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한 분배구조로부터 출발한 복지 자본 공동체는 태생적으로 수평사회를 지향하며 발전했다. 공동체는 자연 속에서 생태계와 공존하면서 공유와 조화와 균형을 최선의 미덕으로 여긴다.

 

 

 

 

소설 속 은 서로 상반된 두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이었지만, 이상향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차이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 과학기술 기반의 실용성을 중시한 는 공동체를 떠나 모조가 되었고,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이 지향하는 방향과 가치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은 공동체에 남았다. 이러한 인물간의 대립은 소설 속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예술가 바스키아의 SAMO 크루를 연상시킨다. 바스키아는 친구 알 디아스와 SAMO (Same Old Shit) 라는 크루를 결성하며 뉴욕 소호거리를 캔버스 삼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더 유명해지길 원했고, 반면에 디아스는 익명의 화가로 남길 원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그들은 SAMO is Dead라는 낙서를 마지막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모조가 된 SAMO룸으로 칭한 자신의 공간에 을 억류한다. 영원히 27세의 젊은 화가로 남아 있는 바스키아는 소설에서 영원불멸의 삶과 이상향을 향한 인류간의 갈등을 상징하고 있다.

 

 

 

 

어차피 저기서 자기가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니까.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어. 자기만 행복하면 됐지. 안 그래? - 1P. 259 -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는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인구통제와 자원개발이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사회는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개발해낸다. 이는 양자나노기술을 이용하여 신경망을 장악하는 시스템으로 인간의 감각을 왜곡시키고 공간을 조작하여 가상화된 허구의 삶을 현실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지만 진실이 왜곡된 삶이 진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공정과 부조리에 관한 진실을 감추고, 문제 자체를 해결해야할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시각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고 축소시키는 것 아닐까? 마치 모조사회가 거짓의 모조 (模造)된 삶이 내포하고 있는 마력 (Mojo)으로 개인을 현혹시키며 착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의 생각처럼 거짓이란 한번 만들어지면 반드시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결국 그것이 진실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 아닐까?

 

 

여러분의 정의가 정말 정의일까요? 만약 그게 정의라면 그것만이 유일한 정의일까요? - 2P. 38 -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사회는 먼 미래에 인류가 도달할지도 모를 서로 다른 유토피아를 대변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유토피아를 꿈꿀 수 밖에 없다. 인간은 현재의 삶을 딛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바람직한 사회나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니즘은 기본적으로 희망의 철학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절망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이 주장하는 유토피아를 사회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대안으로 강조할 때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변질될 수 있다. 누군가 바람직한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것을 거부하는 타인에게 강요할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를 강요하는 행위와 양립할 수 있을까?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와 관련된 화두를 보면서 고리끼의 희곡 '밑바닥에서'가 떠올랐다. 싸구려 여인숙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밑바닥 삶들 앞에 어느 날 찾아온 노인은 희망이 된다. 사람들은 점차 그의 희망 섞인 말에 기대를 걸고 꿈꿔왔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노인이 사라진 후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이들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꿈꾸던 삶과 현실의 간극만큼의 충격을 안고 이전보다 더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밑바닥에서는 희망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것이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장밋빛 희망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희망도 어떤 이들에겐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절망은 '헛된 희망'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단순한 공상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꿈을 간직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희망하고, 실패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희망을 꿈꿀 수 있다. 현실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으로 유토피아가 제시되고 디스토피아로 변질된 유토피아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인류는 발전해왔다. 앞으로도 거듭되는 실패를 감내하는 과정을 거치며 인류는 진보해나갈 것이다. 이상향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희생하면서 또, 자발적으로 희생할 용의가 있는 이들이 모여 거대한 결속을 이루면서 이들이 함께 꾸는 꿈은 유토피아가 된다. 소설 속에서 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것을 포기하고,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택한다. 어쩌면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기억 보다 망각과 용서가 필요한 것 아닐까? 결말의 충격적인 반전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새로운 존재방식과 이상향에 대한 가능성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 하는 삶을 위한 자발적 희생과 기억을 이겨낸 용서는 유토피아를 향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의 말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나머지는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허허벌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끝과 누군가와 함께 보는 풍경은 분명히 다릅니다. - 2P.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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